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지 말라’는 입 다물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 심판 앞에 선 자는 비판과 침묵 중 무엇을 선택할까?

2026.10.13 | 조회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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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 시절 다닌 교회에서는 권위에 순종하는 것을 큰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아니,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이었죠. 그 권위를 가진 지도자가 흠이 있다고 하더라도 권위와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판을 삼가는 것이 옳은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회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까요? 비판적인 얘기를 하면 믿는 자로서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쉽습니다.

 

“비판하지 말라”는 산상수훈의 말씀은 이처럼 권위 앞에 순종을 요구하는 분위기를 지지하는 말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목회자와 교회를 판단하지 말고 순종하며 기도하십시오.”

 

그런데 비판하지 말라는 마태복음 7장 1절의 말씀, 예수님께서는 정말 부정적 얘기는 하지 말고 입을 다물라고 하신 걸까요?

 

비판, 하나님 심판에 대한 인식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 마태복음 7장 1절, 개역개정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누구한테 비판받는 걸 이야기하는 걸까요? 내가 비판하는 그 사람에게 비판받지 않기 위해서요? 다른 사람 면전에서 욕하면서 나는 좋은 말 들을 거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비판하는 주체를 사람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말씀의 무게를 다 담지 못합니다.

 

여기서 나를 비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 구절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 마태복음 7장 2절, 개역개정

 

성경에서 행위자를 밝히지 않는 ‘수동태’(‘비판을 받을 것이요’처럼 당하는 꼴)가 문맥상 하나님을 가리킬 때, 이를 신적 수동태라고 부릅니다. 이 구절도 그렇게 읽는 학자가 많습니다. 새번역 7:2은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하실 것이요’로 번역하며 행위자를 하나님으로 해석합니다.

 

이렇게 보면 이 구절은 하나님께 비판받지 않도록,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하는 그 비판과 헤아림으로 하나님께서도 나를 판단하시고, 헤아리실 테니까요. 이 내용은 마태복음 안에서도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 주기도문에서도 내가 용서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고 말하고 있죠. R. T. France는 주기도문 바로 뒤의 6:14–15에 비추어 7:1–2의 수동태도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읽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문제는 나와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거죠.

 

비판이 아닌 판단/심판

 

이렇게 보면 ‘비판’이라는 단어가 좀 걸리지 않나요? 하나님께서 나를 비판하신다? 하나님의 비판. 이런 단어를 우리는 거의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죠. 새번역은 이 구절을 이렇게 옮깁니다.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 마태복음 7장 1절, 새번역

 

심판 또는 비판으로 번역한 이 단어는 그리스어 ‘크리노’로, 사전에는 ‘판단하다, 의견을 말하다’처럼 중립적인 뜻도 있습니다. 비판이라는 뜻도 있지만, 이 문맥에서 주석가들은 남을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정죄하다’의 뜻으로 읽습니다. 하나님께 정죄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도 남을 정죄하지 말라는 흐름이 자연스럽죠.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죄 지은 자에게 용서한 것 같이 우리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처럼요.

 

이 구절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비판’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남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을 완전히 멈추라고 권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솔로몬의 재판은 근본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태도입니다.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태도입니다.

 

들보와 티, 하나님 심판 앞에서 태도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 마태복음 7장 5절, 개역개정

 

나에게는 들보, 지붕을 받치는 큰 각목이 있습니다. 남에게는 아주 작은 ‘티’만 있을 뿐이죠. 크기를 비교하는 걸까요? 이건 속담처럼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뜻으로 볼 때 오류가 생깁니다. 이런 논리로 모든 인간이 죄인인데 누가 누구를 정죄하겠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런 논리로 범죄를 저지른 목회자를 비호하는 경우를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서 빼지 말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빼라고 합니다. 순서가 다를 뿐이죠. 먼저 가장 잘 아는 것부터 빼야죠. 바로 나에게 있는 것. 그 뒤에야 다른 사람 눈에 있는 것도 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의 끝에 있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빼 주는 일’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제거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를 지적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바로 하나님 심판 앞에 서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외식하는 자, 위선자의 태도는 이렇습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 자로 여기지 않습니다. 커다란 각목처럼 죄가 훤히 나에게 드러나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나를 심판하실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요.

 

하나님의 심판은 받지 않겠다면서 남은 내가 심판하겠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자리에 내가 서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To pass judgment is to assume God’s authority.”
“판단을 내리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
— The Orthodox Study Bible, 마태복음 7장 2절 주석

 

판단의 태도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지으면 “가서,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그에게 충고하여라” 하십니다.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라고 하십니다(마태복음 18장 15–17절, 새번역).

 

비판하지 말라. 잘못을 모른 체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태도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지 않는 것. 하나님 앞에서 내 행동이 심판대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오히려 잘못이 있을 때 바로잡아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면서요.

 

비판하지 말라는 구절로 누군가의 입을 막고 내 잘못을 덮고 있다면,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무겁게 여기는 것일까요? 비판하는 자와 비판을 막는 자, 누가 이 구절을 어기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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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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