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 레버를 눌렀다면 당신은 430년 전 탄생한 발명품의 도움을 받은 셈이다.
물이 소용돌이치며 모든 것을 깨끗하게 씻어 내려보내고, 잠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수세식 화장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우리는 그것이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 거의 떠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놀라운 장치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596년, 지금으로부터 430여 년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발명 뒤에는 조금 특별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대자(代子)였던 한 남자, 존 해링턴 경(Sir John Harington)이다.
왕실과 가까운 삶을 살던 그는 어느 날 인간의 가장 일상적인 불편함을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고, 그 결과 현대 수세식 화장실의 원형이 탄생하게 된다.
추방된 시인
해링턴은 당시 케임브리지대학교 킹스 칼리지를 졸업한 후 인정 받는 시인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의 세례 대자로서 남다른 여왕으로 부터 총애를 받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만큼이나 유명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지나치게 솔직한 입이었다.
해링턴은 어느 날 이탈리아 시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의 대작 『광란의 오를란도』를 번역하던 중, 다소 외설적인 내용이 담긴 일부 구절을 궁정의 여성들에게 몰래 돌려 읽게했다. 장난처럼 시작된 일이었지만 결과는 심각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엘리자베스 1세는 크게 노했고, 결국 그를 궁정에서 내쫓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 형벌이었다. 여왕은 해링턴에게 『광란의 오를란도』 전체를 번역해 올 때까지 궁정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명령했다. 추방이자 숙제였고, 벌이면서도 일종의 시험이었다.
그렇게 해링턴은 런던을 떠나 서머싯의 조용한 마을 켈스턴으로 내려갔다. 화려한 궁정 생활 대신 시골 저택에 머물게 된 그는 번역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나 긴 유배 생활 속에서 그는 원고만 붙들고 있지는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문득, 사람들이 매일 겪지만 누구도 진지하게 해결하려 하지 않았던 불편함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의 화장실은 악취와 위생 문제로 악명이 높았다. 해링턴은 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원리를 이용해 오물을 씻어내는 장치를 고안했고, 이를 자신의 집에 직접 설치했다.
그는 이 발명품에 '아약스(Ajax)'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변소를 뜻하는 속어인 '제이크스(jakes)'와 그리스 신화의 영웅 아약스(Ajax)를 결합한 재치 있는 말장난이었다.
이 초상화는 원래 무릎 위까지 보이는 3/4신 초상화였으나, 이후 잘려 나가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 원본 3/4신 초상화는 1969년 기준으로 앰플포스 수도원(Ampleforth Abbey)에 소장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미술사학자 로이 스트롱(Roy Strong)이 저서 『The English Icon: Elizabethan and Jacobean Portraiture』(1969, Routledge & Kegan Paul, 런던)에서 화가 쿠스토디스(Custodis)의 작품으로 추정한 바 있다. 출처: Circle of Hieronimo Custodis. Public Domain.
여왕의 방문
1592년 어느 날,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해링턴의 저택이 있는 켈스턴을 찾았다. 궁정에서 쫓겨난 시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몰두해 만들고 있던 새로운 발명품을 여왕 앞에 선보였다.
그 발명품은 화려한 보석도, 정교한 시계도 아니었다. 오늘날이라면 누구나 매일 사용하는 수세식 화장실이었다.
여왕은 직접 그 장치를 사용해 보았고 예상외로 크게 만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리치먼드 궁전에도 같은 장치를 설치하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세계 최초의 수세식 화장실은 왕실의 주문을 받아 납품된 최초의 화장실이 되었다.
해링턴의 장치는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정교했다. 타원형 변기 그릇은 피치와 수지, 밀랍으로 꼼꼼히 방수 처리됐고, 위층에는 대형 물 저장조가 설치돼 있었다. 레버를 당기면 약 7.5갤런, 오늘날 기준으로 약 28리터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가 오물을 씻어냈다. 해링턴은 자신의 설명서에서 물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한 번 물을 내리기 전까지 스무 명 정도가 사용할 수도 있다고 적어 두었다.
그는 이 발명의 원리와 사용법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1596년 책 한 권을 펴냈다. 제목은 그의 성격만큼이나 장난스럽고 복잡했다.
