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엔 없는 이야기들

코리아타임스, 뉴욕타임스... ‘타임스’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전 세계 신문들이 공유하는 이름, 그 200년의 계보를 따라가다

2026.04.18 | 조회 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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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한국전쟁 발발 다섯 달째,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김활란은 두 장짜리 타블로이드 신문을 세상에 내놓았다. 용지는 귀했고, 잉크는 모자랐으며, 건물은 포탄 소리에 흔들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신문을 냈다. 그리고 그 신문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The Korea Times.

왜 하필 ‘타임스’였을까. 일제강점기를 막 벗어나, 전쟁의 한복판에서, 한국에 영자 신문을 창간하면서 왜 이 두 글자를 선택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서울을 떠나 1788년 겨울의 런던으로 가야 한다.

 

시대를 담겠다는 선언

 

석탄 상인으로 시작해 런던 로이즈 보험사의 인수업자로 일하던 존 월터(John Walter). 그는 1784년 카리브해 자메이카를 강타한 허리케인으로 가입자들이 줄줄이 파산하면서 직업을 잃었다. 

빚더미에 앉은 그가 다음으로 선택한 것은 인쇄업이었다. 당시 새로 특허를 받은 ‘로고그래피(logography)’라는 조판 기술에 투자하면서, 그 기술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문을 창간했다. 1785년 1월 1일, ‘더 데일리 유니버설 레지스터(The Daily Universal Register)’라는 이름의 신문이 런던에서 처음 인쇄됐다.

창간사에서 월터는 이렇게 썼다. “신문은 시대의 기록이자 모든 종류의 정보를 충실히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 잘 차려진 식탁처럼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는 무언가를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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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데일리 유니버설 레지스터 창간호 1면. 출처: abebooks

멋진 창간사였다. 그러나 이름이 문제였다. ‘더 데일리 유니버설 레지스터’는 지나치게 길고, 지나치게 공식적이고, 지나치게 지루했다. 이에 얼마안가 독자들은 그냥 ‘레지스터’라고 줄여 부르기 시작했다. 940번째 호가 나오는 날인 1788년 1월 1일, 월터는 결단을 내렸다. 신문 이름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새 이름은 딱 두 단어였다. The Times.

영어에서 ‘The Times’는 단순히 ‘시간들’이 아니다. ‘시대’, ‘세태’, ‘지금 이 시절의 흐름’을 뜻하는 말이다. 시대를 담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선언은, 월터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역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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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12월 4일 더 타임스 1면. 출처: London Times - London Times, Public Domain

 

‘천둥을 치는 신문’

 

이름을 바꿨다고 해서 당장 신문이 달라지진 않았다. 오히려 초창기의 The Times는 꽤나 소란스러운 신문이었다. 이름을 바꾼 뒤 월터는 더 많은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런던 상류층의 스캔들과 가십을 기사에 실었다. 그러다 웨일스 왕자에 관한 기사 하나가 문제가 돼 벌금형과 함께 감옥에서 2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신문은 달라졌다. 1817년부터 1841년까지 편집장을 맡은 토머스 반스(Thomas Barnes)가 The Times를 권력에 맞서는 강단 있는 신문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신문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의회를 비판하고, 귀족들의 부패를 폭로하고, 정부 정책에 정면으로 맞섰다. 독자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이 신문을 두고 하나의 별명이 퍼지기 시작했다. “더 선더러(The Thunderer)”, ‘천둥을 치는 자’, 즉 ‘권위 있는 목소리로 강하게 의견을 내는 존재’였다.

이 별명이 생긴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1830년대, 귀족 집안에서 일어난 한 죽음이 자살로 처리됐는데, The Times는 이것이 상류층의 은폐라며 의심하는 기사를 냈다. 

“우리는 지난번 사회 정치 개혁에 관한 기사에서 천둥을 쳤다.”

기자 에드워드 스털링이 그 기사에 담은기자 에드워드 스털링이 그 기사에 담은 구절이다. 그 이후로 이 신문의 별명은 ‘더 선더러’가 됐다. 천둥을 치는 신문. 19세기 중반, The Times의 발행 부수는 경쟁지들의 열 배에 달했고, 영국 각료들은 이 신문의 눈치를 봤으며, 외무부는 종종 공식 정보보다 이 신문의 해외 특파원의 보도가 더 정확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세계 최초의 종군 기자

 

그리고 1854년, The Times는 저널리즘 역사 자체를 바꿔놓는 결정을 내린다.

크림 전쟁이 터지자 편집장 존 들레인(John Delane)은 아일랜드 출신 기자 윌리엄 하워드 러셀(William Howard Russell)을 전쟁터로 보내는 데, 그는 22개월 동안 크림 반도에 머물며 세바스토폴 공방전과 경기병여단 돌격 등 역사적 순간들을 직접 목격하고 기사를 썼다. (그는 후대에 ‘세계 최초의 종군 기자’라고 일컬어지게 된다.)

