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엔 없는 이야기들

영국 괴식(怪食) 항마력 테스트: 4점 이하면 런던행 티켓 환불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음식들로 읽는 영국의 역사와 문화

2026.01.17 | 조회 222 |
0
|
from.
강태준
THE PUNT의 프로필 이미지

THE PUNT

영국 인문교양 뉴스레터 | 매주 여러분의 시야를 영국이 전세계에 미친 광활한 영향력만큼 넓고 깊게 확장해드립니다.

핀란드 다음으로 형편없는 음식을 먹는 나라가 영국입니다. 영국인들은 농업에 아무 기여도 하지 못했어요. 그들이 한 유일한 기여라곤 광우병 정도죠.”

2005,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독일과 러시아 정상들과의 만찬에서 한 말이다. 물론 이는 곧 외교 스캔들로 번졌다. 하지만 웃긴 건, 영국인들조차 그다지 똑부러지게 반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국 음식이 맛없다는 것은 유럽 전역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프랑스인들은 영국에는 세 개의 소스만 있다. 뜨거운 물, 차가운 물, 그리고 재라고 조롱한다. 이탈리아인들은 영국의 파스타를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심지어 햄버거의 나라, 패스트푸드의 성지인 미국 조차 영국 음식을 놀린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블랙핑크 제니의 'What is British food?' 영상

영국 음식의 비극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청교도적 금욕주의가 음식을 즐기는 것을 죄악시했고, 산업혁명은 전통 요리 문화를 파괴했으며, 두 차례 세계대전의 배급제(1954년까지!)는 영국인들에게 보존효율만을 가르쳤다. 프랑스가 요리를 예술로 승화시킬 때, 영국은 음식을 연료로 취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영제국은 전 세계의 향신료를 약탈했지만, 정작 자국 음식은 여전히 싱겁고 단조로웠다. 인도의 커리, 카리브해의 설탕, 중국의 차를 가져왔지만, 그것들을 요리에 통합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그 결과? 외국인들이 보기에 도무지 이해 안 되는 다양한 괴식들이 영국 각지에서 탄생하기에 이른다. 영국의 괴식 다섯 가지를 소개해보려한다. (물론 이 음식들이 태어나게 된 문화적, 역사적 배경도 함께. 하지만 역시 메인은 여러분의 비위와 용기를 테스트하는 것이 목적이다.) 난이도는 낮은 것부터 높은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각 음식을 보고, 솔직하게 자신에게 물어보라. “, 이거 먹을 수 있을까?”

점수 기준:

  • 5점: 맛있어 보인다
  • 4: 먹을 수는 있을 것 같다
  • 3: 어떤 맛일지 궁금하긴 하다
  • 2: 잘 모르겠다
  • 1: 못 먹을 것 같다
  • 0: 보는 것만으로도 역겹다

종이와 펜을 준비하고, 각 음식마다 당신의 점수를 기록해보자. 마지막에 총점을 합산하면, 당신이 명예 영국인인지, 아니면 영국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할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다.

준비되었는가?

그럼 시작하자.


LEVEL 1 ★ 빈즈 온 토스트 (Beans on Toast)

난이도: 입문

첨부 이미지

필자가 만든 빈즈 온 토스트. 사실 필자는 이 음식의 팬이다. 

구운 식빵 위에 버터와 토마토 소스에 졸인 하얀 강낭콩을 올린 것. 그게 전부다. 영국인들은 이것을 아침, 점심, 저녁, 야식으로 먹는다. 슈퍼마켓에서 하인즈(Heinz) 베이크드빈 캔을 사서 데우기만 하면 되니, 요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것은 빵 위에 올린 콩조림이다. 하지만 영국인들에게 이 음식은 소울푸드나 다름 없다. 추운 겨울 아침, 숙취로 머리가 지끈거릴 때, 월급날 전 통장잔고가 바닥일 때. 빈즈 온 토스트는 언제나 영국인들의 곁에 있다.

