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오해의 영화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노파심

🙇‍♂️레터가 하루 늦게 발행되는 점, 사과드립니다. 개인적 사정에 의해 지연 발송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한 말씀과 함께,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구독자님, 마지막으로 본 지브리, 언제였던가요. 지난 4월부터 6월 19일까지 교토에서 열렸던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로 보는 지브리, '스즈키 토시오와 지브리'가 지난 29일 도쿄에 도착, 텐노즈(天王洲)에 위치한 아트 창고 '테라다 창고'에서 다시 한 번 개막을 했는데요. 이 날 행사를 위해 등장한 스즈키 토시오 씨의 말들에, 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어요. 먼저 전시를 기획하게 된 이유는 미니멀리즘의 정반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가게 전단지까지 모았다 버리지 못하는 성미 탓. 빨리 버리라는 엄마 아빠 말을 버텨냈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시대 서적을 좋아하는 타카하타 이사오 씨, 아직도 월 4~5권의 아동서를 읽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달리, '난독(乱読)'을 하는 독서 습관에 8천 권이 넘는, 장르를 망라하는 책들을 모을 수 있었다 하는데요.

그렇게 전시는 지브리 세계와 더불어 그를 반세기 넘게 만들어온 스즈키 토시오란 인간의 창을 열고 들어가는 식으로 설계됐어요. 그런데 제가 가장 맘에 걸렸던 말.  "이제는 가끔씩 밖에 만들지 않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 밖에 없다. 지브리가 잊혀지지 않기 위한 제작도, 조금은 해요."  스즈키 씨는 웃음을 지었지만, 그게 쓴 웃음이란 걸 우린 다 느껴요. 미야자키 하야오 씨의 아들 고로 씨는 지난 5월, 나라 현에 '지브리 파크' 공사 현장을 직접 공개, 설명하기도 했지만,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내일', 어디에 있나요. 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사는 법. 어느 영화의 세월. 문득, 우리 곁에 오늘을 함께했던 '영화의 노후'를 생각해봤어요.👨‍🦳👩‍🦳

얼마 전 배우 송강호에게 칸느를 안겨준 '브로커'의 고레에다 감독은, 올해로 환갑을 맞이했다죠? 오늘의 주제,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일본 영화, 혹은 인생이에요.

 🌥️ '새로움'이란 늘 어색하기 마련이에요, 브로커 

'베이비 박스' 앞에 버려진 아이룰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상한 로드 트립. 그에 얽힌 돈과 선의의 앙상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 보셨나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일본 감독이 연출하는 한국 영화라는 점에서, 송강호와 강동원, 그리고 아이유와 배두나 까지 출연한다는 호화 캐스팅에서, 그도 모자라 올 한국 로케이션, 더불어 75회 칸느 영화제 남우 주연상 수상(송강호)이라는 낭보까지, 아마도 가장 이슈가 될 영화였는데요. 영화가 제작될 단계부터 개인적으로도 매우 궁금했던 작품이에요. 그런데 막상, 국내에서 영화가 공개된 6월 8일, 설마설마 별점 테러가 벌어졌어요. 현재 네이버 관객 평점은 6.7. 별 하나 둘이 어렵지 않게 보여요.

고레에다 감독이라면 '아무도 모른다'를 시작으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정말로 벌어질지 몰라 기적' 그리고 칸느 황금 종려상 수상작인 '어느 가족'까지,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작가이잖아요. 그의 잔잔하고 따뜻한 홈드라마는 '고레에다 풍'이란 말까지 만들어내며, 일본 영화의 한 장을 수식하는 단어가 되기도 했는데요. 한국 대표 배우들까지 함께한 이번 영화에 설마하니 역대 최악의 평이 나와버렸어요. 개봉 첫주야 칸느발 화제로 금새 백만 관객을 돌파했지만, 이후 4주가 지난 현재 관객 성적은 125만 정도에요.

