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7일 일요일 오후, 영국 브리스틀(Bristol) 도심 한복판에 군중이 모였다.
처음에는 여느 시위 장면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구호를 외쳤고, 휴대전화를 들어 현장을 촬영했다. 하지만 잠시 후 군중의 시선은 한 방향으로 향했다. 10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온 청동 동상 하나였다.
에드워드 콜스턴(Edward Colston, 1636–1721).
누군가 동상의 목에 밧줄을 걸더니 이내 사람들이 함께 당기기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 있던 동상이 조금씩 흔들리더니, 마침내 기단에서 떨어져 나왔다.
1895년부터 브리스틀 중심부를 내려다보던 동상이었다.
군중은 쓰러진 동상을 거리를 따라 끌고 갔다. 누군가는 동상의 목 위에 무릎을 올렸다. 미국에서 경찰의 무릎 아래 숨을 거둔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동상은 항구 가장자리에서 물속으로 던져졌다.
그 순간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2019년 촬영된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 출처: John Cassidy - Self-photographed by Simon Cobb, 24 June 2019, CC0
이 사건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확산된 Black Lives Matter 시위 속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그날 브리스틀 거리에서 쓰러진 것은 단순히 청동 조각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국이 오랫동안 피해왔던 질문 하나가 무너지는 장면에 가까웠다.
에드워드 콜스턴은 노예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다. 그는 왕립아프리카회사(Royal African Company)와 깊이 연결돼 있었고,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강제로 대서양을 건너는 노예무역을 통해 부를 쌓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브리스틀에서 존경받는 자선가이기도 했다.
그는 학교를 세우고 병원에 기부했으며, 도시 곳곳에 자신의 재산을 남겼다. 그의 이름은 거리와 건물, 음악당과 학교에 붙었다. 브리스틀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콜스턴이라는 이름과 함께 살아왔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고 있는가.
콜스턴 동상을 철거하자는 요구는 사실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은 그가 자선가로 기억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브리스틀 시의회는 오랫동안 결정을 미뤘다. 논쟁은 계속됐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2020년 여름, 군중이 그 결정을 대신했다.
당시 영국 총리실은 이를 명백한 범죄 행위라고 비판했다. 반면 당시 브리스틀 시장 마빈 리스(Marvin Rees)는 법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동상이 사라진 것이 슬프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메이카 출신이라고 설명하며, 콜스턴이 자신의 조상 가운데 누군가를 노예로 소유했거나, 적어도 노예선에 실려 보낸 사람 가운데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동상 하나가 물속으로 가라앉는 순간, 영국 사회가 수십 년 동안 미뤄온 질문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역사는 누구의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를 지운다는 것은 정말 가능한 일인가.
동상을 철거하던 시위대의 모습. 출처: Greenhill22 - Own work, CC BY-SA 4.0
동상의 의미
콜스턴의 동상이 처음 세워진 것은 1895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콜스턴이 살았던 시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1721년에 세상을 떠났고, 동상이 세워진 것은 그로부터 거의 200년 뒤였다. 노예무역이 공식적으로 폐지된 뒤로도 약 9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왜 하필 그때였을까.
역사가들은 바로 이 질문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한다.
1895년은 대영제국이 가장 강력한 시기를 지나고 있던 시대였다. 영국은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거느렸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표현이 현실처럼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제국은 자신을 문명과 질서, 진보를 전파하는 존재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콜스턴이라는 인물은 새롭게 재해석된다.
노예무역으로 축적한 부보다는 학교와 병원에 기부한 자선가의 모습이 강조됐다. 그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보다,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지가 더 중요한 이야기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동상이었다.
우리는 종종 동상을 과거의 기록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동상은 과거 자체가 아니라, 특정 시대가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에 더 가깝다.
누군가의 동상을 세운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승인하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의 어떤 면을 공공장소에서 기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행위다. 무엇을 기억할지, 무엇을 강조할지, 무엇을 조용히 뒤로 밀어둘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즉 동상은 역사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대가 바뀌면 동상의 의미도 바뀐다.
콜스턴 동상 사건 이후 영국 곳곳에서는 비슷한 질문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런던에서는 한스 슬론(Hans Sloane)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그는 대영 슬론(Hans Sloane)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그는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설립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자 노예제 폐지론자로 알려져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재산 일부를 노예 노동과 연결된 농장에서 얻었다는 비판도 받았다.
옥스퍼드 대학교(Oxford University)의 오리엘 칼리지(Oriel College)에서는 세실 로즈(Cecil Rhodes)의 동상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로즈는 아프리카 식민지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고, 학생들과 활동가들은 오랫동안 동상 철거를 요구했다.
결국 칼리지 측은 동상을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동상 옆에 그의 식민주의적 역할과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는 안내문을 추가했다.
