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뤄볼 것은 동남아시아의 이커머스 씬입니다.
이미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동남아시아의 이커머스 씬에 최근 틱톡 샵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면서 지각변동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틱톡이 가지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이커머스 사업이 이 정도로 잘 될줄은 몰랐네요.
동남아시아 중 중요도가 비교적 낮은 다른 지역은 스킵하고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베트남을 중심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내용이 다소 길어질 것 같아 1부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플레이어들을, 2부에서는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지역 내 경쟁구도를, 3부에서는 특성을 다뤄볼 예정입니다.
Shopee - 동남아시아 E-Commerce 골목대장
동남아시아의 이커머스를 이야기할 때는 쇼피(Shopee)를 빼고는 이야기가 불가능합니다. 국가별로 알아볼 필요 없이 동남아시아 전체 1위는 쇼피입니다. 동남아시아 이커머스의 양대 산맥 중 하나로, 다른 하나인 Lazada(라자다)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어요. 지난번 배민 베트남의 사업축소를 다뤘던 뉴스레터에서 다뤘듯이 음식배달사업도 하고 있죠.
쇼피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모회사인 SEA Group의 자회사로, SEA 그룹은 동남아시아 테크 스타트업 중 첫 번째로 뉴욕 증시에 상장한 회사로도 유명합니다. 쇼핑 뿐 아니라 게임 퍼블리싱 서비스를 제공 중인 Garena,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SEA Money를 서비스하고 있어요. 순서로 따지면 Garena가 2009년 런칭해서 흥했고, 그 기반 위에 Sea Group이 2015년 쇼피를 런칭했어요.
SEA Group의 역사를 간단하게 알아보자면, 리샤오둥(李小冬, Forrest Li) 회장이 2009년에 싱가포르에 설립한 회사로 처음엔 Garena로 시작해서 2017년 Sea로 사명을 변경했어요. Garena 이전에 GG Game이라는 게임사를 공동창업해 빠르게 성공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사업을 접고, 2009년 Garena를 설립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의 게임들을 싱가포르와 동남아시아에 배급하는 것에 주력하며 성장하다가 2015년 중국의 알리바바에서 서비스하는 타오바오를 보고 이커머스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알려져 있어요.
참고로 한국인들에겐 그나마 쇼피가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SEA Group의 사업 중 동남아시아에서 분야 기준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명실공히 동남아시아 1위 게임 퍼블리셔인 Garena예요. 라이엇의 리그오브레전드도 직접 서비스하기 전까지는 가레나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했고, 넥슨이나 엔씨소프트 등 한국의 메이저 게임사들과도 협력하고 있습니다.
모회사인 SEA Group의 주요 투자자로는 블랙록, 골드만삭스, 케세이 파이낸셜 홀딩스등의 글로벌 투자사들, 중국의 텐센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동생으로 유명한 손태장(Taizo Son) 회장의 Mistletoe 등이 있습니다. 동남아시아 대표 플레이어답게 탄탄한 라인업이네요.
이커머스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쇼피는 2023년 동남아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트래픽, 매출기준 1위입니다. SEA Group의 2023년 추정 매출치는 $12.9B로, 지난해 4분기 때 이미 분기 단위 흑자전환을 하긴 했지만, 드디어 올해 연 단위로는 첫 흑자전환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매출 중 이커머스와 핀테크 사업의 매출이 약 75%를 차지하니, 쇼피 단독으로는 약 $9B 내외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시총 규모는 $23.17B네요.
쇼피의 한국 진출, 쇼피코리아
쇼피는 최근 한국에서도 꽤 공격적으로 진출하며 한국의 셀러들이 동남아시아에서 판매하도록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배송, CS, 마케팅까지 다양한 컨설팅과 도움을 제공하고 있고, 검색만 해봐도 “여기서 사라”가 아닌 “여기서 팔아라.”라고 하고 있거든요. 쇼피의 한국 진출은 본인들의 시장인 동남아시아에서 인기가 많은 한국의 제품들을 많이 가져오려는 목적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쇼피를 통해 동남아시아에 판매할 때 한 번에 동남아시아 7개국에 판매가 가능하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한국 판매자가 쇼피를 통해 판매하고자 하면 하나의 관리 툴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국가별 관리 툴을 별개로 사용해야 하며, 각 국가의 지사와 소통하며 판매를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동남아시아 특성상 빈번한 채팅 문의와 CoD(캐시 온 딜리버리), 그 외 각종 현지 언어 차이와 조세법, 상이한 소득 및 카테고리 선호도 등을 고려한다면 7개 국가에 한 번에 판매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힘들 수 있어 국가별로 다른 툴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네요.
