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하지 말라고 했으니 마시면 안 될까?

술을 안 마시면, 다 지킨 걸까요?

2026.10.20 | 조회 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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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술 마시지 말라는 구절이 어디 있나?”

 

요즘은 덜해졌지만, 제가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교회에서 술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강한 편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딴지를 거는 지인들도 있었죠. “성경에 술 마시지 말라는 구절이 있나?” “예수님도 술 마셨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럴 때 보통 금주를 변호하며 꺼내는 카드가 있습니다.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 에베소서 5장 18절, 새번역

 

취하지 말라고 했으니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면 되지 않냐는 반박이 다시 들어오곤 했습니다. 논쟁은 결국 끝이 안 나는 것 같습니다.

 

이 구절은 술을 금하는 말씀일까요, 적어도 취함만은 막으라는 말씀일까요? 술을 입에 대지 않기로 한 분의 결단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다만 이 구절의 의미를 더 파고들면, 바울이 이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술 너머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 이야기 안에 있는 문장

 

18절 바로 앞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살피십시오. 지혜롭지 못한 사람처럼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
— 에베소서 5장 15, 17절, 새번역

 

지혜와 어리석음. 이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잠언입니다. 스티븐 파울(Stephen Fowl)은 술 취함이 통상적으로 어리석은 삶과 연결되어 왔다며 잠언 23장 29–35절을 예로 듭니다. 신학 사전 TDNT는 에베소서 5장 18절의 그리스어 ‘술 취하지 말라’를 잠언 23장 31절의 그리스어 번역(칠십인역)과 같은 표현으로 연결합니다.

 

적어도 이 말씀의 배경에 잠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에베소 교회에 술 문제가 있어서 술 취함을 경고한 걸로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디오니소스 축제의 방탕한 문화를 거부하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본문 안에서 더 선명하게 나오는 맥락은 지혜와 어리석음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울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술 취하지 말라는 명령 뒤에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라는 말이 붙습니다. ‘방탕’이라는 단어, 그리스어로는 아소티아(ἀσωτία)입니다. 이 말은 기본적으로 ‘낭비’를 뜻합니다. 거기서 무분별한 방종을 뜻하는 것으로 확장되죠. 같은 단어가 디도서 1장 6절과 베드로전서 4장 4절에서는 ‘통제되지 않는 생활’을 가리킵니다. 술 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술이 우리를 통제되지 않는 삶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잠언은 술 취함을 이렇게 그립니다

 

통제되지 않는 삶의 문제는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잠언이 보여줍니다.

 

재난을 당할 사람이 누구며, 근심하게 될 사람이 누구냐? 다투게 될 사람이 누구며, 탄식할 사람이 누구냐? 까닭도 모를 상처를 입을 사람이 누구며, 눈이 충혈될 사람이 누구냐? 늦게까지 술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 혼합주만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냐!
— 잠언 23장 29, 30절, 새번역

눈에는 괴이한 것만 보일 것이며, 입에서는 허튼 소리만 나올 것이다. (…) “사람들이 나를 때렸는데도 아프지 않고, 나를 쳤는데도 아무렇지 않다. 이 술이 언제 깨지? 술이 깨면, 또 한 잔 해야지” 하고 말할 것이다.
— 잠언 23장 33, 35절, 새번역

 

술에 취한 사람들에게 나오는 소리를 보십시오. 근심과 다툼, 탄식이 나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 싸움. 허튼소리를 하고,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상처를 입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상처를 입었는데도 술자리를 떠나지 않고 다시 술자리를 찾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삶입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까지 잊어버리고, 곁에 있는 사람의 아픔을 알 수 있을까요? 맞아도 “아무렇지 않다”라고 하는 사람이 자신이 남에게 가한 폭력을 무겁게 여길까요?

 

“너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나 고기를 탐하는 사람과는 어울리지 말아라.”
— 잠언 23장 20절, 새번역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을 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혼자만의 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잠언 31장 5절에서는 어머니가 르무엘 왕에게 “술을 마시면 법을 잊어버리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판결을 불리하게 내릴까 두렵다.”(새번역)라고까지 가르칩니다. 왕에게 한 말이지만, 술 취함이 법과 정의를 왜곡하고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삶으로 이끄는 술의 문제는 개인으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 사회의 문제로 다뤄집니다.

 

술 취함의 반대편에 있는 소리

 

술 문제에 대한 공동체적 맥락은 에베소서에서도 드러납니다. 5장 이전에 바울은 새 사람이 된 이들의 공동생활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자기 이웃과 더불어 참된 말을 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 에베소서 4장 25절, 새번역

 

화를 내더라도 죄에 이르지 말 것, 도둑질하던 사람은 수고하여 궁핍한 이에게 나눌 것, 나쁜 말 대신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는 말을 할 것. 공동체 속에서 내가 행동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5장 18절 뒤에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가슴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 에베소서 5장 19–21절, 새번역

 

19–21절 내용은 문법적으로 볼 때, 18절에서 이야기한 성령 충만한 삶의 모습들을 표현합니다. 그 삶은 공동체적 삶의 모습입니다. 성도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서로 순종’은 관계 규범의 기초가 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술 취함과 성령의 충만은 서로 반대편에 있는 삶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죠. 취함이 다툼과 싸움을 불러일으킨다면, 성령 충만은 서로 노래와 감사로 화답하고, 서로 순종하며, 더불어 살아가게 합니다.

 

‘뛰지 마’라는 말과 배려

 

요즘 아이들에게 집에서는 뛰지 말라고 말합니다. 층간소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뛰지 말라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제가 하는 말은 “뛰지 마!”입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뛰지 않는 아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알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뛰지 마!”라고 말할지 모르겠네요.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설명을 생략해버리면서요.

 

제게 우리 아이들이 ‘뛰지 않는 아이’가 되어야 하겠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겁니다. 제 의도는 뛰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술을 마셔서는 안 될까요? 본문은 분명히 취하지 말라고 합니다. 다만 뛰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도가 있는 것처럼, 마시지 않고 취하지 않는 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술 취함을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
— 에베소서 5장 17절, 새번역


함께 술 마시지 않는 교회 공동체 속에 취함은 없는데, 성령의 충만함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금주가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미덕인 양 중고등학교 예배 때 귀가 따갑게 들은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금주는 성공하고, 공동체를 향한 삶은 실패한다면 우리는 과연 술 취하지 말라는 구절에 담긴 뜻을 행하고 있을까요?

 


 

저도 금주를 실천했고, 금주의 실천을 비하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결단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다만, 그 결단은

이웃을 향한 존중으로 이어질 때에야 비로소 빛이 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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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원 드림

상식과 신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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