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문학으로 읽는 영국

영국 왕실이 사랑한 가짜 약, 동종요법 그리고 믿음의 계급학

직관과 증거 사이에서: 함께 읽는 영국 추리소설 『리틀 페이스』세번째 이야기

2026.02.15 | 조회 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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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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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30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영국이라는 나라의 시간과 전통이 응축된 공간에서, 한 시대를 상징하던 인물의 마지막 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101세로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왕대비의 장례식이었다. 영국 전역에서 약 20만 명이 직접 조문에 나섰고, 전 세계에서는 약 10억 명이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그 장면을 지켜봤다. 단순한 왕실 장례가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사회를 상징해온 ‘국민적 어머니’의 퇴장이었다.

한데 행렬 속에 유독 눈에 띄는 한 인물이 있었다. 왕족도, 정치인도 아니었다. 왕대비의 개인 동종요법 주치의였던 피터 피셔 박사였다. 이 장면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영국 왕실에서 동종요법은 단순한 취미나 대체 의료의 한 갈래가 아니라, 오랜 시간 생활 속에 스며든 문화적 선택이었다는 사실이다.

왕대비는 평생 아르니카(Arnica)를 극찬한 것으로 유명하다. 타박상과 충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동종요법 약이다. 그녀는 궁전을 방문한 손님에게도, 가까운 지인에게도, 심지어 자신이 아끼던 애완견들이 다쳤을 때에도 아르니카를 사용했다. 누군가 넘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녀는 자연스럽게 아르니카 약이 담긴 작은 병을 꺼내 건넸다. 하지만 사실 그 안에 든  것은 설탕 알약과 다를바 없는 것이었다. 산꽃 아르니카 몬타나 성분이 극도로 희석된 형태로 첨가되어있다고는 하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사실상 유효 성분이 남아 있지 않은 수준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대목에서 한국 독자라면 ‘대체의학’ 혹은 ‘민간요법’을 떠올릴 수도 있다. 다만 동종요법은 동양 전통의학과는 구조가 다르다. 예를 들어 한의학은 약재의 물리적 성분과 복합 작용을 중시하지만, 동종요법은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을 치료한다’는 개념과 극단적 희석 원리에 기반한다. 즉, 과학적 검증보다는 철학적·경험적 믿음에 가까운 체계다. 그럼에도 영국 상류층과 왕실에서는 오랫동안 일정한 신뢰를 받아왔다.

이 믿음은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엘리자베스 2세 역시 동종요법을 신뢰했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왕은 해외 순방 때 작은 가죽 케이스를 항상 휴대했다고 전해진다. 그 안에는 감기, 소화불량, 불안, 수면 문제 등 상황별 동종요법 약이 60종 이상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역시 사실상 설탕 알약에 불과했지만, 여왕에게 그것은 단순한 약이 아니라 ‘통제 가능성’과 ‘안정감’을 상징하는 물건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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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와 피터 피셔 박사. 출처: The Royal London Homeopathic Hospital

여기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진을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인물이 왜 굳이 이런 약을 들고 다녔을까. 이 지점에서 동종요법은 의료 행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전통, 계급 문화, 그리고 개인적 신념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동종요법과 관련되 논쟁은 찰스 왕 시대에 들어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2019년 6월, 당시 왕세자 신분이었던 찰스는 동종요법 학회(Faculty of Homeopathy)의 공식 후원자가 되었다. 영국 의학계는 즉각 반발했다. 이미 2010년 영국 의회 과학기술위원회는 “동종요법은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상태였다. 주요 언론은 비판적 논조로 보도했고, 회의주의 단체들은 “차기 국왕이 반과학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찰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2022년 즉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2024년 버킹엄궁은 찰스 3세가 동종요법 학회 후원을 계속 유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과학적 검증과 왕실 전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그는 후자를 선택한 셈이다.