이커머스 플랫폼으로써의 쇼피에 대한 현지인들의 평가
쇼피가 트래픽, 매출 기준으로 가장 큰 이커머스 플랫폼은 맞지만, 가장 신뢰도 높은 플랫폼이라고 보기엔 어렵습니다. 쇼피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중저가~초저가 물건을 제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노쇼 사건으로 악명높은 축구계의 레전드 호날두의 말도 안 되게 웃기는 광고를 찍게 만든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호날두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Lazada - 요즘들어 치이는 2인자
라자다(Lazada)는 최근 위에선 쇼피가 내리누르고, 밑에서는 틱톡샵이 치고 올라오는 탓에 힘들어하고 있는, 그렇지만 여전히 저력 있는 플랫폼입니다.
2012년 독일의 Rocket Internet에서 아마존의 성장을 보고 만든 플랫폼으로, 동남아시아 이커머스 시장의 태동과 동남아시아에서 아마존의 약한 인지도에서 기회를 보고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2014년까지만 해도 10,000명 이상의 판매자가 있는 동남아시아 1위 플랫폼이었어요. 처음 시작할 땐 사입모델로 시작했는데, 바로 다음 해부터 판매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로 변경하고, 이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잠깐 모회사에 대해 알아보고 가자면, 로켓 인터넷(Rocket Internet)은 잘나가는 IT 비즈니스 모델을 빠르게 카피해 먹힐만한 시장에 먼저 런칭하고, 성장시켜 매각하는 전략으로 유명한 독일의 컴퍼니 빌더예요. 로켓 인터넷은 시장 참여자들로부터 스타트업 씬을 좀먹는 무좀 같은 존재다, 아니다 기발한 전략의 훌륭한 회사다 하는 대립하는 두 반응을 만들어 냈지만, 확실한 건 카피를 하더라도 기가 막히게 하면 예술이 된다는 점이에요. 우리가 아주 잘 아는 요기요 역시 로켓 인터넷이 만들었어요. 한국에서는 로켓 인터넷 출신의 대표님들이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계셔요. 대표적으로 잡플래닛 공동대표인 윤신근, 황희승 대표님, 스포카 손성훈 공동 대표님, 박춘화 꾸까 대표님 등이 있습니다.
다시 라자다로 돌아와서, 라자다가 아마존 카피캣으로 시작했으니 엄청나게 쉬운 사업을 했을 거로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그때(2012~2015) 당시만 해도 싱가포르를 포함해서 모든 동남아시아 국가는 온라인 쇼핑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았거든요. 전체 인구의 약 1% 정도만 온라인 쇼핑을 했다고 하네요. 생각해 보면 제가 아직 베트남에 있던 2011년 베트남에서는 온라인 쇼핑은커녕 도시에서도 심심하면 한 번씩 정전이 일어나고, 온라인 게임은 기업용 인터넷을 사용해야만 할 수 있었어요. 우편물 분실은 밥 먹듯 일어났고요.
결국 그때 당시 라자다에는 CoD, 온라인 결제, 채팅 기반의 높은 CS비용, 부실한 배송 인프라 등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이커머스를 사용하게 만드는 것 그 자체부터가 큰 허들이었던 거죠. 하지만 글로벌한 큰 흐름은 오기 마련이고, 라자다는 시장 첫 진입자로서의 메리트를 가져가 결국 2016년 다른 이커머스들과의 경쟁에서도 당당하게 이커머스 1위 기업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라자다에 투자한 회사로는 제이피 모건 체이스, 써밋 파트너스, 텐겔만 그룹, 테마섹 등이 있었고, 2016년 알리바바 그룹에서 인수하게 됩니다. 알리바바를 보고 시작한 쇼피는 텐센트와 동맹이 되고, 정작 알리바바는 라자다를 인수하여 쇼피와 경쟁하게 된 것도 재밌네요.
틱톡 샵에 맞던 라자다와 친구들을 구해준 인도네시아 정부
이제는 만년 2위가 되어버린 라자다는 최근 베트남에서는 틱톡의 이커머스 서비스인 Tiktok Shop(틱톡 샵)에 밀려 3위가 되는 수치를 겪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역시 공동 3위였으나, 틱톡에게 시시각각 위협을 받던 상황이었어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한동안 라자다 내부의 분위기는 굉장히 안 좋았을 거라고 생각돼요.
다만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는 10월 4일 틱톡에 소셜 미디어와 이커머스 서비스의 분리를 명령하며 틱톡 샵에 사실상 퇴출 명령을 내렸고, 덕분에 라자다 인도네시아 지사 대표는 오랜만에 편하게 꿀잠 잤을 것 같습니다.
