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엔 없는 이야기들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2014년 주민투표와 브렉시트 이후 다시 불붙은 독립 논쟁

2026.09.05 | 조회 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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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지난주 스코틀랜드는 왜 영국을 떠나려 하는가에 이어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두번째 글입니다.


2014년 9월 18일, 스코틀랜드는 마침내 오래 품어 온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스코틀랜드는 독립국가가 되어야 하는가?”

투표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평생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들도 집을 나섰고, 처음 투표권을 얻은 16세와 17세 청소년들도 한 표를 행사했다. 투표율은 84.6퍼센트에 달했다. 영국 현대 정치사에서도 보기 드문 참여율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선거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나라의 이름과 경계를 스스로 결정하는 날이었다.

개표 결과는 독립 반대 55.3퍼센트, 찬성 44.7퍼센트였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에 남기로 했다.

독립 찬성 진영은 정치적 선택권을 강조했다. 스코틀랜드의 자원과 세금을 스코틀랜드의 우선순위에 맞게 사용하고, 잉글랜드보다 더 진보적인 복지와 교육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핵전력을 떠받치는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기지를 스코틀랜드에서 철수시키겠다는 약속도 내걸었다. 자신들이 선출하지 않은 런던 정부의 정책을 따라야 하는 현실에서 벗어나자는 호소였다.

반대 진영은 불확실성을 파고들었다. 독립하면 영국이라는 거대한 단일시장과 재정 체계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영국 파운드화를 계속 사용할 수 있을지, 은행과 기업이 남을지, 국가 부채와 북해 자원을 어떻게 나눌지 명확하지 않았다. 독립 스코틀랜드가 유럽연합에 곧바로 가입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찬성 측이 ‘스스로 선택할 미래’를 말했다면, 반대 측은 ‘잃을 수도 있는 현재’를 말했다.

결국 스코틀랜드인들은 변화의 약속보다 변화가 가져올 위험을 더 크게 보았다. 격차는 약 10퍼센트포인트. 분명한 패배였지만, 독립을 지지한 사람이 거의 절반에 이르렀다는 사실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한때 정치의 변두리에 머물렀던 독립은 이제 스코틀랜드 사회를 양분할 만큼 현실적인 선택지가 돼 있었다.

당시 스코틀랜드 정부와 SNP 지도부는 이 투표를 ‘한 세대에 한 번뿐인 기회’라고 표현했다. 이는 다시 투표하지 않겠다는 법적 약속이나 합의된 시한은 아니었다. 그만큼 중대하고 좀처럼 되풀이되기 어려운 선택이라는 정치적 수사에 가까웠다.

투표가 끝난 뒤에는 독립 문제가 한동안 잠잠해질 것처럼 보였다. 스코틀랜드는 스스로 영국에 남기로 선택했고, 그 결정은 적어도 한 세대 동안 이어질 듯했다.

그러나 불과 2년 뒤, 2014년의 전제를 뒤흔드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남을 것인지가 아니라, 영국이 유럽에 남을 것인지를 묻는 투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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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의 지역별 결과. 득표율과 실제 득표수 차이를 보여주며, 원이 클수록 득표수 격차가 크다는 뜻이다. 출처: 沁水湾 - Own work, CC BY-SA 4.0

 

브렉시트, 갈라진 두 개의 미래

 

2016년 6월 23일, 영국 국민들은 다시 투표소로 향했다. 이번에 주어진 질문은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아니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곧 ‘브렉시트’에 관한 것이었다.

영국 전체에서는 51.9퍼센트가 EU 탈퇴를, 48.1퍼센트가 잔류를 선택했다. 그러나 지역별로 펼쳐 본 투표 지도에는 하나의 국가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선명한 균열이 드러났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탈퇴표가 더 많았다. 반면 스코틀랜드에서는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잔류가 우세했고, 전체 유권자의 62퍼센트가 EU에 남기를 원했다. 북아일랜드에서도 55.8퍼센트가 잔류를 선택했다.

그럼에도 국민투표는 영국 전체의 표를 합산해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인구가 약 550만 명인 스코틀랜드의 선택은, 영국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잉글랜드의 표를 넘어설 수 없었다. 웨일스 역시 탈퇴에 표를 던졌으므로 브렉시트를 오직 잉글랜드만의 결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스코틀랜드인에게 결과는 이렇게 느껴졌다.

우리는 유럽에 남기를 선택했지만, 영국이 떠나는 바람에 함께 끌려 나가게 됐다.

