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해외 출장 일정으로 장르 문학으로 읽는 영국 『니들리스 거리의 마지막 집』 두번째 이야기 발행이 늦어졌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디는 멈추지 않았다.
여동생 라일라가 사라진 것은 11년 전이었다. 호숫가에서였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다. 디가 잠시 한눈을 판, 그 짧은 순간에 라일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날 이후 디의 삶에서 시간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흐르지 않았다. 모든 것은 라일라가 사라진 그날을 중심으로 다시 배열되었다. 경찰은 수사를 끝냈고,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으며, 계절은 몇 번이고 바뀌었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디만은 그 자리에 남았다.
그녀는 단서를 모았다. 의심스러운 사람들의 행적을 좇았고, 풀리지 않은 의문들을 기록했다. 하나의 가능성이 사라지면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11년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디는 니들리스 거리 끝에 있는 한 집 앞에 도착한다.
캐트리오나 워드의 소설 『니들리스 거리의 마지막 집』에서 디의 집착은 이야기를 움직이는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이 어딘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미해결 사건을 스스로 파고들고, 흩어진 단서를 맞춰보고, 공식적인 수사가 놓쳤을지도 모를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충동. 그것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팟캐스트와 다큐멘터리,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디에게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그녀가 추적하는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이름 모를 피해자가 아니라 자신의 여동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트루 크라임(true crime)’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일어난 범죄와 실종, 수사와 재판을 이야기의 재료로 삼는 장르다. 그리고 영국은 세계에서도 이 장르를 유난히 열정적으로 소비하는 곳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 트루 크라임은 영국 팟캐스트 시장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장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왜 타인의 비극을 그토록 오래 들여다보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끝난 사건을 다시 열어보고, 이미 흩어진 단서를 주워 모으고,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을 되짚게 만드는가.
트루 크라임을 향한 이 오래된 집착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깊은 곳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까.
1812년 영국 총리 스펜서 퍼시벌(Spencer Perceval)을 암살한 존 벨링엄(John Bellingham)의 재판과 처형을 다룬 범죄 팸플릿이다. 왼쪽에는 재판 당시 벨링엄의 초상이, 오른쪽에는 사건과 재판 과정, 유죄 판결 및 처형에 관한 내용을 소개한 표지가 실려 있다. 당시 대중이 유명 범죄 사건을 접하던 대표적인 인쇄물로, 19세기 초 트루 크라임 문화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출처: Robert Peck, circa 1812 - https://www.nlm.nih.gov/exhibition/murderpamphlets/images/bellingham.jpg,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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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가을, 런던 이스트엔드의 어두운 골목에서 여성들이 하나둘 살해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 희생자가 발견된 것은 8월 31일 새벽이었다. 그리고 11월이 올 때까지 네 명의 여성이 더 목숨을 잃었다. 살인은 잔혹했고, 범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경찰은 그를 붙잡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과 언론사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를 쓴 사람은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이름을 남겼다.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
그가 세계 최초의 연쇄살인범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상 이토록 대대적으로 소비되고, 이야기되고, 상상된 살인자는 이전까지 거의 없었다.
그해 가을 런던의 신문 가판대에서는 범죄가 곧 이야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새 소식을 기다렸고, 신문들은 그 갈증을 놓치지 않았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신문 가운데 하나였던 스타(The Star)는 하루 판매량이 30만 부에 이를 만큼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지면은 살인과 관련된 잔혹한 묘사로 채워졌다.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추측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희생자들의 삶과 죽음 역시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되었다. 더 자극적인 기사를 내놓기 위해 기자들이 증거를 과장하거나 목격담을 만들어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더이상 그것은 단순히 사건을 전달하는 보도가 아니었다. 이름 없는 살인자에게 이름을 붙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인간을 공포와 매혹이 뒤섞인 존재로 만들어내고, 독자들로 하여금 다음 장면을 기다리게 하는 일이었다. 살인 사건은 하나의 서사가 되었고, 대중은 어느새 그 서사의 독자가 되어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트루 크라임’이라고 부르는 장르의 원형은 어쩌면 이미 그때, 1888년 런던의 신문 가판대 위에 놓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잭 더 리퍼 사건이 중요한 까닭은 살인의 잔혹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범죄와 미디어,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대중 사이의 관계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통신 기술의 발전 역시 그 변화를 가속했다. 대서양 횡단 전신망을 통해 런던에서 벌어진 사건은 빠르게 바다를 건넜다. 미국과 호주, 자메이카를 비롯한 먼 지역의 신문들까지 잭 더 리퍼를 보도했다. 런던 이스트엔드의 좁고 어두운 골목에서 벌어진 살인은 더 이상 런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나의 범죄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지켜보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범죄가 사건을 넘어 스펙터클이 되는 시대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1888년 10월 런던 화이트홀에서 발견된 신원 미상의 여성 시신 일부와 관련된 미제 살인 사건, 이른바 ‘화이트홀 미스터리(Whitehall Mystery)’를 가리킨다. 당시 런던을 공포에 빠뜨린 연쇄 살인 사건들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면서 큰 언론의 관심을 받았지만, 피해자의 신원과 범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출처: Unknown author - Source: The Illustrated Police News newspaper, October 1888 [1].,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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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에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이 범죄 서사의 전통은 20세기를 지나며 더욱 정교해졌다.
