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편씩 글을 쓰겠다고 했지만 그 결심을 할때도 지금도 여분의 글은 없다. 그래서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던 단어와 문장과 귓가를 스쳐갔던 말을 잘 주워담아 하루 한편 간신히 글을 쓰고 있다. 어제는 쓰지 못했다. 몸이 아팠고 자꾸 스러지는 정신은 꿈속을 헤메였기에 글을 쓸 여력이 없었다. 여분의 글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하지만 어제 쓰지 못했다고 오늘이 어제가 되진 않는다. 오늘은 여름 22편이다.
어지러운 생각과 주부습진 처럼 헤져버린 마음을 위로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지금까지는 그닥 정리도, 위로도 되지 않았다.
아침 출근길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올림픽 때 세워졌겠다 싶은 조형물들이 눈에 보였다. 조각에 대해 생각하다가 미처 조각이 되지 못한 대리석을 떠올렸다. 이미 조각이 된 대리석들은 어느 광장에, 교회에, 멋진 갤러리에 있겠지만 조각이 되다 만 대리석은 채석장 구석에서 오늘 아침같은 쨍쨍한 태양빛 아래 우두커니 서 있겠지. 그게 지금 내 모습같았다. 참 서글펐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슬펐다. 하지만 슬퍼도 일은 해야한다. 난 먹여살릴 식구가 있고 내야 할 월세가 있다.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차도 마시고 하다가 문득 여름이 참 덥다고 느꼈다. 매번 이렇게 더워서 힘들어했으면서 겨울엔 왜 여름을 그리워했을까.
막상 겨울이 오면 여름의 습함은 차가운 커피잔에 맺힌 물방울로 남고 뜨거웠던 태양은 사진속 청명한 여름 풍경으로 각인된다. 달궈진 어항속 같은 여름은 사라지고 풀냄새 나는 싱그러운 여름만 남는다. 이런식으로 이 더럽게 더운 여름이 미화된다.
덕분에 난 겨울이 오면 다시 여름을 그리워한다.
대부분의 좋지 않았던 기억들은 뉴런들이 열심히 일해서 기억의 지도 저편으로 치워버릴테고 자기 입맛대로 좋은게 좋은거라며 멋진 기억들을 더 반짝반짝이게 다듬어 놓을 것이다. 난 그때까지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그림도 보고 조각도 보면 된다.
깨끗하게 침구류를 빨아서 침대를 정돈하는 것, 세탁을 하고 잘 마른 냄새가 나는 옷을 옷걸이에 걸어놓는 것, 책상을 정리하고 책을 제자리에 놓는것, 내가 한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 내가 할 일은 이런 것들이다. 그러다보면 또 삶은 괜찮아지고 조각이 되다 만 대리석이 아니라 애초에 그렇게 생긴 현대미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야옹이의 글에 나온 불굴의 의지를 가진 선배처럼 나도 불굴의 의지로.
나아감도 나아짐도 모두 희망에서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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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
‘달궈진 어항속 같은 여름은 사라지고 풀냄새 나는 싱그러운 여름만 남는다. 이런식으로 이 더럽게 더운 여름이 미화된다.‘ 여름이 이렇게 미화된다는 말이 너무 공감되었어요. 각자가 각자의 할 일을 하면서 삶이 괜찮아지길 바라며, 더운 여름날 잘 이겨내시길 바라요.
명랑한 은둔자. 김토성
감사합니다 옐님. 결국엔 미화되어 아름다워질 오늘을, 이번 여름을 옐님도 잘 보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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