누군가에게는 미온적 타협처럼 보였고,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인 해결책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논쟁이 반복되는 이유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역사 속 인물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사실 과거에 대한 질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옥스퍼드 대학교 오리엘 칼리지에 위치한 로즈 동상. 출처: Christopher Hilton, CC BY-SA 2.0
돌아오지 못한 것들
동상 철거 논쟁보다 더 오래됐고, 어쩌면 훨씬 더 복잡한 논쟁이 있다.
바로 약탈 문화재 반환 문제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 가운데 하나다. 약 800만 점에 이르는 소장품은 마치 인류 문명의 역사 전체를 한 건물 안에 모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고대 이집트부터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주요 흔적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하지만 그 소장품들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됐는지를 묻는 순간,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진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이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 공식 명칭으로는 파르테논 조각상(Parthenon Sculptures)이다.
이 조각들은 원래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Parthenon)에 있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19세기 초, 당시 오스만 제국 주재 영국 대사였던 토머스 브루스(Thomas Bruce), 제7대 엘긴 백작(Earl of Elgin)이 상당 부분을 떼어내 영국으로 가져왔다.
엘긴은 당시 오스만 당국의 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그는 재정난에 빠졌고, 조각상들을 영국 정부에 판매했다. 그리고 1817년부터 그것들은 대영박물관에 전시되기 시작했다.
200년 넘게 그곳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리스 정부는 오랫동안 같은 질문을 반복해왔다.
“우리의 조각상은 언제 돌아오는가.”
현재 파르테논 조각상의 약 절반은 그리스에, 나머지는 영국에 흩어져 있다. 특히 2009년 아테네에 개관한 아크로폴리스 박물관(Acropolis Museum)은 이 논쟁을 더욱 상징적으로 만들었다.
새 박물관은 애초부터 파르테논 조각상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최상층에서는 유리창 너머 실제 파르테논 신전이 보이고, 전시 공간에는 비어 있는 자리들이 남겨져 있다.
마치 아직 돌아오지 않은 조각상들을 기다리는 것처럼.
대영박물관의 입장은 오랫동안 일관돼 왔다.
조각상들은 당시 법적으로 획득됐으며, 특정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보편적 유산이라는 것이다. 런던이라는 세계 도시에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비판하는 사람들은 다시 질문한다.
정말 인류 전체의 유산이라면, 왜 그것들은 런던에만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바로 여기서 이 논쟁은 단순히 “유물을 돌려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선다.
제국 시대의 수집은 어디까지 합법이었는가. 과거의 권력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거래를 오늘날에도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가. 역사적 불의를 현재의 기준으로 다시 판단할 수 있는가.
대영박물관 홈페이지의 파르테논 조각상 소개 페이지
교과서 속 제국과 역사 전
동상과 박물관 논쟁이 공공장소에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라면, 교과서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다음 세대에게 우리는 어떤 역사를 전할 것인가.
영국에서 대영제국의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다. 그리고 그 논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제국의 긍정적인 유산이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영국이 법 체계와 철도, 의회 제도, 영어와 행정 시스템을 세계 여러 지역에 전파했고, 그것이 현대 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반대편에서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 발전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식민지 지배와 자원 수탈, 강제 노동, 기근과 문화적 파괴는 왜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되는가. 제국이 남긴 상처는 왜 종종 부차적인 이야기처럼 취급되는가.
흥미로운 것은 양쪽 모두 자신들이 “역사를 더 정확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역사 자체보다, 어떤 부분을 중심에 둘 것인가에 있다.
2020년 Black Lives Matter 운동 이후 이 논쟁은 더욱 뜨거워졌다. 영국의 일부 학교와 대학들은 이른바 ‘역사 탈식민화(decolonising the curriculum)’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기존 교과과정이 지나치게 영국 중심적 시각에 기울어져 있으며, 식민지 경험과 소수 집단의 관점을 더 적극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교육기관은 실제로 커리큘럼을 수정했다. 기존에 거의 다뤄지지 않던 제국의 폭력성이나 식민지 경험, 노예제와 관련된 내용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반발도 이어졌다.
영국 정부는 여러 차례 우려를 표했고,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역사를 정치적으로 왜곡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2021년에는 교육부 장관이 탈식민화 교육이 편향적일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결국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는 교육 논쟁을 넘어 정치 논쟁으로 번졌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이런 현상을 ‘역사 전쟁(history wars)’이라고 부른다.
과거를 둘러싼 논쟁이 사실은 현재의 정치적 균열을 따라 다시 배열되는 현상. 과거의 해석을 둘러싼 싸움이, 실제로는 현재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를 둘러싼 싸움이 되는 현상 말이다.
그래서 역사 전쟁의 핵심은 사실 과거에 있지 않다.
어떤 역사를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어떤 가치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British Educational Research Association이 발간한 역사 탈식민화 교육 커리큘럼 가이드
역사가 소파에 앉아 있을 때
그레이엄 고어(Graham Gore)는 소설 속에서 현재의 런던을 걷는다.