하지만 그와 반대로, 일본 내에서의 반응은 이전 고레에다 감독 영화와 별 다를 바가 없어요. 한국말로 만들어진 탓에 특유의 정서가 사라진 면은 있지만, 평균 평점 별 다섯에 넷 정도거든요. 물론 자국 감독의 신작이지만 어김없이 한국 영화. 이건, 무슨 차이일까요. 물론 그저 이번 영화가 고레에다의 예전같지 않은, 그보다 못한 범작이라서 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 그래서일까요. 사실 이와 같은 현상은 지난 '어느 가족' 때에도 다르지 않았는데요. 원제 '좀도둑 가족(万引き家族)'을 다소 추상적인 '어느 가족'으로 수정해 개봉한 한국에서 '어느 가족'은 관객 동원 고작 17만이었어요. 하지만 칸느 대상까지 탄 이 영화는 일본에서 개봉 1주일만에 백만을 넘겼는데요. 어쩌면 '좀도둑 가족'과 '어느 가족' 사이의 차이.

당시 전 가족에 대한 사회의 '관용의 척도'가 이와 같은 차이를 만들었다 느꼈는데요. '좀도둑'이란 말엔 어딘가 조금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실제 일본에선 그렇게 받아들여진 분위기인데요(다만 한국에서는 CJ가 배급을 하면서 '그 어딘가 조금도'의 느낌조차 지워졌어요. 물론 개인적 생각이지만요). 하지만 이번 '브로커'가 이야기하는 건, 좀 더 다른 영역, 영화 외적인 부분의 질문. 한국 배우와 일본 감독이 만나 함께 영화를 만드는 현장에서, 일본어를 쓰는 사람이 한국말을 하는 사람의 영화를 만들 때 벌어지는, 일종의 '영화는 통역이 되나요?' 말하자면 '말의 차이는 영화란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란 질문을 받은 느낌이 들어버렸거든요. 봉준호 감독이 남겼던 명언 '2cm의 장벽'이란 언어의 벽은 분명 존재했던 게 아닐까 싶은.

악평의 다수를 이루는 건, '대사를 듣기 어렵다', '감정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그리고 미스 캐스팅 등. 하지만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사람이 함께 만든 영화에서 대사가 잘 들리고, 밸런스도 잘 갖춰져 있는 게 어쩌면 더 부자연스러운 일 아닐까요. 다르기에 이상한 법. 서로 같지 않기에 어색한 일. 사실 저 역시 영화를 보며 여러 대목에서 어색함을 느꼈는데요, '브로커'는 피 하나 섞이지 않은 이들이 어쩌다, 어쩌면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 협업이란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며 하나에 하나를 더해 2를 만들어내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란 다양성의 공존을 바탕으로 우뚝 태어나는 다소 비현실의 현실이곤 해요. 그렇게 어색함이란 때로 영화적으로 리얼하달까요. 

특히나 이번 영화는 최근(역설적으로 코로나 이후) 보다 활발해지는 한국과 일본 사이 영화적 교류의 정점으로 보이고, 코로나로 인해 한 차례 지각 변동을 겪은 영화가 앞으로의 '영화 만들기'를 모색하기에 매우 중요한 에피소드가 된다고도 느껴요. 영화 속 상현과 동수와 소영과 수진과 해진이 아기 우성의 내일을 기도하듯이, 한국과 일본의 영화인들이 모여 앞으로의 내일을 제안한 그림이랄까요. '브로커'는 분명, 한국과 일본의 '내일의 영화'를 이야기하는 첫 챕터가 될지 모르겠어요. 이번 영화 직후, 고레에다 감독은 '더 이상 정신력 만으로는 불가능, 새로움과의 만남이 필요해요'라 말했어요.