이 이야기를 단순히 ‘왕실이 비과학을 믿는다’는 프레임으로만 보면 중요한 맥락을 놓치게 된다. 영국 사회에서 왕실은 단순한 정치 기관이 아니라,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문화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특히 상류층 문화에서는 ‘합리성’과 ‘전통’이 동시에 작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에서도 재벌가나 정치 명문가에서 특정 종교나 건강법, 혹은 특정 브랜드나 라이프스타일을 대물림하는 현상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의학 논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계급의 문제이고, 전통의 지속성이며, 믿음이 사회 권력과 결합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동시에, 개인이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리틀 페이스』의 주인공, 앨리스 판코트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된다. 소설 속 앨리스의 직업이 바로 이 동종요법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설정은 그녀가 믿는 것, 그녀가 의지하는 것, 그리고 그녀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세계는 단순한 비합리성이 아니라, 역사와 계급, 그리고 개인적 불안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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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종요법 학회 홈페이지 캡처. 찰스 3세가 후원자라는 문장을 메인 페이지에 강조하고 있다. 

 

물의 기억, 동종요법이란 무엇인가

 

한국 독자들에게 ‘동종요법(homeopathy)’이라는 개념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대체의학으로 분류되며 사실상 의료 체계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지금도 일정한 사회적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역사적으로 상류층 문화, 자연주의 건강관, 개인적 신념과 결합하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동종요법의 출발점은 18세기 말 독일 의사 사무엘 하네만(Samuel Hahnemann)이다. 그는 당시 의학이 지나치게 공격적 치료에 의존한다고 비판했다. 사혈이나 독성 물질 투여 같은 방식이 대표적이었다. 그는 보다 ‘부드러운 치료’를 찾고자 했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동종요법이다.

이 이론은 크게 두 가지 원리에 기반한다.

첫째는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치료한다(Like cures like)”는 개념이다. 어떤 물질이 건강한 사람에게 특정 증상을 유발한다면, 그 물질을 극도로 희석해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에게 투여하면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희석(dilution)과 ‘역동화(potentization)’라는 개념이다. 물질을 물이나 알코올에 반복적으로 희석하고, 매 단계마다 강하게 흔들면 약효가 오히려 강화된다는 논리다. 일반적인 약리학에서는 농도가 높을수록 효과가 강해진다고 보지만, 동종요법은 정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문제는 희석의 정도다. 동종요법 약은 보통 ‘30C’나 ‘200C’ 같은 방식으로 표시된다. 예를 들어 30C는 100배 희석을 30번 반복한 것을 의미한다. 수학적으로는 100의 30제곱 배 희석이며, 10의 60제곱 배 희석과 같은 수준이다.

이 정도 희석이 얼마나 극단적인지 이해하려면 우주 규모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관측 가능한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총 개수는 대략 10의 80제곱 개로 추정된다. 30C 희석 용액에는 원래 물질의 분자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상 증류수에 가깝거나, 약국에서 판매되는 경우에는 설탕 알약 형태로 제공된다.

그렇다면 동종요법 지지자들은 이를 어떻게 설명할까. 그들은 물이 원래 물질의 ‘정수(essence)’를 기억한다고 말한다. 물질은 사라졌지만 그 ‘에너지’는 남아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연구는 현재까지 없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기존 지식 체계 역시 이러한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말한다. 과학이 아직 설명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이 지점에서 동종요법은 단순한 의학 이론을 넘어선다. 그것은 믿음, 전통, 그리고 인간이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자연주의적 건강관, 귀족 문화, 개인적 경험 중심의 의료 선택이 오랜 시간 축적되면서 동종요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이 현상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한국 의료 시스템은 비교적 빠르게 과학 중심 의료 체계로 전환되었고, 국가 단위 건강보험 체계도 이를 뒷받침해왔다. 따라서 동종요법은 단순히 ‘의학 논쟁’이라기보다, 사회와 문화가 어떻게 건강을 이해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는 편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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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에 있는 사무엘 하네만 기념비. “Similia Similibus Curentur(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으로 치료된다, 즉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치유한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음. 출처: By AgnosticPreachersKid - Own work, CC BY-SA 3.0

 

의학의 반역자, 하네만과 1796년의 혁명

 

동종요법은 1796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창시자는 자무엘 하네만(Samuel Hahnemann, 1755–1843)이라는 의사였다. 그는 당시 의학에 깊은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18세기 말 유럽 의료는 과학혁명이 진행된 이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치료 현장에서는 여전히 폭력적이고 위험한 관행이 남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사혈이었다. 환자의 피를 일정량 빼내면 병이 나아진다고 믿었다. 거머리를 붙여 피를 빨아내는 치료도 흔했다. 강력한 하제를 사용해 환자를 지속적으로 설사시키는 치료도 있었다. 심지어 수은이나 비소 같은 독성 물질이 약으로 쓰이기도 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의료라기보다 위험한 생체 실험에 가까웠다. 하네만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환자들이 병 때문에 죽는 것인가, 아니면 치료 때문에 죽는 것인가.

