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건축가시선]에서는 건축을 업으로 하면서, 건축을 공부하면서 생각했던 내용들, 고찰들, 이야기들, 현상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건축물들. 그런 건축물을 만드는 건축가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 지난 금요일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 계획안 발표가 있었다. 이들의 발표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번 책으로, 인터넷으로만 보던 건축가들이 우리나라로 모여들었다. 미리 신청한 700여명의 시민들 앞에서 진행되는 이 특별한 발표 행사는 건축행사가 이렇게 사람들을 모여들게 할 수도 있구나를 느끼게 하는 아주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발표를 회사에서 모니터에 틀어놓고 집중해서 봤다. 애석하게도 이날은 우리가 제출한 현상설계도 줌으로 공개심사를 하는 날이 었다. 너무나 비교되는 두개의 영상을 띄워두고 오랜만에 즐거운 건축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 이런 지명현상의 경우, 어떤 기준으로 해외설계사를 선택해서 공모제안을 하는 것일까. 이번에 지명된 해외설계사 3XN, MVRDV, 헤르조그앤드뫼롱, 노만포스터, 그리고 국내사 유현준건축사무소, 매스스터디스의 조민석, OCA의 임재용 건축가 모두 대단한 건축회사임은 분명하지만, 이 외에도 수많은 저명한 건축설계사들이 많다. 어떤 디자인적 취향과 기대감으로 설계사를 선택하는 것일까 궁금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형 설계사들. 해안,정림,희림,삼우 등등 대형 설계사들이 지명되지 않았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 3XN의 발표로 시작했다. 3XN은 내가 디자인에 영감을 많이 받는 설계사다.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해놓고 주기적으로 들어가보면서 이들의 디자인을 탐색하곤 했다. 과감한 디자인과 확신에 찬 선들의 제안이 늘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사실 건축가들이 자신의 건축제안을 설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매우 드물다. 건축제안은 건축주에게 하는 대단히 사적인 행위였고, 심사또한 늘 비공개였다. 언제부턴가 공개심사로 전환되고, 유튜브가 일반화 되면서 이런 큰 공공건축 설계공모는 생중계 심사를 종종한다.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업으로 삼고 있는 건축가들 모두에게 대단히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대단한 건축가들의 발표를 보면서, 이들의 설계 방식과 발표스킬이 뛰어남을 느낌과 동시에 이들의 건축제안 행위 방식도 다르지 않구나를 느낀다. 우리가 배워왔고, 우리가 늘 하던것이다. 분석하고 상상하고 제안한다. 어떤 지역적 현상, 특성, 지리적 특별함 등을 건축의 출발로 삼는다. 모두가 그랬다. 역시 건축은 땅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가 보다. 또한 이들이 설계를 이끌어 가는 방식과 발표를 하는 방식이 생각보다 익숙했다. 엄청 대단하다기 보다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납득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 특히 인상깊게 봤던 해외사는 MVRDV의 위니마스 발표였다. 우리나라의 어떤 전통 사물을 차용해 건축에 적용했다는 약간은 유치한 방식으로 시작한 발표는 깔끔한 다이어그램과 열정적인 발표방식,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한장의 CG 이미지로 마음을 사로잡았다. 검고 다소 무거워 보이는 매스덩어리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미디어 파사드와, 은은하게 퍼지는 고급스러운 전통문양이 건물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 마음속 원픽을 두었지만 다른 설계사들의 제안도 하나같이 재밌었다. 역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것은 늘 재밌다. 같은 땅에서 저렇게 다양한 방식의 건축물이 제안될 수 있다는 것이 건축이 늘 재밌는 이유다.
#유일하게 사우디에서 화상으로 발표를 한 노만포스터는 건축가들의 건축가다웠다. 질의응답에서 노만포스터가 한 대답이 기억이 남는다. <설계공모는 유연성이 있어야한다.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의 어떤 생각과 아이디어를 제안하고(던져주고) 추후에 논의할 많은 영역들을 남겨두어야한다.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과정에서는 대화가 필요하다. 유연하게 앞으로의 여지를 남겨야 한다.> 어떤 디테일하고 운영 관리, 그리고 부족한 제안범위 등에 대한 답변이었다. 매번 현상설계를 할때 마다 느끼는 것이었다. 공모지침서 몇장에 나온 부족한 설명과 조건만으로 건축가가 전지전능하게 모든 것을 다 제안할 수 있을까. 건축가는 건축적인 아이디어와 제안을 하며, 주어진 조건안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훌륭한 대안을 만들어 제안하면 그뿐이다. 이것은 건축제안일 뿐이고, 이제 진짜 건축을 할 차례다. 실무자와 사용자와 대화를 하고, 유연하게 변경하고, 디벨롭하며 건축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설계공모에 대한 노만포스터를 따끔한 질책이 아니었을까.