이 음식의 기원은 1886, 미국의 하인즈가 베이크드빈 통조림을 개발하면서 시작된다. 1901년 영국 땅을 밟은 이 캔은, 마침 산업혁명의 한복판에서 허덕이던 영국 노동자들에게 구원과도 같았다. 공장에서 하루 열두 시간을 일하고 돌아온 사람에게 요리란 사치였다. 캔을 열고 데우기만 하면 되는 베이크드빈은 혁명이었다. 저렴했고, 몇 달이고 보관할 수 있었으며, 단백질이 풍부했다.

그리고 전쟁이 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영국은 거의 15년 동안 배급제 속에서 살았다. 고기와 신선한 채소는 기억 속으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때 베이크드빈은 국가적 생존 수단이 되었다. 광고 포스터에는 베이크드빈으로 영국을 지키자!”는 구호가 새겨졌고, 식품회사들은 애국심에 호소하는 광고를 쏟아냈다. 빈즈 온 토스트는 더 이상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저항이었고, 생존이었으며, 끝내 이겨내리라는 의지였다.

전쟁이 끝나고 배급제가 완전히 해제되었을 무렵, 이미 베이크드빈은 한 세대와 함께 시간을 보낸 뒤였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먹였고, 그 아이는 자라서 자신의 아이에게 먹이며 식습관 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중산층은 베이크드빈을 노동자의 음식이라 부르며 코웃음 쳤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노동자 계급은 이것을 자부심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화려한 것 없이도 살아남았다는 선언. 1997, 토니 블레어가 선거 캠페인 중 저는 빈즈 온 토스트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음식 취향에 대한 선언이 아니었다. 그는 서민의 편에 서 있다는 정치적 제스처를 보인 것이다.

21세기의 영국에서도 이 음식은 살아 숨 쉰다. 가난한 학생들의 주식이고, 혼자 사는 사람들의 저녁이며, 늦은 밤 술 마신 후의 구원이다. 영국인들은 일 년에 평균 수억 캔 이상의 베이크드빈을 소비한다. 이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오히려 한 국가의 역사의 한 장면이다그 역사가 세대를 거쳐 전해지면서, 이제는 영국의 문화가 되었다

빈즈 온 토스트를 처음 먹어 보는 미국인들의 반응. (한국어 자막 有)

이 음식에 대한 당신의 점수는?: ___점


LEVEL 2 ★★ 라버브레드 (Laverbread)

난이도: 초급

첨부 이미지

출처: No machine-readable author provided. Diádoco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Public Domain

웨일스의 전통 음식. 이름에 브레드가 들어가지만, 빵은 아니다. (laver seaweed)을 여러 시간 동안 삶아서 으깬, 검은색에 가까운 녹색 페이스트다.

한국인이라면 여기서 반가워할 수도 있다. “, 뭐야. 김이라면 우리도 먹잖아!” 그러나 곧 깨닫는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그 바삭하고 고소한 김이 아니라는 것을. 라버브레드의 질감은 미끈하고 걸쭉하며, 비릿하고, 짭짤하고, 약간의 요오드 맛까지 느껴진다. 마치 바닷물을 농축한 것 같은.

웨일스는 켈트의 땅이다. 산이 많고, 땅은 척박하며, 바다만이 풍요로웠다. 로마인들이 브리타니아를 정복했을 때도, 앵글로색슨족이 밀려왔을 때도, 웨일스 사람들은 산과 바다 사이에서 버텼다.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양과 오트밀, 그리고 바다가 주는 것들이었다. 라버브레드는 그 생존의 역사 속에서 탄생했다.

새벽 밀물 때, 여인들은 바위로 나갔다. 파도에 젖은 바위에 붙은 김을 긁어내는 일은 위험했고, 노동 집약적이었다. 손은 거칠어졌고, 옷은 바닷물에 젖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김은 공짜였고, 바다는 매일 새로운 수확을 약속했다. 채취한 김을 집으로 가져와 몇 시간씩 (때로는 하루 종일) 삶았다. 혹시 모를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형태로 변형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웨일스를 덮쳤다. 탄광이 생겼고, 광부들은 라버브레드를 아침으로 먹었다. 요오드와 철분이 풍부한 이 음식이 그들에게 하루를 버틸 힘을 주었다. 아내들은 남편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전, 라버브레드를 바른 빵과 베이컨을 싸주었다.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었고, “살아서 돌아오라는 기도였다.