1950년대와 60년대, 영국 사회를 뒤흔든 잔혹한 살인 사건들은 신문과 방송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존 크리스티(John Christie)의 연쇄살인이 드러났을 때, 평범한 런던 주택가의 한 집에서 벌어진 범죄는 영국 사회에 깊은 충격을 남겼다. 그리고 1960년대 중반 세상에 알려진 ‘무어스 살인 사건(Moors Murders)’은 그보다도 다른 종류의 공포를 불러왔다. 희생자 대부분이 어린이와 청소년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범인 이언 브레이디(Ian Brady)와 마이라 힌들리(Myra Hindley)의 얼굴은 끊임없이 신문 지면에 등장했다. 특히 힌들리의 차갑게 굳은 표정이 담긴 사진은 사건 그 자체와 분리하기 어려울 만큼 반복해서 소비됐다. 두 사람의 이름과 얼굴은 그렇게 오랫동안 영국 사회에서 ‘악’을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이미지로 남았다.
시대와 사건은 달라졌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에는 익숙한 패턴이 있었다.
가해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을 넘어 거의 신화적인 악의 존재로 그려졌다. 범죄의 세부는 점점 더 깊고 자세하게 파고들었고, 독자들은 범인이 누구였는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피해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하나의 사건이 보도될수록 새로운 의문과 이야기가 생겨났고, 대중은 그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그 구조는 한 세기 전 잭 더 리퍼를 좇던 빅토리아 시대의 신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매체와 그것이 도달할 수 있는 거리, 그리고 퍼져나가는 속도였다.
신문에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그리고 훗날 인터넷으로. 매체는 계속 모습을 바꾸었지만 범죄를 바라보려는 인간의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그 시선은 더 가까이, 더 깊숙이 사건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1965년 10월 체포된 이언 브래디(Ian Brady)와 마이라 힌들리(Myra Hindley)의 모습. 두 사람은 1960년대 영국에서 여러 아동과 청소년을 살해한 ‘무어스 살인 사건(Moors murders)’의 범인으로, 사건은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영국 범죄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사건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출처: https://www.telegraph.co.uk/news/uknews/law-and-order/5793967/Ian-Brady-refuses-to-help-find-Keith-Bennetts-body.html, Fair 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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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의미의 트루 크라임이 하나의 독립된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였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는 실제 범죄를 단순히 보도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건을 길고 깊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영국 BBC가 1984년부터 방영한 『크라임워치(Crimewatch)』는 그 흐름을 상징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미해결 범죄를 재연하고, 시청자들에게 직접 제보를 요청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시청자는 더 이상 사건 밖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화면 너머에서 범죄를 지켜보는 데 그치지 않고, 기억을 더듬고, 얼굴을 알아보고, 단서를 제공하면서 수사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오늘날 트루 크라임 문화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충동 가운데 하나를 일찍이 보여준 형식이었다. 그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직 풀리지 않은 퍼즐 속으로 직접 들어가고 싶은 욕망.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사건을 함께 풀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크라임워치 프로그램 로고
그리고 2000년대 이후 팟캐스트가 등장하면서 그 욕망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얻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14년 미국에서 시작된 『시리얼(Serial)』이었다. 1999년 메릴랜드에서 발생한 한 살인 사건을 여러 주에 걸쳐 다시 추적한 이 팟캐스트는 트루 크라임을 듣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놓았다. 청취자들은 한 번의 방송으로 사건을 소비하지 않았다. 매주 새로운 증언과 단서를 기다렸고,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의심했으며, 다음 이야기가 공개될 때까지 각자의 가설을 세웠다.
