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건축가시선]에서는 건축을 업으로 하면서, 건축을 공부하면서 생각했던 내용들, 고찰들, 이야기들, 현상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건축물들. 그런 건축물을 만드는 건축가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 슬픈 건축물, 아파트
우리나라 건축설계의 40%는 공동주택이라고 한다. 일명 아파트. 우리나라 특유의 성냥갑 모양의 이 건축물은 한국전쟁 이후 엄청난 주거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생겨났고, 지금까지도 엄청난 양의 아파트가 쏟아져 나온다. 건설기술과 문화적 수준의 향상으로 인해 더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하고 있지만, 아파트라는 건축물에 대한 빈정어린 시선은 날로 더 높아지고 있다. 아파트는 더 이상 온전히 쾌적한 주거문화를 정립시키고, 주거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순수한 목적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부동산으로서 사회의 빈부격차와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공동주택이라는 말에서 아파트는 공동이 함께 사는 공동체의 역할을 하길 기대하지만, 날이 갈수록 더 개인화 되고, 공동체는 온전히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만을 위한 공동체를 형성하며 사회로부터 더 고립되고, 때론 배척하고, 서로 다름을 만들어 낸다. 특히나 브랜드화가 되면서 아파트는 사람간의 격차를 만들어 냈고, 주거가 아닌 주거상품이 되어 우리 삶 속에 깊숙히 들어와있다. 연일 부동산 가격에 대한 뉴스가 떠들썩하고 매물이라는 단어로 취급되는 이 슬픈 건축물에 대해 약간의 연민을 느낀다.
서울이든, 대전이든, 부산이든 모두가 같은 평면도를 사용하는 이 건축물도 나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발전해왔다. 그래서 정착한 4bay-남향-맞통풍-방4개,화장실2개-전용59,84. 다양한 법규와, 공사비, 쾌적성 등을 고려해 하나의 법칙을 만들어 냈다. 국룰이라 표현 할 수 있는 이 아파트 평면은 상황에 따라 약간씩의 변형은 있겠지만, 정해진 틀 안에서만 움직이며, 이를 과도하게 벗어난 평면은 잘못된 평면이 되어버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평면에 익숙해 졌으며, 이런 평면에서 살지 못하면 도태됨을 느낀다. 그래서 기어코 84타입의 아파트로의 입주를 꿈꾸며 수십억의 집값에 숨이 막히지만 내집마련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 아파트 설계? 건축설계가 맞을까?
건축가로서 어느지역이나 다 똑같은 평면을 가진 건축물(심지어 외관도 똑같은)이 계속 지어진다는 것은 참 슬픈일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것은 이런것이 아니었다. 지역으로 부터, 문화로 부터, 사람으로 부터 건축은 시작하며, 그래서 건축은 매번 새로운 작업이고, 새로운 고민이며, 새로운 혁신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간의 상상하고, 문화를 만들어 내고, 사람들이 모이게 하며, 수많은 지역적 특색을 담아내는 정성스러운 공간. 이것이 우리가 배워 온 건축의 역할이지만, 수많은 건축인력들은 지금 아파트 설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아파트를 설계하는 말은 과연 적절한 것일까.
아파트를 설계하는 것은 고도의 작업을 요한다. 아파트는 분양건축물이고, 누군가의 재산이 된다. 그래서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84타입의 평면을 만들기 위해 84.99제곱미터 가 되도록 계획을 하며, 방폭, 깊이, 화장실 사이즈, 주방 사이즈 등 기준이 되는 치수를 다 지켜가며 하나하나 계획한다. 우리나라는 공동주택에 대한 법률이 따로 지정되어 있어 확인해야할 법규의 종류도 다양하고, 최근에는 더 안전하고, 더 깨끗하고, 더 친환경적인 건축물을 지어야하므로 수많은 법규와 기준들을 확인하고 맞춰가며 설계를 한다. 같이 일해야하는 분야들의 수도 상당하다. 도시분야, 구조, 기계, 전기, 소방, 교통, 친환경, 경관, 조경 등등 수많은 협력업체들과 무수히 많은 통화를 하며 건축을 중심으로 조율을 한다. 인허가 과정 또한 남다르다. 도시계획심의에서 도시적인 개념을 정립하고, 교통영향평가를 통해 교통의 흐름과 수요를 예측한다. 건축심의와 경관심의를 통해, 실제적인 건축설계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평가하고, 이제 사업계획승인(허가)를 받기위해 공무원과, 유관부서와 협의를 진행한다. 모든 것이 다 이루어 지고 난 뒤엔 건설사가 등장하고, 건설사의 입맛에 맞게 수정을 하게 된다. 이 어렵고 복잡한 이해관계안에서 조금씩 도면이 완성되어 갈때면 나름의 희열을 느낀다. 아파트 건축의 재미는 멋진 디자인을 한다거나 공간을 상상한다는 개념보다, 이렇게 꼬인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는 맛이 아닐까 생각한다.