웨일스의 캐비아라는 별명은 20세기에 붙었다. 영양가가 높고,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하지만 웨일스 사람들은 그런 과학적 사실 때문에 먹은 게 아니었다.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음식이기 때문에, 바다가 주었기 때문에,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가르쳐준 것이기 때문에 먹었다.

21세기의 웨일스에서도 라버브레드는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스완지(Swansea)의 재래시장에서 여전히 팔리고, 일요일 아침 가족들은 여전히 이를 베이컨과 함께 먹는다. 젊은 세대는 떠나고, 옛 방식은 사라지고 있지만, 라버브레드만은 남았다. 그것은 웨일스의 정체성이고, 생존의 기억이며,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다는 선언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익숙한 재료지만, 전혀 다른 방식의 조리법이라는 점에서 도전적이다. 우리의 바삭한 김구이와 참기름의 조합과는 정반대의 세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바다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가난 속에서도 자부심을 잃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 음식에 대한 당신의 점수는?: ___점


LEVEL 3 ★★★ 블랙 푸딩 (Black Pudding)

난이도: 중급

첨부 이미지

블랙 푸딩. 출처: Alexbrn - Own work, CC BY-SA 3.0

영국식 아침 식사, 일명 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의 단골 메뉴. 검은색, 아니 석탄처럼 칠흑같은 색의 이 소시지는 사실 돼지의 피를 오트밀, 돼지 기름, 양파와 섞어 만든 것이다.

한국에도 순대가 있으니 괜찮지 않겠냐고? 천만의 말씀. 순대는 적어도 당면과 채소로 피의 존재감을 희석시킨다. 반면 블랙 푸딩은 피가 주인공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철분의 맛이 입안을 지배한다. 마치 혀를 베었을 때 느껴지는 그 금속성의 맛을 음식으로 구현한 것 같다.

이 음식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도 피로 만든 소시지가 등장한다. 인간이 동물을 도축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피를 버리지 않고 먹는 방법을 고안했다는 증거다. 피는 빠르게 상했고, 보존하기 어려웠으며, 그래서 즉시 소비해야 했다. 곡물과 섞고, 기름을 더하고, 향신료로 냄새를 가리고, () 속에 넣어 삶는다. 그렇게 블랙 푸딩이 탄생했다.

중세 영국의 가을, 돼지를 잡는 날은 마을 전체의 행사였다. 한 마리의 돼지를 잡으면 그것은 온전히 한 가족의 겨울 식량이 되어야 했다. 고기는 염장하고, 기름은 요리에 쓰고, 뼈는 국물을 내고, 내장은 빈대떡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피. 돼지를 도축하는 순간 쏟아지는 뜨거운 피를 커다란 대야에 받아, 굳기 전에 오트밀과 섞었다. 양파를 썰고, 기름을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돼지의 장에 채워 넣었다. 그것을 큰 가마솥에서 삶아내면, 블랙 푸딩이 완성되었다.

돼지의 코빼기부터 꼬리까지라는 영국 속담은 여기서 나왔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야 했던 가난의 지혜. 블랙 푸딩은 그 지혜의 결정체였다. 피는 가장 영양가 높은 부분이었고, 특히 철분이 풍부했다. 빈혈에 시달리는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블랙 푸딩은 약이었다.

첨부 이미지

'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에 절대 빠질 수 없는 블랙 푸딩. 출처: Jasper Garratt on Unsplash

산업혁명이 영국을 휩쓸었을 때, 블랙 푸딩은 북부 공업 도시로 따라갔다. 랭커셔(Lancashire)와 요크셔(Yorkshire)의 탄광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 블랙 푸딩을 먹었다. 구워서, 바삭한 겉면과 부드러운 속을 한입에. 그것이 그들에게 하루 열두 시간의 육체노동을 견딜 힘을 주었다. 블랙 푸딩은 노동자 계급의 음식이 되었고, 북부 지방의 정체성이 되었다.

