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연극에 빠져 살던 고등학생 시절, 연극 동아리를 이끌어주었던 문학쌤이 나눠준 말입니다. 증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사랑이 아니라니. 오랫동안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의 뜻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것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룬 연극을 만들면서였습니다.
연극이 시작되면, 무대 위에는 완전히 낯선 세계가 펼쳐집니다. 일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을 보게되고, 알지 못했던 인물들의 속내가 드러나지요.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일은 제 것이 아닌 다른 이의 삶을 잠시지만, 깊게 살아보는 경험이었습니다. 때로는 가슴 아픈 이별을 하거나, 사회의 혐오를 마주하게도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개별의 존재가 겪는 일은 결코 개별의 일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한 사람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흔히들 “노오-력”을 해야한다고 하지만, 어떤 맥락이나 특정한 구조 속에 놓인 이들에게 노력이라는 말은 낙인이 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이 끝나고 나면, 저는 피켓을 들고 광장과 거리에 나갔습니다. 연극을 통해 제가 겪었던 이별과 혐오를, 누구도 홀로 겪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빠른 템포로 흘러가는 일상을 살다보면 주변의 존재들을 깊이 살피기가 어려워지지요. 아무리 크고 깊은 사랑을 지녔다고 해도 내 곁에 선 존재를 마주하고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발휘될 기회 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랑이 아니라 상상력이 필요하다던 제 스승의 말은, 우리 모두가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사랑을 발휘하기 위해서 상상력이라는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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