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엔 없는 이야기들

우리집 앞에 초대형 중국 대사관이 들어선다면?

영국은 왜 유럽 최대의 중국 대사관을 런던 한복판에 허락했는가.

2026.08.01 | 조회 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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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당신 집 바로 옆에 누군가 거대한 건물을 짓겠다고 한다.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통보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반대하면 모든 결과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2026년 7월 31일, 영국 고등법원은 영국 정부가 중국의 런던 신(新)대사관 건립을 승인한 결정이 합법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 글은 법원이 무엇을 판결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 바로 그 결정이 과연 옳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800년 된 조폐국에 꽂힌 깃발

 

런던 타워 브리지 근처에는 오랫동안 영국의 경제적 주권을 상징해온 장소가 있다.

로열 민트 코트(Royal Mint Court). 8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영국의 동전이 만들어졌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영국 본토뿐 아니라 제국 곳곳에서 사용될 화폐가 주조됐다. 영국의 국력과 신뢰, 그리고 국가의 권위가 금속 위에 새겨져 세상으로 나가던 장소였다.

2018년, 중국 정부는 그 부지를 2억5천5백만 파운드에 매입했다.

그리고 그곳에 유럽 최대 규모의 중국 대사관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계획대로라면 대사관은 약 2만㎡ 규모에 200명이 넘는 외교관이 근무하는 시설이 된다. 부지는 런던 금융 중심지인 시티와 카나리 워프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광섬유 통신망과 데이터센터 등 핵심 디지털 인프라가 밀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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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민트 코트의 위치. 출처: Google Maps 캡처

물론 외교공관는 전략적 위치에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로열 민트 코트는 단순히 접근성이 좋은 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영국 제국의 상징적 공간이었던 이곳을 중국이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정치적 메시지처럼 읽혔다.

예상대로 반발은 거셌다.

지역 주민들은 물론 홍콩 민주화 활동가, 위구르인, 티베트인, 야당 정치인들까지 반대 목소리를 냈다. 2022년 런던 타워햄리츠 자치구는 건축 허가 신청을 기각했고, 계획은 세 차례나 연기됐다. 2025년 2월에는 1,000명이 넘는 시위대가 로열 민트 코트 앞에 모여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7년 가까이 이어진 논쟁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2026년 1월, 영국 노동당 정부는 결국 여러 조건을 붙여 이 계획을 승인했다.

그 순간부터 논쟁은 도시 개발을 둘러싼 지역 갈등이 아니라, 영국이 중국과 어떤 관계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국가적 질문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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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로열 민트 코트. 출처: Steve Cadman from London, U.K. - The Royal Mint, London, CC BY-SA 2.0

 

시진핑의 전화, 스타머의 방문

 

7년 동안 멈춰 있던 계획은 왜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영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키어 스타머 총리와의 통화에서 런던 신(新)중국대사관 건립 허가 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과 중국의 일부 관계자들은 스타머 총리의 중국 방문 역시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전했다. 대사관 문제가 해결돼야 방문도 성사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 방문은 결코 가벼운 일정이 아니었다. 스타머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면, 2018년 테리사 메이 이후 8년 만에 영국 총리가 베이징을 찾는 일이 된다. 양국 관계를 복원하려는 노동당 정부의 상징적인 외교 일정이기도 했다.

중국은 압박의 수위도 높였다.

중국 외교부는 대사관 계획이 거부될 경우 영국이 "모든 결과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감 표명이나 우려 표시를 넘어, 영국 사회에서는 노골적인 압박으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승인 결정이 발표되자 정치권의 반응은 즉각 갈렸다.

보수당의 프리티 파텔 의원은 "총리가 국가 안보를 중국 공산당에 팔아넘겼다"며 "이것은 런던 한복판에 세워지는 거대한 스파이 기지"라고 비판했다. 반면 정부는 엄격한 보안 조건과 관리 체계를 전제로 허가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논쟁은 정권이 바뀌어도 끝나지 않았다.

전 보수당 대표인 이언 덩컨 스미스는 주민 협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이 대사관 건립을 위해 영국에 지속적으로 압력을 행사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새로 취임한 총리와도 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대사관 하나를 둘러싼 논란은 더 이상 건축 허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영국이 중국의 압박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경제적 실리를 위해 국가 안보와 민주주의의 원칙을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대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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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중국을 방문에 시진핑을 만난 키어 스타머. 출처: Number 10 - Prime Minister Keir Starmer visits China, CC BY 4.0

 

검게 지워진 설계도, 208개의 지하 공간

 

처음 공개된 설계도는 이상했다.

보안을 이유로 상당 부분이 검게 가려져 있었다. 대사관이라는 시설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조치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 검은 여백은 사람들의 의문을 더 키웠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건물 지하에는 208개의 공간이 조성될 예정이었다. 부지는 런던 금융 중심지인 시티와 카나리 워프를 연결하는 광섬유 통신망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케이블들은 금융기관과 기업, 정부 기관 사이를 오가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실어 나르는 핵심 인프라다.

물론 대사관을 짓는다고 해서 곧바로 첩보 활동이 이뤄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영국 정치권은 이 계획을 단순한 건축 사업으로 보지 않았다.

초당적 의원들은 정부에 서한을 보내 중국의 최근 간첩 활동 의혹과 영국에 거주하는 홍콩 민주화 활동가들에게 현상금이 걸린 사실 등을 거론하며, 대사관 건립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정보기관들이 승인 과정 전반에 참여했고, 발생 가능한 위험은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댄 자비스 안보장관 역시 의회에서 "중국은 우리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위험은 적절한 조건과 감시를 통해 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논쟁은 더욱 첨예해졌다.

