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이 없는 하루도 때로는 괜찮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를 위한 도시 개발'

구독자님, 아침에 일어나 밤에 다시 잠에 들기까지 우리의 몸은 얼마나 휴식 상태에 놓여 있을까요. 어느덧 5월도 마지막 주를 향해가는 지금 오늘 라디오에선 우리에겐 주말 전의 금요일이, 그리고 6월이 되기전 5월이 있다는 모 시구절을 들었는데요. 사실 금요일이야 주말 D-1일이니 그렇다 해도 5월이랑 6월이 뭐 그리 다르다고 이런 말에 맘이 심쿵하는걸까 싶어지기도 해요. 다만, 1년을 반으로 싹뚝 잘라 지금은 그 어느 중간 즈음에 있다는 이야기이고, 이건 곧 벌써 절반이나 살아왔다는 말이기도 하잖아요. 무언가 이런 당혹스러운 성취감 또 무얼까 싶어지는데, 세상엔 분명 의미를 가진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들이 더 많아, 도리어 아무것도 아닌 날들의 가치가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 미국 뉴욕의 앤디 워홀 미술관에서는 팝아트의 인기 스타 KAWS와 현대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작품을 교차로 전시하는 기획이 진시작되었거든요. 여기에 '유니클로'가 메인 프레젠팅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아마도 멀지 않아 또 하나의 아트한 티셔츠라 발매되는 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해요.

앤디와 KAWS, 별 닮은 것도 없어보이지만 시대를 한 발짝 앞서 새로움의 미학을 시도했다는 점에서는, 얼추 연상이 되지 않는 것도 같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어떤 의미란 역시나 아무것도 아닌 것들끼리의 괜한 매칭, 만남, 혹은 떠올림이거나 그냥 한 번 누워본 방 천장에 비친 저녁 무렵 노을빛 그림자같은 건 아닐까요. 돌이켜보니 이번 레터가 무려 20일만이더라고요. 너무나 죄송한 마음에 무어라 시작해야할까 궁리를 하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보았는데요. 아무래도 달력엔 빨간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압도적으로 많고, 별 거 없이 사는 게 가장 잘 사는 거라 이야기할 정도로 필요한 건 별 탈 없음에 대한 별 탈 없는 마음가짐이란 생각도 들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사실 5월병 아니야 싶었을 정도의 근 며칠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을 통해 가장 평범한, 너무나 별 거 없어 알게되는 편안함의 5월을 생각해봤어요. 구독자님, 너무 길게 늘어진 레터 스케쥴 깊이 사과 드리며, 아마 조만간 간소한 정비 후 '다시 시작' 버튼을 눌려보려 해요. 1년이 한참 지나서의 시작점, 어쩌면 조금 더 설레지 않을까요.