이 결과는 2014년 독립 주민투표 때 제시됐던 전제마저 뒤흔들었다. 당시 독립 반대 진영은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남아야 EU 회원국 지위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독립하면 EU 가입을 새로 신청해야 할 가능성이 있고, 그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 없다는 논리였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영국 잔류를 선택했다. 그러나 불과 2년 뒤, 영국에 남았기 때문에 오히려 EU를 떠나게 되는 역설과 마주했다.

독립론자들은 즉시 주장했다. 2014년 이후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으므로 스코틀랜드 주민들에게 다시 선택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세대에 한 번’이라던 독립 주민투표가 겨우 2년 만에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브렉시트는 단순히 유럽을 둘러싼 견해 차이만 보여준 사건이 아니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 국가의 미래를 어느 방향에서 찾는지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드러냈다.

물론 모든 스코틀랜드인이 진보적이고 모든 잉글랜드인이 보수적인 것은 아니다. 스코틀랜드에도 보수당 지지자가 있고, 잉글랜드에도 강력한 진보 정치의 전통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선거 지형을 보면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보다 중도좌파 정당과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수당은 오랜 기간 스코틀랜드 정치에서 약세를 보였고, 영국 총선에서도 스코틀랜드의 의석 대부분은 노동당이나 SNP 같은 정당들이 차지해 왔다.

이러한 정치적 차이는 일상에서 체감되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스코틀랜드 정부의 지원 요건을 충족하는 학생이 스코틀랜드 대학에서 첫 학위를 공부하면 등록금을 정부 기관이 대신 낸다. NHS 처방약은 무료다. 지방정부가 필요성을 인정한 성인은 소득이나 재산과 관계없이 개인위생과 식사 등 일정한 ‘개인 돌봄’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다만 요양시설의 숙박비나 생활비까지 모두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잉글랜드에서는 대학 등록금이 부과되고, 대부분의 성인은 처방약 비용을 내야 한다. 사회적 돌봄 지원도 재산과 소득에 대한 심사를 더 폭넓게 거친다. 같은 영국 국민이어도 국경의 어느 쪽에 사느냐에 따라 대학과 약국, 노년의 삶에서 부담해야 할 비용이 달라지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정치에서 이런 제도는 단순한 복지 혜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세금을 더 걷더라도 교육과 의료, 돌봄을 공동체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관을 보여준다.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는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해 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국 전체의 총선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영국 인구와 의석의 압도적 다수는 잉글랜드에 있다. 스코틀랜드 유권자 대부분이 보수당에 반대표를 던지더라도, 잉글랜드에서 보수당이 크게 승리하면 보수당 정부가 영국 전체를 통치할 수 있었다.

그 정부는 외교와 국방뿐 아니라 국가 재정과 이민, 노동시장과 거시경제처럼 스코틀랜드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스코틀랜드 의회가 가진 자치권만으로는 런던의 정책 방향을 모두 바꿀 수 없었다.

특히 보수당 정부가 재정지출을 줄이는 긴축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오래된 질문이 되살아났다.

우리가 원하지 않은 정부가, 우리가 지지하지 않은 정책을, 우리의 뜻과 다르게 결정한다면 우리는 과연 스스로를 통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2014년의 독립 논쟁이 스코틀랜드도 하나의 국가로 살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면, 브렉시트 이후의 논쟁은 한층 더 절박해졌다.

영국에 남는 것과 스코틀랜드가 원하는 미래 사이에 길이 갈라질 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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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를 앞두고 에든버러 리스 지역의 한 공동주택에 독립 찬성을 뜻하는 ‘Yes’와 반대를 뜻하는 ‘No’ 포스터,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이 함께 걸려 있다. 당시 주민투표를 둘러싸고 스코틀랜드 사회의 의견이 팽팽하게 나뉘었던 분위기를 보여준다. 출처: Brian McNeil - Own work, CC BY-SA 3.0

 

독립하면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선언한다고 해서 다음 날 아침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경에 곧바로 장벽이 세워지고 새로운 지폐가 배포되는 것도 아니다. 주민투표에서 독립 찬성이 승리한다면, 스코틀랜드와 영국 정부는 국가 자산과 부채, 통화와 국경, 군사시설과 연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를 놓고 협상해야 한다.