그 반향은 미국에 머물지 않았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이 잇따라 등장했고, 제작자들은 오래된 미제 사건과 잊힌 범죄 기록을 다시 꺼내 들었다. 트루 크라임은 더 이상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한 코너가 아니라,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찾아 듣고 토론하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그 흐름을 다시 한 번 증폭시켰다.
2015년 공개된 『메이킹 어 머더러(Making a Murderer)』는 장편 트루 크라임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여러 에피소드에 걸쳐 사건을 파고드는 구성, 한 번에 이어 볼 수 있는 스트리밍 환경, 그리고 다음 회를 보지 않고는 멈추기 어렵게 만드는 클리프행어식 서사가 결합되면서 수많은 시청자들이 하나의 사건 속에 며칠, 때로는 몇 주씩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소비하는 방식에 있었다.
시청자들은 더 이상 화면 앞에서 조용히 결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온라인 게시판과 소셜미디어에서 증거를 다시 검토했고, 등장인물의 행동을 분석했으며, 서로의 가설을 반박하고 자신만의 결론을 만들어갔다. 수사는 어느 순간 작품 밖으로 흘러나와 집단적인 놀이이자 참여의 형태가 되었다.
『니들리스 거리의 마지막 집』의 디가 11년 동안 혼자 해왔던 일을, 이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하고 있는 셈이다.
흩어진 단서를 모으고, 공식적인 설명의 빈틈을 들여다보고, 아직 풀리지 않은 이야기에 자신만의 결말을 붙이는 일.
트루 크라임은 그렇게 ‘보는 장르’에서 ‘참여하는 문화’로 변해갔다.
Making a murderer 타이틀 카드. 출처: Netflix - Netflix, Fair 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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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실종과 범죄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몇 가지 이유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안전에 대한 욕구다. 위험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이다.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을 충분히 들여다보면, 적어도 같은 위험만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미한 믿음이 그 안에 있다.
또 하나는 통제에 대한 욕구다. 현실의 삶은 좀처럼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유 없이 사고가 일어나고, 사람은 사라지며, 어떤 사건은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흩어진 단서를 모으고, 시간의 순서를 다시 맞추고, 하나의 이론을 세우는 동안만큼은 혼돈에도 어떤 질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풀리지 않은 사건을 추적하는 일은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이해 가능한 형태로 바꾸려는 시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공감이 있다. 이름과 사진으로만 남아 있던 피해자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고, 남겨진 가족의 슬픔을 상상하는 일. 어떤 사람들에게 트루 크라임은 타인의 고통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게 하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설명이 옳다 해도, 끝내 하나의 불편한 질문은 남는다.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보는 것은 정말 피해자를 위해서일까. 아니면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해서일까.
트루 크라임 문화가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하면서, 이 질문은 더 이상 추상적인 윤리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게 되었다. 화면과 이어폰 너머에서 소비되는 이야기가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과 부딪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종된 아이의 부모는 어느 날 자신의 아이가 낯선 팟캐스트의 한 에피소드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살인 피해자의 가족은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자신들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을 분석하고 평가하고 추측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누군가는 사건 기록을 뒤지고, 누군가는 새로운 가설을 세우며, 또 누군가는 이름을 알지 못했던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피해 가족의 동의 없이 사건이 콘텐츠가 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사실처럼 퍼지는 일도 생긴다.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이 온라인에서 잠재적인 용의자로 지목되는 경우도 있다.
정의를 찾겠다는 마음으로 시작된 일이, 어느 순간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범죄에 매혹된 것은 디지털 시대에 처음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역사학자들이 오래전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욕망의 흔적은 훨씬 이전부터 발견된다. 살인과 처형을 노래로 전하던 유럽의 범죄 발라드가 있었고, 18세기와 19세기에는 최신 살인 사건과 재판 이야기를 담은 값싼 인쇄물이 거리에서 팔렸다. 사람들은 범인의 이름을 읽고, 범죄의 세부를 궁금해하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타인의 죽음을 이야기로 소비했다.
