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사우스포스트의 경우
지난 6월 10일부터 26일, 용산공원 일부 부지가 시범 개방됐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면서,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용산공원을 개방하겠다고 약속하자마자 신속하게 실행되었다. 미군기지를 모두가 방문할 수 있는 ‘공원’으로 ‘개방’하고야 말리라는 의지에서 비롯된 결정이다.
이 와중에도 용산 미군기지의 오염물질은 존재한다. 지난해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이 국방부의 의뢰로 용산 미군기지 부지를 조사한 환경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이 사용한 숙소 부지는 TPH(석유계총탄화수소) 수치가 공원 조성이 가능한 기준의 29배를 넘었고, 지하수에서는 대표적인 발암물질인 벤젠과 페놀류가 기준치의 3.4배, 2.8배를 초과했다. 시범 개방에서 '쉼터 공간'으로 조성된 스포츠필드의 경우에도 TPH는 기준치를 36배 초과하고, 대표적인 발암물질인 다이옥신, 비소 등도 부지 곳곳에서 기준치의 수십 배를 넘는 결과를 기록했다. 용산 기지의 오염이 공원 시범 개방에 걸림돌이 되자 국토부는 오염 토양을 잔디로 덮는 등의 임시 조치를 포함한 위해성 저감조치를 취했다. 또한 하루 2시간 가량의 용산 공원 방문은 인체에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지침도 덧붙였다.
용산공원은 오랜 결정 과정이 얽힌 공간이다. 한미 양국이 기지 반환을 약속한 것은 2004년이지만, 실제 반환 협상이 시작된 것은 2019년이었다. 반환된 기지를 100% 공원으로 조성하자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으로 제정되었지만, 이마저도 심각한 오염 때문에 ‘모든 부지 반환(N년) 후 7년’으로 변경된 바 있다. 용산기지를 공원으로 개방하며 오랜 시간 이어온 공간에 관한 결정을 권력을 가진 몇 사람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 결정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어디를 향해 있는가?
춘천, 캠프페이지의 경우
캠프페이지의 오염 토양은 계획대로라면 올해 3월부터 모두 반출되어 정화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강원도청사 신축 이전 건립’ 논의로 인해 사실상 무기한 연장된 상태다. 최근 춘천 MBC의 보도에 따르면 춘천시는 “캠프페이지 부지 내 반출 정화를 2023년까지 계획하고 있고, 최종 토양 정화 업체에서의 정화까지는 2024년까지로 계획하고 있다.” 캠프페이지 토양 정화 후에 계획되어 있던 시민공원화 계획도 멈춰있다. 이대로라면 2024년 혹은 그 이후, 토양 정화가 완료될 때까지 캠프페이지는 계속 공터로 남아있게 된다.
새로 선출된 김진태 도지사는 강원도 도청사를 캠프페이지에 신축이전하는 결정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최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강원도 도청사를 캠프페이지가 아닌 춘천에 신축 이전하겠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으며, 이 과정에서 춘천시민들의 의사를 많이 묻고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결정 과정이나 캠프페이지 활용안에 대한 방향성은 밝히지 않았다.
육동한 춘천시장은 후보 시절부터 캠프페이지를 시민공원으로 조성하는 안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춘천시 인수위원회 보고 사항에 ‘도청사 캠프페이지 이전’과 관련된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고, 최근 밝힌 7개 시정목표에서도 캠프페이지 관련 사항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시정목표에는 일자리 확대, 연구기관 유치, 그리고 춘천을 교육도시로 만들기 위한 여러 목표들이 포함되었을 뿐이다.
캠프페이지에 도청사를 새로 짓겠다는 결정도 졸속으로 이루어졌지만, 짓지 않겠다는 결정도 강원도지사의 의지로 빠르게 번복되었다. ‘공간’이 아니라 그 위에 지어질 ‘무엇’에 초점을 맞춘 결정들은 쉽게 이리저리 이동된다. 새로이 선출된 강원도지사와 춘천시장의 결정들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에는 슈퍼블록(Superblocks)이 있다. 슈퍼블록은 바르셀로나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만사나(Manzana·블록) 9개를 하나로 묶고, 차량 통행을 제한한 구역이다. 슈퍼블록 프로젝트는 대기 오염을 저감하고자 계획되었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시민이 도시 공간에 대한 기본 권리, 즉, 주거권을 보장받고 공공공간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2015년부터 지금까지 연임하고 있는 아다 콜라우(Ada Colau) 바르셀로나 시장의 대표 정책이다.