# 세계유일의 어디나 똑같은 건축물
한동안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건설경기가 안좋아 많은 프로젝트들이 홀딩되고, 일감이 없었는데, 최근들어 다시 경기가 살아나는지, 일들이 종종 들어온다. 지금은 대전에 아파트단지건축심의를 준비하고 있다. 건축심의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세대수와 배치 그리고 입면이다. 한번 정해진 입면은 아무래도 바꾸기가 쉽지않다. 어떻게 진행할까 고민하는 중에 정해진 건설사로 부터 메뉴얼이 날라왔다. 디자인 가이드라인이란다. 받아본 가이드 라인에는 아주 세세한 부분 까지 정해져있었다. 열어본 가이드라인은 숨이 턱 막히게 한다. 자신들의 브랜드에 걸맞는 디자인을 나름대로 잘 정리해놨다. 브랜드와 디자인은 절대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늘상 딜레마인 것은 이것은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건축물은 기본적으로 땅으로부터 시작한다. 땅의 위치는 모두 다르고, 그 땅에 맞는 도시 풍경과 정당화 할 수 있는 건축적 방향성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브랜드는 메뉴얼을 제공한다. 메뉴얼에는 색깔, 재료, 측벽의 디자인, 거실창부분의 디자인, 심지어 매지의 간격과 개수까지 정해졌다. 디자인을 이대로 반영해서 진행해야한다. 그래서 전국 어디든 비슷한 아니 거의 똑같은 건물들이 들어선다. 4베이의 밋밋하고 넓은 입면에는 창 4개와 실외기실 그릴이 보이는 어디서나 똑같은 판상형 아파트 모습이다. 건축은 언제나 상상으로 부터 시작하고, 그 상상을 공간화하는 것에서 건축이 탄생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런 의미에선 아파트는 건축이 아니다. 상상할 공간이 없고, 건축적 아이디어와 새로운 생각들을 발전시킬 여지가 없다. 이것은 누군가의 부동산이 될 것이고, 그 부동산의 가치는 얼마나 적은 금액을 투자해서 불리느냐에 집중해있다.
#건축의 역할
건축이 줄 수 있는 공간, 그 무형의 가치에 대해 설득할 기회조차 없으며, 건설사는 무조건 싸게 지을 방법을 궁리한다. 이런 천편일률적인 공간에 사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으니 평면을 발전시키고, 더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없어지고 있다. 사실 다양한 시도가 LH를 중심으로 일어나고는 있다. 다양한 평면이 조합된 아파트가 현상설계에 나오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시되고는 있지만, 아파트 평면의 국룰은 변하지 않는다. 아파트라는 대한민국만이 갖고 있는 이 특별한 건축물을 좀 더 도시적으로, 문화적으로, 인간적으로 발전 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으면 한다. 네모 반듯한 절대 남향의 4베이 평면에 2.8~2.9m의 최소 층고에서 좀 벗어나 더 혁신적이며 더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고, 그 다양성이 믹스되고 융합되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것이 건축과 건설이 해야할 일이 아닐까. 우린 우리의 성냥갑 아파트를 스스로 비난하고 있지만 새로운 주거를 만들려는 시도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우리의 기후가 어떻다. 우리의 삶의 방식이 어떻다. 공사비가 어떻다. 해외와 우리의 상황은 다르다. 온갖 핑계들이 우리의 발전을 가로 막는다. 고 정주영 회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봐, 해봤어?“
# 우리는 왜 똑같은 건물을 전국에 짓고 있는가? 해외에도 다양한 아파트가 있고, 그 건축물들이 하나같이 다 다르고, 독특하며, 각자의 건축 철학을 뽐내고 있다. 건축은 역시 이런 맛이 아닐까. 수백시간 수천시간 고민끝에 탄생한 결과가 30년 넘게 그 자리에 서있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건축물은 절대 쉽게 지어져서는 안된다. 독일의 함부르크에는 16층짜리 마르코폴로 아파트가 있다. 16층 짜리 단일 건물 아파트이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평면들이 함께 살고 있다. 하나도 같은 평면이 없으며 그 평면에 따른 입면 또한 다 제각각이다. 그 모두 다른 평면에서 조화로운 디자인을 만들어 내고, 넓은 테라스를 활용하며, 도시에 새로운 이미지를 선사한다. 이 건물을 설계하고 짓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 그 고민끝에 정말 멋진 결과물이 탄생한다. 건축물은 공공재이기에, 누군가의 소유물이고 재산일지라도, 경관에 도시에 어떤식으로 기여하는지, 어떻게 기여할지에 대한 고민 또한 심도있게 계획되어야 할 것이다. 절대 다수가 좋아할 만한, 아니 좋아하도록 세뇌시킨 건축물이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가 생기고, 그들만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공간을 선택할 수 있는 건축적 발전이 우리나라에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