그가 떠나온 1845년의 런던도 분명 런던이었다. 템스강은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고,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은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도시의 거리와 건물들 가운데는 여전히 그 시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사이에는 180년의 시간이 놓여 있다.
그 시간 안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있었고, 제국의 팽창과 붕괴가 있었으며, 탈식민화와 대규모 이민, 그리고 영국이라는 나라가 스스로를 다시 정의해야 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가 알고 있던 영국과 지금의 영국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나라에 가깝다.
그리고 『시간관리국(The Ministry of Time)』는 바로 그 간극 위에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과거에서 온 사람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마주하게 된다면, 그들 사이에 놓인 역사는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가.
없는 것처럼 지나쳐야 할까. 정면으로 직면해야 할까. 설명을 요구해야 할까. 아니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까.
소설 속에서 1845년의 영국 해군 장교와 현대 영국인, 그것도 이민자 배경을 가진 여성이 함께 식탁을 마주하는 장면은 어쩌면 이 질문을 가장 평범한 형태로 보여준다.
그들은 역사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만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함께 아침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일상 속에서 역사는 갑자기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실이 된다.
우리는 종종 역사를 기억하는 것과 역사에 붙잡혀 사는 것을 같은 의미처럼 생각한다. 혹은 역사를 잊는 것과 역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혼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 다른 일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과거를 영원히 현재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고, 과거를 잊는 것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시간관리국』은 이 미묘한 차이를 탐구한다.
흥미로운 것은 소설이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을 용서해야 하는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와 함께 그 경계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천천히 걸어간다.
어쩌면 『시간관리국』이 시간 여행이라는 설정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전히 현재 안에 살아 있다. 동상의 형태로, 박물관 유리 진열장 뒤에서, 교과서의 문장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안에서.
소설은 그것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꾸어 놓는다. 과거 사람이 현재의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장면은 결국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남긴다.
만약 역사가 당신의 집 거실에 와 앉는다면, 당신은 그에게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함께 생각해볼 질문들
- 공적 공간에 세워진 동상은 누구의 역사를 기억하는가. 역사적 인물을 공적 공간에서 기리는 것과 그 인물의 역사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다른가. 그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사는 도시에는 어떤 동상이 서 있는가.
- 대영박물관의 파르테논 조각상처럼, 제국의 시대에 가져온 유물들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인류 공통의 유산'이라는 논리와 '문화적 정체성의 일부'라는 논리 중 어느 것이 더 설득력 있는가. 그리고 현재의 법적 틀로 역사적 불의를 바로잡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 당신이 학교에서 배운 역사 중, 나중에 다른 관점에서 다시 배우거나 생각하게 된 것이 있는가. 역사 교육에서 '객관성'은 가능한가. 그리고 불편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왜 중요한가. 혹은 왜 어려운가.
- 만약 당신이 소설 속 브리지처럼 과거에서 온 사람을 돌보게 된다면, 그에게 현재의 영국, 혹은 현재의 한국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리고 그가 가져온 과거의 어떤 것이 현재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고, 어떤 것이 이미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는가.
읽으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
- The Clash – ‘London Calling’ (1979) 런던 출신의 더 클래시는 영국 펑크 록의 역사에서 가장 정치적이고 가장 문학적인 밴드였다. 이 곡은 표면적으로는 핵전쟁의 위협과 도시의 붕괴를 노래하지만, 그 안에는 영국 사회와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흐른다.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혼란 사이에서 갈등하는 영국의 자화상이 이 음악 안에 있다. 콜스턴 동상이 항구에 던져지던 날의 브리스틀을 생각하며 들어보기를 권한다.
다음 주 예고
여러분의 이웃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창문 너머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게 보일 겁니다. 누군가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부부 싸움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뭘 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커튼이 쳐져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은 이웃집 창문을 들여다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리사 주얼(Lisa Jewell)의 소설 『엿보는 마을(Watching You)』 속 주인공 프레디는 조금 다릅니다.
열네 살 소년 프레디 피츠윌리엄은 매일 자신의 방 창문에서 이웃들을 관찰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조용히. 그는 이것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지켜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언젠가 MI5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그에게 그것은 일종의 훈련이니까요.
그리고 어느날 그는 무언가를 목격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남에게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았을 것들을요.
6월에 함께 읽을 책은 리사 주얼의 『엿보는 마을』입니다.
1999년 데뷔작 『랄프의 파티』로 그해 영국 최고의 데뷔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후, 리사 주얼은 20여 년 동안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영국 심리 스릴러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 잡은 인물입니다.
한 달 동안 우리는 이 소설을 따라가며 감시 사회의 역사와 영국 교외 문화의 이면, 스타 교장을 만들어내는 영국 교육 시스템, 그리고 오랫동안 영국 문학이 낭만적으로 다뤄온 집착의 계보까지 함께 살펴볼 예정입니다.
6월에 만나겠습니다. 아참, 오늘 밤 커튼을 치기 전, 창문 너머를 한 번만 더 살펴보는 걸 잊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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