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어느 토요일, 한 남자가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말에 쓸 현금을 찾으러 은행에 갔다가 문이 닫힌 것을 보고 돌아온 참이었다. 계좌에는 돈이 있었지만, 은행이 다시 문을 열 때까지는 손에 쥘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당시에는 현금을 찾으려면 은행의 영업시간에 맞춰 창구를 방문해야 했다. 토요일 오전의 짧은 영업시간을 놓치고 나면 주말은 지갑에 남아 있는 돈으로 보내야 했으니, 은행의 시계에 사람들의 생활이 맞춰져 있던 셈이다.
따뜻한 물속에 누워 있던 그의 머릿속에 초콜릿 자동판매기가 떠올랐다. 동전만 넣으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초콜릿을 꺼낼 수 있는데, 현금이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은행원이 퇴근한 뒤에도 자기 돈을 찾아갈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닫힌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일도 없어질 터였다.
남자의 이름은 존 셰퍼드-배런(John Shepherd-Barron). 그는 훗날 욕조에서 초콜릿 자동판매기를 떠올린 것이 현금 인출기를 구상한 계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시작된 생각은 바클레이스 은행에 전달됐고, 2년 뒤 런던 북부의 한 은행 벽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 최초의 현금 자동 인출기가 설치된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 엔필드 지점. 출처: Philafrenzy - Own work, CC BY-SA 4.0
은행 벽에 열린 작은 창
1967년 6월 27일, 런던 북부 엔필드의 바클레이스 은행 지점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영국의 주요 은행 가운데 하나인 바클레이스가 고객 스스로 현금을 찾을 수 있는 기계를 공개하는 날이었다. 첫 시연을 맡은 사람은 코미디 배우 레그 바니(Reg Varney)로, 훗날 영국 시트콤 《온 더 버시스(On the Buses)》의 주연으로 널리 알려질 인물이었다.
바니가 특수 처리된 종이 수표를 기계에 넣고 비밀번호를 누르자 잠시 뒤 10파운드짜리 지폐가 나왔다. 오늘날 현금 자동 인출기의 출발점으로 기억되는 장면이다.
지금은 기계에서 돈을 꺼내는 일이 너무 익숙해, 그날 사람들이 느꼈을 놀라움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당시에는 은행원에게 용건을 설명하고 창구에서 돈을 건네받던 절차를 벽에 붙은 기계가 대신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은행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도, 직원이 퇴근한 뒤에도 자신의 돈을 찾을 길이 열린 것이다.
은행 벽에 난 작은 창은 사람들의 주말 풍경도 조금씩 바꿔 놓게 됐다. 토요일 아침에 서둘러 은행으로 향하지 않아도 되고, 미리 현금을 마련해 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획을 접는 일도 줄어들었다. 셰퍼드-배런이 욕조에서 품었던 불만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조용히 해결돼 갔다.
1967년 6월 27일, 런던 북부 바클레이스 은행 엔필드 지점에서 배우 레그 바니가 세계 최초의 현금 자동 인출기를 사용하고 있다. 출처: Fair use
지폐를 만들던 사람의 상상
셰퍼드-배런은 1925년 영국령 인도의 실롱에서 태어났다. 토목 기사였던 아버지와 윔블던 여자 복식 우승 경력이 있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는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전쟁 중에는 군에 복무했다. 이후 지폐 인쇄 회사 드라루(De La Rue)에 입사해 현금을 다루는 기계의 개발에 관여하게 됐으니, 돈을 만드는 회사에서 돈을 꺼내는 새로운 방법을 궁리한 셈이었다.
그러나 욕조에서 떠오른 생각을 은행 벽에 설치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았다. 은행원이 없는 자리에서 기계가 수표의 진위를 가리고, 눈앞에 선 사람이 돈을 찾을 자격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지폐를 내주는 장치에 은행 창구의 판단까지 맡겨야 했던 것이다.
초기의 바클레이스 기계는 고객이 은행에서 미리 발급받은 종이 수표를 사용했다. 수표에는 미량의 방사성 물질인 탄소-14가 들어 있었으며, 기계는 이를 감지하고 이용자가 입력한 비밀번호를 확인한 뒤 정해진 금액을 내줬다. 지금처럼 카드를 넣고 계좌 잔액을 확인한 다음 원하는 액수를 찾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현금을 찾기 위해 여전히 사전 준비가 필요했지만, 적어도 돈을 꺼내는 순간만큼은 은행원의 근무시간에 맞추지 않아도 됐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네 자리 비밀번호에도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셰퍼드-배런은 처음에 여섯 자리 숫자를 생각했으나, 아내 캐럴라인은 네 자리까지라면 기억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여 비밀번호를 네 자리로 정했다고 한다. 기계를 만드는 사람이 생각한 적절한 길이와, 그것을 날마다 사용해야 할 사람이 편하게 기억하는 길이는 달랐던 셈이다.
