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건축가시선]에서는 건축을 업으로 하면서, 건축을 공부하면서 생각했던 내용들, 고찰들, 이야기들, 현상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건축물들. 그런 건축물을 만드는 건축가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 대학교 3학년 설계시간. 영국의 AA라는 건축대학을 나와 노만포스터에서 근무하다 한국으로 돌아오신 교수님 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교수님도 첫 부임이었고, 나도 1년간의 휴학 후 세계일주를 다녀온 뒤라 열정에 불타있을 때였다. 교수님의 설계 스타일은 파라메트릭을 이용한 디자인 연구였다. 다소 생소했던 라이노라는 툴과 파라메트릭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접목시켜 공부했다. 단순히 패턴을 만들고 그 패턴으로부터 아름다운 모양을 추출한다는 개념을 넘어서 논리를 만들고, 그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을 배웠다. 신선했고 재밌었다. 그 당시 우리의 설계 스튜디오는 12명 정도로 구성되었고, 그 구성원 대부분 열정적이었다. 교수님이 강조했던건 서로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라는 것이었다. 처음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어색했지만 한학기를 보내면서 우린 정말 많은 대화를 했다. 밤 새서 이야기하고, 밥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교수님의 영향이었다. 교수님은 일주일에 두번 남짓한 크리틱을 해주지만, 교수님이 없는 매 시간 서로서로 크리틱을 해주고 이야기를 나눠야 공부가 되고 발전한다는 것이었다. 우린 대화를 통해 서로의 설계안을 발전시켰고, 탄탄한 논리를 가지게 되었으며, 좀 더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서로를 채찍질 했다. 감히 생각하건데 결과물은 타 스튜디오 학생들 보다 뛰어났고, 완성도 높았다. 그때 자연스레 깨달았던것 같다. 건축은 대화를 하면서 발전하는 구나. 역시 혼자하는게 아니었구나 라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처음하게 되었다.
# 그 당연한 생각을 잊은채 회사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8년차, 이번 현상설계를 하면서 그 생각이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건축설계의 기본. 바로 피드백의 중요성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아무래도 회사는 직급체계가 나눠져 있고, 서로서로 대등한 입장이 될 수 없음을 알기에 학생 때 학우들과 나누었던 그런 자유로운 대화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어느정도 알고 있다. 의식적으로 인지하지는 못하더라도 내면에 그런 의식이 깔려 있기 마련이다. 자유로운 대화로서 이루어지는 건축설계 발전보다는 대안을 만들고, 그 대안에 대한 선배와 상사의 평가와 피드백이 자연스럽게 설계안을 발전시킨다. 대등한 대화가 아닐지라도 그렇게 배우고 수련하고 나를 성장시켜왔다. 회사를 옮기고 몇 번의 현상설계를 경험하면서 그 피드백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다. 그리고 그 피드백을 담당하는 리더와 팀원의 역할이 또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에 대해 배우는 중이다.
# 피드백이 없이 진행된 현상설계는 나에게 어떠한 성장의 포인트도 남겨 주지 않았다. 불평을 하려는게 아니고 나는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다. 그 어떤 순간도 우린 완벽할 수 없으니, 언제나 지금의 시간을 통해 발전하고 성장해야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느냐보다는 결과물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절대 혼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이번 현상설계 과정 자평해보자면 각자가 대화없이 혼자서 만들어 낸 결과물들을 조합이었다. 리더는 팀원의 작업물에 대한 피드백이 없었고, 팀원은 열정을 잃었다. 피드백은 상호작용이다. 피드백을 주는 것과 받는 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즉, 피드백을 주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받는 사람도 중요하다. 피드백을 받고 합의된 결과를 도출하고 계획안에 반영해야 설계안이 발전하는 것이다. 피드백이 이루어졌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또는 어떤 합의점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피드백이 아니다. 그냥 개인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래, 그렇구나>라는 한마디도 넘어가버리는 의미없는 과정이 될 뿐이다.
# 이번 현상설계가 아쉬웠던 것은 피드백의 그 소중한 과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화가 실종되었다. 초반 나의 가감없는 피드백과 제안이 리더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거나, 리더와 나의 디자인 방향이 맞지 않아서 합의점을 도출할 수 없어 독단적으로 진행할 수 밖에 없던 리더의 고충이었을 수도 있겠다. 이유가 무엇이건 아쉬울 따름이다. 내가 리더라면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내가 하고싶은 건 분명한데, 팀원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면 어떤식으로 설계안을 발전시켜야 하는가. 건축은 결코 혼자하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서로 합의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리더가 된다는 것은 이 프로젝트를 잘 이끌어 나가는 것에 더불어 같이 하는 팀원과 함께 성장해야하는 포인트를 만들어줘야 한다. 팀원도 발전하고 나 또한 발전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한다. 현상설계가 당선이 되지 않아도 그 과정에서 서로 발전하고 성장하는 포인트가 있어야 의미있는 과정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성장해온것 같다. 매번 설계를 할때마다 충돌이 있고, 마음에 상처를 입고, 서로 논쟁이 있지만, 그럼에도 끝난 뒤 우린 성장했다. 알게모르게 어떤 미묘한 축적된 자라남이 있었고, 지금의 나를 만든것이 아닐까.
# 우린 그냥 해야하는 일이 다를 뿐이다. 라고 했던 옛 건축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 선배와의 작업은 항상 피곤했고, 힘들었고, 마음에 상처도 많이 입었지만, 결국 서로 성장하는 과정을 만들었다. 나는 열심히 결과물을 만들고, 선배는 끊임없이 피드백을 했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라는 말을 속으로 많이 했지만, 지나고 보니 성장의 과정이었다. 피드백을 주는 방법과 받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우린 결국 장기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해야하기에 잠시 잠깐의 기분나쁨이나 충돌을 피하지 말고 싸우고 논쟁하고 합의점을 만들어 내야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은연중에 이 사실을 알고 있겠지만, 리더가 된다면 명확하게 표현하고 가야할 것 같다. 너와 나의 성장을 위해 우리 좀 기분좋게 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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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군
기분좋게 싸운다는 표현이 대단히 신선합니다. 상하관계가 뚜렷한 상명하복 분위기의 조직에 있으면서 항상 대화의 부재에 아쉬움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기분좋게 싸우려면 많은 훈련과 시간이 필요할 듯 하네요.^^ 좋은 인사이트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투마이서티즈
우아 소중한 댓글과 공감 감사합니다. 맞아요. 기분좋게 싸우려면 부지런히 공부하고 훈련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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