베리(Bury)라는 작은 마을은 블랙 푸딩의 수도가 되었다. 19세기부터 이 마을의 정육점들은 저마다의 비법으로 블랙 푸딩을 만들었다. 어떤 집은 민트를 넣었고, 어떤 집은 마조람(marjoram)을 썼으며, 어떤 집은 피와 오트밀의 비율에 집착했다. 매년 베리 블랙 푸딩 페스티벌이 열렸고, 사람들은 어느 정육점의 블랙 푸딩이 최고인지 열띤 논쟁을 벌였다. 2011, 베리의 블랙 푸딩은 EU로부터 지리적 표시 보호를 받았다. 샴페인이 샹파뉴 지방에서만 생산될 수 있듯, 진정한 베리 블랙 푸딩은 베리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인정이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블랙 푸딩이 아침 식사의 필수 요소다. ‘스코티시 브렉퍼스트에는 반드시 블랙 푸딩이 들어간다. 에든버러의 민박에서, 글래스고의 카페에서, 하이랜드의 작은 식당에서. 아침 햇살 아래 접시 위에 놓인 검은 원반. 그것은 음식이자 정체성이었다.

한때 노동자의 음식이라 무시받았던 것이, 이제는 미슐랭 레스토랑의 메뉴에 올라간다. 셰프들은 블랙 푸딩을 가리비와 곁들이고, 애플 퓌레와 함께 내고, “지역 식재료의 재발견이라 부른다. 그 압도적인 철분 맛, 피의 진한 풍미, 입안을 채우는 금속성의 여운. 이는 역사의 맛이고, 생존의 맛이며,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다는 자부심의 맛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음식에 대한 당신의 점수는?: ___점


LEVEL 4 ★★★★ 스타게이지 파이 (Stargazy Pie)

난이도: 상급

첨부 이미지

스타게이지 파이. 출처: The Granary

콘월 지방의 전통 음식. 파이 크러스트에서 정어리들의 머리가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 마치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파이를 자르면, 안에는 정어리가 통째로 들어있다. 머리, 꼬리, 뼈까지. 단지 내장만 제거되었을 뿐. 생선의 기름이 파이 반죽에 스며들어 있고, 달걀과 감자, 때로는 베이컨이 함께 들어간다.

비주얼은 압도적이다. 황금빛 파이 껍질을 뚫고 나온 은빛 정어리 머리들이 사방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 마치 호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내가 이것을 먹어도 되나라는 실존적 질문이 떠오를 정도.

콘월은 영국 땅 남쪽 끝자락에 위치해있다. 대서양을 향해 뻗어 나간 반도, 가파른 절벽과 작은 어촌 마을들이 점점이 박혀있는 땅. 여기는 역사적으로 잉글랜드이면서 잉글랜드가 아니었다. 켈트의 피가 흐르고, 자신들만의 언어(콘월어)가 있었으며, 수도인 런던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접점이 없었다. 콘월 사람들에게는 바다가 사실상 세상의 전부였다.

무버레이(Mousehole)는 그런 마을 중 하나였다. 인구 몇백 명에, 좁은 골목길, 돌로 지은 작은 집들이 항구를 둘러싸고 있는 곳. 남자들은 어부였고, 여자들은 그물을 깁고 생선을 손질했으며, 아이들은 바다의 변덕을 일찍 배웠다. 마을의 생존은 정어리에 달려 있었다. 여름이면 엄청난 양의 정어리 떼가 몰려왔고, 겨울에는 사라졌다. 정어리를 잡아 염장하고, 말리고, 파이로 만들어 겨울을 버텼다.

1595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1223, 폭풍우가 왔다. 바다는 검게 부풀어 올랐고, 파도는 절벽을 때렸으며, 배는 항구에 묶여 있었다. 며칠째 아무도 바다로 나가지 못했다. 마을의 식량은 바닥났다.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창문 너머 사나운 바다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톰 바콕(Tom Bawcock)이라는 어부가 자신이 먹을 것을 구하러 바다로 나가겠노라하며 나섰다. 사람들은 그를 말렸지만 바콕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굶고 있으니 누군가는 나서야한다며 바다로 형했다.