『낡은 주제에 대한 새로운 담론, 아약스의 변신이라 불리는』.
언뜻 보면 평범한 제목 같지만, 사실은 여러 겹의 말장난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stale’은 ‘낡은’이라는 뜻과 함께 소변을 의미하기도 했고, ‘Ajax’는 그리스 영웅 아약스이면서 동시에 당시 변소를 뜻하는 속어 ‘jakes’를 비튼 표현이었다. 화장실에 관한 책조차도 그는 평범하게 쓰지 못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책이 단순한 사용 설명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해링턴은 발명 이야기를 하는 척하면서 곳곳에 정치 풍자와 권력 비판을 숨겨 넣었다. 독자들은 웃으며 읽었지만, 여왕은 웃지 않았다. 책의 내용을 알게 된 엘리자베스 1세는 다시 한번 분노했고, 해링턴은 또다시 궁정의 문밖으로 밀려났다.
이렇게 해서 존 해링턴은 역사상 보기 드문 기록을 남기게 된다. 화장실을 발명해 왕실의 찬사를 받았지만, 그 화장실에 관한 책 때문에 다시 추방된 사람. 어쩌면 그는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화장실 때문에 두 번이나 여왕의 미움을 산 인물이었을지 모른다.
폐기물 처리의 혁신: 존 해링턴이 1596년 저서 『낡은 주제에 대한 새로운 담론, 아약스의 변신이라 불리는(A New Discourse of a Stale Subject, Called the Metamorphosis of Ajax)』에서 소개한 수세식 화장실 도면.
세상이 외면한 발명품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오늘날의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곧바로 받아들여지 확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는 늘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발명이라도 시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어야 했다.
해링턴의 화장실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너무 비쌌다. 위층에 물 저장조를 설치해야 했고, 배수 시설도 갖춰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요강 하나로 생활하던 시대였다. 수세식 화장실은 일반 서민은 물론이고 귀족들에게조차 사치품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해링턴은 오물을 물로 씻어 내려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냄새를 막는 방법까지는 생각해내지 못했다. 오늘날 변기 아래에는 항상 일정량의 물이 고여 있어 하수구와 실내를 차단하는 장치가 있다. 그러나 해링턴의 설계에는 그런 구조가 없었다.
그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오물은 아래로 내려갔지만, 하수구의 악취는 거꾸로 위로 올라왔다. 물을 내릴수록 방 안에는 더 강한 냄새가 퍼지기도 했다. 깨끗함을 위해 만든 발명품이 때로는 악취를 실어 나르는 통로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편리함보다 냄새를 먼저 기억했다. 그리고 새로운 발명은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결국 해링턴의 화장실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발명품으로 남게 된다. 켈스턴 저택에 설치됐던 첫 번째 화장실도, 여왕의 명령으로 리치먼드 궁전에 들어갔던 화장실도 세월 속에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영국은 다시 요강의 시대로 돌아갔다.
마치 미래를 잠깐 엿본 뒤, 아직은 아니라는 듯 문을 닫아버린 것처럼 말이다.
대 악취의 시대
존 해링턴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발명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잊었지만, 아이디어는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1775년, 해링턴이 처음 수세식 화장실을 선보인 지 약 180년 만에 한 스코틀랜드인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의 이름은 알렉산더 커밍(Alexander Cumming). 시계공이자 발명가였던 그는 영국 최초의 수세식 화장실 특허를 취득했다.
흥미롭게도 커밍이 해결한 문제는 화장실의 가장 화려한 부분이 아니었다. 그는 물을 내리는 방법도, 변기의 모양도 바꾸지 않았다. 대신 해링턴이 끝내 풀지 못했던 단 하나의 문제, 바로 냄새에 주목했다.
커밍은 변기 아래의 배수관을 S자 모양으로 구부렸다. 이 굴곡에는 항상 일정량의 물이 남아 있게 되는데, 그 물이 일종의 문 역할을 했다. 오물은 아래로 흘러가지만, 하수구의 악취와 가스는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준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변기 아래에도 비슷한 구조가 숨어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장치는 사실 수세식 화장실 역사의 가장 중요한 혁신 중 하나였다.
