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테크 영업

7화. AI가 일자리를 줄인다는데, 왜 회의실에 사람은 더 필요할까요?

그 회의실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될까요?

2026.08.04 | 조회 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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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자꾸 같이 하자고 합니다

우리 제품에 대한 설명을 잘 끝냈습니다.

준비한 화면은 순서대로 열렸고, 데모도 버벅대지 않았습니다. 이제 질문 몇 개에 답하고 노트북을 닫으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고객이 물었습니다.

“저희 데이터를 직접 넣어서 보여주실 수 있나요?”

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어떤 데이터를 연결해야 하는지도 같이 봐주시는 거죠?”

“기존 시스템과 연결하는 것은 어디까지 해주십니까?”

“실제로 운영될 때까지 같이해주시는 거죠?”

SI 회사 사업팀에 할 질문을 제가 잘못 듣고 있는 건가 싶었습니다.

회사로 돌아오면 늘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SI 회사도 아닌데, 이것까지 다 해주면 사람이 남아나겠습니까?”

그런데 비슷한 프로젝트를 몇 번 더 지나자 질문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고객 안으로 들어가 직접 보지 않고, 우리 제품이 어디에 쓰일지 어떻게 알아내죠?”

그때부터 FDE라는 낯선 직함이 회의실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영업이 없어질 거라는 말도 그럴듯했습니다

AI는 제품 설명을 꽤 잘합니다. 제안서 초안을 쓰고, 고객 질문에 답하며, 경쟁 제품도 비교해줍니다. 고객은 영업을 만나기 전부터 검색하고 무료 버전까지 직접 사용합니다.

그러니 AI 시대에는 영업의 자리가 먼저 줄어들 것이라는 말도 그럴듯했습니다.

솔직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품의 특징을 전달하는 것이 영업의 중요한 일이었다면, 그 일은 분명 줄어들고 있었으니까요.

기존 테크 회사들이 영업 조직을 줄인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렸습니다. 남은 사람에게 더 많은 고객사와 높은 실적 목표가 주어지는 경우도 보게 됐고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AI를 기반으로 성장하면서 영업과 GTM 인력을 늘리는 회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장 전체의 영업 자리가 결국 늘어날지 줄어들지는 아직 알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영업의 채용 규모가 어떻게 되든, 회사가 영업에게 맡기려는 일의 구성은 바뀌고 있었습니다.

제가 기술영업을 처음 배울 때는 제품의 특징과 장점을 잘 설명하고, 고객과 관계를 만들며, 가격과 계약 조건을 협상하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기술적으로 깊은 질문은 프리세일즈나 엔지니어에게 넘기면 됐고요.

물론 지금도 이 일들은 중요합니다. 가격이 마지막 성패를 가르는 순간도 여전히 있습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영업의 자리는 좁아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고객의 페르소나와 조직도, 유스케이스를 이해하라는 교육은 있었습니다. 많은 회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죠.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품 설명과 관계 관리, 가격 협상에 밀려 체크리스트처럼 확인하고 넘어가기 쉬웠습니다.

이제는 그 내용을 피상적으로 알고서는 일을 진전시키기 어려웠습니다. 고객의 업무와 데이터, 기술 환경과 의사결정 구조를 실제로 이해해야 했습니다.


제품 설명이 끝난 이후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지난 글들에서는 고객이 더 이상 제품 하나만 비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반대편을 보려 합니다.

그렇게 달라진 고객을 상대하는 우리의 일은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요?

현장에서 먼저 본 것은 영업의 일이 그저 줄어드는 모습만은 아니었습니다.

제품을 설명하는 일은 줄어들 수 있었지만, 고객이 무엇을 해야 할지 함께 찾아내는 일은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제품 설명은 줄어든다는데, 이상하게 할 일은 더 많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고객이 AI로 풀고 싶어 하는 문제 중에는 자신들도 쉽게 손대지 못했던 일이 많았습니다. 데이터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거나, 사람이 너무 많이 필요해 오래 미뤄두었던 일들이었죠.

고객의 데이터와 연결된 AI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줍니다.

다만 그 AI는 고객 회사에서 일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 문서가 중요한지, 공식 절차와 사람들이 실제로 일하는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몰랐습니다. 데이터가 정확한지, 무엇이 빠져 있는지도 바로 확인하기 어려웠고요.

게다가 고객은 지금의 업무는 잘 알았지만, AI와 함께 일할 미래까지 완성된 답으로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품 스펙을 잘 설명하고 가격에 매력을 더하는 것만으로는 프로젝트를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어떤 일을 바꿀지.

어떤 데이터와 시스템을 연결할지.

사람은 어디에서 개입해야 하고, 누가 운영을 책임질지.