아다 콜라우 시장은 주택담보대출 피해자들을 위한 풀뿌리 시민네트워크 PAH의 활동가 출신으로, 도시 커먼즈 운동 및 민영화된 부문의 재공영화와 재지방정부화를 꾀하는 시민운동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스페인은 2008년 금융위기로 빈곤 상태가 심화되자,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각각 시민 100만 명 규모의 시위, ‘분노한 사람들’(los Indignados)이 조직된 바 있다. 이후 이들은 ‘광장에서의 직접 정치’를 너머서 직접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고 정책에 반영하고자 2014년에 지역 정당 연합 ‘포데모스(Podemos)’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포데모스는 시민이 직접 지역사회 변혁에 참여하는 것을 강조하며 스페인 각지에 직접민주주의 바람을 불어 일으켰다. 아다 콜라우 시장은 포데모스 연합의 대표적인 지역 정당인 '바르셀로나 커먼즈(Barcelona En Comú)' 소속이다.
바르셀로나 커먼즈가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민에게 돌려주는 시민주도의 수평적이고 참여적 정치(자치)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하는 사회운동 세력, 좌파정당, 생태주의자들의 연대’라고 볼 때, 슈퍼블록의 운영 및 결정 과정 또한 주목할 만하다 (뮤니시팔리즘(Municipalism)에서 배우는 도시 공간정책, 한국지방행정연구원, 2019년 11월).
바르셀로나시에 따르면, 바르셀로나 시의회는 모든 이해관계자와 대중들이 대화를 통해 슈퍼블록 전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체계화했다. 이를 위해 중앙 부서와 자문기구가 프로젝트 자체와 이후 실행을 확인하고 모니터한다. 또한 공모를 통해 선정된 8개 팀들은 지역 주민, 연합체, 금융 기관, 전문가 연합과 함께 새로운 공공공간 모델을 적용을 위해 협력한다. 바르셀로나 슈퍼블록의 결정은 모두의 권리를 향해 있으며, 그 결정 또한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좁고 뾰족한 결정이 아닌
용산과 캠프페이지의 결정은 좁고 뾰족하다. 결정에 관여하는 주체도 매우 적을뿐더러, 권한도 정치적 권력을 가진 몇몇에 비균형적으로 쏠려있다. 그 방향성도 해당 공간에 ‘무엇’을 짓거나, 한시적으로 ‘개방’하는 다소 편협하고 단기적인 목표에 집중되어 있다. 용산과 캠프페이지를 놓고 벌이는 결정들이 쉽게 좌절되고 번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그 결정이 널찍하게 퍼져 있다면 어떨까?
바르셀로나 커먼즈는 전국 차원의 모정당이 없다. 공천권도 오로지 시민들에게 있다. 후보자의 공약 또한 시민들과의 협치를 통해 만들어진다. 지역의 목소리가 담기다 보니 정당간 공동의 가치에 기반할 뿐, 통일된 담론은 없다. 아다 콜라우 시장이 2019년 재선 당시 5000개에 달하는 구체적인 공약을 내놓았지만, 다른 지역 시장 후보자의 공약과 일치하는 비율이 1%도 되지 않았다. 지역에 대한 결정들이 지역에 뿌리를 두고 형성되며, 그 결과 또한 지역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다.
자치도시형사회주의로 번역되는 ‘뮤니시팔리즘(municipalism)’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역에 널찍하게 퍼져 있는 결정, 즉 ‘수평적이고 열린 의사결정 메커니즘은 모두가 힘을 나누어 갖게’ 한다. 이는 지역의 목소리가 아래로부터 위로 전달되며 권력을 키우는 것에 더해, 이미 분산되어있는 힘들이 지역들을 변화시키며(trans-locally) 연결되고 협력하는 과정이다. 용산과 캠프페이지에도 지역에 존재하는 힘들이 있다. 이러한 힘들이 지역을 넘어 연결되고 협력하려면, 수평적이고 열린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7월 1일을 시작으로 지역에서 새로운 정부가 살림을 시작했다. 그 사이 시범적으로 개방되었던 용산공원은 다시 폐쇄되었고, 캠프페이지는 여전히 텅 빈 채 닫혀 있다. 모두의 공간을 두고 결정이 사건처럼 왔다가 또 갔다. 하지만, 널찍한 결정을 위해서, 그래서 지역의 힘들이 연결될 열린 의사결정 구조를 위해서는, 결정을 사건으로 소비하기보다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돌아보면, 용산과 춘천 미군기지의 반환과 그 활용을 두고 시민들이 오랜 기간 쌓아 올린 담론들은 분명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 뾰족한 결정들이 내세우는 힘을 상쇄할 힘들은 그간 쌓아놓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모인다. 용산과 춘천의 땅은 모두의 것이고, 모두가 수긍하는 결정들을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되내어야 할 때다.

/김가연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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