전설은 여기서 기적으로 이어진다. 바콕은 폭풍우를 뚫고 바다로 나갔고, 그물을 던졌으며, 엄청난 양의 생선을 잡았다. 정어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선이 그물에 걸렸다고 한다. 그는 살아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항구로 달려 나갔고, 그의 배에 가득한 생선을 보고 환호했다.

마을의 빵 굽는 사람이 나섰다. 생선을 모두 파이로 만들자고 했다. 그래야 마을 전체가 먹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사람들이 믿지 않을 수도 있었다. “파이 안에 진짜 생선이 있어? 반죽만 가득한 거 아냐?”라는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생선 머리들을 파이 크러스트 밖으로 내보냈다. “보세요, 이 파이 안에는 진짜 생선이 가득 들어있어요라면서 말이다.

첨부 이미지

스타게이지 파이. 출처: Jonathunder - Own work, GFDL 1.2

정어리의 머리를 파이 바깥으로 내보내는 또 다른 실용적 이유도 있었다. 요리하는 동안 생선의 기름이 파이 안으로 흘러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콘월 사람들은 낭비를 용납하지 않았다. 생선의 기름 한 방울, 영양분 한 조각도 소중했다.

그날 밤, 마을 전체가 파이를 나눠 먹었다. 생선 머리들이 빵을 뚫고 나와 하늘을 쳐다보는 기괴한 파이. 하지만 그것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은 생존의 중요한 수단이었고, 한 어부의 용기였으며, 공동체 정신을 상징했다.

40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매년 1223일이면 무버레이에서는 톰 바콕의 이브(Tom Bawcock’s Eve)’가 열린다. 마을 사람들은 모여서 스타게이지 파이를 만들고, 옛 노래를 부른다. “A merry place you may believe, was Mousehole on Tom Bawcock’s Eve” (톰 바콕의 이브에, 무버레이는 정말 즐거운 곳이었지). 펍에서는 파이를 나눠주고, 아이들은 전설을 배우며, 노인들은 바다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아무리 감동적이라 해도... 파이에서 생선 머리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은 견딜 수 있겠는가?

이 음식에 대한 당신의 점수는?: ___점


LEVEL 5 (최종 보스) ★★★★★ 젤리드 일 (Jellied Eels)

난이도: 최상급

첨부 이미지

젤리드 일. 출처: GundeathThunder/Reddit

드디어 도착했다. 최종 보스전이다. 런던 이스트엔드를 대표하는 이 음식 앞에서, 당신의 모든 용기가, 아니, 비위가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뱀장어를 토막 내어 삶은 후, 그 국물이 식으면서 젤라틴처럼 굳어진 것을 차갑게 해 먹는 음식. 바로 젤리드 일이다.

투명하고 떨리는 젤리 속에 회색빛 뱀장어 조각들이 박혀있는 모습은,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마치 고대 생물이 호박 속에 갇혀 화석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묘한 비주얼. 젤리는 차갑고, 미끈거리며, 입안에서 흐물거린다. 그 안에서 뱀장어의 뼈가 느껴지고, 생선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맛이 어떠냐고? 뱀장어의 비린내와 식은 생선 국물의 느끼함, 그리고 젤리의 미끌거리는 식감이 입안에서 삼위일체를 이룬다. 이것은 음식이 아니라 시련이다. 용기의 테스트다. 위장의 한계를 시험하는 익스트림 스포츠다.

하지만 이 괴식에도 역사가 있다. 그것도 천 년이 넘는.

중세 시대부터 템스강은 뱀장어의 강이었다. 런던 브리지 아래로, 그리니치의 갈대밭을 지나, 템스 강어귀까지 뱀장어가 넘쳐났다. 전설에 따르면 뱀장어는 사르가소 바다에서 태어나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템스강으로 온다고 했다. 왜 오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왔고, 그래서 런던 사람들은 그것을 잡아 먹었다.

