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토피아라는 디즈니 애니매이션을 본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정말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스토리도 물론 재미있지만,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굉장히 매력있게 표현되는 점도 즐거움을 주는 큰 요소였습니다.
이 영화의 한 장면중에는 차량국(도로교통공단 같은 느낌)에서 일하는 공무원인 '나무늘보'가 나옵니다. 경찰인 주인공이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도로교통공단을 방문해서 빠르게 무엇인가 일처리를 해야하는데 이 나무늘보 공무원은 정말 속터지게 말도 느리고, 일 처리 속도도 매우 느립니다. (이 장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꼭 한번 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것이 느려터진 나무늘보 공무원에게는 반전이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주인공은 어느지역에 폭주족이 나타났다는 신고를 받고 시속 185KM로 달리는 스포츠카를 잡습니다.
그런데, 이 과속 운전자가 바로 그 나무늘보 공무원입니다.
저는 이 나무늘보를 보면, 국내에서 저변동성(Low-Volatility) 투자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변동성(Low-Volatility) 투자는 변동성이 낮은 종목들에만 투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변동성이 낮다는 것은 쉽게 말해, 종목의 가격이 별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잔잔한 호수처럼 종목의 가격이 크게 움직이지 않고 상승 혹은 하락하더라도 천천히 움직이는 느낌입니다.
반대로, 종목의 가격이 급락 혹은 급등하거나, 하루에도 +5%, +10% 쭉쭉 상승했다가, -7%, -12% 하락했다가를 반복하는 등 마치 폭풍을 만난 배처럼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고, 하락하는 종목들은 고변동성(High-Volatility) 종목이라고 우리가 부를 수 있습니다.
과거 종목의 가격움직임의 속도에 따라 투자성과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살펴보겠습니다.
나무늘보 투자법이 정말 빠릅니까?
국내주식 2,000여 종목을 대상으로, 매 분기마다 모든 종목의 과거 변동성을 측정합니다. 그리고 이 변동성을 기준으로 줄을 세워보겠습니다. 변동성이 가장 낮은 종목들을 1등 ~ 200등까지 모아서 1번 그룹이라고 해주고, 201등 ~ 400등까지 모아서 2번 그룹, ... , 이렇게 10개 그룹으로 나누어 주겠습니다.
1번 그룹은 우리가 저변동성(잔잔하고 느린 가격 움직임) 종목들로만 이루어진 그룹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요, 10번 그룹은 고변동성(역동적이고 빠른 가격 움직임) 종목들로만 이루어진 그룹이 되겠네요.
2007년부터 매 분기마다 이렇게 줄을 세워 그룹을 만들어서 투자를 반복했다면 어떤 결과를 얻었을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제가 저변동성(Low-Volatility) 투자가 마치 주토피아에 나오는 스포츠카를 타는 나무늘보와 같다고 표현한 것은 이렇게 천천히 움직이는 종목들에만 모아서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빠르게 움직이는 종목들보다 훨씬 더 우수한 성과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느린것 같아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빠른 경우입니다.
느린 종목이 더 빠른 이유는?
저변동성(Low-Volatility) 효과에 대한 발견과 연구는 이미 오래전(1972)부터 알려져 왔습니다. 여러 가설들과 이유들이 설명되고 있는데 그중 쉬운 설명으로는 상대적으로 저변동성 주식들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에 이런 주식들에서 발생하는 긍정적인 실적 발표 등의 소식들이 가격에 더 잘 반영이 된다는 것입니다.
평소 성적이 그냥 그저 그랬던, 그래서 크게 기대와 관심을 못 받던 학생이 어느날 성적이 크게 오르면 반전 효과로 인해 더욱 칭찬과 관심을 받게 되는, 그러한 효과와 비슷하다는 말인것 같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앞선 '인기주식에 투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편에서 다루었듯이 인기주식에는 과도한 기대가 반영되어 있어 가격이 매우 비싼 상태를 이루는 반면, 관심과 기대에서 멀어진 주식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상태를 유지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PBR 을 통해서 보면, 저변동성 종목군들이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어 있는 종목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몇가지 다른 특징들을 더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소형주들에서는 투기적 거래가 많고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도 가격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보니, 가격 변동이 심한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반면, 대형주들은 상대적으로 잔잔한 종목들이 많죠.
또 다른 특징으로는, 고정비상환비율이라고 해서 기업이 고정비용으로 지출하는 부채나 이자비용, 리스 비용 등을 벌어들이는 돈으로 얼마나 잘 감당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저변동성 종목들이 이러한 특징이 강한데, 제가 다른 특징들과 좀 살펴보니 전반적으로 IT나 헬스케어 처럼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를 하는 종목들 보다는 전통 제조업, 계절성을 타지 않는 기업들, 현금흐름이 좋고, 비즈니스가 이미 성숙한 기업들이 많이 포진해 있습니다. 배당성향도 높구요.
기업 실적이 큰 부침없이 찬찬히 돈을 벌어가며 주가도 이에 따라 천천히 동행하는 특성에 더하여 투자수익의 많은 부분이 배당에 의한 수익으로 설명이 됩니다.
그렇다면, 배당효과를 더 극대해보기 위해 저변동성 종목들과 배당률을 조합을 해보면 어떨까요?
이번에는 위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변동성을 기준으로 낮은 순으로 5개의 그룹을 만들고, 각 그룹안에서 배당률을 기준으로 다시 줄을 세워 또 5개의 그룹으로 쪼개보겠습니다.
저변동성 종목들안에서도 배당률이 높은 종목들과, 배당률이 낮은 종목들을 구분하는 것이죠. 반대로, 고변동성 종목들안에서도 배당률이 높은 종목들과, 배당률이 낮은 종목들을 구분하는 하고요. (배당을 안하는 종목들은 제외하고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과거 변동성이 낮은 종목들에서도 배당률이 높은 종목들의 성과가 크게 우수합니다. 애초 변동성이 낮은 종목들에 투자를 하다보니, 손실 위험도 낮은 특성이 있습니다.
상담을 요청하시는 고객분들 중에는 배당주 투자를 선호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투자 성향 자체가 꾸준히 모아가시는 투자를 하고, 당장 큰 수익을 바라지 않고, 단기적 가격 하락에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들이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차곡차곡 비교적 덜 위험한 투자를 선호하는 성향입니다. 이런 투자성향을 가진 분들에게도 괜찮은 투자가 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듭니다.
결론
- 때로는 느린것이 가장 빠를 때가 있다.
- 변동성이 낮은 종목들이 높은 변동성을 가진 종목들에 비해 성과가 좋다
- 변동성이 낮은 종목들은 관심과 기대가 적은 종목들에 속한다.
- 이미 성숙한 기업, 전통적 산업에 속한 종목들이 많다.
- 배당률과 조합해서 본다면 낮은 위험에 배당까지 더해져 우수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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