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가을, 케임브리지대학교 컴퓨터 연구소의 닐 도지슨(Neil Dodgson) 박사가 원로원(Regent House) 회의에서 조용히 손을 들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의 가장 오래된 전통 가운데 하나를 정면으로 문제 삼기 위함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케임브리지의 문학석사(Masters of Arts · MA) 학위’ 는 하나의 “변칙(anomaly)”이며, 자칫하면 “학교의 대외적인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힐 있다고 경고했다.
오랜 관행일수록 내부에서는 좀처럼 질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케임브리지의 교수가, 케임브리지 한가운데에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자기 대학의 관행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던진 것이다.
그가 문제 삼은 ‘케임브리지 MA’란 무엇일까.
케임브리지에서는 학부에 입학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졸업생이 별도의 수업을 듣거나 논문을 쓰거나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MA 학위를 받을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학업 성취가 아니라 시간의 경과와 몇 가지 행정 절차뿐이다. 그렇게 학사 졸업생은 자신의 이름 뒤에 MA(Cantab), 즉 케임브리지 석사라는 표기를 붙일 수 있게 된다. 라이벌 옥스퍼드대학교 역시 같은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의 대학 제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낯설게 들릴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명망 높은 대학 가운데 하나가, 추가적인 공부나 연구를 요구하지 않은 채 ‘석사’라는 이름의 학위를 수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지슨 박사의 발언은 오랫동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온 이 관행의 표면에 작은 금을 냈다. 처음에는 대학 안에서 시작된 균열이었다. 그러나 그 금은 서서히 바깥으로 번져갔다.
그리고 이듬해, 논쟁은 마침내 영국 의회의 문턱을 넘었다.
졸업식에서 학위 수여를 앞둔 졸업생들이 케임브리지대학교 원로원 건물(Senate House)로 들어가고 있다. 출처: Cmglee - Own work, CC BY-SA 3.0
800년 전, 중세 대학의 길드 시스템
이 기묘한 전통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시간을 800년쯤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직 대학이라는 제도 자체가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던 중세 유럽으로.
중세의 대학은 장인들의 길드와 닮아 있었다. 도제가 숙련된 장인 밑에서 오랜 시간 기술을 배우고, 마침내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마스터(master)’가 되어 독립하듯, 대학의 교육도 비슷한 단계로 이루어졌다. 당시 학생들은 지금보다 훨씬 어린, 대개 13~14세 무렵 대학에 들어갔다.
교육과정은 크게 두 단계였다.
먼저 약 4년 동안 문법, 수사학, 논리학으로 이루어진 ‘트리비움(trivium)’을 공부했다. 이 과정을 마치면 학사(Bachelor of Arts)가 됐다. 이어 다시 몇 년 동안 산술, 기하, 음악, 천문학으로 구성된 ‘쿼드리비움(quadrivium)’을 익혔다. 그 끝에 기다리고 있던 것이 바로 문학석사(Master of Arts), 즉 MA였다.
일곱 개의 자유학예와 약 7년에 걸친 수학 과정. BA에서 MA로 이어지는 길은 애초부터 하나의 긴 교육과정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시의 MA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대학원 석사학위’와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중세 대학에서 ‘마스터’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추었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자신이 배운 학문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자격을 얻었다는 의미였다. 일종의 교수 면허이자 교육할 권리에 가까웠다. ‘마스터’라는 말 자체가 학문적 성취뿐 아니라,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지위에 올랐음을 뜻했다.
다시 말해, 석사는 지식의 증명서이기 이전에 가르침의 권한이었다.
그리고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MA는 한 가지 의미를 더 지녔다.
MA를 받은 사람은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 안으로 들어갈 자격을 얻었다. 옥스퍼드에서는 Convocation에, 케임브리지에서는 Senate에 참여할 수 있었고, 대학의 주요 사안에 목소리를 내거나 총장 선거에 참여할 권리도 주어졌다.
그래서 당시의 MA는 단순히 이름 뒤에 붙이는 학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학 공동체의 바깥에 있던 사람을 안으로 들여보내는 일종의 통행증이었다.
학생에서 마스터로, 배우는 사람에서 가르치는 사람으로, 그리고 마침내 대학을 운영하는 구성원으로.
어쩌면 당시의 MA는 학위라기보다 대학 공동체 안에서 완전한 시민권을 얻는 의식에 더 가까웠다.
1815년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리전트(regent) 지위를 갖지 않은 MA 학위 소지자가 착용하던 전통 학위복. 당시 MA는 단순한 학위 명칭을 넘어 대학 내 지위와 역할을 나타내는 의미도 지녔다. 출처: John Samuel Agar (1773-1858) after Thomas Uwins (1782-1857) - William Combe (1742-1823), "History of the University of Cambridge" (1815), Public Domain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방식
한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학사 과정의 요구 조건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엄격해졌지만, 그 이후에 이어지던 석사 과정의 요구는 오히려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약 400년 전까지만 해도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는 BA와 MA가 각각 일정한 학업과 평가를 거쳐야 하는 단계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 그 구조는 서서히 느슨해지기에 이른다.
