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는 지난 12월 4일, 춘천 캠프페이지 부지에 강원도청사를 신축 이전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같은 해 10월, 더불어민주당 소속 허영 국회의원이 노후 된 강원도청사 이전 부지로 캠프페이지를 제안한 지 2개월여 만에 빠르게 내려진 결정이다.
춘천시민들은 캠프페이지의 반환 이후 그 용도를 놓고 수차례 의견을 모았다. 춘천시의 기록에 따르면, 2015년 10월 28일부터 11월 14일(1,360명), 2016년 12월(3,300명), 2017년 11월부터 2018년 2월(176명)까지 서너 차례에 걸쳐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2018년에는 ‘캠프페이지 상상력 공모전’을 열고 시민들이 캠프페이지의 활용 방안을 적극적으로 구상하도록 촉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설문을 통해 수렴된 시민들의 의견은 이내 벽에 부딪혔다. 2016년부터 ‘춘천 K-WAVE’, ‘시민복합문화공원’, ‘미라클 페이지’ ‘미세먼지차단숲’ 등 춘천시는 여러 차례 캠프페이지 개발계획안을 내놓았다. 그때마다 ‘시민 의견을 반영하여’ 부지 활용안을 수정·변경하기도 했지만, 2019년 5월에 춘천시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위해 상정한 활용안의 경우 시민의 의견과 다른 인공시설물이 다수 배치된 개발안이기도 했다. 최종 확정된 개발안인 일명 ‘미세먼지차단숲(춘천시 시민공원 수립 용역)’ 계획은 2020년 5월, 부지 내 오염물질이 발견되며 멈추더니, 토양 오염이 재차 발견되어 정화 작업 일정을 타진하던 2021년 11월에는 춘천시의 도청사 신축 이전안 수용으로 인해 다시금 중단되었다.
강원도가 발표한 신축 부지 선정 이유에는 비용 절감, 접근성 향상, 평화자치도로서의 상징성 등과 함께 지난 12월 중순에 진행한 춘천시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 또한 유효한 근거로 작용했다. 그러나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단 10일간 춘천시민 2,261명만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가 그동안의 캠프페이지 용도를 놓고 벌였던 논의를 일축할 만큼 타당한 결정이었을까. 미군기지 반환에 따른 캠프페이지 오염 정화 및 정화 비용문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모두를 위한 결정은 어떤 모습이어야 했을까.
100% 템펠호프 공원
베를린에 위치한 템펠호프 공원은 1923년부터 2008년까지 공항으로 사용되었다가 폐쇄된 공간이다. 나치 체제하에 대형 공항으로 확장 건설되어, 냉전 시대에는 군용품 수송 공항으로, 1975년에는 미군의 군용 공항으로 전환되었다가, 1981년부터 2008년까지 민항기가 취항하는 공항으로 사용되었다. 나치 친위대(Schutzstaffel, 슈츠슈타펠)가 운영하는 강제수용소가 위치했던 템펠호프 공원은, 역설적이게도 2016년부터 쏟아진 시리아 난민들을 위한 임시거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템펠호프 공항은 폐쇄 후에도 개발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공원이 일반에 개방되고 난 1년 뒤인 2011년에 베를린 상원에서 공원 일부에 대한 개발계획을 발표했지만, ‘시민 주도의 100% 템펠호프 공원(Initiative 100% Tempelhofer Feld)’의 노력으로 정부의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2011년 9월에 설립된 이 시민 이니셔티브는 2014년 1월까지 베를린 시민 23만명의 서명을 모아 ‘템펠호프 공원 유지 법안’의 주민 청원을 진행했다. 같은 해 5월, 공원 유지 법안 제정을 위한 주민 투표에 110만 명이 참여하고, 64.3%가 찬성하여 템펠호프 공원 유지가 결정되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정부와 시민 사이의 치열한 토론의 결과로 채택된 ‘템펠호프 공원 유지 법안’이 ‘또 다른 과정’을 위한 결정이었다는 사실이다. 템펠호프 공원을 그대로 유지하라는 ‘템펠호프 공원 법(Tempelhofer Feld Law)’이 제정된 이후, 시민들은 2년에 걸쳐 유지 방법을 논의했고, 그 내용을 담은 ‘템펠호프 공원 개발과 유지 계획’이 2016년에 상원 승인을 받았다. 시민 이니셔티브는 이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미래에 공원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시민의 장기적인 참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개발 목표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실현할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었다고 밝혔다. 2016년의 계획에 따라 템펠호프 공원 유지를 위한 시민 참여를 조직하는 ‘공원 코디네이션(Field Coordination)’이 구성되었다. 선출된 시민 10명, 상원 행정공무원 2명, 그린 베를린 그룹 직원 2명 (베를린 시에서 설립한 공원, 녹지, 광장 운영 관리 기관)은 매달 회의를 통해 공원 유지와 개발 절차를 논의한다. 이 회의를 통해 결정된 ‘절차에 대한 규칙(Rules of Procedure)’은 2019년 2월에 시의 승인을 받았다.
템펠호프 공원은 유지냐 개발이냐에 대한 이분법적인 결정에 갇히지 않았다. 공원을 어떻게 유지하고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그러한 ‘어떻게’의 과정을 함께 구상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결정에는 공원을 사용할 사람들, 즉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조직하는 체계가 포함되었다. 이를 통해 템펠호프라는 공간은 모두가 참여하여 구성하고 관리하는, 공유지가 되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평화와 교육, 평화와 일상을 연결하여 '평화를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플랫폼인 피스모모는 커머닝을 “‘모두의 것(commons)’이어야 하는 것들을 ‘모두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사회 구성원들의 책무와 그에 기반한 이행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과정 곧 커머닝(commoning)을 통해 그 땅은 모두의 것으로,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은 땅에 깊숙이 관여하는 주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의 결정에서 ‘어떻게’의 결정으로
캠프페이지의 활용안을 놓고 벌어진 결정들은 템펠호프의 것과는 달리 ‘무엇’에 응집되어있다. 캠프페이지에 ‘무엇을’ 지을 것인지, 캠프페이지에 ‘무엇이’ 생겨야 춘천시 경제가 활성화될 것인지, 캠프페이지에 ‘무엇이’ 있어야 관광객들이 자주 방문하게 될지. 무엇에 초점을 맞춘 결정은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상충되고, 제한되고, 변모된다. 무엇에 초점을 맞춘 결정은 춘천시민의 1%, 강원도민의 0.08 %에 불과한 의견을 무엇을 짓기 위한 ‘동의’로 재빠르게 등치시켰고, 그 결정에 참여했어야 마땅한 99%의 시민들을 소외시켰다.
캠프페이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그 과정을 결정하면 어떨까. 공원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 개발을 한다면 ‘어떠한’ 방식이어야 하는지, 그런 결정에 누가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오염 정화 작업은 누가 ‘어떻게’ 지켜볼 것인지, 그리고 캠프페이지라는 땅의 의미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모두를 위한 공간, 모두를 위한 결정은 ‘어떻게’를 논의하는 과정에 자리한다. ‘무엇’을 위한 숨 가쁜 결정 보다, ‘무엇’으로 가는 길을 다듬는 절차와 과정을 결정한다면, 캠프페이지도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가연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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