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돌아온 수요일의 이종철, 수종철입니다. 어제부로 제 휴가가 끝이 났습니다. 마치 오디세이의 라이스트뤼고네스(철 갑옷 거인) 같은 강한 체력을 자랑하다 월요일에 출근했는데 온몸이 아픈 겁니다. 무릇 저의 강함은 놀 때만 발휘되는 것인가 봅니다.
오늘은 영화 오디세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실 별로 안 땡겨서 안 보고 있었는데요. 주변에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도 평가 궁금하다 해서 보고 왔습니다. 그 결과 제 방광은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키르케의 저주 어떻게 풀었는지 모릅니다.
하여튼 방광 문제가 없다면 이렇게 안 지루한 세 시간짜리 영화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처음 봅니다.
영화는 굳이 주제를 생각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비주얼 뽑은 게 미쳤어요.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나 이종철 느낌의 철 갑옷 거인 디자인도 멋지고요. 아가멤논 투구가 정말 미쳤습니다. 보면 감자탕 먹고 싶어져요.
영화는 고전비극 느낌이 많이 납니다만, 엄격한 의미의 고전비극에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고전비극은 주인공이 파멸하는 치명적인 성격적 결함을 말하는 하르마티아가 필수인데, 오디세우스는 별다른 단점도 없고 고결해 보이죠. 고전비극으로 오디세이를 만드려면 아가멤논이 주인공에 더 걸맞습니다. 왜 그런지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고요.
다만 주인공이 점층적으로 고난에 휩싸이는 과정은 고전비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놀란 감독은 고전(중에서도 특히 비극)을 정말 열심히 읽는 사람 같아요. 놀란 감독 작품 중 배트맨 시리즈, 그중에서도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고전 비극의 형식에 딱 맞거든요. 이 이야기는 궁금하신 분들이 있다면 해드리겠습니다.
영화 내내 오디세우스는 고난을 겪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죠. 신의 시대에 한낱 인간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때리면 처맞는 거죠.
중간에 대놓고 주제를 던지는 장면은 세이렌을 만났을 때입니다. 세이렌의 노래를 들어보기 위해 일행 중 유일하게 오디세우스만이 귀를 막지 않죠. 이 장면에서 맷 데이먼의 연기가 굉장합니다. 희열로 대폭발해서 무엇으로도 이길 수 없는 힘에 굴복해 눈물을 쏟죠.
이런 장면을 소설에서 본 적 있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초기작 ‘타나토노트’에서 저승으로 가기 직전 인간들은 최고의 환희에 도달합니다.
저도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면 온몸의 액체를 다 쏟아버리며 환희에 부들부들 떨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한 번 들어보고 싶군요. 하여튼 그 장면 대사는 이겁니다. 영화 대사는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서 원문에 있는 걸 가져옵니다.
네가 되고 싶었던 그 모든 것들.
그리고 차라리 바라지 않았으면 좋았을 그 모든 것들.
긁고 싶어 미치겠는 달콤한 가려움 같았지.
하지만 피부 속 깊은 곳 긁으려 해도 결코 손이 닿지 않는,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운 가려움 말이야.
그 노래는 네가 가장 원하는 것은 가장 가질 수 없는 것이고,
가장 가질 수 없는 것은 이미 가졌다가 잃어버린 것이라고 했어.
내가 지키지 못한 모든 약속들의 노래였지.
그리고 사실은 내가 정말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라고.
오디세이에서 세이렌의 위치는 다소 잘못 알려진 경향이 있습니다. 원문에 따라 세이렌은 사람의 욕망을 들끓여 잡아먹는 괴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의 지혜나 지식을 알려주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오디세우스의 표정을 봤을 때, 이 영화의 세이렌들은 후자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 격정적인 쾌락의 눈물. 알면 안 되는 것을 알아버린 절정의 쾌락.처음에 신의 반대에 있는 세이렌들의 말대로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세이렌의 노래는 오디세이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죠. 영화에서도 신들은 별로 개입이나 조언을 하지 않습니다. 신이 뭐하러 인간에게 조언하겠어요. 우리가 개미에게 말을 걸지 않듯이요.
