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파리 시위대 “약탈” 보도 너머로 보아야 할 것들

지난 몇 주 동안 프랑스에서 들려온 시위 소식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낀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낙후된 학교를 고쳐 달라며 교문을 막은 고등학생들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는데, 난데 없이 10월 17일 밤부터 깨진 쇼윈도와 털린 상점, 불타는 자동차 영상이 뉴스에서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명품 매장부터 동네 작은 빵집까지 파괴되었다는 이야기에, 마음 한편에서 "저건 투쟁 요구와 상관도 없는데, 좀 아니지 않나?"하는 찜찜함이 드는 것입니다.
‘약탈’이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만한 명분 있는 행위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뉴스 화면에 잘 잡히지 않은 장면들, 특히 한국에서는 상세히 보도되지 않은 이야기들도 함께 살펴보아야 시위대의 폭력-파괴-약탈 논란 앞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운동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거리에서 경찰이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지금 폭력과 약탈에 대한 비판이 프랑스 시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요. 지금 우리는 시위대의 폭력성을 비난하는 자들과 시위대 사이, 어느 편에서 어떤 얘기를 해야할까요.
교문 앞에 먼저 온 것은 진압경찰
시위의 시작은 아주 작았습니다. 9월 17일, 파리 근교 크레테유의 생텍쥐페리 고등학교에서 파업하던 교사들 곁에 학생들이 함께 서서 학교를 봉쇄했습니다. 학생들이 내건 요구도 거창하지 않았습니다(지난 10월 4호 베프레터 참고). 학생들은 교육다운 교육을 원한다며 예산 11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요구했습니다. 10월 들어 대학생들이 고등학생 시위에 합류했고, 10월 17일에는 노동조합과 '노란 조끼' 운동이 생계비 폭등에 항의하며 함께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날 전국에서 55만 명(정부 추산, 노조 추산 80만 명)은 평화롭게 행진했습니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의 마리안 동상에는 이런 낙서가 남았습니다. "비참을 뿌리는 자는 분노를 거둔다."
그러나 시위 확산 과정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경찰에 의해 심각한 부상을 당했습니다. 열네 살 학생은 시위 도중 경찰이 가까운 거리에서 쏜 최루탄에 맞아 턱뼈가 부러지고 이가 여러 개 깨졌습니다. 검찰은 경찰 진술을 근거로, 에덴이 경찰에게 폭죽을 쏜 청소년 두 명 중 하나와 '비슷해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투르에서는 열여섯 살 학생이 봉쇄 현장에서 경찰의 고무탄(LBD)에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습니다. 10월 17일 생테티엔에서는 열일곱 살 학생의 오른손이 시위 진압용 수류탄에 날아갔습니다.
이런 일들은 단지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학교 봉쇄 초기부터 정부는 진압경찰을 보내 학생들을 공격적으로 강제 해산시켰습니다. 미국 주간지 기자는 파리 근교 팡탱의 평화로운 교문 앞 모임에 경찰이 돌진해 최루가스를 쏘는 장면을 직접 보았다고 썼습니다. 대학 당국은 학생 총회에도 진압경찰을 불렀습니다.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만 약 5,000명이 체포되었는데, 대부분 10대였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프랑스지부는 미성년자에게 곤봉, 최루가스, 고무탄이 쓰이고 있다며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사회적 비판이 커지자 그제서야 내무장관이 진압용 수류탄 중 한 가지의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10월 17일 수십 만 시위 때에도, 파리 경찰은 행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최루가스와 섬광탄을 대량으로 사용했습니다. 파리청년변호사협회장은 훨씬 심각한 상황에나 쓸 진압 수단이 체계적으로 동원되면서 대중의 분노를 더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날 전까지도 이미 경찰 감찰기구는 경찰의 과잉 폭력 의혹 36건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와 경찰은 더 나아갔습니다. 통행금지, 주요 도시의 집회 전면 금지, 그리고 10월 24일에는 경찰·헌병 7만 명과 장갑차 투입을 결정했습니다. 파리 행정법원이 경찰 집회 금지 명령을 취소했을 만큼 강경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자신들도 시위대 폭력의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정부는 10월 17일 하루 경찰 약 1,000명이 다쳤다고 발표했고, 시위 기간 학교 24곳이 시위대에 의해 불타거나 파손되었다고 했습니다. 경찰 부상자가 있다는 점을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폭력의 순서와 비율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 운동에서 먼저 교문 앞에 온 것은 무기를 든 국가였고, 그 결과 지금까지 가장 큰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진 이들도 열네 살, 열여섯 살, 열일곱 살 청소년들이었습니다.