# 평소 많은 매체를 통해 본인의 생각을 드러냈던 유현준 건축가의 제안도 인상깊었다. 늘 인사이트가 분명하고 남다르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번 제안에서도 아주아주 신선한 건축제안이었다. 평소 건축가의 가치관이 잘 드러난 설계였다. 평소 자연, 도시, 그리고 공공성에 대해 강조하던 가치관과 같이 나무들의 아파트라는 개념으로 원래 있던 자연을 돌려주자라는 신선한 제안을 했다. 결과물이 어떻듯 그 건축의 시작과 과정이 너무도 흥미로웠다. 감히 생각하지만 아마도 유현준 건축가는 당선이 목표가 아니었다. 세계적인 건축가들과 함께 나란히 발표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고, 실제로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본인이 추구하는 건축을 제안한게 아니었을까. 건축과 자연의 그 모호한 경계를 그려내어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상 속 건물을 제안했다. 물론 그것을 건축적으로 잘 다듬어 제안하고, 심사위원들의 질문에도 능수능란하게 대답하긴했지만 그 초기 재미있는 상상을 잘 풀어낸것 같다. 재밌는 건축이었다.
# 며칠 전 마침내 공개된 당선작은 헤르조그 앤 드뫼롱의 작품이었다. 역시 그들의 건축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매스감이 있다. 타설계사들의 제안과는 다르게 매스도 공간도 단순하고 명쾌했다. 새하얀 매스에 이렇다할 치장이 없는 덩어리 건축이었다. 그들의 건축은 역시나 아름다웠다. 어찌보면 디자인을 한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만한 모습이지만 그 모습 속에 강력함이 있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은 그것을 보는 능력이 있는 분들 이었다. 국내의 수많은 작은 공공현상설계의 경우 어떻게든 다양한 치장을 보여주고, 다양한 색감으로 생동감을 드러내고, 복잡하고 재미있는 동선을 만들어 낸다. 어떻게든 매력을 발산해야하기 때문에 사족을 많이 붙이고 있다. 그래야 더 디자인이 정성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하나보다. 렌더링된 CG가 아니라 스케치업의 선의 이미지만 제출해야하는 국내 공공건축 공모원칙도 한몫한다. 만약 헤르조그의 이번 당선안이 스케치업 이미지만으로 보여줬다면 매력이 있었을까. 은은한 조명과 미세한 재질표현등이 보여지지 않는 매력없는 이미지였을 것이다. CG에 돈을 들이지 말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제안하는 건축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스케치업으로 쉽고 효율적으로 구현가능한 건축만을 제안하고 있는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 당선작>은 단순함의 미학을 잘 보여줬다. 치장없이 만들어 내는 순수한 건축으로서의 아름다움과, 단순한 동선과 강한 건축적 어휘를 보여주는 단면도의 이미지 만으로 제안하는 건축 전체를 설명하기 충분했다. 실제 구축된 건축물이 기대되는 그런 제안이었다.<건축디자인은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게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사실 개방형 수장고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서리풀이라는 공간 자체가 갖는 의미, 서울에서 갖는 위치적 특색 같은 것은 잘 모른다. 다만 기대하는건 이 건물이 지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찾고, 새롭고 즐거운 건축공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 송은문화재단 사옥을 설계한 헤르조그 앤 드뫼롱의 작품이 이번에는 공공건축물로 지어진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우리나라 건축물의 디자인 수준을 한층 더 올릴것이고, 사람들이 건축과 공간을 바라보는 인식을 변화시켜 줄것으로 기대한다. 아무리 해외에 좋은 공간이 많아도, 가보지 못한 공간은 개개인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공간이 많이 만들어져서 그런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더해서 좋은 공간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심사하는 수준도 높아져 공공디자인에 대한 수요와 구현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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