 👬 '사람-자연'을 닮은 건축의 시작, 히라타 아키히로 

해외 여행이 다시 기지개를 켜며 함께 사는 글로벌 시대를 만끽하는 요즘, 반면 그로 인한 불편함의 이야기도 많이 들리는데요. 얼마 전 교토에서는 거리의 쓰레기 문제로 드디어 '관광객 오지 말아주세요'를 공식적으로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도입되려고도 해요. 더불어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 깨우친 지근 거리 생활권의 가치는 각자의 일상을 지키고자 하는, 일견 보이지 않는 장막을 치게하는 듯한 기분도 들거든요. 얼마 전 하라쥬쿠의 상업 시설 '하라카도' 지하에 오픈한 코엔지의 약 100년 센토 '코스기유' 2호점은 오픈 한 달 간은 하라쥬쿠에 살거나, 에서 일하는 사람에 한해 사용을 허하기도 했어요. 물론 그에는 나름의 이유가 뒷받침되어 있기는 했어도, 함께 살아간다는 인류 역사의 대명제,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반면, 나무 곁에 창을 낸 건지 창 곁에 풀들이 자라는지, 그래서 사람이 머무는 건 건물 내부인지 아니면 경계인지 애매모호한 그림, 마치 숲 안에 건물이 둥지를 튼 것만 같은 애티튜드의 시작. 오는 7월부터 도쿄 네리마구의 '네리마구립 미술관(練馬区立美術館)'에서는 건축가 히라타 아키히로의 전시가 열려요. 제목이 '인간의 물결이 일어날 때(人間の波打ちぎわ).' 어딘가 이 만으로도 앞서 이야기한 보이지 않는 장막을 거둬내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히라타 씨는 저희 레터에서도 여러 번, 가장 가깝게는 지난 레터의 하라쥬쿠 역사 재개발을 이 분이 맡았고, 방사형의 불규칙한 직선으로 구성되는 '하라카도' 역시 히라타 씨의 작품이에요. 그에 더해 도심형 캡슐 호텔 '9아워즈'의 아카사카 지점을 비롯 근래 유독 자주 등장하는 건축가이기도 하거든요. 이전까지 저희 레터에서는 지금의 도쿄를 이야기하며 건축가 쿠마 켄고 씨를 가장 많이 언급한 것 같은데, 쿠마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받아들이며 인간스러움을 구축하려 한다면, 히라타 씨는 그야말로 경계, 인간과 자연 뿐 아니라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무수의 경계들을 무화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둥지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러니까 한 마디로 여기와 저기, 너와 나, 이것과 저것이 자유롭게 뒤엉킨 형상일 텐데요. 그래서 히라타 씨는 스스로 '카라마리시로(からまりしろ)'란 조어를 만들어 자신의 건축을 설명하기도 했어요. 

말이 좀 어려울까요. 다만, '카라마리시로'를 '카라마루(絡まる, 엮이다)와 '시로(しろ)'로 나누어 보면 곧 '여지(余地)', 곧 남아있는 자리를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령, 생선 알이 콘부에 카라마루, 또는 콘부가 해저의 울퉁불퉁한 바위에 카라마루, 그렇다면 이 바위는 콘부에게 '카라마리시로'가 되고, 콘부는 생선 알 입장에서 '카라마리시로'가 되는 꼴이랄까요. 즉, 확실한 건 어느 하나 단독으로 온전하게 자립하지 않는 게 바로 히라타 씨의 건축이에요. 그래서 그가 만든 건물들을 보면 하나같이 복잡하다, 하지만 묘하게 편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거든요. 그리고 그건 아마 본래 자연이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여기와 저기를 나누는 구획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도 같아요. 그리고 히라타 씨는 이를 단순히 공간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이는 인간 세계 뿐 아니라 식물, 동물, 서로 다른 시공간의 문화 등을 모두 아우르는 광의(広義)로서의 생명체와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시도이다'라고도 했어요. 그러니까 어렵게 말하고 힘들게 이해해 보있지만 이건 곧 '함께 어울려 살다'를 다시금 잊지않기 위한, 아마도 미래에 보다 유익할 생활 환경을 만들어가는 도전일 거에요.

그리고 이번 '네리마 구립 미술관' 역시 히라타 씨가 리뉴얼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히라타 씨의 이 잉여적 건축법, 쿠마 씨의 신축이 아닌 리노베이션의 건축과 일견 비슷하게도 '카라마루', 어울리나요.

 👬 일만 하는 도시 개발의 난점, '앉을 의자가 없다' 

