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문학으로 읽는 영국

고양이가 말을 한다, 영국 문학 속 동물의 목소리

함께 읽는 영국 추리 소설,『니들리스 거리의 마지막 집』첫번째 이야기

2026.08.02 | 조회 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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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올리비아는 고양이다.

그리고  소설 『니들리스 거리의 마지막 집』를 이루는 여러 목소리 가운데 하나다. 그녀는 테드와 로렌이 사는 니들리스 거리의 마지막 집에서 살아간다. 성경을 읽고, 테드를 사랑하며, 집 안에 고여 있는 기척과 침묵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헤아린다. 사람들의 말과 몸짓을 지켜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가려내어 독자에게 들려준다.

올리비아의 목소리는 인간의 목소리와 닮아 있으면서도 어딘가 다르다. 그녀에게 시간은 인간과 다른 속도로 흐르고,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사소한지를 가르는 기준 또한 인간의 것과 조금 다르다.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일 앞에서 오래 머뭇거리기도 하고, 인간이라면 쉽게 알아챌 감정과 징후를 낯선 수수께끼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낯섦 때문에 올리비아는 다른 인물들이 말하지 않는, 혹은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을 전한다. 테드와 로렌의 목소리 사이에 남겨진 침묵, 말로 설명되지 않는 불안과 균열이 그녀의 시선을 통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독자는 올리비아를 따라가며 인간의 눈으로는 쉽게 닿지 못했을 이 소설의 더 깊고 어두운 층위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 소설의 작가 캐트리오나 워드가 고양이에게 이야기할 권리를 건넨 것은 단순히 기묘하고 참신한 설정을 택한 일이 아니다. 그 선택은 동물에게 목소리를 부여해온 영국 문학의 오래된 전통 위에 놓여 있다. 영국 문학에서 동물이 인간의 곁에 머물며 인간의 세계를 바라보고, 그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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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리스 거리의 마지막 집』영문판 표지에 등장하는 올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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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잉글랜드 노퍽에서 성장한 안나 스웰은 자신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블랙 뷰티』였다. 그녀는 오랜 시간 공들여 이 작품을 완성했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가 빌려준 한 마리 말(horse)의 목소리는 그 이후에도 오래도록 살아남았다.

『블랙 뷰티』는 블랙 뷰티라는 말이 자신의 삶을 직접 들려주는 형식으로 쓰였다. 그는 여러 주인의 손을 거치며 서로 다른 인간들을 만난다. 어떤 이는 다정했고, 어떤 이는 무심했으며, 또 어떤 이는 잔인했다. 블랙 뷰티는 인간에게 길들여지고 부려지는 동안 자신이 겪은 친절과 고통을 조용히 증언한다.

스웰의 의도는 분명했다. 독자들을 인간의 자리에서 잠시 내려오게 한 뒤, 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다. 채찍을 쥔 사람의 손이 아니라 채찍을 맞는 몸의 감각을 상상하게 하고, 말이 단순한 노동의 도구가 아니라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는 생명임을 깨닫게 하려 했다.

그 시선의 전환은 실제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블랙 뷰티』는 출간 직후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영국과 미국에서 말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둘러싼 논의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한 마리 동물이 자신의 고통을 직접 말하는 이야기가, 현실 속 인간의 행동까지 돌아보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동물의 목소리가 문학 안에서 맡게 된 역할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33년, 버지니아 울프는 예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이 전통에 합류했다. 그녀가 발표한 『플러시: 전기』는 시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반려견이었던 코커스패니얼 플러시의 시선을 따라가는 작품이었다.

『파도』를 완성한 뒤 한결 가벼운 작품을 쓰고 싶었던 울프는 브라우닝의 곁을 지켰던 개의 삶에 눈을 돌렸다. 인간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인간을 바라보지만, 결코 인간의 세계에 완전히 속할 수는 없는 존재. 울프는 그 낯선 시선을 빌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계급 질서와 사회적 억압, 그리고 인간 감정의 복잡한 결을 들여다보았다.