중세 런던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수도사들은 뱀장어 파이를 즐겨 먹었고, 헨리 1세는 뱀장어를 너무 많이 먹어 죽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부자들은 구워 먹고, 가난한 자들은 삶아 먹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이 런던을 덮치자 인구가 폭발했다. 템스강 동쪽인 이스트엔드는 노동자들의 구역이 되었다. 항구 노동자, 공장 노동자, 선박 수리공, 직물 노동자들이 비좁은 공간에 빽빽이 살았다. 그들은 가난했고, 배고팠지만, 고기를 살 돈은 없었다. 하지만 템스강에는 여전히 뱀장어가 넘쳐났다. 심지어 공짜였다.

거리의 포장마차들이 나타났다. 뱀장어를 삶아 파는 노점상들. 큰 냄비에 뱀장어를 넣고 물을 붓고 끓인다. 뱀장어에서 나온 젤라틴이 국물을 걸쭉하게 만든다. 식히면 젤리가 된다. 차갑게 해서 그릇에 담아 판다. 1페니면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뱀장어, 젤리, 그리고 식초를 뿌려서.

빅토리아 시대의 이스트엔드 거리를 상상해보라. 좁고 더러운 골목, 안개 낀 저녁, 가스등의 희미한 불빛. 포장마차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뱀장어 국물 냄새가 퍼진다. 공장에서 막 나온 노동자들이 줄을 선다. 손에 묻은 기름때도 씻지 못한 채. 한 그릇을 받아들고, 서서 먹는다. 뜨거운 것이든 차가운 것이든 상관없다. 배만 부르면 된다.

파이 앤 매시(Pie and Mash)’ 가게들도 생겨났다. 고기 파이, 으깬 감자, 그리고 젤리드 일을 파는 가게들. 하얀 타일 벽, 대리석 테이블, 긴 나무 벤치. 코크니(Cockney) 억양이 울려 퍼지는 곳. 노동자들의 식당이자 사랑방. 가족이 함께 와서, 아버지는 파이를, 어머니는 매시를, 아이들은 젤리드 일을 먹었다. 이스트엔드의 정체성이 그곳에서 만들어졌다.

첨부 이미지

도싯 스트리트(Dorset Street), 스피탈필즈(Spitalfields) — 1902년, 잭 런던의 저서 『심연의 사람들』(The People of the Abyss)을 위해 촬영된 사진. 출처: By Jack London - https://whitechapeljack.com/the-whitechapel-murders/mary-jane-kelly/, Public Domain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폭격이 이스트엔드를 폐허로 만들었다. 하지만 파이 앤 매시 가게들은 살아남았다. 배급제가 실시되었고, 고기는 사라졌지만, 템스강에는 여전히 뱀장어가 있었다. 젤리드 일은 배급표가 필요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더 뱀장어를 많이 먹었다. 그건 생존의 수단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템스강은 변하기 시작했다. 산업 오염으로 강은 서서히 죽어갔다. 1950년대에는 템스강을 생물학적으로 죽은 강이라 불렀다. 산소가 고갈됐고 당연히 물고기가 살 수 없게 되었다. 자연스레 뱀장어도 함께 사라졌다.

1960년대부터 정화 작업이 시작되었다. 수십 년이 걸렸다. 템스강은 다시 깨끗해졌고, 연어가 돌아왔으며, 심지어 돌고래도 목격되었다. 하지만 뱀장어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예전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기후 변화, 해류 변화, 댐 건설, 남획. 유럽 뱀장어는 멸종 위기종이 되었다.

젤리드 일을 파는 가게는 점점 줄어들었다. 1900년에는 수백 개였던 가게가, 2000년에는 수십 여개로 줄었고, 지금은 손에 꼽을 정도다. M. Manze, F. Cooke, 몇몇 전통 가게들이 여전히 영업하고 있지만, 손님의 평균 연령은 계속 올라간다. 젊은 사람들은 오지 않는다.

첨부 이미지

2005년 촬영된 M. Manze 가게 사진. 출처: By Tarquin Binary - Own work, CC BY-SA 2.5

지금의 이스트엔드는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한때 노동자들의 구역이었던 곳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고, 갤러리와 카페가 생겼으며, 집세는 치솟았다. 젊은 전문직들이 이사 왔고 그들은 젤리드 일을 먹지 않는다. 그들에게 젤리드 일 틀딱 음식일 뿐이었다.

