AI와 일을 하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AI와 일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판단이 계속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마치 사람과 일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다가도, AI랑만 하루 종일 대화를 하다 보면 공허하고 허탈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때로는 AI를 활용하면 마치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은 엄청난 효용감을 느끼다가도, AI가 전혀 쓸모 없이 그냥 내가 바보가 되어 가는 것 같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계속 글의 방향성과 제목을 수정하였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달라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떠오르는 감각들을 제대로 기록해놓는 것이 때로는 사람과, 때로는 AI와 일해야 하는 앞으로의 시대에 제 스스로 좀 더 날카롭게 일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기록을 해보려고 합니다.
AI와 일하기 vs 사람과 일하기, 꽤나 비슷합니다
AI를 활용해서 일을 하다 보면, AI를 꽤나 사람처럼 대하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좋은 결과물이 나오면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하기도 하고, 반대로 엉뚱한 답이 오면 화를 내곤 합니다. 마치 동료를 대하듯이 하소연을 하기도 합니다.
대하는 태도뿐 아니라 실제 일하는 방식도 비슷합니다. AI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은 결국 사람이므로, 리더로서 팀원들과 일하는 방식과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 AI에게 (팀원에게) 내가 원하는 작업의 배경과 목표지점을 이야기하고 업무를 지시합니다.
- AI는 (팀원은) 본인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은 지점, 작업을 위해 필요한 의사결정들을 나에게 확인합니다.
- AI가 (팀원이) 작업을 하고 그 결과물을 가져옵니다.
- 계속 피드백을 해가면서 — 그 과정에 짜증도 내고 칭찬도 하면서 — 원하는 최종 결과물을 함께 만들어갑니다.
- AI를 (팀원을) 시키는 것만으로 최종적으로 원하는 아웃풋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그러합니다. 그럴 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게. 고마워"
많은 사람들, 특히 리더들이 공감할 만한 포인트는 결국 1번과 5번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아웃풋을 척! 척! 만들어주는 "알잘딱깔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AI 모델 성능이 개선되면서 그냥 "해줘"만으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긴 하지만, 정말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면 몇 시간, 며칠을 씨름해야 합니다. 사람과 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좋은 사람을 채용하거나 팀원이 더 성장하면 과거보다 편해지긴 합니다만, 100% 내 마음처럼 일하는 사람을 만날 순 없습니다. 저는 제 상사가 원하는 방향을 꽤나 잘 알아먹는 눈치 빠른 회사원이지만, 여전히 가끔 엉뚱한 방향으로 갔다가 되돌아오곤 합니다.
그래서 1번에서 어떻게 업무를 지시할지, "프롬프트"가 중요합니다. 현재 배경은 무엇이고, 목표는 무엇인지, 제약조건이나 방법론은 어떠한지를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할수록, 더 많은 자료와 데이터를 제공할수록 AI도, 나의 팀원도 아웃풋이 개선됩니다. 반대의 경우 낮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가장 크게 차이 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일하기. 함께 일하는 사람은 함께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물론 내가 리더이기에 내 팀원의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지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해당 팀원이 좀 더 책임을 가져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내 팀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팀장인 내가 피드백해서 임원에게 보고했다고 합시다. 임원 입장에서 팀장이 팀원에게 똑바로 업무를 지시하고 피드백을 잘해서 결과적으로 좋은 보고서를 쓰게 만드는 것까지가 팀장의 책무입니다만, 이 보고서로 가장 직접적으로 좋은 평가 혹은 나쁜 평가를 받는 것은 팀장보다는 보고서를 쓴 당사자 팀원입니다. 팀장과 팀원이 책임을 나누어지는 구조입니다.
AI와 일하기. AI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AI를 활용하는 데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AI가 내놓은 결과를 보고 실질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웃풋의 퀄리티가 떨어졌을 때 결국 이것을 책임지는 것도 사람입니다. 나와 AI가 일한다고 생각하면 결국 '나'입니다.
그렇기에 AI를 조금은 의심하고 나의 책임감을 강화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하여 전반적으로 AI를 많이 활용하면서 나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AI 작업물들이 마치 내 것인 것처럼 돌아다니곤 합니다. 누군가 디테일에 대해서 물어보면 'AI가 만들어서 나는 모른다'라는 답변이 돌아오곤 합니다. AI가 만든 결과물에 책임을 지지 않아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현상이 잦아질 경우 결과물의 질은 떨어지게 되고, 개인의 역량이 하락함은 물론이고 좋은 평가를 받기도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 경계해야 하는 지점입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AI가 뱉어내는 결과들을 검증하고 가다듬어야 합니다. 거기까지가 내 몫입니다.
그럼 AI랑만 일하면 되지 않을까?