결국 그는 임상 의료를 중단한다. 대신 번역가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는 단순한 의사가 아니라 뛰어난 언어학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아랍어, 히브리어까지 읽고 번역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의학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이 과정에서 당시 의학 이론을 누구보다 다양하고 깊이 접하게 된다.

1790년, 그는 스코틀랜드 의사 윌리엄 컬런(William Cullen)의 『약물학(Materia Medica)』을 번역하고 있었다. 컬런은 말라리아 치료에 사용되던 키니네가 포함된 시나 나무 껍질이 위장을 강화하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네만은 이 설명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직접 실험을 한다. 건강한 상태에서 시나 나무 껍질 가루를 며칠 동안 복용했다. 이후 그는 말라리아와 유사한 증상을 경험했다고 기록한다. 발열, 오한, 관절통 같은 증상이었다.

이 경험은 그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 특정 질병의 증상을 유발하는 물질이, 오히려 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이를 라틴어로 정리했다. “Similia similibus curentur.”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치료한다는 의미다.

이후 그는 다양한 물질로 실험을 반복했다. 비소, 수은, 각종 식물 성분 등을 건강한 사람에게 투여하고 나타나는 증상을 기록했다. 이 과정을 ‘프루빙(proving)’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임상시험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지만, 당시 기준에서는 비교적 체계적인 관찰 시도였다.

그러나 곧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병을 유발하는 물질을 환자에게 투여하면 오히려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하네만은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물질의 양을 극도로 줄이면 부작용 없이 치료 효과만 남길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물질을 물에 희석하기 시작했다. 한 번, 또 한 번, 반복해서 희석했다. 그리고 희석 단계마다 용액을 강하게 흔들었다. 그는 이 과정이 약효를 ‘역동화(potentise)’한다고 믿었다.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거의 순수한 물이었다. 그러나 하네만은 물질 자체는 사라졌지만 그 ‘영적 힘’은 남아 있다고 확신했고, 이 믿음을 평생 유지했다.

그는 1843년 파리에서 사망할 때까지 그는 동종요법 치료를 계속했고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그의 환자들 중에는 귀족과 상류층도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치료가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당시 정통 의학은 여전히 위험했다. 설탕 알약은 수은보다 안전했다. 물은 사혈보다 덜 위험했다. 여기에 더해, 하네만은 환자를 매우 오래 진료했다. 최소 한 시간 이상 상담하며 환자의 삶 전체를 들여다보았다. 식습관, 수면 패턴, 감정 상태, 가족 관계까지 세밀하게 질문했다. 오늘날로 보면 전인적 접근에 가까운 방식이었다.

이 점은 한국 독자에게도 중요한 맥락이다. 당시 환자들은 단순히 약을 처방받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의사’를 만난 셈이었다. 현대 심리치료나 상담 치료가 왜 효과를 가지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치료 효과가 반드시 약 성분에서만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따지고보면 동종요법이 순전히 잘못된 과학 이론에서 시작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위험한 의료 환경에 대한 반발, 환자를 인간으로 대하려는 시도, 그리고 인간이 치료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런면에서 동종요법은 과학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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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베이데만(Alexander Beydeman)이 1857년에 그린 작품 「동종요법이 정통 의학의 공포를 바라보다」로, 동종요법의 역사적 인물들과 의인화된 존재들이 19세기 의학의 잔혹한 치료 관행을 지켜보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By Alexander Beydeman - Alexander Beydeman, Public Domain

 

왕실이 선택한 물, 1830년대부터 2024년까지

 