18세기에 이르자, 두 대학의 MA는 더 이상 별도의 공부나 시험을 요구하는 학위가 아니게 됐다. 남은 것은 시간뿐이었다. 오래전 BA와 MA를 잇던 ‘7년’이라는 틀은 그대로였지만, 그 안을 채우던 교육과정은 사라졌다. 내용은 빠지고, 형식만 남은 것이다.
이런 변화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중세에는 13~14세에 대학에 들어가 7년을 공부한 뒤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에 MA에 이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로였다. 하지만 대학 입학 연령이 점차 높아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18세에 대학에 들어간 학생이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7년을 채우려면 스물다섯 살이 되어야 했다. 이미 대학을 떠나 사회생활을 시작한 졸업생에게 몇 년의 추가 학업을 요구하는 것은 점점 현실과 맞지 않게 됐다.
그 결과, 원래는 공부의 기간이었던 시간이 어느 순간 그 자체로 자격의 기준이 됐다.
그리고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더 결정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MA’라는 이름이 반드시 BA 이후의 추가적인 대학원 교육을 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836년 설립된 런던대학교가 MA를 BA보다 높은 별도의 학위로 운영하면서, 영어권 대학에서 ‘석사’의 의미는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런던의 MA는 추가적인 공부와 시험을 거쳐 얻는 상위 학위였다. 오늘날 우리가 ‘석사 과정’이라고 부를 때 떠올리는 모습에 훨씬 가까웠다.
반면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MA는 옛 의미를 그대로 간직했다. 새로운 학업 성취를 증명하는 학위라기보다, 대학 안에서 일정한 연륜과 선임 지위를 갖췄음을 나타내는 칭호에 가까웠다.
같은 ‘MA’라는 두 글자가 서로 다른 시간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대학은 점차 MA를 ‘추가로 공부해 얻는 학위’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중세 대학의 흔적을 품은 오래된 방식을 계속 유지했다.
세상은 한쪽으로 움직였고, 두 대학은 오래된 자리에 남았다. 오늘날 케임브리지 MA를 둘러싼 혼란은 바로 그 사이에 벌어진 수백 년의 간극에서 시작된다.

신임 영국총리 앤디 버넘의 위키피디아 프로필. 학력란에 케임브리지대학교 피츠윌리엄 컬리지(MA) 졸업이라 기재되어있다.
오늘날 이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
그렇다면 이 오래된 제도는 오늘날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절차만 놓고 보면 놀랄 만큼 단순하다.
옥스퍼드에서는 입학(matriculation) 후 21학기, 즉 7년이 지나면 BA 학위 소지자가 MA를 신청할 수 있다. 케임브리지에서는 입학 후 6년이 지나면 자격이 생긴다. 별도의 수업도, 논문도, 시험도 없다. 옥스퍼드의 경우 수수료를 내고 학위 수여식에 참석하거나,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학위를 받을 수 있다.
두 대학은 한 가지를 분명하게 강조한다. 이 MA는 BA 위에 새롭게 쌓아 올리는 학문적 ‘업그레이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추가적인 공부의 결과라기보다 대학 안에서 선임자의 지위를 얻었음을 나타내는 전통적 표지에 가깝다. 그래서 학력란에서도 BA와 MA를 나란히 적기보다는, 기존 BA를 MA로 바꾸어 표기하는 것이 원칙으로 안내된다.
대학 안에서는 그 의미가 분명하다.
문제는 대학 밖으로 나오는 순간 시작된다.
이름 뒤에 붙는 ‘MA(Cantab)’이나 ‘MA(Oxon)’이라는 표기는 언뜻 보면 여느 석사학위와 다르지 않다. ‘Cantab’은 케임브리지의 라틴어 이름인 Cantabrigia에서, ‘Oxon’은 옥스퍼드를 뜻하는 라틴어 표현에서 유래한 전통적 약칭이다. 이 제도의 역사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 의미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영국 밖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력서에 적힌 ‘MA(Cantab)’이라는 몇 글자만 보고 그것이 별도의 대학원 과정을 거쳐 받은 석사학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오래된 전통을 설명하기 위한 라틴어 표기가, 역설적으로 현대의 학위 체계에서는 오해를 부르는 장치가 된 셈이다.
그리고 그 오해가 단순한 가능성에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숫자가 있다.
2000년, 영국의 고등교육 품질보증기관인 QAA가 고용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2퍼센트가 MA(Oxon)과 MA(Cantab)를 추가적인 대학원 공부를 통해 취득한 학위라고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이 학위의 성격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11년 뒤, 이 숫자는 영국 의회 한복판에서 다시 등장했다.