결국 내가 최종 아웃풋에 대한 책임을 가져간다는 맥락에서, 나랑 AI랑만 일하는 것이 내 개인의 관점에서는 더 좋은 아웃풋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일을 주는 것도 나이고, 최종 검수하고 책임지는 것도 나이기에 결국 내가 마음에 드는 아웃풋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시키는 과정에서 오히려 커뮤니케이션 비용만 많아지고 퀄리티가 부족해지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게다가 AI 성능이 발전하면서 나와 AI만으로도 꽤나 좋은 결과물이 만들어집니다. AI를 업무에 적극 활용하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냥 AI만 많이 쓰면 나 혼자 모든 업무 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AI와 일을 더 많이 해볼수록, 모든 일을 나와 AI만으로 할 순 없는 것 같습니다. AI가 내어 놓은 그럴 듯한 결과물을 보면 마치 모든 일이 한번에 끝날 것 같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이 아웃풋을 책임지는 것은 "나"라는 개인입니다. 내 개인의 인지능력, 의사결정력, 역량 범위를 넘어서는 아웃풋은 나올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AI를 많이 활용하면서 클로드코드 터미널 창을 동시에 띄워도 보통은 4개 정도가 저에게는 한계였습니다. 그 이상 넘어가면 제 집중력과 인지능력이 떨어져서 오히려 작업 효율이 떨어지더라고요. AI가 생산성과 퀄리티를 비약적으로 올려주는 것은 맞지만 한계 또한 명확했습니다. 결국 내가 하는 것이니까요.
사람과 일할 때는 결국 일정 부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책임을 나눠가지는 구조입니다. 아무리 좋은 리더와 좋은 구성원이 만나고, 위임을 잘해도 리더 입장에서 아웃풋의 퀄리티를 100% 통제할 순 없습니다. 100% 통제한다는 말은 리더 본인이 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고, 사실 그것은 팀이 함께 일하는 것도, 위임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위임을 하려면 결국 일정 부분은 팀원의 책임과 권한 하에 두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믿어야 합니다. 인도적이고 따뜻한 믿음이 아니라, 불가피한 믿음입니다. 함께 일하는 것의 시작점은 믿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뛰어나고 신뢰할 만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같이 팀으로서 일하려면 어쩔 수 없이 믿어야 합니다. (적어놓고 보니 종교 교리처럼 보이네요 ㅎㅎㅎ)
AI와 일할 때는 의심을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사람과 일할 때는 믿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일견 역설적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아웃풋의 퀄리티나 나쁜 의도, 불성실함의 가능성을 감안하면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 더 어렵기도 하거든요. 그런 관점도 맞지만, 책임을 나눠질 수 있느냐 없느냐의 관점에서는 AI는 의심해야 하고 사람은 믿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믿어야 하기에, 연대감에서 오는 환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된 믿음이지만 거기에서 비롯한 희열감과 기쁨이 있습니다. 함께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기쁨. AI와 하루 종일 일을 하다가 퇴근을 하면 일은 많이 했지만 어쩐지 허탈감이 들곤 합니다. 반대로 사람과 일을 하면서는 화가 더 많이 나면서도 같이 화내고 같이 축하를 하는 맛이 있습니다. 추억이 쌓이고 끈끈해지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그럴 때 '일할 맛'을 느낍니다.
AI와 리더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AI와 일하는 것과 리더로서 사람이랑 일하는 것은 꽤나 닮아있습니다. 업무를 시작하면서 어떻게 배경 설명을 하고 지시를 하는지, 중간 과정에서 어떻게 피드백을 할지, 마지막으로 내가 어떻게 최종 아웃풋을 검수하고 수정할지에 대한 고민들이 양쪽 모두에 동일하게 따라붙습니다. 어떻게 보면 AI와 일하는 경험이 리더십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하는 방식은 닮았어도, 나의 태도는 정반대여야 합니다. 책임을 결국 내가 혼자 지느냐, 나누어질 수 있느냐의 차이 때문입니다. AI는 책임을 질 수 없기에 최종 단계에서 결국은 내가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의심하고 검수해내야 합니다. 반대로 사람은 그 결과물은 부족할지언정 책임을 나누어 지기에, 끝에 끝까지 가서는 믿고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AI와, 때로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이제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각각의 상황에 따른 협업 방식의 차이를 놓치지 않아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나름대로 한 줄로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AI는 의심해야 하고, 사람은 믿어야 합니다. 적어도 책임을 나눌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는요.
구독자분들도 이번 주에는 AI에게 한 번 더 되묻고, 동료는 한 번 더 믿어보는 하루가 되셨으면 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일하는 사람의 생각 노트
백승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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