동종요법이 영국 왕실과 인연을 맺은 것은 1830년대였다. 그 연결의 중심에는 프레드릭 퀸 박사(Frederick Quin, 1799–1878)가 있었다. 그는 독일에서 동종요법을 배워 런던으로 돌아온 뒤, 학문적 논쟁보다 훨씬 더 결정적인 일을 해냈다. 상류층 사회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의료 선택은 단순한 건강 문제를 넘어 사회적 신뢰와 계급 문화의 일부였다. 누가 어떤 의사를 선택하는지는 개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세계를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했다. 퀸은 논문이나 학술적 논쟁보다 사교계와 귀족 네트워크를 통해 동종요법을 확산시켰고, 이는 의학적 설득보다 훨씬 빠르게 효과를 발휘했다.

윌리엄 4세(재위 1830–1837)의 왕비 아델라이드가 궁정 의사들이 치료하지 못한 질환을 앓고 있었고, 퀸이 동종요법 치료를 시행한 뒤 상태가 호전됐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상황은 결정적으로 바뀌었다. 이 사례는 과학적 증거라기보다 사회적 신호로 작용했다. 귀족들이 퀸을 찾기 시작했고, 동종요법은 점차 상류층이 선택하는 의료 옵션으로 자리 잡았다.

1849년 퀸은 런던 중심부 퀸즈 스퀘어에 런던 왕립 동종요법 병원을 설립했다. 이는 상징적 의미가 큰 사건이었다. 동종요법이 개인적 신념이나 실험적 치료 단계를 넘어 제도화된 의료 공간으로 진입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건물과 병원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적 정당성을 강화했다.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 역시 동종요법을 신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아홉 자녀 중 일부가 동종요법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후 왕실 내부에서 동종요법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의학적 선택이라기보다 하나의 생활 방식처럼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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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런던 동종요법 병원 전경. 출처: Peter Morrell

에드워드 7세와 조지 5세 역시 동종요법을 이용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특히 조지 5세는 심한 뱃멀미로 고생했는데, 동종요법 약 타바쿰(Tabacum)이 도움이 됐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는 요트를 사랑했지만 항해 중 컨디션이 자주 무너졌고, 타바쿰 복용 이후 훨씬 안정적으로 항해할 수 있었다고 주변에 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실제 효과 여부와 별개로, 중요한 것은 왕이 그것을 신뢰했다는 사실이었다.

조지 6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동종요법은 왕실 의료 체계 안에서 보다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의 동종요법 주치의는 존 웨어 경(Sir John Weir)이었고, 그는 네 명의 군주를 연속으로 섬긴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조지 5세에서 시작해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 그리고 엘리자베스 2세까지 이어지는 왕실 의료 네트워크 속에서 동종요법은 조용히 지속됐다.

1952년 조지 6세의 장례식에서 웨어 경은 왕실 의료진의 일원으로 행렬에 참여했다. 이 장면은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근대 의학이 의료 현장을 지배하던 시대였음에도, 왕실 의료 체계 안에는 여전히 동종요법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 전통을 비교적 조용한 방식으로 이어갔다. 공개적으로 동종요법을 홍보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신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순방 시 동종요법 약 키트를 소지했다는 증언이 있으며, 왕실 코기들 역시 동종요법 치료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왕의 개인 동종요법 주치의였던 피터 피셔 박사는 2018년 자전거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왕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동종요법을 현대 의학과 공존 가능한 체계로 설명하려 노력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이 전통은 찰스에게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찰스 3세는 왕실 인물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동종요법을 지지해온 인물로 평가된다. 1993년 그는 통합 건강 재단을 설립하며 동종요법, 침술, 한약 등 다양한 전통 치료를 영국 국민의료서비스 체계 안에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한 건강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 시스템과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큰 논란을 불러왔다.

2006년 그는 당시 총리 토니 블레어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NHS가 동종요법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검은 거미 메모’로 불린 이 문서는 왕세자가 공공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논쟁까지 불러왔다.