 📸 '송강호'라는 시작점, 영화가 데려다 놓은 '내일' 

그런데 굳이, 고레에다 감독은 왜 한국 영화를 만들었을까요. 그 정도의 포지션이라면 차기작 제작에 어려움을 겪을 이름은 아니잖아요. 심지어 그는 일본 내에서도 비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해외와 국내 기복없이 늘 좋은 평을 받아오는 작가인데요. 게다가 이번 '브로커'의 경우, 한국과 일본의 영화사가 힘을 모은 합작의 형태도 아니고, 단순히 정말로 전적으로 일본 감독이 한국 영화를 연출한, 달리 말하면 한국 영화판에 일본 감독이 데뷔한 그림, 그 자체의 예에요. 배우는 물론 스태프도 대부분 한국 영화인이고, 고레에다 감독을 제하면 일본 국적의 스태프는 통역과 코디네이터 정도를 제외하면 없었다 해요. 무엇보다 영화의 제작사가 '그놈 목소리'나 '마스터', '국가 부도의 날' 등을 제작해 온 이유진 대표의 '영화사 집.' 하지만 역으로 영화를 제작할 때, 그 시작은 무엇일까요.

영화를 만든다고 할 때 시작점이 되는 게 설마, '영화의 국적'일까요. 고레에다 감독은 아주 오래 전 '송강호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그 시작이라 말했는데요, 이는 보다 이전 2019년 그가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들었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무렵 한 인터뷰에서 고레에다는 '쥴리엣 비노쉬와의 인연이 이번 작품으로 이어졌다'고 말했거든요. 그저 살고있는 나라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를 뿐,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는 서로에 대한 호감,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그저 작용할 뿐, 그 공식은 변하지 않는다 느껴요. 고레에다와 송강호, 강동원과 히로카즈 감독. 어울리나요?

이후 고레에다 감독은 코로나로 이동이 막혀버린 시기, 집에서 OTT를 보며 맘에 드는 한국 배우들을 체크했다 하는데요. 그렇게 제안을 했고 '모두가 나오고 싶어요'라 화답한 게, 이번 캐스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에요. 그런데 여전히 궁금한 점. 한일 스태프가 뒤섞인 현장도 아닌, 한국 배우, 한국 카메라 감독, 한국 조명 스태프, 한국 연출부가 가득한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인 사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떻게 영화를 조율할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한국과 일본은 현장의 분위기나 제작 방식이 서로 다르거든요. 한국에서 영화 한 편을 만들 때 (장편 상업 영화 기준) 촬영 기간은 대략 두 달 정도가 소요되는데, 일본의 경우 그의 절반 정도. 매우 타이트해요.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올해로 '환갑'을 맞은 그는 '익숙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부러 낯선 환경에 나설 때, 영화가 가진 새로운 가능성'이 보인다고 이야기해요.

 📝 말문이 막혔을 때 필요한 건, 또 한 번의 대화 

'브로커'에 대한 소식이 처음 들려왔을 때, 버려진 아이를 둘러싼 로드 무비란 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든 걱정 거리. 그건 바로 '어느 가족'의 동어 반복은 아닐까, 였어요. 가족이란 테마, '아무도 없다'에서 시작된 아이에 대한 서사는 고레에다 영화에 오랫동안 작동하는 축이지만, 국적만 바꾸어 자리만 옮겨 또 하나의 '어느 가족'이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부러, 애써 자신을 전과 다른 환경에 놓아둠으로서, 그 '자기 반복'의 위험을 넘어선 느낌인데요. '브로커'에 대해 국내에서 다수의 악평이 쏟아졌어도, 그 중 '어느 가족'의 반복이란 내용이 없었던 것 역시, 그의 이런 새로움에 대한 도전의 덕택은 아닐까요. 일본 내 개봉 직후 NHK 뉴스 방송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난 아직 성장할 수 있다', 이런 말을 했어요. 

60歳は普通なら定年。

でも、僕はまだ成長できる. 

그런데 또 궁금한 것. 그럼, 고레에다 감독은 배우들과 어떻게 소통을 했을까요. 대본이야 번역이나 통역을 동행해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사실 영화란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더욱 크기도 하거든요. '봉테일'이라 불리는 봉준호 감독조차 현장에서의 화확 작용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고레에다 감독이 떠올린 건,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도리어 더욱 말을 이용하다'였어요. "의사를 전달한달지, 연출의 의도를 전한달지. 디테일이나 뉘앙스, 촬영의 디테일과 같은 건, 역으로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말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이 있어서...그런 것들은 항상 최대한 세세하게 편지를 쓰거나, 등장 인물의 프로필을 만들곤 했어요." 바로 편지인데요.