구독자님, 그런데 잉여. 잉여라고 하면 왜인지 남아도는 것, 남아 쓸모 없는 것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돼요. 하지만 며칠 전 저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어김없이 '이 사이 팔걸이의 주인은 누군인가'란 질문과 마주하고 말았는데요. 대부분 짝수로, 혹은 홀수로 맞춰진 좌석이라 해도 사이 자리에선 여지없이 옆 사람과의 팔이 부딪히고 마는 그 어떤 '긴장의 존'이 만들어지고 마는데요. 일일히 왼쪽부터 혹은 오른쪽부터 확인해볼 수도 없고, 개인적으로는 제가 한 쪽 팔을 치우고 말지만,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혹은 곁에 있음으로 인해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팔걸이 또한 일종의 '잉여'가 아닐까 싶어져요. 달리 말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 거리감에 따라 다수의 '잉여 거리'가 살아있다는 셈일텐데요. 그런데 이러한 '잉여 존'의 문제, 어쩌면 도시 개발에 유효한 키워드가 되어줄까요. 근래 도쿄에선, 특히나 재개발이 한창인 요즘 그로인해 점점 거리의 잉여가 사라진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하거든요. 얼마 전 여성 주간지 ''는 '재개발로 하릴 없이 머물 수 있는 장소가 격감...시부야에서 쫓겨나고 있는 젊은이들'이란 제목의 기사를 발행하기도 했어요. 그건 즉, 현재의 도시 개발이 쓸모와 효율에 쫓아 그렇지 않은 것들을 지워내는 과정이라 읽히기도 하잖아요.

그도 그럴 것이 지난 4월 17일에 개관한 '하라카도'를 비롯, 올 여름에는 '시부야 사쿠라 스테이지'의 전체 오픈, 시간을 거슬러 보면 2018년 '시부야 스트림'과 '이듬해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 그리고 2020년에는 '미야시타 파크'가 있었어요. 이렇게나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빌딩이 늘어선다는 건, 곧 그로부터 이익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쓸모를 갖지 않는 것들을 자연스레 지워내기 마련이에요. 개인적으로 '미야시타 파크'는 공원과 상업 시설, 그리고 주거 공간의 일체화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뤄낸 케이스라 생각하지만, 전체적인 시부야 재개발 'Greater SHIBUYA'의 그림을 보면, 앞으로의 도시 점점 더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건 아닐까 싶어져요.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도시의 기능이란 효율성, 편리를 찾는 거 당연지사이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프렌차이즈 연구가이자 작가인 타니가시라 카즈키 씨는 도시가 점점 개성을 잃고 편리한 거리로 변해가는 가장 큰 이유로 '벤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현상에 주목해요.

그러고 보면, 누군가를 만나기까지 약 10분,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혹은 머리 예약을 해놓고 그 시간까지 30분쯤 떠버려 괜히 원치않은 '아아' 사먹은 적 다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사실 지금까지의 도시 개발이라면 어김없이 따라붙는 게 '역앞 광장'과 같은 장소였거든요. 특히나 일본의 경우 메이지 이후 미국의 '광장'을 받아들이며 국가가 앞장서 주도적으로 마을 곳곳에 광장을 만들기도 했어요. 말하자면 상부로부터 인의적으로 '머묾의 공간'이 생겨난 셈인데, 하지만 이후 장소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완성되어 간다고, 80년대 쇼와를 들어서며 '광장 문화'가 태동하기도 했거든요. 자연스레 교류가 생기고 문화가 만들어지고 거리가 나름의 색을 입고. 이런 게 아마 도시에서 사람이 산다는 것의 의미일 것 같거든요. 그리고 '허핑턴 포스트 재팬'도 비슷한 기사를 보도하며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최단 루트로 효율적으로 이동하고 싶은 사람에게 최적화된 도시 설계가 전체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거든요. 도시에서 사람이 일만 하는 것도 아닌데, 그만큼의 휴식도 필요한 걸 생각하면 분명 지금의 도시 필요만으로 과부화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해요. 심지어 '착석감 나쁜 의자(意地悪ベンチ)'란 신조어가 생겨난 것만 봐도, 도시는 점점 사람을 머물지 못하게 하는 걸까요.