2019년 6월 그는 동종요법 학회의 공식 후원자가 된다. 당시 그는 이미 고령이었고, 가까운 미래에 왕위에 오를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과학계와 의료계의 강한 비판을 감수했다. 일부는 이를 왕실 전통의 연장선으로 해석했고, 다른 일부는 찰스 개인의 신념에서 비롯된 선택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그는 오랫동안 자연주의적 건강관과 환경 철학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으며, 동종요법 역시 그 세계관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2022년 9월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하고 찰스가 왕이 되었을 때, 영국 사회에서는 하나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왕이 된 이후에도 그는 같은 입장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왕실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적 책임을 고려해 거리를 둘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2024년 5월 버킹엄궁은 찰스 3세가 동종요법 학회 후원을 계속 유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결정은 단순한 의료 선택을 넘어서는 상징성을 가진다.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도 과학적 합리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화적 전통과 개인적 신념이 여전히 영향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 독자의 시각에서 보면, 이 현상은 과학과 비과학의 단순한 대립 구도로만 이해하기보다는 전통 권위와 현대 합리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사회 구조의 사례로 읽는 편이 더 가깝다. 실제로 많은 사회에서 의료 선택은 과학적 정보뿐 아니라 가족 전통, 사회적 신뢰, 개인 경험에 의해 함께 형성된다.

그런 점에서 2024년에도 영국의 군주가 동종요법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의료 논쟁을 넘어선다.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도 믿음과 전통, 그리고 권위가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남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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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3세가 동종요법 학회의 공식 후원자라는 사실을 홍보하는 포스터

 

과학의 반격, 2010년부터 2018년까지의 전환

 

2010년 2월 22일, 영국 하원 과학기술위원회는 짧지만 강력한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동종요법에 대한 증거 점검(Evidence Check on Homeopathy)」이었다. 이 보고서는 단순한 정책 문서를 넘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논쟁에 공식적인 과학적 선을 긋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결론은 명확했다. 동종요법은 플라시보 효과 이상의 치료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위원회는 단일 연구가 아니라, 의학 연구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다고 평가되는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 체계적 문헌고찰, 메타분석까지 포함됐다. 개별 연구에서는 다양한 결과가 있었지만, 전체 데이터를 종합하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했다. 동종요법 약과 설탕 알약 사이에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치료 효과 차이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이 결론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았다. 동종요법 치료를 받은 뒤 상태가 좋아졌다고 느끼는 환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변화는 약의 화학적 작용이 아니라 플라시보 효과로 설명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즉 치료 경험 자체는 실제였지만, 약물 효과와는 다른 메커니즘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었다.

위원회는 NHS에 정책 권고도 함께 제시했다. 동종요법 처방을 중단하고, 과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치료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공공 의료 시스템에서 제한된 예산을 사용하는 만큼, 치료 효과가 검증된 의료에 우선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실제 변화는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히 의료 문제만이 아니었다. 동종요법은 이미 NHS 내부에 역사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런던, 글래스고, 리버풀, 브리스톨, 턴브리지 웰스 등 여러 지역에서 동종요법 병원과 클리닉이 운영되고 있었고, 수천 명의 환자들이 NHS 지원을 통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왕실의 오랜 지지도 상징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환점은 2017년에 찾아왔다. NHS 잉글랜드는 동종요법을 포함한 18개 치료를 ‘저임상 우선순위 치료(low clinical priority treatments)’로 분류하고 처방 중단 방침을 발표했다. 공식적인 근거는 두 가지였다. 명확하고 강력한 임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제한된 의료 재정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동종요법 지지 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영국 동종요법 협회는 NHS 결정을 무효화하기 위해 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단순한 의료 분쟁을 넘어, 과학적 근거와 환자 선택권 사이의 충돌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띠었다. 그러나 2018년 6월, 법원은 NHS의 정책 결정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NHS 최고 책임자였던 사이먼 스티븐스는 성명을 통해 이 소송이 비용 부담이 크고 근거가 부족한 주장에 기반했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NHS는 효과가 입증된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판단이 아니라, 공공 의료 시스템이 어떤 원칙 위에서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선언에 가까웠다.