남은 파이 앤 매시 가게들은 마치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벽의 타일은 100년 전 것이고, 테이블은 할아버지가 앉았던 그 자리 그대로이며, 주인은 3대째 같은 레시피를 지킨다. 70, 80대 노인들이 여전히 이 가게들을 찾는다. 토요일 점심, 그들은 둘러 앉아 함께 젤리드 일을 먹는다. 추억을 먹는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왔던 그 거리, 공장에서 돌아오면 어머니가 대접하던 그 맛, 가난했지만 함께였던 그 시절을.

요즘 젊은 영국인들 중 젤리드 일 먹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학교에서 이스트엔드 역사를 배우지만, 젤리드 일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할아버지 세대의 음식이고, 사라져가는 문화이며, 곧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게 될 유물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젤리드 일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진짜 런던을 찾는 사람들. 관광객이 아니라 순례자처럼. 그들은 오래된 파이 앤 매시 가게를 찾아가고, 젤리드 일을 주문하고, 한 입 먹어본다. 대부분은 얼굴을 찌푸지만 그들은 입 모아 말한다. “이제 나도 진짜 런던이 뭔지 알게 됐다!”

젤리드 일은 도전할 용기가 있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시험이다. 맛의 시험이 아니라 이해의 시험. 역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타인의 가난을 존중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낯선 것 앞에서 판단을 유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당신은 이 최종 보스를 이길 자신이 있는가?

아니, 이렇게 묻는 게 더 정확할 거다.

당신은 이 음식이 왜 존재했는지, 왜 여전히 일부 사람들에게 소중한지 이해할 준비가 되었는가?

이 음식에 대한 당신의 점수는?: ___점


총점: _____점 (최대 25점)


🏆 당신의 영국 괴식 내성 등급 🇬🇧

20-25점: 명예 영국인

축하한다! 당신은 영국 여왕... 아니, 이제는 영국 국왕이 직접 수여하는 대영제국 훈장(OBE)을 받을 자격이 있다. 당신의 위장은 강철로 만들어졌고, 당신의 미각은 국경을 초월한다. 영국인들도 먹기 꺼려하는 젤리드 일을 시도해볼 의향이 있다니, 당신은 진정한 용사다. 런던에 가면 이스트엔드의 오래된 파이 앤 매시(Pie and Mash) 가게에서 환영받을 것이다.

추천 코스: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서 해기스 먹으며 위스키 마시기, 웨일스 해안에서 라버브레드 직접 채취하기, 콘월에서 스타게이지 파이 축제 참가하기.

15-19점: 모험심 넘치는 미식가

당신의 용감함에 박수를 보낸다. 영국 음식의 어두운 면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고, 적어도 시도는 해볼 의지가 있다. 비록 젤리드 일 앞에서는 한 발 물러섰을지 몰라도, 블랙 푸딩이나 스타게이지 파이 정도는 도전해볼 수 있다. 당신은 여행의 참된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음식은 단지 영양 섭취가 아니라 문화를 이해하는 창문이라는 것을.

추천 코스: 런던의 버러 마켓(Borough Market)에서 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체험하기, 요크셔의 전통 펍에서 블랙 푸딩 시식하기.

10-14점: 평범한 관광객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당신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특이한 것에 호기심은 있지만, 굳이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빈즈 온 토스트 정도는 시도해볼 수 있지만, 생선 머리가 튀어나온 파이나 젤리 속 뱀장어는 정중히 사양한다. 이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추천 코스: 런던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로스트 비프와 요크셔 푸딩 먹기, 코츠월즈의 예쁜 티룸에서 애프터눈 티 즐기기, 에든버러의 모던 스코티시 레스토랑 방문하기.

5-9점: 피시 앤 칩스가 당신의 한계입니다

솔직함에 박수를 보낸다. 당신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고, 그것을 인정한다. 영국 음식의 극단적인 면에는 관심이 없고, 가장 안전하고 보편적인 선택지만을 원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피시 앤 칩스는 맛있고, 셰퍼드 파이는 포근하며, 로스트 디너는 훌륭하니까.

