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복합기

나도 모르고 너도 잘 모르면서 하는 인간의 예술

2021.05.02 | 조회 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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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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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속절없이 미워하고 괄시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한때 나는 나에게 없거나 부족한 것에 크게 집착했고, 그 부분이 삶을 살아가는 데에 큰 지장을 주었다. 

경멸과 환멸은 다르다. 그때의 내가 안고 있던 감정은 확실히 경멸이었다. 같은 인생을 겪을 수 없기에, 무엇을 제대로 겪기도 전에 경멸부터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안다. 열심히 겪어보려고 해본 자의 환멸이 훨씬 나은 차원의 한숨이라는 것을.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서 불가능이다. 이 불가능의 장에서 뭐라도 써보겠다고 십여 년의 시간 동안 때로는 팽팽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자판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등단 그게 뭐가 중요해요. 쓰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데 지금 본인이 무슨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거죠?

이십 대 중후반에 주변 친구와 지인이 등단을 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 글 쓰는 게 전부가 아닌 것을 아는데도 틀려먹었다는 생각과 뒤처졌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던 시기였다. 

불안하고 불안정한 상태로 앞으로 본인이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도 모르면서, 적확하게 자신도 남들도 모르면서, 남에게 위로는커녕 나를 두둔하기 바쁜 사람으로 남을까 두려웠다.

그 두려움을 거듭하면서 내가 내린 결정은 '경멸에서 환멸로 가기'였다. 경멸의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단 뭐라도 해보는 연습이 필요했고, 좋은 환멸의 바탕은 좋은 꿈을 꾸는 것이었다. 그 이후에는 세상 기준 근사한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좋은 것을 먼저 꺼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무엇도 다 알 수는 없다. 알게 되더라도 다 안다고 자만하는 순간 망가진다. 특히나 이 쓰기의 장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는 자아가 종국에 어떤 시선과 표정으로 세계 안을 들여다보는지, 작가 스스로의 성찰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다. 그런 바탕은 언제 어디에나 필요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경멸에서 환멸까지 왔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바람이 있다면 익숙한 것에 환상성을 불어넣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뭐라도 쓰겠다고 하는 내가 느끼는 환상성이란 거창하고 근사한 것이 아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방금 다르고 지금 다른 와중에 특별할 것 없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나로 산다는 확신이 어디에서 오는지. 비슷한 의구심이 드는 사람들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확실한 믿음의 출처를 찾아보자고 글로써 모험을 해보는 것이다.

마감일에 OK교를 출력하고 있던 회사 복합기
마감일에 OK교를 출력하고 있던 회사 복합기

추신, 마감일 저녁에 홀로 열심히 아트를 선보이고 있던 회사 복합기 사진을 보내요. 등단을 해도 제 인생은 달라진 게 없네요. 종이 낭비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 낭비하지 않는 그런 글을 남기려면 저부터가 저를 잘 극복하며 생활해야겠다고 다짐하는 하루입니다. 

● 만물박사 김민지의 뉴스레터는 구독자 여러분의 긴장성 두통, 과민성 방광 및 대장 증후군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좋은 텍스트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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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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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범의 프로필 이미지

    일범

    1
    over 3 years 전

    독자야말로 환상의 동물인 것 같아요.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은 때라는 게 재밌네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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