'이 인물은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자랐을까'와 같이 평소 현장에서 별로 하지 않는 것들, 대본에도 적혀있지 않는 '내부의 이야기'를, 일일이 적어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에게 전달했다 해요. 말하자면 영화를 완성시킨 영화 속 또 하나의 매체 '편지'가 있었다는 이야기. 마치 서로 다른 너와 내가 살아가는 세계에,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같지 않나요. '브로커'는 아이는 물론 극중 너와 내가 서로를 알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에 더해 고레에다 감독은 결말을 열어놓고 시작한 이번 영화에서 그 엔딩을 전해준 건 송강호 씨의 한 인터뷰였다고 말하거든요. '유사 가족'이란 테마의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의 전개에 방황을 하던 시점, 송강호 씨가 '이번 영화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라 말하는 걸 보고, 영화의 본질이 보였다고 해요. 함께 걷는 길에서 내가 보지 못한 걸 네가 알아봐 주는 것. 어쩌면 그런 게, 영화 만들기에요.  

 👨‍🔧 취미같은 일본 영화? '현실의 리얼리티'를 입히다 

구독자님, 이런 이야기 혹시 들어봤나요. 고레에다 감독이 송강호 배우를 찍고싶다는 맘에 완성된 '브로커'라 하지만, 단지 그것만이 일본 감독 연출의 한국 영화가 태어나게 한 이유였을까요. 근래 일본에선 '일본 영화의 갈라파고스(Galápagos )化가 점점 더 심각해진다'는 우려 섞인 이야기가 들리는데요. '갈라파고스화'란, 일본의 경제나 서비스, 경제 관행 등이 고도로 진화했음에도 외국에서의 진입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탓에, 세계 기준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현상을 가리켜요. 요즘 자주 들려오는 '일본의 선진국으로부터의 이탈(이라기 보다 낙오)'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의 결과에요. 그리고, 일본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그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2008년 이후, 일본의 영화 흥행 수입은 매년 전년 대비 증가해 코로나 직전 2019년엔 2611억엔,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영화를 만들고 있는 이들의 처우가 형편 없거든요. 2020년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영화 제작 현장의 실태 조사'에 의하면, 프리랜서로 고용된 현장 스태프 중 연간 수입이 300만엔 미만인 이들이 무려 60%를 넘었어요. 심지어 그와 동일한 숫자의 사람들이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지않고 일을 한다는 사실 또한 드러났는데요. 아마도 10여 년 전, 한국 영화가 현장 스태프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뒤늦게 표준 계약서를 도입하기 시작했던 일이 떠올라요. 그러니까 겉으로는 화려해보이는 영화,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는 듯한 영화 산업이지만, 정작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벌어 먹고 사는 일이 상당히 곤란한 게 실상이라는 것. 그게 바로 지금의 일본 영화에요.

하지만 일본 영화라면 이미 오래 전, 우리보다 빨리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쿠로사와 아키라, '라쇼몽' 1952년)했고, 칸느나 베를린, 베니스 역시 보다 먼저 수상 대열에 올라섰는데요.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만 걸까요. 달리 말해, 왜 여태 영화가 아닌 '영화의 현실'을 돌(아)보지 않았을까요. 무엇보다 정말 놀라운 건, 일본에서 영화계를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단체가 지금까지 단 하나도 없단 사실이에요. 한국엔 KOFIC, 프랑스는 그 모델이 되었던 CNC, 미국은 각 주마다 CF, 영국은 BFI와 이탈리아의 MIC. 그리고 일본은...그만큼 지원금의 액수 역시 큰 차이가 나는데요. 그 결과, 일본의 영화 현장은 무엇보다 '타이트'한 게 특징이 되어버렸어요. 실제로 한국에서 영화 만들기를 경험한 고레에다 씨는 '일단 휴일이 압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말을 했어요.