한쪽은 위험을 인정한다면 애초에 그런 시설을 허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쪽은 위험을 인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통제 가능한 틀 안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쟁점은 중국이 위협인지 아닌지가 아니었다.

위협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뒤에도, 그 위험을 감수할 만큼 얻을 것이 있는가.

영국 정부는 그렇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 판단이 과연 옳았는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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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포틀랜드 플레이스에 위치한 중국 대사관 건물.  2013년 6월 촬영. 출처: Chmee2 - Own work, CC BY-SA 3.0

 

영국에서 벌어진 일들

 

이번 논란을 가장 절박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바로 런던에 정착한 홍콩 민주화 활동가들이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홍콩의 사정을 잠시 설명할 필요가 있다. 홍콩은 1842년부터 1997년까지 155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다. 중국에 반환될 당시 양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약속했다. 50년 동안 홍콩의 자치와 자유를 유지한다는 합의였다.

그러나 그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9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벌어진 뒤 중국은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했고, 반정부 인사와 언론, 시민단체를 강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많은 홍콩인들은 감옥에 갔고, 많은 사람들은 해외로 떠났다.

그들이 가장 많이 향한 곳 가운데 하나가 영국이었다.

영국 정부는 홍콩인들에게 새로운 비자 제도를 마련하며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영국 땅에 도착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홍콩 당국은 해외로 떠난 민주화 활동가들에게도 현상금을 걸었다. 영국에 거주하는 여러 인사가 대상이 됐다. 그리고 그들을 감시하거나 정보를 수집하려는 활동도 영국 안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2026년 5월, 런던 올드 베일리 형사법원은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홍콩 경제무역대표부 직원 청비우 윤(Chung Biu Yuen)과 영국 출입국 심사관 치렁 와이(Chi Leung Wai) 등은 2023년 말부터 2024년까지 영국에 거주하는 홍콩 민주화 활동가들을 감시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영국 법원이 중국 정부를 위한 초국가적 탄압 활동과 관련해 유죄를 인정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판결 직후 활동가 핀 로는 이렇게 말했다.

"수년 동안 영국의 홍콩 디아스포라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오늘의 판결은 그 두려움이 편집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줍니다. 그것은 현실이었습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영국 지부 역시 비슷한 경고를 내놓았다.

"홍콩의 탄압은 국경을 모릅니다. 홍콩과 중국 본토에서 사람들을 침묵시키는 데 사용했던 두려움의 분위기를 이제 영국 사회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말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었다.

영국 법원은 실제 감시 활동이 있었다고 판단했고, 유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불과 두 달 뒤, 영국 정부는 중국이 유럽 최대 규모의 대사관을 세울 수 있도록 승인했다.

그래서 이 논란은 단순히 외교공관 하나를 둘러싼 갈등이 아니다.

이미 자국 영토에서 중국의 초국가적 탄압이 확인된 상황에서, 영국은 왜 그 영향력을 더 키울 수 있는 결정을 내렸는가.

바로 그 질문이 지금도 영국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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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민주화 운동가 핀 라우는 현재 영국에 거주하며 홍콩의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출처: Stand News - https://www.facebook.com/standnewshk/posts/3530741247011470/, Copyrighted free use

 

주민들이 7년 동안 싸운 이유

 

로열 민트 코트 주민 협회는 100여 개의 가구와 상점을 대표하는 작은 공동체다.

하지만 이들이 상대해온 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주민들은 유럽 최대 규모의 중국 대사관이 들어설 경우 테러 위험이 커질 수 있고, 대규모 시위에 따른 주민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며, 중국의 초국가적 탄압이 영국 사회에 더 깊숙이 스며들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의 우려에는 야당 정치인과 홍콩 민주화 활동가, 인권단체들도 힘을 보탰다.

홍콩민주위원회(Hong Kong Democracy Council)의 카르멘 라우는 이렇게 말했다.

"이 대사관이 해외에서 중국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괴롭히는 데 사용될까 두렵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우려를 충분히 검토했다고 밝혔다. 국가안보 기관과 협의했고, 필요한 조건을 부과했으며, 위험은 관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주민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재판부는 스스로 판결의 범위를 분명히 했다. 이번 재판은 정부 결정의 합법성만을 심리했을 뿐, 그 결정이 적절했는지, 혹은 바람직했는지를 판단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래서 주민들의 싸움도 끝나지 않았다.

주민 협회는 항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종적으로는 영국 대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는 계획이다. 소송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크라우드펀딩도 다시 시작했다.

거대한 국가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100여 가구의 주민 공동체는 지금 중국 정부의 계획과 이를 승인한 영국 정부의 결정을 동시에 상대로 7년째 법정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어쩌면 이 사건은 민주주의 국가가 안보와 경제, 외교와 시민의 자유 사이에서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하는지를 묻는, 훨씬 더 오래 남을 질문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신(新)대사관 건립과 관련한 영국 채널4의 보도

 

당신의 집 바로 옆에 거대한 건물이 들어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것도 당신이 위협이라고 믿는 상대가 짓는 건물이다.

당신이라면 허락하겠는가.

법원은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그 집에서 살아갈 사람이 당신이라면, 그 대답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로열 민트 코트 주민 협회는 항소를 추진하며 법률 비용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중국 스파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청 비우 윤과 치 렁 와이는 최대 14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선고 기일은 추후 결정된다. 영국 차기 총리 버넘은 대중국 정책 전반에 대한 검토를 공약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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