플러시는 인간의 말을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 대신 냄새와 목소리의 떨림, 몸짓과 침묵으로 인간의 마음을 감지한다. 그리하여 동물의 시선은 인간의 시선보다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가 미처 붙잡지 못하는 것을 알아채는 또 하나의 감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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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뷰티』초판 표지. 출처: Unknown author - https://archive.org/details/blackbeautyhisgr00seweiala, Public Domain

1972년에는 리처드 애덤스의 『워터십 다운』이 등장했다. 토끼들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가디언 아동문학상과 카네기 메달을 받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동물을 중심에 둔 이야기의 가능성을 다시 넓혀놓았다.

애덤스는 토끼들에게 단순히 인간의 말과 감정을 입히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그들만의 언어와 신화, 전설과 사회 질서를 만들어냈다. 인간에게는 그저 평범한 들판과 도로와 울타리일 뿐인 풍경이 토끼들에게는 생존과 죽음이 갈리는 거대한 세계가 된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전혀 다른 존재의 감각으로 다시 경험하게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동물 서술자가 오랫동안 반복해온 가장 근본적인 시도인지도 모른다.

『블랙 뷰티』와 『플러시』, 『워터십 다운』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영국 문학에서 동물의 목소리가 얼마나 오래되고 풍요로운 전통을 이루어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캐트리오나 워드가 창조한 고양이 올리비아 역시 그 계보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올리비아는 앞선 동물 서술자들과 조금 다르다.

블랙 뷰티가 독자에게 고통의 실체를 보여주고, 플러시가 인간의 숨겨진 감정을 포착하며, 『워터십 다운』의 토끼들이 낯선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면, 올리비아는 진실로 향하는 길 자체를 흐릿하게 만든다.

그녀는 독자를 안내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독자는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갈수록 더 깊은 의문 속으로 들어간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무엇이 보였고 무엇이 감춰졌는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올리비아는 진실을 감추려는 서술자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이해한 것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말한다. 다만 그녀가 바라보는 세계와 인간이 이해하는 세계 사이에는 좁지만 깊은 틈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틈에서 이 소설의 가장 어두운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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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터십 다운』초판 표지. 출처: Fair 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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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문학이 동물을 단순한 배경이나 상징이 아니라, 스스로 말하고 느끼는 존재로 그려온 전통은 현실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태도와도 떼어놓기 어렵다. 문학 속 동물에게 목소리를 건넨 사회는, 현실의 동물에게도 고통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지를 오래전부터 묻기 시작했다.

1822년, 영국 의회에서는 역사적인 법안 하나가 통과됐다. 가축에 대한 잔인한 학대를 금지한 이른바 마틴법이었다. 법안의 통과를 이끈 아일랜드 출신 의원 리처드 마틴은 동물에 대한 남다른 연민으로 ‘인도주의자 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당시 영국의 풍경은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잔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소와 말, 개를 공개적으로 학대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고, 곰이나 황소를 묶어놓은 채 개들과 싸우게 하는 유혈 오락도 많은 사람의 구경거리가 됐다. 동물의 고통은 오락과 노동, 관습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도 쉽게 소비됐다.

마틴법은 그러한 폭력을 더 이상 개인의 취향이나 오래된 관습으로만 남겨둘 수 없다는 첫 공식 선언이었다. 동물도 고통을 느끼며, 그 고통 앞에서 인간에게는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비로소 법의 언어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824년 6월 16일, 런던의 올드 슬로터스 커피하우스에 스물두 명이 모였다. 노예무역 폐지 운동가 윌리엄 윌버포스와 리처드 마틴, 성공회 사제 아서 브룸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들이 세운 것은 동물학대방지협회였다. 세계 최초의 동물보호단체로 평가받는 이 조직은 학대받는 동물을 구제하고, 동물에 대한 잔혹한 행위를 사회의 도덕적 문제로 알리는 일을 시작했다.

1840년, 빅토리아 여왕이 이 단체에 왕실의 승인을 내리면서 협회는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 곧 RSPCA가 되었다.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소수 개혁가의 신념을 넘어 국가와 사회가 인정하는 가치로 자리 잡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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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번스의 재판을 묘사한 그림. 당나귀를 때리다 적발된 번스는 동물 학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는 세계 최초로 알려진 동물 학대 유죄 판결로 기록됐다. 그림에는 리처드 마틴이 놀란 법정 안으로 당나귀를 데려오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 사건은 당시 런던의 신문과 뮤직홀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출처: P. Mathews - http://www.artnet.de/Artists/LotDetailPage.aspx?lot_id=EEB9F49FBA0F3AB1EB7B3E0ECCD55B3D, Public Domain

여기에는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역설이 하나 있다.