추천 코스: 영국 여행 시 체인 펍(Wetherspoons) 방문하기, 슈퍼마켓에서 샌드위치 사먹기, 인도 음식점 찾아가기.

0-4점: 영국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마세요

당신과 영국 음식 사이에는 도버 해협보다 더 깊은 골이 있다. 빈즈 온 토스트조차 선뜻 시도할 의향이 없다니, 당신은 진정으로 영국 요리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뭐 문제 없다. 모든 사람이 모든 문화를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거니까. 세상에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일본, 태국 등 당신을 환영할 미식의 나라들이 많다.

추천 코스: 영국 여행 계획 전면 재검토, 프랑스나 이탈리아 여행 고려하기, 런던 차이나타운과 브릭 레인(방글라데시 음식거리)의 위치 미리 파악해두기.


에필로그: 역설의 미식

 

그렇다면 진짜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국 음식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국 음식은 치킨 티카 마살라(Chicken Tikka Masala)라는 인도 커리다.

크리미한 토마토 커리 소스에 향신료로 양념한 닭고기를 넣은 이 음식은, 2001년 영국 외무장관 로빈 쿡(Robin Cook)진정한 영국의 국민 음식이라고 선언했을 정도로 영국에서 널리 사랑 받고 있다. 영국인들은 매주 수 천만 접시의 치킨 티카 마살라를 소비한다는 통계도 있었다.

한데 이 기원은 인도가 아니였던가?

치킨 티카 마살라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인도의 치킨 티카와 영국인의 입맛이 글래스고의 어느 인도 식당에서 만난 결과물이라는 게 널리 받아들여지는 정설이다.

가장 유명한 기원설은 1970년대 글래스고의 Shish Mahal라는 레스토랑에서 시작된다. 한 손님이 치킨 티카가 너무 건조하다고 불평했다. 당시 위궤양을 앓고 있던 주방장 알리 아메드 아슬람(Ali Ahmed Aslam)은 자신이 먹던 토마토 수프에 크림과 향신료를 섞어 닭고기 위에 부었다. 그렇게 치킨 티카 마살라가 탄생했다는 거다. (참고로 이 식당은 여전이 운영 중이다. 치킨 티카 마살라의 발생지!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첨부 이미지

Shish Mahal 인도 식당의 전경. 검색해 보니 과거에는 다른 위치에서 운영 했었다고 한다.
출처: 구글 지도 

물론 인도에도 비슷한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커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치킨 티카 마살라'라는 커리는 영국 땅에서, 영국인의 입맛을 위해, 남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이 창조해낸 음식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제국주의의 역사, 이민자의 적응, 문화적 혼종성의 결과.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영국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영국인들은 블랙 푸딩과 젤리드 일을 전통이라 부르며 자랑스러워하지만, 실제로는 금요일 밤마다 인도 음식을 주문한다. 펍에서 피시 앤 칩스를 먹다가도, 주말이면 치킨 티카 마살라를 그리워한다.

영국 음식이 맛없다는 편견은 반만 맞다. 그들의 전통 음식은 확실히 독특하고(혹은 괴상하고), 때로는 도전적이다. 하지만 영국인들도 안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의 맛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데 열심이다.

세계 어디서든 온 음식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고, 결국 영국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능력. 제국의 유산이 이렇게 식탁 위에 남아 있다.

당신의 이 테스트에서 몇 점을 받았던, 하나만은 기억하자. 영국 음식에 대한 최선의 접근법은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걸. 영국인들도 자신들의 음식을 농담거리로 삼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사랑한다.

빈즈 온 토스트로 시작한 여정이 치킨 티카 마살라로 끝나는 이 아이러니. 그것이 바로 영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THE PUNT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6 THE PUNT

영국 인문교양 뉴스레터 | 매주 여러분의 시야를 영국이 전세계에 미친 광활한 영향력만큼 넓고 깊게 확장해드립니다.

뉴스레터 문의hello@thepunt.co.uk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