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는 반환된 미군기지와 기지촌의 기억이 있다. 군사기지 옆에 자연스럽게 조성되는 듯 보이는 기지촌은 실상 철저한 기획에 가깝다. 신시아 인로가 그의 책 <바나나, 해변, 그리고 군사기지>에서 말하듯, 군사기지와 성매매촌의 기획은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만들고, 전투준비성을 높이고, 사업의 위치를 결정하고, 여성의 경제적 기회를 구조화하고, 부인이나 위락 공공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130쪽)’의 결과물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기지촌 여성들은 전쟁 직후,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한미동맹과 국가 경제에 필수적인 요소’로 동원되었다. 하지만, 국가 주도의 개발 시기를 거치면서, 기지촌이라는 공간의 철거와 함께 기지촌 여성들의 존재는 삭제되거나,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되거나, 국가가 원하는 서사만 살아남았다.
기지촌 여성에 대한 연구나 보도들을 보면, 이들을 고정된 존재로 한계지어 해석하는 경우도 목격하게 된다. 이렇게 삭제되고 훼손받은 기지촌 여성들의 주체성과 고유한 이야기들을 되살리려면,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까? 춘천의 기지촌을 연구하고 있는 정충실 동의대학교 일본어학과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번 대담에는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도 함께했다.
김가연(사회): 반갑습니다. 간단히 소개부탁드려요.
정충실: 동의대학교 일본어학과 정충실입니다. 영화 관객 전공인데요.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를 수용하고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영화 관객에 관심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동아시아 미디어에 관심이 있고요. 정보가 전달되는 수단 즉, 미디어로서 미군 기지, 그리고 기지촌 주민들의 능동적인 삶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동아시아의 미군 기지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기본적으로 박사과정 지도 교수님이 아메리카나이즈(Americanize)와 미군 기지에 관심이 많으셨기 때문이에요. 박사과정 끝나고 처음으로 취직한 곳이 마침 춘천에 있는 한림대였고, 집도 미군기지 터와 매우 가까운 곳에 얻었거든요. 우연한 계기로 춘천에서 미군 기지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죠. 그 과정에서 미군기지가 소양동과 춘천의 도심 지역에 차별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게 됐고요. 예를 들어, 소양동 미군기지 기지촌 지역에서는 폭력적인 상황을 자주 맞닥뜨려야 했던 반면, 도심 지역에서는 상당히 많은 이익을 누렸던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소양동 주민들은 폭력에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능동적인 삶을 개척하려고 했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김가연: 말씀 감사합니다. 우연한 계기로 미군기지와 기지촌 여성들에게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하게 되셨네요. 기지촌 연구를 시작하시고 나서, 이전과 다르게 눈에 들어오는 지점들이 있으신가요? 연구하시면서 겪은 어려움이 있으시다면요?
정충실: 저는 한국 사회의 중앙 집중화된 아카이브가 큰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춘천 기지촌을 연구할 때, 항상 국립중앙도서관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지역에 다양한 아카이브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기지촌 연구를 상당히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기지촌에 대한 다양한 입장의 기록들이 생성될 수 있도록 조건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구술이나 인터뷰처럼, 사건이나 내러티브를 해석을 할 때는 해석자의 관점이 들어가고, 독해하는 사람은 한 차례 굴절된 정보를 다시 굴절시켜서 받아들일테니까요.
김가연: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양한 관점에서 기록되고 비추어져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양한 주체를 통해 발화되어야 할텐데요. 이 지점에서 기지촌 여성들을 객체화시키는 순간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기지촌 여성의 이야기를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이야기가 재생성되어야 하죠. 예를 들어 동두천 ‘순자 문화제’는 ‘순자’라는 두 기지촌 여성의 스토리를 통해 ‘잊힐 뻔한 순자들을 기억해냄으로써’ 기지촌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고, 공동체성을 살리려는 기획으로 시작된 지역 문화제입니다. 그러나 정작 해당 문화제에서 ‘순자의 목소리’는 증발되고, 기지촌 마을재생사업 콘텐츠로 이용되는 기지촌 여성들의 삶만 남게 되었어요. 그러한 기지촌의 여성들은 언제까지 질문을 받는 대상, 거기서 머무는 객체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 질문이 생겨요. 그리고 혹시 춘천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다면 답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충실: 저는 춘천이 부산이나 서울에 비해서 작은 도시고, 보수적인 도시다 보니까 기지촌을 능동적으로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앞으로도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연구하면서도 흔히 양공주라 불리는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을 한 분도 인터뷰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접촉을 하려고 했지만, 제가 남성이기도 하고 상당수가 너무 고령이시기 때문에 쉽지 않았어요. 또, 본인들 스스로가 부끄러운 기억이라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아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셨던 것 같고요.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지요.