2018년 말, 브리스톨의 마지막 NHS 동종요법 클리닉이 문을 닫았다. 해당 클리닉 환자는 41명이었고, 연간 운영 비용은 약 10만 9천 파운드 수준이었다. 환자 1인당 비용으로 환산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NHS 입장에서는 비용 대비 효과를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상징적인 변화는 런던에서도 나타났다. 런던 왕립 동종요법 병원은 2010년 이미 이름을 ‘런던 왕립 통합 의학 병원’으로 바꾸었다. 기관 명칭에서 ‘동종요법’이라는 단어를 제거한 것이다. 그리고 2018년, NHS 지원 동종요법 서비스는 완전히 중단됐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영국 공공 의료 시스템 안에서 동종요법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평가된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국가 의료 체계의 중심에서 밀려난 것은 분명했다.

결국 2010년부터 2018년까지의 변화는 단순한 의료 정책 조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공 의료 시스템이 어떤 기준으로 치료를 인정할 것인지, 그리고 과학적 근거가 사회적 전통보다 어느 정도까지 우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었다. 그 시험의 결과는 명확했다. 최소한 NHS 안에서는, 과학적 검증이 최종 기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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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브리스틀 동종요법 병원이 자리했던 햄프턴 하우스. 출처: Rob Brewer from Bristol, England - Homeopathic, CC BY-SA 2.0

 

계급의 지도, 웨이트로즈와 테스코 사이

 

그러나 동종요법이 영국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형태로 더 견고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그 무대가 공공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NHS라는 국가 의료 체계 안에서는 주변부로 밀려났지만, 개인 소비와 라이프스타일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영국의 슈퍼마켓 문화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독자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영국에서 슈퍼마켓은 단순히 식료품을 사는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일종의 문화적 지도처럼 작동한다.

테스코(TESCO)는 가장 대중적인 슈퍼마켓이다. 가격대가 비교적 합리적이고, 전국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으며, 거의 모든 계층이 이용한다. 아스다(ASDA)는 그보다 더 저렴한 가격대를 지향하며, 생활비를 아껴야 하는 가구에서 많이 이용한다.

그리고 웨이트로즈(Waitrose)가 있다. 웨이트로즈는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품질과 윤리적 소비 이미지를 강조한다. 유기농 채소, 자유방목 육류, 장인이 만든 치즈, 공정무역 커피 같은 제품들이 주요 판매 포인트다. 그리고 이 매장 안에서는 동종요법 제품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웨이트로즈 매장에는 동종요법 제품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Nelsons나 Ainsworth’s 같은 브랜드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감기, 소화불량, 불안, 수면 관련 제품들이 소형 병 형태로 판매된다. 가격은 대체로 5에서 10파운드 수준이다. 반면 테스코나 아스다에서는 이런 제품을 찾기 어렵거나 아예 취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차이는 단순한 유통 전략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동종요법은 소비 패턴을 통해 계층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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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상에 떠도는 영국 수퍼마켓 계급도. 위로 갈수록 더 부유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브랜드라는 이야기. 

 

영국 최대 약국 체인인 Boots에서도 동종요법 제품을 판매한다. 다만 일반 의약품 옆이 아니라 보완 대체요법 섹션에 조용히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약사에게 특정 증상을 상담하면 대개는 일반 의약품을 먼저 권한다. 동종요법은 선택 가능한 옵션 중 하나로 남아 있지만, 의료적 중심은 아니다.

반면 건강식품 전문 체인인 Holland & Barrett 같은 곳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동종요법 제품 전용 진열대가 마련되어 있고, 직원들도 관련 제품 교육을 받는다. 고객이 감기 증상을 이야기하면 특정 동종요법 제품을 추천하는 상황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런던 메이페어나 코츠월드 같은 지역으로 시선을 옮기면 또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메이페어의 일부 고급 클리닉에서는 여전히 동종요법 상담을 제공한다. 상담 1회 비용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코츠월드의 웰빙 리트릿에서는 동종요법이 스파 프로그램이나 웰니스 패키지 안에 포함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동종요법은 치료라기보다 라이프스타일 경험에 가까워진다.