매체는 달랐지만, 그 안에 있는 충동은 놀랄 만큼 익숙하다.
다만 오늘날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규모다.
과거에는 한 장의 인쇄물을 수백 명이나 수천 명이 읽었다면, 이제 하나의 팟캐스트나 다큐멘터리는 순식간에 수백만 명에게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수백만 명은 더 이상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끝내지 않는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기록을 찾아보고, 사람을 추적하고, 의심을 확대하며, 때로는 실제 수사와 당사자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의 트루 크라임은 단순한 ‘소비’라고 부르기 어려운 무언가가 되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한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움직이는 집단적 행동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트루 크라임의 오래된 매혹은 새로운 윤리적 질문과 마주한다.
한 사람의 비극을 오래 기억하는 것과, 그 비극을 끝없이 소비하는 것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함께 생각해볼 질문들
- 디는 11년 동안 여동생의 실종 사건을 추적했다. 이것은 애도의 한 형태인가, 아니면 애도를 막는 것인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할 때, 그 집착이 우리를 보호하는 순간과 우리를 가두는 순간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 당신은 트루 크라임 팟캐스트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을 소비할 때 어떤 감정이 드는가. 실제 사건의 피해자 가족이 자신들의 비극이 오락 콘텐츠의 소재가 되는 것을 어떻게 느낄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우리의 집착이 정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오락을 위한 것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 트루 크라임 콘텐츠는 복잡한 현실을 하나의 서사로 압축한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사라지는가. 실제 사건에는 언제나 공식 서사가 포착하지 못하는 복잡함이 있다. 우리가 단순한 이야기를 원하는 욕망이 우리의 판단을 어떻게 왜곡하는가.
읽으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
- Arctic Monkeys – 'Fluorescent Adolescent' (2011) 셰필드 출신의 아틱 몽키스는 영국 일상의 질감을 음악으로 만드는 밴드다. 이 곡은 한때 특별했던 무언가가 평범해지는 감각을 담고 있다. 디가 11년 동안 단서를 추적하면서 느꼈을 감각, 즉 집착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 상태와 묘하게 맞닿아 있다.
다음화 예고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면, 독자는 문득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테드를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그때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판자가 덧대어진 창문, 좀처럼 열리지 않는 문,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남자. 니들리스 거리 끝의 그 집을 바라보며 우리는 아주 쉽게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그 안에는 괴물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이 소설은 끝까지 읽어야 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처음 그렇게 쉽게 떠올렸던 ‘괴물’이라는 단어가 전과는 다른 무게로 남는다. 우리가 처음 보았던 것은 정말 괴물이었을까. 아니면 괴물이 되어버린 한 인간이었을까.
그러면 질문도 달라진다.
테드를 그렇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소설은 이 질문 앞에서 가장 불편한 곳을 가리킨다. 그를 파괴한 것은 낯선 누군가가 아니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폭력이 시작된 곳 역시 거리의 어두운 골목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야 했을 집이었다.
무엇보다 그 집의 문은 너무 오랫동안 닫혀 있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사회는 보지 못했고, 때로는 보려 하지 않았다.
이 글의 마지막 화에서는 바로 그 닫힌 문 뒤를 바라본다.
영국 사회가 아동 학대를 하나의 범죄이자 사회가 개입해야 할 문제로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를 따라가려 한다.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보다 훨씬 늦게 등장한 아동보호운동, ‘가정 안의 일’에는 외부가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오래된 관념,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반복된 폭력이 한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를 살펴본다.
오랫동안 ‘집’은 사적인 공간이라는 이유로 법과 사회의 시선이 쉽게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보호받아야 할 공간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되었을 때, 닫힌 문을 존중한다는 것은 때로 그 안의 폭력을 외면한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캐트리오나 워드는 이 소설이 단순히 폭력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폭력이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다시 빚어놓는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래서 『니들리스 거리의 마지막 집』을 다 읽고 나면 처음의 질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괴물은 누구인가’가 아니라,
‘괴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괴물은 어느 날 세상에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때로 그것은 오랜 시간 반복된 폭력과 공포, 침묵과 방치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진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은 어쩌면 그것을 만드는 일이 언제나 멀고 낯선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때로 그것은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곳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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