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프피의 각설

MBTI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유형으로 살아간다는 것

2021.09.01 | 조회 1.19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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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를 안 띄운지 열흘이 넘었다. 그동안 나무도 만나고, 길도 걷고, 지붕도 만나고, 막다른 길도 돌아 나오고, 돌도 만나봤지만 언제나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인터뷰이에게 혼부터 나는 인터뷰어였다. 처음 이 레터를 시작할 때에도 충분히 예상했던 그림이었다. 내가 던진 질문이 나에게 돌아오는 과정을 잘만 풀어내도 어느 정도 인생과 마주하고 있는 게 아닐까 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돌파 전략이 필요해 보였다.

근래에 나는 MBTI에 꽂혀 있다. 다양한 군상의 인간을 유형화 하다니. 이런 유형화는 실로 엄청 위험한 행위일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이 많은 나와 같은 인간에게 사람은 늘 의문이었고, 그중에서도 자신으로 살아가는 내가 나를 잘 모르고 여기저기 여러 말을 흩뿌리는 것을 넘어 글을 남긴다는 게 제일 의뭉스러웠기에. 유형화를 통해 나와 상대, 집단을 이해해보는 일들이 꽤 흥미로웠다.

이상주의자 중에서도 TOP이라는 INFP 유형은 TPO에 맞게 생각을 옷처럼 입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생각을 다 써놓고 보면 결국 한 마디로 좁혀지는 기분이랄까. 이건 마치 매일 "오늘 뭐 입지" 고민하다가 옷을 사러 가서 사서 돌아오면 비슷한 옷에 비슷한 옷을 더해서 개키거나 걸어 놓는 듯한 느낌. 이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한동안 뜸했던 거라고 믿고 싶다. 

게으른 완벽주의라는 속칭을 가진 인프피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실 나를 제일 많이 보는 것도 나. 나를 제일 의식하는 것도 나. 어쩌면 인프피만 아는 인프피로 살아가는 괴로움은 '나를 향한 질림'이 아닐까. 그래도 이 질림은 어떤 면에서 바라보면 '한결같음'이라는 긍정적인 명제로 읽히기도 한다.

인프피에게는 정말 요상하고 지독한 집요함이 있다. 또 가끔은 논리로 설명이 안 되는 어떤 비약을 통해 멋진 도약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생활과 마찬가지로 글쓰기에 있어서 요행을 바라지 않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느끼는 까닭은 메시지의 '항상성'을 키우고 싶기 때문이라고.

내일도 혼나고, 모레도 혼나겠지만 앞으로도 다소 이상한 인터뷰를 지속할 생각이라고 각설하며 이 레터를 띄우는 9월의 첫날이다.

백 번 기다림으로 양보해주신 구독자님들께
백 번 기다림으로 양보해주신 구독자님들께

추신, 이제 제법 가을이 아니고 정말 가을입니다. 당장 내일부터 레터를 여러분 메일함에 내놓겠습니다. 곧 또 뵈어요.

● 만물박사 김민지의 뉴스레터는 구독자 여러분의 긴장성 두통, 과민성 방광 및 대장 증후군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좋은 텍스트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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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밍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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