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터를 보낼 수 없어 보내는 레터, 나는 늘 너에게 미안한 마음

본래 '다시 태어나는 도시의 복합 상업 시설', 혹은 지금 또 다시 정말로 책방이 수상하다'를 이야기하려 했지만요, 그게 무엇이 되었든 결국은 시간 관리일까요. 2주 간격 발행되는 '화요 레터'의 #118호를 기존 예정 발행일인 8월 29일이 아닌, 그 다음 주 9월 5일로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2주 텀 발행에 1주 '지연 발행되는 사고'가 생긴 셈인데요, 어디까지나 저의 스케쥴 착오와 발행 주기 관리의 불찰 때문이에요. 기다려 주신 모든 분들께 사과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를 말하기 위해 사과를 드리기 위해서 메일을 보내요. 하지만 이렇게만 쓰고 '다음에 또 봐요'하는 건 좀 아니잖아요. 죄송한 맘이 더 죄송할 뿐이라서요, 얼마 전 보았던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 그의 41분 곱하기 6편 미니 드라마 버전에 대한 감상을 조금 적어봤어요. 이와이 감독은 현재 오는 10월 11일 개봉 예정인 신작 '키리에의 노래'를 기다리며 그의 홍보랄까요. 전작들(연출이나 제작했던)을 기간 한정 유튜브 내 무료 공개중이거든요. 얼마 전에는 3시간이 넘는 '립반 윙클의 신부' 감독판이 공개되었고, 지금은 영화와는 전혀 다른 편집으로 완성된 드라마 6편이 '상영중'이에요. 혹시나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강력 추천 드리고 싶어요. 맨 아래 링크, 자막 지원이 돼요.

이와이 슌지의 영화, 배속으로도 영화 보는 시절에 시대 착오일지 모르지만, 영화 예술이라는 건 본래 이랬구나...다시금 느끼게 하거든요. 그리고 더불어, 미야케 쇼의 근작과 또 한 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콜럼버스'에 관해 적었던 글, 괜찮으시다면 공유해 놓을게요. 갑작스레 지연 발행 공지 레터, 다시 한 번 사과드리며, 그거 아나요. 이제 곧 9월의 시작이에요.

👰‍♀️어느 경계의 신부 

두 시간 남짓 주어진 시간은 때로 너무 짧아 작은 희망 만을 이야기하고 떠나가지만, 이와이 감독은 그를 42분 짜리 6편의 미니 드라마로 다시 편집해, 이제야 하고 싶은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는다. 그의 신작 ‘키리에의 노래'가 개봉하는 10월 11일까지, 유튜브엔 그의 전작, 혹은 제작한 영화들을 기간 한정 무료 공개중인데, 세상에 다음이 존재해 얼마나 다행일까.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만큼 좋아하는 ‘립반 윙클의 신부'는 사실 수상한 구석이 수두룩하지만, 정리해 단순하게 요약하면 넷으로 만나고 심지어 결혼까지 하는 시절에 신부의 입장에서 바라본, 그리고 온몸으로 느껴낸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슬픈 모노 드라마이다.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쿠로키 하나가 머리에 쓴 고양이 모양의 물체, 일본 전통 혼례에 등장하는 신부의 머리 장식, 와타보우시(綿帽子). 왜 여태 몰라봤을까. 그러니까 즉, 어느 경계 위에 선 신부의 이야기

본래 극장 개봉판은 119분, 일본 개봉, 디렉터스 판은 180분, 그리고 현재 공개중인 미니 드라마 형식의 ‘립반 윙클의 신부'는 42분 곱하기 6편. 본편에 두 배가 넘는 길이에 단순히 다시 만들기가 아닌, 거의 새로 만들기에 가깝게 완성된 40*6 버전은 이렇게나 쓰이지 않은 컷들이 많았음에 일단 좀 놀라게 하고, 동시에 아픈 희망의 서사라는 건 역시나 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머뭇거림도 말과 말 사이의 빈 자리도 그리고 무엇보다 여백을 배경으로 이야기되는 영화에 필요한 건 맘을 전하기 위한 아마 절대적 침묵과 기다림의 시간일 테니까.  

남자 A와 여자가 만나고, 상수 남자가 나타나 여자 B와 만나게 하고, 이후 다시 여자 혼자 만이 남는 이야기. 이렇게 써 놓고 보면 정말 별 거 아닌 문장이지만, 수상하고 신비하고 이상하기까지한 순간들로 비로소 말이 되는 영화가 곧 이와이 슌지이다. 그의 영화엔 늘 여러 갈래의 경우의 수가 똑같이 지상에 발을 내딛고 호흡하고 있어 보는 이의 맘을 술렁이게 하지만, 조금 더 그  수상함에 귀를 기울이면 될 일이기도 하다. 애당초 결혼 시작 전부터, 그리고 하고나서도 남편 몰래 둘 사이에 벌어진 일을 세컨드 계정에 일일히 적고 있는 신부가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쿠로키 하나는 더할 나위 없이 이와이 영화의 신부가 되어있다.