가격을 쓰기 전에 고객과 함께 실제로 추진할 프로젝트의 모양부터 만들어야 했습니다.

특히 고객의 데이터와 업무 방식에 깊이 들어가야 하는 AI 프로젝트에서는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소프트웨어를 파는 것 같은데, 막상 시작하고 나면 SI 사업처럼 함께 들어가 확인하고 만들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한 고객을 만나는 회의실에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영업 혼자서는 안 됐고, 기술만으로도 안 됐습니다

영업이 고객의 문을 열었다고 문제가 바로 정리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프리세일즈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고객 조직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엔지니어가 멋진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고 자동으로 계약이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좋은 데모 하나가 더 생겼을 뿐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프리세일즈는 고객이 제품에 대한 기술적 확신을 갖도록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품이 고객 환경에서도 작동하는지, 기존 시스템과 연결할 수 있는지, 영업이 한 약속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보여줬습니다.

이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준비된 화면을 보여주고 기술 질문에 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졌습니다.

고객의 실제 데이터로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지.

무엇을 성공이라고 볼지.

어떤 불확실성을 먼저 확인해야 할지.

좋은 질문으로 불확실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검증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는 일이 커졌습니다.

프리세일즈가 영업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관계를 관리하고 계약까지 책임질 필요도 없었습니다.

다만 전달받은 기능 요구만 보고 화면부터 여는 대신, 고객에게 직접 물을 수는 있어야 했습니다.

“왜 이 기능이 필요하신가요?”

“지금은 이 일을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어떤 결과가 나오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을까요?”

답을 보여주기 전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부터 함께 정하는 것입니다.

처음 FDE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고객 현장에 들어가는 엔지니어를 영어 세 글자로 다시 부르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달랐습니다.

코드를 만드는 것만으로 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고객의 실제 업무 안에서 제품이 작동하고, 그 결과가 다음 결정으로 이어지게 해야 했습니다.

겉으로 하는 일은 SI와 닮았습니다.

다만 제품 회사의 FDE라면 현장에서 반복해서 발견한 문제를 다음 고객도 활용할 수 있도록 제품과 배포 방식에 다시 남겨야 했습니다.

한 고객을 위해 만든 임시 해결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요구와 실패를 제품의 기능과 적용 방법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름만 FDE인 비싼 맞춤 개발팀이 되기 쉬웠습니다.

반대로 고객 현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제품은 데모 화면 안에서만 똑똑하게 남았습니다.


영업의 자리는 재편됐고, 감당할 범위는 넓어졌습니다

이 과정을 지나며 영업의 역할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기술적인 질문이 깊어지면 “이건 엔지니어가 답할 일”이라고 선을 긋는 편이었습니다.

그 선은 편했습니다.

고객 관계는 영업이 챙기고, 기술은 기술팀이 알아서 확인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고객의 문제는 우리가 그어놓은 선을 잘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영업이 아키텍처와 구현 방식까지 결정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다만 기술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지금 필요한 것이 제품 설명인지 프리세일즈의 검증인지 FDE의 현장 구현인지 판단할 수는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다시 고객의 예산과 계약, 도입과 확장으로 연결해야 했습니다.

영업이 모든 일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전문성이 고객의 다음 결정으로 이어지도록 전체 흐름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기술의 말을 알아듣고, 다음 질문과 다음 사람을 고르는 역량.

앞으로 영업이 더 키워야 할 역량은 여기에 가까웠습니다.

말은 쉽습니다.

실제로는 어렵습니다.

고객이 몸담은 산업과 업무도 알아야 하고, 그 일을 둘러싼 기술 환경도 따라가야 하니까요.

AI를 활용해 고객과 시장을 조사하고, 미팅을 준비하며, 제안과 후속 업무의 속도를 높이는 것도 이제는 기본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영업이 오래 지켜온 강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강화해야 했습니다.

기술적인 답이 다 나왔는데도 고객이 움직이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회의에 없는 누군가가 반대하고 있거나, 담당자가 실패의 책임을 걱정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회의에서는 모두 찬성했는데 아무도 다음 행동을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과 조직의 문제에는 에러코드도 로그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더 자세한 기능 설명이 아닐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직접 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누가 왜 망설이는지 찾고, 아직 말하지 않은 걱정을 물어야 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상황을 피하지 않고, 사람과 조직의 온도를 읽으며 다시 결정을 앞으로 움직이는 일.

그것은 영업이 오래 지켜온 역량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누구에게나 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함께 일해본 엔지니어 중에는 사람을 계속 만나고, 회의마다 달라지는 입장과 감정을 읽으며, 조직 정치와 돌발 상황까지 견디는 일을 꽤 힘들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시스템과 데이터처럼 원인을 추적하고 확인할 수 있는 문제 앞에서는 몇 시간이고 집중하던 사람이, 답이 없는 대화가 반복되는 자리에서는 빨리 지쳤습니다.