2011년 노동당 의원 크리스 레슬리(Chris Leslie)는 하원 연설에서 이 제도를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그의 논지는 단순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졸업생들은 추가적인 학업 없이 전통적 MA를 받을 수 있는 반면, 다른 대학의 학생들은 같은 ‘Master of Arts’라는 이름의 학위를 얻기 위해 실제로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며 상당한 등록금을 부담한다는 것이었다.
레슬리가 보기에 문제는 전통 그 자체보다, 그 전통이 현대 사회에서 만들어내는 인상의 차이에 있었다.
그는 이 제도가 “소수의 매우 운 좋은 사람들에게 특권이 주어진다”는 대중의 의심을 더욱 키울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같은 해, 그는 아예 법안을 내놓았다.
이름은 ‘석사학위 최소 기준 법안(Master’s Degrees (Minimum Standards) Bill)’. 석사라는 명칭의 학위를 수여하려면 최소한의 학문적 요건이 필요한지 QAA가 검토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석사학위 최소 기준 법안’. “일정한 수준의 학업과 평가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한 대학이 석사학위를 수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와 관련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한 법안.”이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법안의 2차 독회는 2011년 10월 21일 열렸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오래된 대학의 전통에 어울린다고 해야 할지 모를 장면이 벌어졌다.
옥스퍼드 출신 의원 한 명이 장시간 발언을 이어가면서 법안이 표결에 이르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이른바 필리버스터였다. 결과적으로 법안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고 사실상 폐기됐다.
옥스퍼드의 전통을 문제 삼는 법안이, 옥스퍼드 출신 의원의 의회 발언에 가로막힌 셈이었다.
당시 대학·과학 장관이었던 데이비드 윌레츠(David Willetts)는 정부를 대표해 법안에 반대하는 최종 발언을 했다.
그의 논리는 크게 두 갈래였다.
첫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MA는 단순한 학위 표기가 아니라, 졸업생이 대학 공동체와 공식적인 관계를 이어가도록 하는 장치라는 것이었다. 오래전 MA가 대학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뜻했던 전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오늘날에도 동문과 대학을 연결하는 제도적 끈으로 기능한다는 설명이었다.
둘째는 혼란의 여지 문제였다.
MA(Oxon)이나 MA(Cantab)가 일반적인 대학원 석사학위로 오해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윌레츠는 이미 두 대학과 QAA가 웹사이트를 통해 이 학위의 성격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제도의 실체가 공개돼 있는 만큼, 별도의 법적 규제까지 필요하지 않다는 논리였다.
정부가 내세운 더 근본적인 논거도 있었다. 바로 대학의 자율성이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가 수백 년 동안 유지해온 학위 관행에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은, 개별 제도의 옳고 그름을 넘어 대학이 스스로 자신의 학사 제도와 전통을 결정할 권리와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케임브리지의 MA들은 졸업식에서 별도의 가운을 입도록 되어있다. 출처: Ryder & Amies
전통이라는 이름의 이중성
‘전통’이라는 말은 영국에서 묘한 힘을 가진다.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때로는 그 자체로 존속의 근거가 된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MA를 둘러싼 논쟁도 결국 이 질문으로 모인다. 오래된 제도는 어디까지 존중받아야 하고, 언제부터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가.
비판론자들의 주장은 단순하다. 800년을 이어온 제도라 해도 오늘날 본래의 기능을 잃고 오해를 낳는다면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지지론자들은 모든 전통을 현대의 기준으로 다시 재단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독특함은 바로 그런 오래된 관습과 제도를 지켜온 데서도 비롯된다는 것이다.
2011년 논쟁 당시 한 옥스퍼드 동문은 데일리 텔레그래프 웹사이트에서 이 논쟁이 옥스브리지 교육 시스템에 대한 무지와 질투에서 비롯됐다며, 대학의 전통이 외부의 자격지심 때문에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반대편에서는 정반대의 냉소가 나왔다.
“800년 동안 해왔다는 것이 이 제도의 가장 강한 변호라면, 그것은 동시에 가장 취약한 변호이기도 하다.”
두 목소리 사이에는 영국 사회가 전통을 바라보는 양가적인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래된 것을 지키려는 완강함과, 그런 완강함이 때로 얼마나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는 자의식이다.
2011년의 법안은 결국 통과되지 않았고, 제도는 살아남았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졸업생들은 지금도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MA를 신청할 수 있다. 누군가는 오래된 대학의 전통으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별 의미를 두지 않으며, 누군가는 그런 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지나간다.
어쩌면 이 MA는 학위 제도의 기묘한 예외라기보다, 영국에서 전통이 살아남는 방식을 보여주는 작은 사례에 가깝다.
전통은 과거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제도 속에 조용히 남아 있다가, 누군가 그것을 없애자고 말하는 순간 비로소 자신의 힘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마지막 아이러니가 하나 있다.
2010년 케임브리지 원로원에서 이 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닐 도지슨 박사 역시, 바로 그 오래된 제도의 안쪽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그가 원로원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자격 가운데 하나도 MA(Cantab)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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