러셀이 런던으로 전송한 기사들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군 수뇌부의 무능, 병사들의 비참한 생활, 불필요한 희생들. 당시 전쟁 보도란 정부 발표문을 옮겨 쓰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러셀은 달랐다. 새로 깔린 전신(電信) 기술을 이용해 공식 보고와 전혀 다른 현실을 런던으로 전송했고, The Times는 그것을 검열 없이 실었다. 영국 국민들은 처음으로 전쟁의 실상을 신문에서 읽었다. 분노한 여론은 정부를 흔들었고, 군 수뇌부가 교체됐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간호사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향한 것도 러셀의 기사를 읽고 나서였다. 나이팅게일은 훗날 그의 전쟁터에서 써낸 기사들이 자신을 전시 간호 활동으로 이끌었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The Times의 이름은 울려 퍼졌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이 신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The Times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다. 아마도 미시시피 강을 빼면.” 

이는 단순한 찬사가 아니었다. 당시 The Times는 미국 남북전쟁을 보도하면서 남부 연합에 우호적인 논조를 취했는데, 링컨은 이 신문의 편향이 영국의 여론을 북부 연합에 불리하게 만들까 봐 실제로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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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전쟁 종전을 보도한 《더 타임스》 기사를 읽고 있는 부상당한 영국 장교. 출처: John Everett Millais - wgEs58iBCE0vHg at Google Cultural Institute, zoom level maximum, Public Domain

 

타임스 이름의 계보

 

그렇게 The Times는 단순한 신문이 아니라, 신문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정의하는 하나의 이름이 됐다.

The Times는 이 이름을 사용한 세계 최초의 신문으로, 이후 전 세계 수많은 신문들이 차례로 이 이름을 따랐다. The Times of India가 1838년, The Straits Times(싱가포르)가 1845년, The New York Times가 1851년, The Irish Times가 1859년, Los Angeles Times가 1881년, The Seattle Times가 1891년에 창간됐다.

이 계보를 보면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타임스’라는 이름을 가져간 신문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각자의 나라와 지역에서 역사의 기록지가 되고자 한 신문들이었다. 하루하루의 뉴스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이 시대를 훗날을 위해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선언. 존 월터가 1788년 내걸었던 그 이념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김활란이 ‘코리아타임스’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 그녀는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그 200년 된 계보 안에 자신의 신문을 위치시킨 것이었다. 이 전쟁의 시대를, 이 나라의 시대를, 영어로 기록하겠다는 의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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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5월 15일자 주간지 《더 타임스》 1면, “구 총리와 신임 총리(The old prime minister and the new)”라는 제목이 실린 표지. 출처: The Times - Photographed by LordLiberty, Public Domain

 

Times New Roman 폰트

 

The Times가 세상에 남긴 유산 중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익숙해져 버린 것이 하나 더 있다.

지금 이 칼럼을 읽는 독자 중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보고서나 리포트를 쓸 때 한 번 쯤은 ‘바탕’ 폰트를 사용해 봤을 거다. 그런데 영어로 문서를 작성할 때 자동으로 설정돼 있던 폰트를 기억하는가? 바로 ‘Times New Roman’라는 폰트다.

1929년 저명한 타이포그래퍼 스탠리 모리슨이 The Times에 인쇄 품질이 형편없고 서체가 구식이라는 비판을 보낸다. 이에 The Times는 모리슨에게 새 서체 개발을 맡겼고, 그 결과물이 1932년 10월 3일 처음 지면에 등장했다. 바로 Times New Roman 폰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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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s New Roman 폰트 견본. 출처: TimesRomanSp.svg: Rbpolsenderivative work: Kuyrebik (talk) - TimesRomanSp.svg, GFDL

독자들의 반응은 압도적으로 긍정적이었다. 읽기 쉽고, 권위 있고, 품위 있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The Times는 1년간 이 서체를 독점 사용하다가 상업용으로 공개했고, 이후 출판사와 기업, 정부 기관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1992년 마이크로소프트가 타임스 뉴 로먼을 윈도우 3.1의 기본 서체로 채택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를 열면 자동으로 설정되는 폰트가 됐다. 순식간에 전 세계의 모든 PC 사용자가 이 서체로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 세계 수억 명이 ‘기본 폰트’라고 생각하며 사용해온 그 글자체가, 사실은 런던의 한 신문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1788년 존 월터가 지루한 신문 이름을 두 단어로 줄이면서 시작된 일이, 200여 년에 걸쳐 뉴욕의 가판대와 싱가포르의 아침 식탁과 아일랜드의 커피숍을 거쳐, 전쟁 중인 서울의 인쇄기까지 닿았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열어보는 컴퓨터 문서의 기본 서체 안에도, 그 이름의 흔적이 살아 있다.

이름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The Times는 역사를 통해 증명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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