 🎡 놀기만 하는 공간이 그럼에도 필요한 이유 

하지만 지난 4월 28일고 29일, 도쿄의 또 하나의 상업 시설 '시부야 캐스트'는 개관 7주년을 맞아 좀 특별한 행사를 열었어요. 이름도 간소해 단지 '7주년 마츠리(7周年祭)'였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있어도 되는 곳의 필요성을 곳곳에 피력한 구성이었거든요. 키친-카나 후루기 팝업 숍을 통해 수익을 내면서도 바로 옆에서는 아티스트의 연주나 공연이 열리고, '아무런 소비하지 않아도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들을 풀어냈다'고, 이번 축제를 기획한 도시 기획자 쿠마이 아키후미 씨는 이야기해요. 더불어 애초 본 시설의 건축 콘셉이기도 한 '갖춰지지 않은 것들의 조화(不揃いの調和)를 테마로 뮤지션 tofubeats씨와 전 'WIRED' 일본판 편집장이자 작가인 와카바야세 케이 씨는 토크 에빈트를 가졌고, 뿐만 아니라 단체 사진 워크숍, 빈 병을 불어 소리를 내는 '빈병 오케스트라'와 돌로 스모를 해보는 '이시 스모' 등 온통 '시간을 뗴우기(보내기) 만을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기도 했어요. '시부야 캐스트'는 시부야 역에서 하라쥬쿠 캐트 스트리티 방면으로 걷다보면 왼편에 위치하는데, 이런 광경이라면 아무 목적 없다가도 한참 머물게 되지 않을까요.

애당초 '갖춰지지 않은 것들의 조화', 우리 일상이 꼭 그렇지 않던가요. 그리고 강조하는 게 잉여, '여운과 여백이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본 행사를 기획한 쿠마이 씨의 이야기에요.

앞서 이야기했던 교토의 마을 쓰레기 문제로 인한 '관광객 오지 마세요'가 어찌할 수 없이 떠오르는데, 물론 둘은 여러모로 상황도 문제의 범위나 정도도 차이가 있지만 오롯이 편하고 효율적이고 쓸모있는 것들만을 품고 산다는 건, 도시 입장에서도 그리고 인간-자연으로서 아마도 힘이 벅차지 않을까요. 그래서 요즘 도쿄의 또 하나의 키워드는 '공원'이기도 한데요, '미야시타 파크'는 루이비통, 샤넬, 디오르 유수의 명품 로드숍이 대열을 갖추면서도 안에 들어서면 학교 끝난 중고생들이 잔디밭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밤이면 '틱톡' 유저들이 이곳저곳에서 촬영을 하고. 이게 바로 '도시-자연-인간'이 그려내는 자연스러운 밤과 낮, 혹은 그 어느 무렵의 모습일 것 같아요. 물론 착석감 나쁜 의자를 만들지 않는 게 모든 걸 풀어내줄 열쇠는 아니겠지만, 쿠마이 씨는 '여러모로 실패해도 괜찮은, 시행착오가 꾸준히 진행중인 장소가 점점 더 많아져야한다'고 이야기했어요.

요즘엔 동네마다 그럴싸한 공원도 한 둘은 있고, 곳곳에 산책길도 정비되어 있지만, 단순히 일과 휴식, 쓸모와 쓸모없음을 구분해 살아가는 것보다, 그 모든 걸 아우룰 수 있는 때로는 실패하는 도시의 마음을, '시부야 캐스트'는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 기념일보다 기념비적인 오늘에 관하여 

봄에는 사쿠라 스위츠 전문점, 가을엔 군고구마 디저트 전문점. 사계절 각각 때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도쿄 나카메구로의 '나나시노'가 이번 여름을 준비하며 오니기리 모양의 빙수를 선보여요. 애당초 오픈 때부터 '식사계 빙수집'이라는 묘한 콘셉트를 내세우기는 했는데, 밥 안 먹고 아이스크림만 먹는다고 혼나던 어린 시절, 왜 떠오르며 웃음이 날까요. 하지만 이런 여유, 혹은 농담같은 거. 어쩌면 그렇게 나와 다른 시간을 살고있는 누군가의 한 끼 디저트가 때로 필요할지 모르겠어요. 오늘은 국내 재즈 뮤지션 luca minor의 곡 남겨놓을게요. 좀 바보같이 살아도 대부분 아마 괜찮을 거에요. 나의 바보같은 마음에 관하여.

📫 오는 수요일 5월 29일에 재단장 후 찾아가는 '야마테센의 뉴스 배달부' 1(38)호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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