문아영: 정충실 선생님은 캠프페이지라는 구조적 폭력에 수동적인 존재로서의 춘천시민이 아닌 능동적 존재로서 춘천시민을 논문에서 조명하셨는데요. 능동성이 해석의 여지가 참 많아요. 순자 문화제와도 연결되죠. 순자를 능동적 주체로서 인정하는가. 아니죠. 민중으로부터 만들어진 순자를 규정함으로써 수동적인 존재로 접근하는 한계가 너무나도 명확한거에요. 이 양면성을 선생님들의 연구에서 어떻게 다루고 계시는지가 궁금해요.
정충실: 저는 랑시에르를 좋아하는데요. 그는 기존 진보 학자들이 대중이나 개인을 해방시켜야 하는 존재로 보는 것을 매우 비판하고, 해방의 시작은 그 존재들이 이미 해방된 존재이고 능동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저도 그 관점에서 성매매 여성이나 기지촌 주민을 ‘해방시켜주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미 해방되어있는 능동적인 존재들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관객 연구도 같은 관점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문아영: 랑시에르를 언급해주시니 반갑네요. 피스모모는 가르치지 않는 평화 교육이라는 표현을 초창기부터 썼어요. 그런 공부 과정에서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가 굉장히 중요한 텍스트였거든요. 교육 프로그램은 파울로 프레이리의 억압받은 자들을 위한 페다고지에서 출발해서, 연극 교육을 했던 아우구스토 보알의 해방 연극과 연결했어요. 그 과정에서 ‘스펙테이터(spectator)’가 아니라 스펙트-액터(spect-actor)의 관계에서 포럼 시어터(forum theater)의 방식으로 교육 속에 역할극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원하는 사람이 언제든지 들어와서 내러티브를 바꿀 수 있는 작업들을 평화의 요소와 연결시키면서요. 이런 맥락에서 기존의 기지촌 여성 서사는 수동적 존재로서 여성을 조명했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다른 시도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전히 궁금한 것은, 기지촌 여성의 능동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의도하지 않은 전쟁 부역이나 군사주의 부역의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어떻게 우리가 구분할 수 있나요?
정충실: 저는 기지촌 여성을 전쟁에 공모하는 사람들로 보는 시선은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 여성들을 오로지 피해자로서 설정하는 게 문제죠. 기본적으로 피해자이지만,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고 했던 존재로 보고 싶어요.
김가연: 피스모모는 ‘평화는 모두의 것’을 슬로건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캠프페이지는 모두의 것이라고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그 땅이 사실 시민의 땅이었던 적이 없고 시의 땅이 되어버렸죠. 이것을 시의 땅이 아니라, 시민의 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들이 더 필요할까 고민이 들어요. 이 기지를 해체해서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 갈 때 어떤 부분들을 고민해야 할까요?
정충실: 시민 모두의 것이 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요? 과거에는 미군의 땅이었고, 지금은 국방부의 땅이에요. 상당 부분의 미군 기지들이 지방자치단체에 넘겨져서 개발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캠프페이지를 비롯해 미군기지 부지 자체는 기본적으로 시민의 것이 되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지만 기지 부근의 땅들은 시민의 땅인 경우가 많잖아요. 시민 스스로 움직여서 주변 지역 혹은 기지촌이었던 곳에 아카이브 기관이나 기억 공간, 시민 문화 공간을 만드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 피해를 전시하는 히로시마 평화 박물관과 달리, 나가사키 평화 박물관은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서 나가사키 원폭 피해뿐만 아니라 일본이 저지른 식민 침략의 역사와 난징 대학살까지도 전시하는 공간이에요. 그러니까 시민들이 주체가 돼서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지촌의 안과 밖에서 복잡하게 형성되었지만, 대부분 비가시화된 기지촌 여성의 삶은 기지 자체의 폐쇄성과 만난다. 군사주의와 가부장제를 통해 여성과 군사기지는 철저하게 제한되고, 전형화된 대상이 된다. 지금까지 제한되었던 땅, 국가와 군대가 점유했던 땅이 모두의 것이 되기 힘들지 않겠냐는 정충실 교수의 이야기는 냉정한 현실 인식에 조응한다. 기존의 구조를 인식하면서도, 그 구조를 바꿔낼 상상력과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힘은 어떻게 구성될까.
기지촌에 얽힌 다양한 여성들의 다종다양한 삶에 주목하는 것은 기지에 갇힌 채로 폐쇄되어있던 내러티브들을 기지 바깥으로 해방시키고 또 확장시킨다. 그렇기에 그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 지자체의 땅인 것처럼 보이는 그 땅이 실상 지자체의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행위가 내는 파열음은 그 자체로 그 땅을 주인 없는 땅으로 변모시킨다. 그 땅의 주인의 자리를 비워둠으로써 누구의 것도 아닌 그 땅이 모두의 땅이 될 확률을 높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당 글은 본래 심아정-정충실 두 분의 대담으로 기획하였고, 두 분의 문제의식을 연계하여 충분히 반영하고자 했으나 편집상의 난맥과 지면의 한계가 있어 부득이하게 정충실 교수님의 발언만을 포함한 글로 재구성하게 되었음을 알립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