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리감 일지

"위드 코로나" "예측 불허" "앞으로 10년"과 같은 키워드가 할리우드 영화 예고편의 자막처럼 바쁘게 날아다니는 사회. 이런 사회에 일개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지난달 백신 2차 접종일 무렵에 배우 조진웅이 프리젠터로 나온 JTBC 팩추얼 <A.C. 10>을 봤다. 1부, 백신의 욕망. 2부, 노동의 재구성. 3부, 국가의 이유. 도서로도 출간된 프로그램 내용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요즘들어 일상에서 독서 피로감을 호소하던 나는 소액 결제를 통해 누워서 세계 석학들이 분석하고 예견한 세상 이야기를 들었다. 역사상 그런 일이 있었다거나 앞으로 그런 일들이 일어날 거란 말들을 듣고 있는 상황에서도 내 몸은 격리된 작은 공간 안에 누워 있었다.

녹슨 쇠가 되어 드라이 아이스 세례를 맞는 기분. 화이자 2차 접종을 끝낸 직후 이틀간 나의 상태는 그랬다. 오한이 있었고 인류의 반성과 각성, 미래에 대한 다각도의 진단이 나오는 TV 프로그램과는 무관한 상태로 시간이 흘러가는데 현관 밖으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계단 난간을 붙잡고 몇 칸을 오르던 이름 모를 할머니가 흥남인지 순남인지 모를 인물의 이름을 외치고 계셨다. 

"O남아!" "O남아!" 

이 집 저 집 현관에 똑똑똑 노크를 하면서 이름을 부르던 할머니는 이내 여기가 아닌가 하는 혼잣말과 함께 다음 건물로 이동하셨다. 나는 누워서 기운 없이 홀로 읊조렸다. 

"하, 할머니, 여기, 여긴 아니에요."

몇 분간의 시트콤 같은 대치 상황이 마무리되자 실소가 터졌다. 친구들과 있는 단톡방에 이야기하자 친구들도 함께 웃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기술이 닿지 않는 외진 공간들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내가 사는 동네도 그렇다. 혁신이니 뭐니 하지만 가장 궁극적인 발전은 일어나기 힘들다는 판단. 그런 괴리감으로 살아가던 중 얼마전 KT 통신장애를 통해 깨달았다. 

'편하게 살긴 어렵지만 정말 어려운 시기에 더 어려워지지 않으려면 모든 것에 대비할 수 있는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동시에 필요하다.' 이런 깨달음을 오래 붙들지도 못하고 또 연말이 찾아왔다.

정말로 위드 코로나 시대가 왔고, 확진자가 폭증하면 또 다시 예전보다 어려운 생활이 펼쳐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오랜만에 잡힌 모임 약속에 내적 갈등이 심화되는 중이다. 나만 조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며, 나도 모르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좀 더 두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생활 전반에서 내가 무엇을 더 신중하게 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괴리감을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을까. 어떤 균형으로 살아가야 할까. 생각은 많아지지만 정리가 되긴 어렵다. 코시국과 다를 것 없는 내면을 들추다가 나처럼 별다른 방법이 없어 현상 유지에 힘쓰는 사람들이 많은 연말인 것 같다. 

또 다시 새해가 되면 어떤 국면에 접어들지 모르는 가운데 어떠한 대책 없이 살아가며 안전하고 따뜻하기를 바라는 요즘이다. 

추신, 만물박사 김민지. 오랜만에 메일 띄워요. 오늘은 괴리감에 대해서 적어봤습니다. 여러분은 요즘 어떤 괴리감을 느끼시나요. 저는 얼마전 다시서점에서 진행하는 2021 ART MUST GO ON 프로젝트 '안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기에 세세하게 쓰지 못한 깊은 안부를 담은 편지를 썼고 곧 그 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어디에 계시든 지나가는 가을의 풍경만큼은 마음에 꼭 담아두시길 바라며 다음 레터를 띄우며 또 인사 드릴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만물박사 김민지의 뉴스레터는 구독자 여러분의 긴장성 두통, 과민성 방광 및 대장 증후군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좋은 텍스트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