반대로 영업은 그 불편한 자리에 오래 머물며 버티고, 다시 대화를 이어가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붙습니다.

잘해서라기보다 계속 그 자리에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향은 사람마다 다르고, 고객 현장의 복잡함을 즐기는 기술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각 역할의 경계를 없애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술을 잘하는 사람에게 영업까지 하라고 하거나, 고객을 잘 아는 영업에게 구현까지 책임지라고 하면 각자가 오래 쌓아온 강점부터 흐려질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영업의 강점을 버리고 어설픈 엔지니어가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객 업무와 기술의 언어를 더 이해하면서도, 사람과 조직의 불확실성을 견디고 헤쳐가는 역량을 함께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영업은 사람과 조직의 불확실성을 앞에서 풀어갑니다. 프리세일즈는 무엇을 확인해야 기술을 믿을 수 있는지 설계합니다. FDE는 고객의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게 만듭니다.

서로 같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었습니다.

각자의 차이는 없애야 할 간격이 아니라 더 잘 써야 할 강점이었습니다.

다만 서로의 언어를 전혀 몰라도 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변화를 개인의 의지에만 맡겨둘 수는 없어 보였습니다.

더 많은 고객과 높은 목표를 맡기면서, 필요한 역량까지 알아서 익히라고 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특히 신입에게는 달라진 영업의 일이 저절로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평가 기준으로 삼을지는 리더가 다시 짜야 할 몫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따로 한 편으로 다루겠습니다.


다시, 고객의 질문 앞에서

고객은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업무에 직접 적용해주실 수 있는 거죠?”

예전이라면 제품 화면을 다시 열고 가능한 기능부터 설명했을지 모릅니다.

그동안은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보여야 전문가로 인정받을 것 같아, 이런 질문을 쉽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먼저 물어야 했습니다.

“지금 하시는 일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같이 볼까요?”

제품을 설명하고 가격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자리는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대신 고객이 풀지 못했던 문제를 찾아내고, 프리세일즈와 FDE를 연결해 실제 결과를 만들며, 그 결과를 다시 고객의 결정으로 가져가는 일은 커지고 있었습니다.

회의실은 더 많은 사람을 필요로 했지만, 회사가 그만큼 사람을 더 뽑아준다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업도 변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술과 고객 업무를 이해하는 역량은 더하고, 사람과 조직의 불확실성을 헤쳐가는 감각과 대응력은 더 단단히 지키는 것.

AI 시대의 영업은 잘해오던 일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역량을 바탕으로 고객의 업무와 기술적 현실까지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번 글의 적용 액션

이번 분기에 정체된 딜 하나를 다시 봅니다.

멈춘 이유가 기술적인 답이 없어서였는지, 고객 조직 안의 누군가가 아직 움직이지 않아서였는지 나눠봅니다.

기술 문제라면 다음 미팅에 어떤 전문가가 들어가야 할지 정합니다.

사람과 조직의 문제라면 누가 왜 망설이는지부터 다시 묻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고객의 어떤 다음 결정으로 이어갈 것인지 한 줄로 적어봅니다.

리더라면 지금 신입과 기존 영업에게 이 변화를 알아서 익히라고만 하고 있지 않은지도 점검해봅니다.

💬 댓글 질문

최근 고객을 상대하며 예전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으셨나요?

그때 새로 필요했던 역량과, 끝까지 중요했던 영업의 강점은 무엇이었나요?


다음 글 예고

지금까지 고객 환경의 변화와 접근법의 변화, 필요 역량의 변화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럼 이제 고객의 언어도 이해하고 엔지니어도 좋은 질문을 한다고 해보겠습니다. FDE도 뽑아줬고요.

그럼 계약하면 될까요?

고객에게 우리를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그 고객의 업무를 해결할 사람이 왜 우리여야 하는지, PoC 같은 검증의 자리에서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데모와 PoC, 파일럿이라는 무대로 넘어가봅니다.


용어 설명

LLM(Large Language Model) 대량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AI 모델입니다.

FDE(Forward Deployed Engineer) 고객의 실제 업무와 기술 환경에 들어가 제품을 적용·구축하고, 현장에서 얻은 학습을 다시 제품과 반복 가능한 배포 방식에 반영하는 엔지니어입니다.

GTM(Go-to-Market) 제품을 시장에 알리고 고객을 찾아 판매·도입·확장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활동과 조직 전반을 뜻합니다.

SI(System Integration) 고객 요구에 맞춰 여러 시스템과 소프트웨어를 연결·구축하는 일 또는 이를 수행하는 회사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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