다른 예언들, 그러니까 신보다 지옥에 가까운 자들이 하는 이야기들도 오디세우스는 별로 지킬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부하가 6명 죽을 걸 알면서 괴물이 있는 바다를 건넌다든가, 헬리오스의 가축이 있는 곳에 정박한다든가 하는 것들. 모든 걸 잃을 걸 알면서도 나약한 인간은 인간의 선택을 하죠. 그리고는 결국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타카로 귀환한 오디세우스는 처음에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부인인 페넬로페와 대화를 하죠. 여기서 원작에 없는 ‘환대의 법(Xenia)’을 어겼다고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여정 중 약탈을 하곤 했으니까요. 신의 법률을 어긴 것이죠. 실은 그 전쟁 자체가 신의 뜻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이 장면에서, 공허한 눈의 오디세우스는 말합니다. 자신의 계략으로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트로이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불바다로 만들었음을. 그 장면에서 자신이 신의 사자가 아닌 철저한 인간이었음을 깨닫는 것이죠. 이 장면은 맨 첫 음유시인의 노래를 정반대로 부정합니다.
이 장면에서 배경음악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세이렌의 노래였습니다. 내가 지키지 못한 모든 약속들의 노래. 차라리 바라지 않았으면 좋았을 그 모든 것들.
오디세이의 인물들은 모두 신의 법을 잘 지킵니다. 페넬로페는 20년간이나 제우스의 법을 지켰고, 텔레마코스 역시 (그럴 힘도 없었지만) 구혼자들을 처단하지 않았죠.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아니었습니다. 신의 계시도 어기고, 제니아도 어겼죠. 신의 전사가 될 자격이 없었던 겁니다. 그 결과 오디세우스는 구혼자들을 모두 처리하고 추방자(Exile)가 되기를 결심하고 부인과 아들을 지킵니다. 세이렌의 노래에서 단 한 구절만이 오디세우스의 열망과 달랐는데요. 추방자가 되어 집을 떠나며 세이렌이 알려준 지혜가 오디세우스의 삶의 방향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게 됩니다. 세이렌이 현혹한 건지, 오디세우스가 선택한 건지, 우연히 맞아떨어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죠.
오디세우스는 결국 신의 시대에서 인간으로 남기로 결정한 인물이 됩니다. 실제로 오디세이 이후 문명은 신의 시대가 아닌 인간의 시대로 불리니, 어거지로 끼워맞추면 납득이 가는 결과입니다.
신의 시대에 살기에 인간은 너무 유약하고, 갖고 싶은 것이 많았으며, 지키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너무 많은 것을 잃었지만, 결국은 자신의 인간성만큼은 지킨 것이 되는 셈입니다.

거창하게 썼지만 저는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신의 이야기보다는 인간을 비춘 거울이라고 봅니다. 신이 있다면 저렇게 마구잡이로 살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인간이 인간 비판을 위해 만든 이야기인데, 놀란 감독은 그걸 또 비틀어서 인간은 어쩔 수 없었음을 이야기해주죠. 그리고 그 필연들 속에서도 인간은 괴로워한다고.
오디세이는 당분간 계속 흥행할 거라고 보는 편입니다. 특히 저 장면들을 CG 말고 실제로 찍었다는 걸 보면서, 돈을 쓰려면 저렇게 써야 하는구나 싶은 장면이 많습니다. 아니 사실 거의 모든 장면이. 그래서 꼭 아이맥스로 다시 한 번 보면 좋겠다 싶은데 몇 달은 지나야 자리가 나려나요.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볼만한 영화가 참 많네요. 덕분에 극장가도 활기를 찾는 모양인데 왜 저희 동네 롯데시네마는 사라지죠. 이제 영화 보려면 무조건 한 정거장 걸어가야 하게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보시고 싶은 영화 있으면 어서어서 보세요. 저처럼 극장 없어지기 전에.
후기를 원하신다는 분들이 많아 긴 글로 남깁니다. 제가 또 후기를 남겼으면 하는 영화 있으시면 댓글, 답장(soojongchul@gmail.com)으로 보내주시면 잘 찾아서 보고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못 보신 분들은 서두르시고요. 저는 다음 주에 다시 쓸모없는 글로 찾아옵니다.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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