앞서 한국 영화의 촬영 기간이 두 달 남짓, 일본은 한 달이라 했는데요, 그 조차 한국은 쉬는 날을 포함해 촬영 일수는 45일('브로커')이지만, 일본은 쉬지 않고 '열일'해 50일('어느 가족')이에요. 그리고 이는 근래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외치면서도 정작 영화 현장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현 일본 영화계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요. 그리고 그건, '현장 우선 주의'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고레에다 감독은 지적해요. 

 🎬 오스카가 아닌, 지속 가능의 영화를 위한 액션 

하지만 코로나가 시작되고 우린 어떤 시간을 보냈던가요. 바로 반성, 지난 일상을 돌아보고 과오를 깨닫는 날들을 새삼 마주했는데요. 지난 6월 14일, 일본에선 '앞으로의 영화 만들기'를 보다 좋게 하기 위한 위원회가 발족했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동세대 감독인 스와 노부히로 등 7명의 감독이 마음을 모았고 일본판 CNC를 목표로 영화 지원 단체 'action4cinema'의 시작을 알렸어요. 너무나 뒤늦게 영화계를 지원하는 단체가 드디어 생겨난 셈인데요. 이게 가능했던 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여지없이 코로나가 불러온 영화 시장의 한파에요.

일본 내 '긴급사태선언'이 반복되고 작은 영화관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다 못해 폐업을 하고, 극장가의 사람들은 점점 더 OTT 안방 극장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위기감에 이미 지난 4월 일본에선 고레에다 감독을 비롯 하마구치 류스케, 츠카모토 신야 감독 등이 힘을 모아 'SAVE the CINEMA.'란 단체를 설립하기도 했었거든요. 가장 큰 목적은 '극장을 지키다.' 크라운드 펀딩을 통해 1엔 넘는 지원금이 모아졌어요. 그리고 이번엔 보다 넓은 범위에서 영화 생태계 전체를 돌본다는 취지를 가져요. 

기존의 문화청이 지원하는 젊은 인재 양성이나 해외 진출 서포트를 포함, 극장 배급 사업이나 비디어 사업자 등과도 연계해 영화에 특화된 포괄적 지원을 지향해하는데요. CNC를 모델로 만들어진 한국의 KOFIC을 참조한다고도 밝혔어요. 그에 더불어 코로나 여파로 이제야 알게 된, 드러난 극장가의 여러 폐해들. 장시간 저임금 노동이나 갑질이나 성폭력 피해 등, 영화계 내부에 산재한 고질적 문제 역시 이를 중심으로 해결해갈 계획이에요. 👨‍🦳나이 60   아직 더 할 일이 있다고 말했던 고레에다 씨. 그건 곧 일본 영화의 내일을 위함이었을까요. 그는 7, 80년 대 황금기의 일본 영화를 이어가는 것이 아닌, 바로 오늘의 영화를 계속 만들어가는 것, 그럴 수 있는 지속적 환경이 중요하다 이야기했어요. 

 🌗 유랑하는 일본 영화, 고레에다의 꿈 

"60을 맞아 한국 영화 데뷔, 그렇게 다시 한 걸음. 자국 안에 갇혀있는 일본 영화의 보다 건강한 영화 제작을 위한 '현장 밖에서의 액션.' 그렇게 또 한 번의 내일."

근래 고레에다 감독의 이름은 작품 이야기보다 업계, 산업 뉴스에서 보는 일이 잦아졌는데요. 애초 다큐멘터리 연출가 출신인 점을 고려하면 자연스런 움직임인가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건 그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반평생을 현장에서 보낸 이로서 예순의 고개의 문턱 앞에 문득 떠올리는 내일에 대한 다짐처럼 느껴져요. 최근의 일본 영화라면 엔터테인먼트적 대작이거나 사회성이 가미된 인디즈 필름, 양분화가 심해지지만, 종래의 재팬 시네마란 구로사와 아키라나 그의 조감독 출신 노무라 요시타로, 그리고 일본에서 구로사와에 이어 두 번째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지옥문', 1955)을 수상했던 기누가사 테이노스케 등 대작이면서도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들이 주류였거든요.

