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가끔 '아름답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를 마주합니다. 그것은 압도적인 공포에 가깝지만, 동시에 우리를 강렬하게 매혹합니다.
18세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 감정을 숭고(Sublime, Das Erhabene)라고 명명했습니다. 아름다움(Beauty)이 대상의 형식과 조화에서 오는 긍정적 쾌감이라면, 숭고는 형식 없음과 무한함이 주는 부정적 쾌감입니다. 처음에는 대상의 압도적인 크기나 힘에 우리의 상상력이 좌절하며 불쾌감을 느끼지만, 곧이어 그 거대함조차 '무한'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해내는 인간 이성의 위대함을 자각하며 느끼는 고양감, 이것이 바로 숭고의 핵심입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칸트가 자연과 예술에서 발견했던 이 미학적 체험이, 현대에 이르러 어떻게 기술(Technology)의 영역으로 전이되었는지, 그리고 그 기술의 정점에 선 빅테크의 수장들을 어떻게 현대의 철학자로 재해석할 수 있는지 탐구해 봅니다.
1. 안개 위의 방랑자, 혹은 데이터 센터 앞의 관찰자

(왼쪽 이미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위의 방랑자> 라는 작품은 숭고미의 시각적 원형을 대표합니다. 과거 숭고미는 주로 자연에서 느꼈었는데, (오른쪽 이미지) 거대한 파도 앞에 압도된 인간의 느끼는 웅장하며 경이롭고 공포감을 주는 감정을 숭고미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칸트는 숭고를 두 가지로 나눕니다.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절대적인 크기 앞에서 느끼는 수학적 숭고, 그리고 휘몰아치는 폭풍우나 화산 폭발처럼 압도적인 위력 앞에서 느끼는 역학적 숭고입니다. 과거 인간은 대자연이나 거대한 대성당 앞에서 자신의 위치(거대함 앞에서의 왜소함)을 확인하며 이 전율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종종 우주에 대해 상상하거나 논할 때, 스스로가 한줌 우주의 먼지밖에 되지 않음을 인지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21세기에서는 이 숭고의 대상이 자연에서 다른곳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폭풍우 앞에서만 전율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천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거대언어모델(LLM), 지구 전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위성 네트워크, 전 세계의 지식을 집어삼키는 데이터 센터의 위용 앞에서 우리는 과거 칸트가 말했던 그 수학적 숭고를 다시 마주합니다.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거대한 기술 시스템은 현대인에게 새로운 공포이자 경외의 대상, 즉 '기술적 숭고(Technological Sublime)'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2. 코드로 쓰인 철학서, 새로운 아고라의 입법자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광장)는 철학자들이 말(Logos)을 통해 세계의 질서와 진리를 논하던 물리적 공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아고라는 어디일까요?
바로 디지털 세상의 코드 위입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디지털 아고라를 설계한 빅테크의 창업자들은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추상적인 문자가 아닌 실행 가능한 코드(Executable Code)로 번역하여 현실 세계에 구현하는 입법자들입니다. 훗날 미래 세대가 현 시대의 철학자를 꼽을 때, 현재 빅테크의 수장들을 철학자로 분류할 것입니다. 막강한 기술 권력을 바탕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구조를 정의하고, 인류가 나아갈 비전을 제시하는 자가 바로 철학자일 테니까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플랫폼의 알고리즘, 인터페이스, 약관 하나하나에는 그들의 철학적 공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들의 철학이 현실에 구현된 양상을 미학적 관점에서 뜯어보면, 각기 다른 '숭고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빅테크 수장들이 구현한 세 가지 숭고의 미학
① 알렉스 카프(Alex Karp) -혼돈을 직시하는 '아폴론적 질서'의 숭고

팔란티어의 CEO이자 철학 박사인 알렉스 카프는 기술을 통해 세상의 '비극적이면'을 직시하려 합니다. 테러, 범죄, 전쟁 등 세계는 본질적으로 무질서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디오니소스적(Dionysian) 상태입니다.
카프의 미학은 이 디오니소스적 혼돈에 이성적이고 명석한 아폴론적(Apollonian) 질서를 부여하려는 시도입니다. 전 세계에 흩어진 파편화된 데이터를 긁어모아 하나의 통합된 가시성(Visibility) 안에 가두는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는, 무질서한 엔트로피를 기술적 이성으로 제압하려는 거대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우리는 그가 구축한 완벽한 감시 시스템, 즉 디지털 판옵티콘 앞에서 질서가 주는 서늘한 숭고함을 느낍니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설파했던 판옵티콘(원형 감옥)의 원리를 디지털 세계에 완벽하게 구현한 것입니다. 푸코에게 판옵티콘이 감시자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수감자가 스스로 규율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근대 권력의 정점이었듯, 카프의 시스템은 데이터화된 모든 존재를 보이지 않는 시선 아래 둠으로써 통제 가능한 질서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이 압도적인 디지털 파놉티콘 앞에서, 냉철한 이성의 질서가 주는 서늘한 숭고함마저 느끼게 됩니다.
② 피터 틸(Peter Thiel) - 모방을 거부하는 '단독성'의 숭고

피터 틸에게 비즈니스는 남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 이론을 깊이 신봉하며, 타인을 따라 하는 경쟁(Mimesis)을 가장 저열한 상태로 봅니다.