엔필드에서 시작된 실험은 곧 다른 은행으로 이어졌다. 약 한 달 뒤 웨스트민스터 은행에 설치된 기계에는 스코틀랜드 출신 엔지니어 제임스 굿펠로우가 개발한 기술이 쓰였다. 이 기계는 종이 수표 대신 카드를 이용하고 비밀번호로 사용자를 확인했으며, 관련 특허는 이미 1966년에 출원돼 있었다. 영국의 은행들이 저마다 현금을 내주는 방법을 찾는 사이, 기계는 일회용 수표를 받아 지폐를 건네는 장치에서 카드로 이용자를 알아보는 장치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 변화가 더 큰 의미를 갖게 된 것은 기계들이 은행의 전산망과 연결되면서부터였다. 초기 현금 인출기가 미리 정해진 약속에 따라 돈을 내주는 장치였다면, 이후의 ATM은 계좌 정보를 확인하고 거래를 기록하는 은행 업무의 일부가 됐다. 특히 1980년대에는 ATM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설치가 빠르게 늘어났다. 은행 벽에 붙어 있던 작은 창이 더 넓은 금융망으로 통하는 입구가 된 것이다.
사람들의 생활도 그에 따라 달라졌다. 주말에 쓸 돈을 마련하려고 토요일 아침 은행으로 서두르거나, 창구가 닫히기 전에 일을 마치려고 시간을 조정할 필요가 줄어들었다. 은행 입장에서는 반복적인 현금 지급 업무를 기계에 맡길 수 있었고, 고객은 직원과 마주하지 않고도 필요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돈을 찾는 일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용무에서 스스로 끝낼 수 있는 일상적인 행동으로 바뀌어 간 것이다.
물론 은행 벽에 기계를 설치했다고 해서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기계를 믿고 사용하기까지, 또 기계가 충분히 가까운 곳에 놓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영국에서는 은행뿐 아니라 독립적인 ATM 운영업체들도 설치에 참여하면서 현금 인출망이 넓어졌다. 은행 지점이 없는 장소에서도 돈을 찾을 수 있게 되자, 현금 인출기는 은행의 부속 시설을 넘어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을 따라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만큼 기계가 사라질 때 생기는 빈자리도 커졌다. 현금 사용이 줄고 은행 지점이 문을 닫으면서 영국의 ATM 수는 감소하고 있지만, 현금에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운 인출기는 여전히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다. 영국의 현금 인출망 운영기관인 LINK가 농촌과 외딴 지역 등의 무료 현금 인출 접근성을 살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처음에는 은행이 문을 닫은 시간을 메워 주던 기계가, 어느새 은행이 떠난 자리를 지키는 역할까지 맡게 된 셈이다.
세계 최초의 현금 자동 인출기 설치를 기념해 바클레이스 은행 엔필드 지점 외벽에 부착한 파란색 기념 명판. 출처: Smerus - Own work, CC BY-SA 3.0
은행 벽을 넘어 세계로
엔필드의 은행 벽에 모습을 드러낸 기계는 곧 바다를 건너기 시작했다. 바클레이스가 처음 주문한 현금 인출기는 여섯 대였으며, 이듬해인 1968년에는 스코틀랜드 은행도 ‘스카치캐시(Scotcash)’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은행의 문이 닫힌 뒤에도 돈을 찾을 수 있다는 편리함이 조금씩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모든 곳에서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셰퍼드-배런의 회고에 따르면 미국의 은행 관계자들에게 기계를 소개했을 때 반응은 미지근했지만, 얼마 뒤 필라델피아에 설치할 기계 여섯 대를 주문받으면서 사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자체적으로 기계를 개발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일본 측이 아이디어에 대한 대가로 일정 기간 로열티를 지급했다고 전했다. 같은 발상이 국경을 건너면서 서로 다른 기술과 사업의 형태로 뿌리를 내린 셈이다.
한국에서도 은행 업무를 기계에 맡기는 시대가 열렸다. 1975년 외환은행이 현금을 꺼내는 기능을 갖춘 현금자동지급기, 곧 CD기를 도입했고, 1984년에는 조흥은행이 입금까지 처리할 수 있는 ATM을 들여왔다. 오늘날에는 두 기계를 흔히 ATM이라고 통틀어 부르지만, 현금을 내주는 기계가 돈을 받아 보관하는 일까지 맡게 되기까지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1990년대 들어 영업시간 밖에도 이용할 수 있는 자동화 코너가 늘어나면서, 은행 창구에 맞춰 하루의 일정을 조정하던 습관도 서서히 달라졌다. 은행원이 퇴근한 뒤에도 불이 켜진 공간에 들어가 돈을 찾을 수 있었고, 주말을 앞두고 현금을 마련하지 못했더라도 예전처럼 곤란해질 일은 줄어들었다. 런던의 한 은행 벽에서 시작된 변화가 한국의 저녁과 주말에도 스며든 것이다.