RSPCA가 설립된 것은 1824년이었다. 반면 영국의 아동학대방지협회인 NSPCC가 만들어진 것은 그보다 60년 뒤인 1884년이었다.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보다 먼저 생겨난 것이다.

이 사실은 당시 영국 사회의 모순된 우선순위를 보여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동물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감각이 얼마나 이른 시기부터 형성되고 있었는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도 연민과 책임의 범위를 넓히려는 움직임이 이미 19세기 초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RSPCA의 창립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아서 브룸이 동물 보호의 근거를 신앙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성공회 사제였던 그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가 단순한 잔혹함을 넘어 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동물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마음대로 다뤄도 되는 물건이 아니었다. 인간에게 맡겨진 생명이었고, 따라서 그들을 돌보는 일은 자비의 표현이자 도덕적 의무였다.

이 지점에서 성경을 읽는 고양이 올리비아는 더 이상 단순히 기발하고 기묘한 설정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동물과 종교, 자비와 도덕적 책임을 연결해온 영국의 오래된 전통이 그녀의 모습 뒤에 희미하게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올리비아는 인간의 언어로 성경을 읽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녀가 인간보다 더 예민하게 붙잡는 것은 그 안에 적힌 문장보다도, 인간이 살아가며 자주 잊어버리는 연민의 감각인지 모른다.

RSPCA가 설립된 뒤 200년 동안 영국에서는 400건이 넘는 동물 관련 법률이 만들어졌다. 1835년에는 동물을 싸움에 내모는 행위가 공식적으로 금지됐고, 1911년에는 보다 포괄적인 동물보호법이 제정됐다. 그리고 2006년, 동물복지법이 통과되면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책임의 범위는 한층 더 넓어졌다.

이제 주인의 의무는 동물을 때리거나 굶기지 않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동물이 안전하게 살아갈 공간을 마련하고, 충분한 먹이와 돌봄을 제공하며, 신체적 필요뿐 아니라 정서적 필요까지 살펴야 한다는 책임이 법의 언어로 명시되기 시작했다. 동물을 해치지 않는 것에서 나아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제도 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오늘날 영국에서는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 반려동물 산업의 규모는 해마다 수십억 파운드에 이르고, 사람들은 반려동물의 생일을 축하하고 선물을 준비한다. 죽음을 맞은 반려동물을 위해 장례를 치르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돌봄이 이어질 수 있도록 유언장에 계획을 남긴다.

이런 모습은 누군가에게 지나친 감상주의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200년 넘게 이어져온 하나의 도덕적 믿음이 놓여 있다.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 그 고통은 인간의 고통과 마찬가지로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말없는 존재를 우리가 어떻게 대하는지가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마침내 법이 되었고, 생활의 방식이 되었으며, 하나의 문화로 뿌리내렸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문학 속에서도 목소리를 얻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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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제작된 RSPCA 홍보 영화 포스터. 1925년 RSPCA가 공개한 이 홍보 영화는 벨기에로 수출된 말들이 잔혹하게 도살되는 장면을 담아 큰 충격을 일으켰다. 그러나 영국 농무부 조사위원회가 일부 장면이 촬영을 위해 연출됐으며 도축업자에게 돈을 지급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조작 영화’ 논란에 휩싸였다. RSPCA와 제작진은 영상이 실제 상황을 기록한 것이라며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출처: Unknown author - Westminster Gazette (November 20, 1925). p. 9. Online at https://www.findmypast.co.uk/image-viewer?issue=BL%2F0002947%2F19251120&page=9 (subscription required)., Public Domain

 

***

 

이제 다시 올리비아의 목소리로 돌아가 보자.

소설 속에서 올리비아가 테드를 사랑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녀는 그를 믿고, 그를 지키고 싶어 하며, 자신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그의 곁을 맴돈다. 하지만 그 사랑이 테드라는 인간을 얼마나 정확히 바라보고 있는지는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점점 불분명해진다.