이어서 영화는 그의 친구 람파넬(아야노 고가 아주 능숙하게 해낸다)에 의해 한 발짝 더욱 미궁으로 들어가는데, 맘만 먹으면 서너 개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절 더 이상 미궁스러울 건 애지감치 없을지도 모른다. 가족이 아니면서 가족이 되고 정작 날 낳아준 가족은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 알지 못하고 어차피 실감하고 내 현실에서 작동하는 관계라는 건 인터넷 계정으로 겨우 연결될 수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신부 나나미가 아닌 그의 가짜 언니이자 두 명의 신부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이야기 후반에서 영화는 드디어 하고 싶었던 말을 어차피 가짜일지 모르지만 진짜일지도 모를 그 말을 공유하는 눈물 속에 흘려보낸다. ‘배우가 아니었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몰라.’ 내가 아니었으면 난 아무 것도 아니고, 너 역시 너가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남은 건 그곳에 두고 온 어느 경계 위의 신부. 모든 걸 부정하고 모른 척 진짜인 것처럼 살아갈 때 비로소 태어나는 자유로운 자아의 세계가 있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오래 길게 두고 보아야 보이는 영화. 41분 곱하기 6편의 ‘립반 윙클의 신부'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 너에게 나는 늘, 무력하다 

'도리어 영화가 주목하는 건, 어쩌다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의, 왜인지 함께 존재하는 공간의, 우연히 보았거나 마주하게 된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의 지금에의 관찰에 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늘상 그렇게 있는 것들의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을 느긋하게 그리고 성실히 바라본다. 가령, 체육관 창가에 비친 해와 날리는 먼지를 괜시리 응시하는 정(静)의 머무름이랄지, 줄넘기 소리가 들리는 거리에 가로등 불빛이 켜지고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하는 어떤 움직임의 동(動)적 꿈틀거림이랄지, 무엇보다 영화엔 일상의 순간과 순간을 실은 연결하고 있는, 이를테면 잉여 시간에의 묘사가 많다. 줄거리상 한 줄도 되지 않을 대목들이 여기선 영화적 현실이 되어 존재하지 않던 시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물론 이를 바탕으로 미야케의 영화가 ‘듣기’가 아닌 ‘보기의 영화’로 전환되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는 있는 건 아니다. 애당초 보기와 듣기를 구분해 사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관계의 시점에서 미야케의 영화는 들었거나 보았던 것이 아닌 보지 못했거나 소리로나마 볼 수 있었던 것, 즉 소외되어 가는 것들에 보다 더 가까이서 침습한다. 영화의 초반 샌드백 펀치 소리 만으로 체육관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듣기는 보기를 대신하고, 동생이 여자 친구와 거실에서 이야기하며 음악을 들어도 홀로 방 안에 앉아 아무 방해 받지 않고 일기를 쓸 수 있는 것처럼 듣지 못해 구해지는 시간은 보기로 구원되었다.

이를테면 사람과 사람 사이, 타자와의 관계에서 농인으로서의 케이코는 별로 열등하지가 않다. 소위 청력 장애자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환경음은 소리를 높이기 마련이지만, 반대로 관객을 주인공과 동일화 하기 위해 듣기 어려운 환경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미야케는 이 둘 다 택하지 않았고 오히려 우회하며 적절한 소통을 길어낸다. 주변 환경에 보다 더 집중하면서, 별 거 아닌 배경의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그들이 숨쉬는 지근거리 어딘가에 모두를 데려다 놓는 것이다.' 

 🏗 Being there, 그냥 그렇게 있는 것 

‘건축에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나요?’

'길을 걸으며 카시아는 진에게 그렇게 묻는다. 그리고 이건 아마 진이 카시아에게 하고 싶었던 물음이기도 하다. 진과 카산드라는 우연히 마주친 뒤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아빠를 부정하며 동시에 건축으로부터도 멀어졌던 진에게 마을의 건축을 안내하며 기억과 시간과 마음 속 상처, 오늘과 내가 아닌 너, 그리고 가지 않은 길 사이의 길을 걷는다. 자연스레 1920년대 만들어진 마을의 오랜 길을 산책하고, 엘리엘 사리넨의 시계 탑을 지나 이오 민 베이, 리챠드 마이어 등 근대 건축 거장들의 작품이 그들과 함께 걷는다. 

그러길 며칠 째 작은 개울을 가로지르는 교량 건축에 앞에 다달았을 때, 둘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건축에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나요?’ 대부분 콜럼비아의 건축 이야기만을 할 뿐 각자에 대해 별로 털어놓지 않았던 둘이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았고, 어느 상징의 건축 앞에 이르러 조금 더 스스로를 드러내려 한다. 매워지지 않은 둘 사이 거리만큼 충분히 솔직하지는 못해도, 건축이 사람을 치유해준다고, 슬픔을 치료하는 힘을 갖고있다고 자신있게 믿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일어나려는 둘 사이의 믿음을  우린 확인할 수 있다. 진과 카산드라의 산책, 그들이 가던 길을 멈춰 세운 건, 처음으로 건축의 치유를 믿었던 건축가 제임스 폴셱의 1972년 건축 ‘콜럼버스 지역 정신과 병동’이었으니까. 마르케스 가르시아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보다 진실한 확신이 리얼하게 그곳에 그렇게 있다.' 

🙇‍♂️ 다음, 화요일 9월의 5일에 8월 29일에서 1주일 지연된, '야마테센의 뉴스 배달부' #117호가 발행됩니다.

📬 그리고 현재 '모두 오픈' 중인 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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