통계적으로 보면 동종요법 사용자에게서 일정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중산층 이상, 대학 교육 이상 학력, 여성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자연주의적 소비와 유기농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경향이 있다. 요가, 명상, 채식 같은 라이프스타일과 겹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특징은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 문화적 선택의 결과다. 영국에서는 의료 선택 역시 소비 문화의 일부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한방, 건강기능식품, 특정 자연치유 프로그램 등이 사회 계층이나 라이프스타일과 연결되는 현상을 떠올리면 이해가 어렵지 않다.

반면 저소득층에서는 동종요법 사용 비율이 낮다. 비용 부담이 있고, NHS에서 무료로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 비용으로 구매해야 한다. 생활비 압박이 큰 상황에서는 효과가 불확실한 치료에 비용을 쓰기 어렵다. 또한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유통 공간에서 접할 기회도 적다.

2017년 NHS가 동종요법 지원을 중단했을 때, 이 차이는 더욱 분명해졌다. 중산층 환자들은 사설 클리닉으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저소득층 환자들은 치료 선택지를 잃었다.

당시 한 저소득층 여성 환자는 BBC 인터뷰에서, 동종요법이 자신에게 도움이 됐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다.

이 지점에서 논쟁은 단순히 과학과 비과학의 대립을 넘어선다. 의료 선택의 자유는 종종 경제적 자원과 연결된다. 일부 계층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선택할 자유를 가진다. 반면 다른 계층은 비용과 제도 구조 때문에 검증된 치료만을 선택할 수 있다.

영국 사회에서 동종요법은 이제 의학 논쟁의 대상이기보다는 문화적 신호에 가깝다. 누가 그것을 사용하는지, 어디에서 그것이 판매되는지, 어떤 공간에서 그것이 소비되는지를 보면 사회 구조의 단면이 드러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동종요법은 단순히 치료법이 아니라 사회적 상징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은 자연과 전통을 중시하는 삶의 방식이며,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선택지다.

결국 이 문제는 한 가지 질문으로 돌아온다. 현대 사회에서 선택의 자유는 어디까지 개인의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계급의 문제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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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민 보건 서비스(NHS) 홈페이지의 동종요법 설명 페이지. "동종요법은 위약(가짜 치료)이랑 크게 다를 것 없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앨리스의 선택, 믿음과 증거 사이에서

 

이제 소설 『리틀 페이스』로 돌아가 보자. 소설 초반, 독자는 비교적 담담한 문장 하나를 마주한다. 주인공 앨리스 판코트의 직업이 동종요법사라는 이야기. 이 설정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작가 소피 해나는 인물의 직업을 통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을 조용히 심어 놓는다.

앨리스는 본질적으로 증거보다 직관을 신뢰하는 사람이다. 동종요법사라는 직업 자체가 그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녀는 매일 과학이 측정하지 못하는 영역과 마주한다. 환자는 진료실에 들어와 그녀에게 자신의 증상을 털어 놓는다. 이유 없이 피곤하고, 이유 없이 우울하고,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낀다고. 검사 결과는 정상이다. 혈액검사도, 영상 검사도 이상이 없다. 그러나 환자는 분명히 고통을 느낀다.

앨리스는 그 감각을 무시하지 않는다. 과학이 포착하지 못한 것도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녀는 긴 시간 환자와 상담을 진행한다. 환자의 식습관과 수면 패턴, 감정 상태와 인간관계,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세심하게 듣는다. 그리고 상담이 끝나면 작은 병 하나를 건넨다. 설탕 알약이 들어 있는 병이다. 환자는 그것을 복용하고, 스스로 나아졌다고 느낀다.

여기서 독자는 불편한 질문과 마주한다. 이것은 사기인가, 아니면 치유인가. 플라시보인가, 아니면 다른 형태의 효과인가. 과학은 분명한 입장을 가진다. 약리학적 효과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환자의 경험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삶이 나아졌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치료는 단순히 생화학적 반응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의 방향이 뒤집힌다. 앨리스 자신이 의심받는 위치에 놓인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요람 속 아기를 보고 확신한다. 이 아이는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문제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DNA 검사는 시도조차 되지 못했다. 목격자도 없다. 물리적 흔적도 없다. 객관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자료는 아무것도 없다.

그녀가 가진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어머니로서의 확신이다.