올리비아는 테드를 보호하려 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안에 깃든 어둠을 알아채지 못하는 듯 보인다. 어쩌면 이미 알아차렸지만,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때때로 상대를 더 선명하게 보게 하지만, 때로는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것을 가려버리기도 하니까.

바로 여기에 동물 서술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특한 힘이 있다.

동물의 시선은 인간이 공유하는 관습과 상식, 사회적 신호의 바깥에 놓여 있다. 인간 서술자라면 표정 하나, 말투 하나만으로도 알아챌 수 있는 징후를 동물은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혹은 끝내 읽어내지 못한다. 무엇을 보고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진실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이해와 오해 사이의 좁고 깊은 틈에 이 소설의 핵심 미스터리가 숨어 있다.

안나 스웰이 블랙 뷰티의 목소리를 빌려 독자에게 말의 고통을 보게 했을 때, 그녀는 시선이 바뀌면 세계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캐트리오나 워드는 같은 원리를 정반대의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올리비아의 시선은 독자에게 진실을 더 또렷이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을 흔들어놓는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기이한지,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스스로도 모르는 거짓을 말하는지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그 혼란 속에서 소설은 인간의 언어와 논리만으로는 쉽게 닿을 수 없는 어떤 진실을 향해 천천히 나아간다.

고양이가 말을 한다.

성경을 읽고, 한 인간을 사랑하며, 자신이 바라본 세계를 진지하게 증언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목소리는 때때로 인간의 목소리보다 더 정직하게 들린다.

영국 문학이 오랜 세월 동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온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끝내 말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가까이 두고도 보지 못하는 것을, 그들이 대신 바라보고 들려주기 때문에.


함께 생각해볼 질문들

  • 영국 문학은 오랫동안 동물에게 목소리를 부여해왔다. 우리는 왜 동물의 시선을 빌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가. 인간의 목소리로는 닿을 수 없는 어떤 것이 동물의 목소리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 동물 복지와 도덕에 관하여 영국에서 아동보호단체보다 동물보호단체가 60년 먼저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이것은 당시 영국 사회의 왜곡된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면 동물 복지에 대한 선구적 인식을 보여주는 것인가.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동물의 고통과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비교하고 있는가.
  • 당신에게 반려동물이 있다면, 혹은 있었다면, 그 존재는 당신의 삶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반려동물에게 감정을 투영하고 그들이 우리를 이해한다고 믿는 것은 착각인가, 아니면 실제로 어떤 교감이 일어나는가. 그 경계를 어디에 그어야 하는가.

읽으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

  • Paul McCartney – 'Blackbird' (1968) 비틀스 시절 폴 매카트니가 쓴 이 곡은 새 한 마리의 시선을 빌려 억눌린 존재가 날개를 펼치는 순간을 노래한다. 동물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블랙 뷰티』 이후 영국 문화에서 반복되어온 전통과 맞닿아 있다. 올리비아가 창문 너머 세상을 바라보는 장면을 생각하며 듣기를 권한다.  

다음화 예고

영국은 실제 범죄를 다룬 팟캐스트와 다큐멘터리를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소비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오래된 미제 사건은 다시 이야기되고, 범죄자의 삶은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로 재구성되며, 피해자의 마지막 순간은 수많은 사람의 이어폰 속에서 반복해서 재생된다.

실제 범죄를 다룬 이야기는 왜 이토록 강한 흡인력을 지닐까. 우리는 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의 죽음과 실종에 깊이 빠져드는가. 진실을 알고 싶다는 마음은 어디에서 끝나고, 타인의 비극을 바라보는 욕망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1888년 런던, 잭 더 리퍼 사건이 언론을 통해 대중적 공포와 호기심의 대상으로 변해가던 순간에서 출발해, 오늘날의 범죄 팟캐스트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이르기까지 범죄가 어떻게 이야기로 소비되어왔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묻는다.

범죄가 오락이 되는 순간, 무엇이 사라지는가. 수많은 추측과 재연, 흥미로운 서사 속에서 실제 피해자와 그 가족의 목소리는 어디에 남는가.

 함께 읽는 영국 추리 소설,『니들리스 거리의 마지막 집』2화에서는 영국 트루 크라임 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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