대학 시절 틸은 르네 지라르 교수를 만나 그의 사상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지라르의 핵심은 "인간의 욕망은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을 모방한 결과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폭력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틸은 이 이론을 실리콘밸리에 대입했습니다. 그는 테크 업계가 혁신적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는 식의 불필요하고 파괴적인 모방 경쟁의 전쟁터라고 진단한 것입니다.
그에게 진정한 기술적 숭고는 이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나, '0에서 1을 만드는' 창조의 순간, 즉 미학적 의미의 단독성(Singularity)을 성취할 때 발생합니다. 칸트는 천재를 "예술에 규칙을 부여하는 재능"이라 정의했습니다. 기존 규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규칙의 제정자가 되는 존재입니다. 피터 틸은 독점 기업을 통해 시장에 새로운 규칙을 부여하려 합니다. 남들이 보지 못한 숨겨진 진리를 홀로 독점했을 때 느껴지는 그 고독하고도 압도적인 우월감, 그것이 틸이 추구하는 숭고의 본질입니다.
피터 틸에게 경쟁의 종말은 단순한 비즈니스 전략을 넘어 일종의 세속적인 기독교적 구원서사와 맞닿아 있습니다. 여기서 이해해야 할 것은 틸이 어떤 종류의 기독교인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는 통념적인 복음주의자라기보다, 스승 지라르의 인류학적 기독교 해석을 따르는 지적인 신자입니다. 지라르는 예수를 인류의 끝없는 모방 폭력의 고리를 끊어낸 존재로 보았습니다. 틸은 이 구조를 현실 세계로 가져옵니다. 즉, 종교적 구원자 대신 압도적인 기술 혁신이 인류를 파괴적인 경쟁의 굴레에서 구원하고 진정한 평화(독점 상태)에 이르게 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에게 기술 독점은 인류를 경쟁이라는 원죄로부터 구원할 메시아적 도구인 것입니다.
③ 일론 머스크(Elon Musk) - 한계를 파괴하는 '역학적 숭고'와 권력 의지

일론 머스크는 칸트가 말한 역학적 숭고(힘)를 가장 현대적으로, 그리고 가장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만들어내는 대상들은 일단 다른 빅테크들과 비교해도 물리적 크기와 힘에서 우리를 압도합니다.
지구 중력을 거스르는 거대한 로켓,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뉴럴링크, 행성을 뒤덮는 통신망. 이는 인간의 한계라고 여겨졌던 선들을 혁명적일 만큼 과감하게 넘어설 때 발생하는 에너지입니다. 그는 기존 관습을 파괴하고 다행성 종족으로의 진화를 꿈꿉니다. 이는 니체가 말한 초인(Übermensch)의 의지, 즉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하고 확장하려는 권력에의 의지(Will to Power)가 물리적인 철과 열을 만나 폭발하는 광경입니다. 우리는 스타십이 폭발하는 순간조차 그 무모한 거대함에 매혹됩니다.
칸트가 말한 숭고에는 역학적 숭고(힘) 외에도 수학적 숭고(크기)가 있습니다. 머스크의 사업은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미학을 보여줍니다.

- 스타링크(Starlink): 밤하늘을 수만 개의 인공위성으로 뒤덮는 계획은 인간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느끼던 고전적 경외감을 인간이 만든 격자망에 대한 경외감으로 치환합니다. 이는 자연적 무한함을 기술적 무한함으로 정복하려는 시도입니다.
- 뉴럴링크(Neuralink): 인간 뇌의 수억 개 뉴런을 데이터화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내면(심연)마저 수학적 계측의 대상으로 편입시킵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미학은 신비의 제거에서 오는 차가운 숭고함입니다.
Epilogue. 우리는 어떤 숭고의 신전 아래 서 있는가
빅테크 기업들이 뿜어내는 기술적 숭고는 우리에게 전율을 주는 동시에 깊은 무력감을 안깁니다. 과거의 숭고가 신이나 웅장한 자연의 영역이었다면, 지금의 숭고는 소수의 기술 철학자들이 설계한 인공물에서 비롯됩니다.
그들의 코드가 곧 법이 되고, 그들의 철학이 인류의 운영체제(OS)가 되어가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이 거대한 기술의 신전 앞에서 단순히 압도당하는 관객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그 코드 속에 숨겨진 설계자의 철학적 의도를 읽어내는 비판적 관찰자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미학적 숭고는 결국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의 이성적 힘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기술적 숭고 앞에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압도적인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직시할 수 있는 우리의 이성일지도 모릅니다.
Q1. 오늘 마주한 기술적 숭고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나요?
총 5명이 투표했습니다.
Q2. 앞으로도 이런 '기술 X 인문학/철학' 테마의 딥다이브(Deep-dive)를 원하시나요?
총 5명이 투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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