2014년 독립 주민투표 당시 스코틀랜드 정부는 찬성표가 이길 경우 18개월가량의 협상을 거쳐 2016년 3월 독립한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실제 협상이 그 일정대로 끝났을지는 알 수 없다. 300년 넘게 이어진 한 국가를 둘로 나누는 일에는 지도에 선 하나를 긋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부딪힐 문제는 돈이다.

2014년 SNP 정부는 독립한 뒤에도 영국 파운드화를 사용하고, 나머지 영국과 공식적인 통화동맹을 맺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의 주요 정당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독립 스코틀랜드가 파운드화를 전혀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의 허가 없이도 파운드화를 그대로 유통시키는 이른바 ‘일방적 파운드화 사용’은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 스코틀랜드는 금리를 결정할 권한을 갖지 못하고,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지원을 당연히 기대할 수도 없다. 화폐는 사용할 수 있지만, 그 화폐를 움직이는 손에는 닿지 못하는 셈이다.

독자적인 스코틀랜드 화폐를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 금리와 통화정책을 결정할 수 있지만, 새 통화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마련하고 금융기관을 감독하며, 환율 변동과 자본 유출의 위험에도 대비해야 한다. 파운드화를 계속 쓰면 안정성과 정책 자율성을 맞바꾸게 되고, 새 화폐를 만들면 자율성과 초기의 불확실성을 함께 떠안게 된다.

두 번째는 유럽연합 가입이다.

브렉시트 이후 독립운동이 다시 힘을 얻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스코틀랜드가 EU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다. 그러나 독립과 동시에 회원국 자격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독립 스코틀랜드는 새로운 국가로서 가입을 신청하고, EU의 법과 제도를 받아들이기 위한 협상을 거쳐야 한다. 기존 회원국 모두의 동의도 필요하다.

스코틀랜드는 오랫동안 영국의 일부로 EU 제도를 적용했던 만큼 다른 신청국보다 출발점이 유리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행정 역량도 이미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가입 시기와 조건을 미리 보장할 수는 없다. 예산과 어업, 통화, 국경 문제를 둘러싼 협상도 필요하다.

세 번째는 잉글랜드와 맞닿은 국경이다.

오늘날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사이에는 검문소가 없다. 매일 수많은 사람이 출퇴근하고, 상품을 실은 트럭이 아무런 통관 절차 없이 국경을 넘는다. 두 지역 사이의 교역은 스코틀랜드 경제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독립 스코틀랜드가 EU에 가입하고 나머지 영국이 EU 밖에 남는다면 이 국경은 EU와 비EU 국가 사이의 경계가 된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이동을 검사하는 장벽이 반드시 세워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영국과 아일랜드가 유지하는 ‘공동여행구역’과 비슷한 협정을 통해 자유로운 왕래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품에는 문제가 남는다. 양측의 관세와 식품안전, 제품 규정이 달라지면 세관 신고나 검역 절차가 필요해질 수 있다. 북아일랜드를 둘러싼 브렉시트 협상이 보여줬듯, 지도에서는 가느다란 선에 불과한 국경이 실제 경제에서는 가장 풀기 어려운 매듭이 될 수 있다.

네 번째는 국가의 살림살이다.

현재 스코틀랜드에서는 주민 한 명당 공공지출이 영국 평균보다 높은 편이다. 세금은 영국 전체의 재정 체계 안에서 걷히고, 중앙정부의 교부금과 공동 재원을 통해 의료와 교육, 복지 등 여러 공공서비스가 운영된다.

독립하면 이 재정 관계는 끝난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모든 세입을 직접 거두는 대신, 연금과 복지, 국방, 외교, 국가기관 운영에 드는 비용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최근의 재정통계에서 스코틀랜드의 공공지출과 세입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나타난다. 다만 현재 통계는 독립국가의 미래 예산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부가 아니다. 독립 이후에는 세금과 산업정책, 국방비, 국가 부채 분담, 북해 자원 수입이 모두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립 반대론자는 큰 재정적자를 메우려면 세금을 올리거나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경고한다. 독립론자는 스코틀랜드가 경제정책과 자원을 직접 통제하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맞선다.

어느 쪽도 미래를 완벽하게 증명할 수는 없다. 결국 독립은 손익계산서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손익계산서를 외면한 채 정체성과 희망만으로 결정할 수도 없는 문제다.