남편 데이비드는 그녀가 착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시어머니 비비안은 산후우울증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경찰은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모든 제도적 언어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객관적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앨리스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녀는 평생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다. 측정되지 않는 것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감각을 무시하지 않는 태도로 살아왔다. 동종요법사로서 그녀는 항상 증거의 바깥에 존재하는 경험을 다뤄 왔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불편한 선택 앞에 놓인다. 우리는 앨리스를 믿어야 하는가.

소피 해나는 매우 계산된 선택을 한다. 그녀는 앨리스를 동종요법사로 설정함으로써, 독자의 판단 기준 자체를 흔든다. 만약 앨리스가 화학자였다면, 혹은 물리학자였다면, 독자는 그녀의 말을 더 신뢰했을까. 과학적 권위를 가진 인물이었다면 우리는 그녀의 직관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을까.

하지만 앨리스는 동종요법사다. 과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치료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내 아이가 바뀌었다”고 말할 때, 그것 역시 착각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일까.

이 지점이 바로 소설의 가장 교묘한 장치다. 독자는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그녀의 직업 때문에 그녀를 의심한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그 직업 때문에 그녀가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는 신호를 더 민감하게 감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떠오른다.

이 질문은 소설 바깥의 세계와도 연결된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적 검증이 끝난 이후에도 동종요법을 신뢰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비합리적 선택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개인적 경험을 기반으로 한 정당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 이야기의 핵심은 단순히 누가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언제, 무엇을 근거로 믿음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누가 더 비이성적인가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증거가 없는 것을 믿는 사람일 수도 있고, 설명되지 않는 경험을 완전히 부정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소설은 독자에게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훨씬 더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정말로, 오직 증거만으로 세상을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 역시,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믿음 위에 서 있는가.


생각해볼 질문들

  • 만약 당신이 중병에 걸렸고, 다른 치료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동종요법을 시도해 볼 의향이 있는가?
  • 영국 왕실이 동종요법을 지지하는 것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왕실은 과학적 증거에 반하는 것을 옹호할 권리가 있을까?
  • 앨리스가 동종요법사라는 사실이 그녀에 대한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가? 만약 그녀가 과학자였다면 더 믿을 수 있었을까?

읽으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

  • Ludovico Einaudi - “Experience”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점점 커지는 의문.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

 

다음 주 예고

다음 주에는 영국 상류층 육아 문화의 어두운 측면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영국 상류층의 육아 방식은 외부에서 보면 상당히 독특하게 느껴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가정에서 부모가 직접 양육의 대부분을 담당하지 않았다. 대신 유모가 일상적인 돌봄을 맡았고,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집을 떠나 기숙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로로 여겨졌다.

찰스 3세 역시 어린 시절 비교적 이른 나이에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이후 스코틀랜드의 고든스툰에서 교육을 받았고, 그는 훗날 그 경험이 매우 힘들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 역시 어린 시절부터 기숙학교 생활을 경험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은 영국 상류층 교육 문화에서 오랫동안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져 왔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전통이 유지되어 왔을까. 단순히 교육의 문제만은 아니다. 영국 상류층 문화에서는 독립심, 감정 절제, 공동체 규율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겨왔다. 기숙학교는 학업 기관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훈련 공간이었다. 개인보다 집단을 먼저 생각하고,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장소였다.

이 문화는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남길까. 연구자들은 장점과 부담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본다. 강한 자립성과 사회 적응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정서적 거리감이나 애착 형성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지적하는 연구도 있다.

이 지점에서 『리틀 페이스』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주인공 앨리스와 딸 플로렌스의 관계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모성과 양육을 어떻게 정의해왔는지와도 연결된다. 누가 아이를 키우는가, 그리고 ‘좋은 어머니’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시대와 계급에 따라 계속 달라져 왔다.

다음 글에서는 감정적 거리를 미덕으로 여겨온 사회를 더 깊이 들여다볼 예정이다. 자녀를 사랑하지만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는 부모들, 충분한 돌봄을 받지만 동시에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아이들, 그리고 모성 본능과 사회적 기대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게 될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어머니가 아이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는 어머니가 직접 아이를 키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다음 글에서 차분히 이어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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