이커머스 플랫폼으로써의 라자다에 대한 현지인들의 평가
라자다는 쇼피에 비해 사용자는 조금 적지만, 오히려 신뢰도는 높다는 것이 로컬에서의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도소매상들 중심의 오픈마켓이라는 인식이 강한 쇼피에 비해 라자다는 신뢰할 수 있는 입점 브랜드에 구매할 때 사용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신뢰도 면에서는 라자다가 쇼피에 앞선다고 느껴지네요.
찾아보니 배우 이민호가 라자다 베트남 광고를 찍었는데, 호날두 광고를 보고 이걸 보면 확실히 호날두가 열심히 살긴 합니다.
TikTok Shop - 생태파괴종
틱톡은 따로 다루지 않아도 다들 알다시피 요즘 제일 핫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죠. 우리나라에선 밀레니얼 세대까지는 다소 쓰기 꺼리는 경향이 강하지만,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아시다시피 젊은 인구가 많다 보니 소위 점잖은 어른들이 안 쓴다고 하더라도 다른 소셜미디어에 비해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틱톡 샵은 틱톡에서 바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연계된 이커머스 서비스로, 2021년 4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2022년 4월 베트남, 2022년 7월 필리핀, 2022년 8월 싱가포르에서 런칭하였으며, 틱톡을 등에 업고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정리되어 가는 느낌이었던 동남아시아 이커머스 바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어요.
Momentum Works와 Bloomberg의 말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서는 2022년 $2.5B, 전체 동남아시아 기준으로는 $4.4B의 거래량을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나오는 거래량의 거의 절반이 인도네시아에서 나온 건데, 특히 틱톡의 MAU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국가가 바로 인도네시아라서, 틱톡 입장에서는 무조건 잡아야 하는 시장이에요. 특히 2023년 추정 거래량은 인도네시아만 $6B이었어요.
그런데 2023년 10월 4일 인도네시아 정부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쇼핑 기능을 제공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해 버리면서, 틱톡은 더 이상 틱톡 앱 내에서 물건을 팔 수 없게 되었습니다. 틱톡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는 광고(Promoting) 정도예요.
인도네시아는 자국 중심적인 성향이 생각보다 강한 나라라서,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틱톡 샵을 규제하기 위해 급하게 법을 만든 것으로 보여요. 사실상 기존에 페이스북도 마켓플레이스 기능이 있긴 했지만, 거의 쓰이지 않았다 보니 막지도 않았거든요.
쇼피랑 라자다는 명분이 없어 막지 못했지만, 틱톡 샵은 명분이 너무 좋았어요. 해당 법안은 ‘소셜 미디어의 강력한 알고리즘에 의한 빠른 속도와 편의성’에서 소상공인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하네요. 사실 쇼피와 라자다도 당연히 반사이익을 보겠지만, 인도네시아의 로컬 이커머스 플랫폼인 Tokopedia, Bukalapaj, BliBli의 목숨을 살린 거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베트남에서는 라자다를 제치고 틱톡 샵이 2위에 올라섰어요. 아직도 쇼피가 큰 차이로 1위를 하고 있긴 하지만, 틱톡이 이번에 드디어 확실하게 라자다를 넘어섰네요.
다만 베트남에서의 2023년 추정 거래량은 $1.6 정도로, $6B였던 인도네시아보다 턱없이 작아요. 가장 큰 시장에서 퇴출당하게 된 틱톡의 입맛이 쓸 수밖에요. 2023년 동남아시아 거래량 목표치였던 $15B을 달성하는 데에 큰 차질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내년 거래량이 올해의 거래량을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베트남 틱톡샵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제품 카페고리는 뷰티라고 합니다.
이커머스 플랫폼으로써의 틱톡 샵에 대한 베트남에서의 평가
틱톡 샵을 쓰는 이유는 인플루언서에 대한 신뢰도도 물론 영향이 없지 않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제일 저렴하기 때문이에요. 틱톡 샵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특가로, 여타 이커머스 플랫폼에서는 볼 수 없는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해요. 타임세일을 이용하여 구매 충동을 잘 자극해 빠르게 기존의 탄탄한 젊은 유저층을 구매층으로 끌어들였다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 동남아시아의 이커머스 시장은 미성숙 상태
한국과 달리 동남아시아에서는 전반적으로 가격민감도가 높은 특성을 반영해 신뢰도 높은 Lazada보다 저렴한 상품을 찾기 용이한 Shopee가 트랙션이 높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TikTok Shop의 특가전략이 특히 잘 먹히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겠죠. 이러한 시장 특성은 소득수준과 소비패턴이 바뀌어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현재 구도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 다음 뉴스레터로 이어집니다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Forrest_Li
https://en.wikipedia.org/wiki/Sea_Ltd
https://daoinsights.com/news/tiktok-shop-loses-indonesia-its-fastest-growing-market/
https://www.ft.com/content/e34dc5d1-6317-45b6-ab6a-4a76b61a1f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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