이후에도 쿠로사와 기요시와 이와이 슌지나 미이케 타카시, 이상일 감독 등 장르성을 겸비한 아트 영화들이 그 맥락을 이었는데요. 어느새, 아마도 20년 전 TV가 영화 제작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영화 제작 위원회'란 게 만들어진 이래 점점 더 영화가 드라마 무비가 되어버리는 일이 '주류'가 되어버렸어요. 그러니까 '굳이 왜 영화?' 싶은 작품들이 많아졌는데요. 이건 곧 일본 영화가 자국의 시장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 가장 큰 함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말하자면 영화 산업을 움직이는 게 TV의 거대한 자금력인 시장에서 영화다운 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 지난 5월 오랜만에 신작 '유랑하는 달(流浪の月)'을 개봉한 이상일 감독. 마츠자카 토오리와 히로세 스즈가 출연하는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지금 가장 궁금한데요, 그 역시 지금의 일본 영화에 대해 걱정 어린 이야기를 했어요. 

벌써 오래 전, 기억나나요? 한 때 조폭 소재의 영화들이 히트하며 줄곧 조폭들이 스크린을 도배하던 아마도 20년 전. 영화 역시 어쩔 수 없이 시장 안의 작품(상품)인지라, 시장성은과는 무시하지 못하는 운명일텐데요. 하지만 이후 그에 대한 반성이 이뤄지며 자체적으로 발란스를 찾아갔던 것처럼 영화는 분명 영화, 그 본연의 자리로 돌아온다고 느껴요. 일본에서도 근래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신문 기자'와 같은 작품이 흥행은 물론 아카데미에서 상을 휩쓰는 것과 같이, 우리가 영화에서 기대하는 걸 우린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분명한 건, 영화가 시작하고 움직이는 건, 돈이 아닌 아이디어, 함께 만들고 싶다는 순수한 창작욕에서일 거에요. 나이 예순을 맞아, 고레에다 감독은 '지금까지 만족을 해본 적은 단 한 순간도 없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영화, 그건 곧 우리 인생일까요.

 🍿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영화 

구독자님, '브로커' 보셨나요. 현재 네이버 기준 관객수 125만에 얼마 전부터는 올레에도 등장했으니, 그보다 좀 더 많을까요. 고레에다 감독이 찍은 한국 영화, 남자 배우 최초 깐느 주연상을 수상한 영화로는 조금 실망스러운 숫자일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영화를 말함에 있어 그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상하게도 코로나가 시작하고 오히려 한국과 일본의 영화적 교류는 결실을맺는 기분인데요. 지난 해에는 이시이 유야 감독이 오다기리 죠, 이케마츠 소스케를 데리고 한국에 건너와 한국 스태프들과 함께 아마도 가장 괴상할 합작 영화 '당신은 믿지않겠지만'을 만들었어요. 그 역시 한국말과 일본어가 다른 만큼 다소의 어색함과 익숙치 않은 리듬이 공존하는 영화였는데요.

그런 탓인지 흥행도 별로였어요. 하지만 어쩌면 그런 게 서로 다름이 공존하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의 시간은 아닐까요. 너무나 익숙한 말, 장면, 그리고 영화. 그곳에 새로운 관계의 시작은 별로 시작되지 않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두 영화 모두 사랑스럽고 충분한 의미를 품고 이곳에 도착한 작품이라 생각하는데요. 무엇보다 다름을, 알지 못함을 부러 애써 경험하려 하는 것. 그건 분명 너를 알아감과 동시에 나를 한 걸음 더 성장시키는 일일 거에요. 원래 영화에 대한 영화 만든 사람의 코멘트, 사족인 경우가 더욱 많지만, 이번 만큼은 꼭 되돌아보고 싶은 말이라 생각했어요. 아는 걸 굳이 한 번 더 이야기하는 것. 그곳엔 보지 못한 의미가 숨쉬고 있어요.

📫오는 금요일, 7월 15일엔 '밤에 보는 뉴스 '야후 재팬' 읽어드립니다' #53호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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