통화와 EU, 국경과 재정. 이 네 가지 질문은 2014년 많은 부동층이 독립 반대를 선택하게 만든 핵심 요인이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금도 답은 완전히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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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독립 지지 행진. 참가자들이 스코틀랜드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촉구하며 도심을 행진하고 있다. 출처: Azerifactory - Own work, CC BY-SA 4.0

 

2026년, 막힌 문 앞에서

 

2026년 5월, SNP는 스코틀랜드 의회 선거에서 다섯 번째 연속 승리를 거뒀다. 129석 가운데 58석을 얻어 단독 과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독립을 지지하는 스코틀랜드 녹색당이 15석을 차지하면서 두 정당은 모두 73석을 확보했다. 새 의회에는 다시 한번 독립 찬성 세력이 다수를 이루었다.

5월 26일, 스코틀랜드 의회는 영국 정부에 독립 주민투표를 실시할 법적 권한을 넘겨 달라고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표결 결과는 찬성 72표, 반대 55표였다.

그러나 숫자가 보여주는 정치적 의지와 법이 허용하는 권한은 서로 달랐다.

영국 헌법에서 연합왕국의 존립과 해체는 스코틀랜드 의회가 아니라 런던의 영국 의회에 유보된 사안이다. 영국 정부는 2014년 당시 스코틀랜드에 한시적으로 권한을 넘기는 ‘섹션 30 명령’에 동의했고, 그 덕분에 법적 효력을 갖춘 주민투표가 열릴 수 있었다.

이번에는 런던이 같은 열쇠를 건네주지 않고 있다.

2022년 영국 대법원도 이 권한 관계를 분명히 했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영국 정부와 의회의 동의 없이 독립 주민투표 법안을 제정할 수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투표 자체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해도, 그 결과가 영국의 존립과 의회의 주권에 중대한 정치적 영향을 미치므로 스코틀랜드 의회의 권한 범위를 벗어난다는 논리였다.

따라서 2026년 5월의 표결은 독립 주민투표를 곧바로 실시하도록 만드는 법률이 아니었다. 런던에 다시 문을 열어 달라고 요구하는 정치적 결의였다.

그 문은 두 달 뒤 다시 닫혔다. 7월 취임한 앤디 버넘 영국 총리는 존 스위니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과 만난 뒤 새로운 독립 주민투표는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정부와 지역에 더 많은 권한을 나누어 주는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가 요구한 것은 지방행정의 권한만이 아니었다. 누가 스코틀랜드의 미래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SNP와 독립 지지자들에게 더 많은 자치는 독립을 대신할 선물이 아니라, 여전히 런던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는 현실의 확인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모든 스코틀랜드인이 당장 독립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2026년 여론조사들은 조사기관과 질문 방식에 따라 결과가 엇갈렸다. 독립 찬성이 근소하게 앞선 조사도 있었고, 반대가 우세한 조사도 있었다. 5월 선거 직후 실시된 한 조사에서는 찬성 52퍼센트, 반대 43퍼센트, 미정 5퍼센트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러 조사를 함께 보면 스코틀랜드 사회는 여전히 거의 절반씩 갈라져 있다.

2014년 이후 독립 지지를 끌어올린 가장 큰 동력 가운데 하나는 브렉시트였다. 여기에 런던 정치에 대한 불신과 긴축정책, 생활비 상승,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정치적 선택이 반복해서 엇갈린 경험이 더해졌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과반을 차지하는 것과 실제 독립에 이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주민투표를 열려면 우선 런던의 동의가 필요하다. 투표에서 이기더라도 통화와 국경, 부채와 EU 가입을 둘러싼 긴 협상이 기다린다.

독립운동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영국 총선이나 스코틀랜드 의회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런던에 정치적 압력을 가하거나, 더 많은 자치권을 확보하면서 여론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거나, 영국 정부와 새로운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국제사회에 호소할 수는 있지만, 민주적으로 선출된 영국 의회와 사법제도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외부가 런던에 주민투표를 강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스코틀랜드 독립의 문에는 두 개의 자물쇠가 걸려 있다. 하나는 스코틀랜드인 다수가 독립을 확고하게 선택해야 열린다. 다른 하나는 그 선택을 법적으로 물을 권한을 런던이 내주어야 열린다. 지금은 어느 자물쇠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1707년 합병 이후 319년. 두 나라의 결합이 에든버러 종탑에서 울린 슬픈 결혼 노래와 함께 시작됐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이 연합의 운명을 미리 들려준 전주곡이었는지도 모른다.

스코틀랜드는 아직 영국 안에 있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다시 독립의 문을 두드렸고, 런던은 다시 빗장을 걸었다.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크까지 멈추지는 않는다. 오래된 노래가 정말 끝났는지, 아니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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