해링턴의 발명은 180년 만에 비로소 완성된 셈이었다.
하지만 기술적 결함이 해결됐다고 해서 세상이 곧바로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수세식 화장실이 영국 사회 전체로 퍼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조건이 필요했다. 아무리 좋은 화장실이라도 오물을 흘려보낼 곳이 없다면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건이 갖춰지기까지는 다시 약 100년의 시간이 더 흘러야 했다.
1858년 여름, 런던은 역사에 남을 악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도시의 오물은 대부분 템스강으로 흘러들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오는 바람에 강물은 뜨거워졌고, 템스강 전체가 거대한 노천 하수구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훗날 ‘대악취(The Great Stink)’라고 불렀다.
악취는 템스강 주변을 넘어 영국 정치의 심장부까지 침투했다. 의회 건물 창문에는 냄새를 막기 위해 석회수에 적신 커튼이 걸렸고, 강가를 걷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의원들조차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템스강 물 한 방울을 확대해 본 뒤 그 안의 오염물질과 미생물을 발견하고 충격에 빠진 여성을 그린 풍자화. 19세기 런던의 심각한 수질 오염 문제와 식수 위생에 대한 사회적 불안을 보여준다. 출처: William Heath, CC-BY-4.0, Public Domain
결국 의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대규모 하수도 정비 사업이 승인됐고, 런던 전역에는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근대식 하수도망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수세식 화장실의 시대를 연 것은 화장실 자체가 아니라 하수도였다.
오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도시 기반시설이 갖춰지자, 그제야 수세식 화장실은 비로소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무렵 등장한 인물이 바로 토머스 크래퍼(Thomas Crapper)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화장실 발명가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발명가가 아니었다. 그는 뛰어난 사업가였다.
크래퍼는 런던에 화장실 전문 쇼룸을 열었고,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위생 설비를 대중에게 소개했다. 또한 자신이 판매한 수조(cistern)에 ‘Thomas Crapper & Co.’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
1861년에는 에드워드 왕세자(훗날 에드워드 7세)로부터 왕실 궁전의 위생 설비를 공급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왕실에 납품된 그의 제품은 곧 품질의 상징이 되었고, 수세식 화장실은 영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화사가 하나 탄생한다.
오늘날 미국 영어에는 화장실을 뜻하는 속어 가운데 '크래퍼(crapper)'라는 표현이 있다. 한국어로 치면 '변소'나 '뒷간'처럼 다소 구어적인 표현에 가깝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 주둔했던 미국 병사들은 화장실 수조에 새겨진 'Thomas Crapper & Co.'라는 이름을 자주 보게 됐다. 이후 일부 병사들이 화장실 자체를 '크래퍼'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 표현이 미국으로 건너가 널리 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론 언어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일화가 사실인지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대중의 기억 속에서는 토머스 크래퍼라는 사업가의 이름이 화장실의 별명이 되는 독특한 운명을 맞았다.
1859년 런던 동부 올드 포드 지역에서 진행된 하수도 건설 공사. 템스강을 뒤덮은 '대악취(The Great Stink)' 이후 영국 정부는 대규모 하수도 정비 사업에 착수했고, 이는 수세식 화장실 보급의 기반이 됐다. 출처: CC-BY-4.0, CC BY 4.0
300년의 여정
존 해링턴이 자신의 저택에 최초의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한 1590년대부터, 수세식 화장실이 영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까지는 거의 300년의 시간이 흘렀다.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기술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세상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세 세기가 필요했다.
기술은 이미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만, 사회의 인식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결국 사람들의 생각을 바꾼 것은 발명가의 설득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뒤덮은 악취였다.
어쩌면 역사는 종종 이런 방식으로 움직인다.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기술이 선택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매일 아무 생각 없이 그 원리를 사용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화장실 레버를 누르는 순간에도 말이다.
어쩌면 그 물줄기의 시작점은 430여 년 전, 여왕의 노여움을 사 시골 저택으로 쫓겨난 한 영국 시인의 호기심과 장난기였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꾼 많은 발명이 그렇듯, 현대의 일상은 때때로 가장 뜻밖의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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