셰퍼드-배런이 자신의 발명이 얼마나 먼 곳까지 사람들의 생활을 바꿔 놓았는지 실감한 장소는 영국에서 한참 떨어진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였다.
그가 BBC에 들려준 회고에 따르면, 아내 캐럴라인과 함께 그곳을 여행하던 중 소달구지를 타고 온 농부가 현금 인출기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농부는 챙이 넓은 모자를 벗고 기계 앞에 섰다. 셰퍼드-배런은 그 장면을 통해 자신들이 세상을 바꿨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다고 말했다.
소가 끄는 수레와 현금을 내주는 기계가 한 풍경 안에 들어와 있었다. 런던의 은행가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던 구상이, 먼 나라에서는 한 농부가 일상적인 볼일을 마치는 데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농부에게 그 기계를 누가 발명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요한 돈을 찾을 수 있으면 그만이었고, 기계는 그 일을 해주고 있었다.
발명가에게는 어쩌면 그 평범함이 가장 놀라웠을지 모른다. 자신에게는 오랜 궁리와 노력이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잠시 수레를 멈추고 처리하는 용무가 돼 있었다. 기술이 생활 속에 충분히 스며들고 나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것을 경이롭게 바라보지 않는다. 셰퍼드-배런이 치앙마이에서 마주한 것은 바로 그렇게 익숙해진 자신의 발명이었다.
태국 방콕의 시암 파라곤 쇼핑몰에 나란히 설치된 여러 은행의 현금 자동 인출기. 출처: Chainwit. - Own work, CC BY-SA 4.0
현금을 꺼내지 않는 시대
그러나 기계가 세계 곳곳에 자리 잡는 동안, 돈을 사용하는 방식은 다시 달라지고 있었다. 카드로 값을 치르고 휴대전화로 송금하는 일이 일상이 되면서 지갑에 현금을 채워 넣어야 할 순간도 줄어들었다. 영국에서는 은행 지점의 폐쇄와 현금 사용 감소에 따라 ATM의 수도 줄어들고 있다. 한때 은행 창구를 대신하던 기계가 이제는 자신의 역할을 다른 기술에 조금씩 내주고 있는 셈이다.
셰퍼드-배런 역시 이런 변화를 내다봤다. 2007년 BBC 인터뷰에서 그는 사람들이 작은 금액을 결제할 때에도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되리라고 전망했다. 다만 현금이 몇 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은 지나치게 빨랐다. 휴대전화 결제는 익숙해졌지만, 현금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생활에 남아 있다.
그의 발명이 필요 없어지는 속도는 모든 사람에게 같지 않았다. 가까운 은행이 문을 닫은 지역이나 현금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인출기 한 대가 중요하다. 영국에서 무료 현금 인출망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처음에는 은행이 문을 닫은 시간을 메워주던 기계가, 어떤 곳에서는 은행이 떠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셰퍼드-배런은 2010년 5월 15일, 스코틀랜드 인버네스에서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11년 뒤인 2021년에는 그가 태어난 인도 실롱의 병원에도 ATM이 설치됐다. 그의 탄생으로부터 96년이 지난 뒤였다.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간 발명이 정작 그가 처음 세상에 나온 장소에는 뒤늦게 도착했다는 사실에는,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의 간격이 담겨 있다.
2017년 바클레이스는 첫 현금 인출기 설치 50주년을 기념해 엔필드 지점의 ATM을 금색으로 꾸몄다. 평소라면 돈을 찾고 곧장 돌아섰을 자리에서, 사람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계의 역사를 돌아보게 됐다.
반세기 전에는 벽에서 지폐가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이제는 금색으로 단장해야 다시 눈길을 끄는 물건이 됐다. 그 사이 누군가는 늦은 밤 필요한 돈을 찾았고, 누군가는 낯선 도시에서 여행 경비를 꺼냈으며, 누군가는 은행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하루의 일을 이어갔다. 기계가 바꿔 놓은 생활은 너무 익숙해져 좀처럼 의식되지 않는다.
1965년 어느 토요일, 욕조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남자는 은행에 있는 자신의 돈을 꺼낼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그 불편에서 시작된 생각이 2년 뒤 엔필드의 은행 벽에 작은 창을 냈고,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세계 곳곳의 일상으로 번져 갔다.
우리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지폐를 받아 드는 몇 초 사이에는, 그렇게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되게 된 시간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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