'폭력'이라는 한 단어로 뒤섞어 버리는 것
지금 프랑스 정부와 보수 언론이 말하는 '폭력'이라는 단어는, 성격이 전혀 다른 세 가지가 한데 담겨 있는 말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의 공식 담론에서는 첫째가 거의 사라집니다. 내무장관은 학생 약 200명이 다쳤지만 경찰 때문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주장했고, 총리는 경찰의 과잉 진압이라는 비판을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습니다. 첫번째 폭력이 지워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둘째와 셋째를 하나로 뭉친 '시위대 = 폭도'라는 이미지입니다. 정부는 시위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소요를 '도시 폭력'이라 부르며 그 배후로 좌파 정당(“불복하는 프랑스”)을 지목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폭력의 대부분은 첫번째 폭력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납니다. 행진이 시작되기도 전에 최루가스가 터지고, 교문 앞 모임에 곤봉이 날아드는 상황에서, 청년들의 분노가 경찰을 향한 돌과 폭죽으로 돌아오는 것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에 비해, 세번째 종류의 폭력인 상점가 약탈은 이와는 다른 성격의 현상입니다. 기자들은 시위가 끝난 뒤 검은 옷에 복면을 한 무리가 골프채로 유리를 깨고 물건을 챙겨 달아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행동이 시위의 주요 주최단체가 배후에서 지시하거나 부추기거나 용인한 것이라고 말할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보수 언론은 이 세가지의 '폭력'을 하나의 단어로 묶어 이야기합니다. 그 결과, 시력을 잃은 열여섯 살 청소년의 국가폭력 피해는 공론장에서 밀려납니다. 그리고 경찰에 맞서 돌을 던진 학생과 상점을 턴 사람들이 동일한 범주로 분류되고, 시위 참가자들은 자신이 ‘일부’ 약탈자가 아닌 ‘순수한 프랑스인’임을 드러낼 의무가 생깁니다. 이렇게 폭력과 약탈이 근절되어야 한다는 프레임이 강조되면 될수록, 수십 만 명이 거리로 나온 거리로 나온 이유, 무너지는 학교와 오르는 물가의 문제,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폭력과 시위 자제만 요구할 뿐아무런 대책도 내놓고 있지 않다는 사실, 시위 때마다 반복되는 경찰 폭력에 어떻게 맞설지 문제는 흐릿해집니다. 약탈이라는 행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와 별개로, 이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프랑스 우파들의 이런 ‘물타기’에 말려들 이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약탈자는 불순한 이민자들이다?
또 한 가지 의아한 것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약탈과 폭력 혐의로 체포되어 즉결 절차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만 일주일 만에 150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법정에 선 이들의 공통점은 18~25세 남성, 전과 없음, 70%가 프랑스 국적에 거의 모두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는 정도였습니다. 피고인들을 무료로 변론하는 한 변호사는 "전형적인 프로필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극우 정치인과 일부 언론, 외국 지도자들은 파리 외곽의 가난한 교외, “방리유” 지역의 흑인과 아랍계 이민자 가정의 청(소)년들이 ‘약탈자’들이라며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예산과 물가에서 시작된 투쟁이 어느새 이민자와 이슬람의 일탈로 둔갑시킨 것입니다.
예컨대, 영국 BBC의 파리 특파원은 학생 운동에 극좌의 의제와 '방리유의 약탈자들'이 거머리처럼 들러붙었다고까지 표현했습니다. 극우 국민연합의 정치인 바르델라는 '교외의 포식자들'이 프랑스에 대한 복수심으로 약탈한다고 했고, 또 다른 극우 정치인 제무르는 '아랍-무슬림 쓰레기'를 탓했습니다. 이스라엘 총리는 프랑스가 '극단주의 이슬람의 침략'에 굴복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시위대가 불순한 이민자들이라는 선동에 용기를 얻은 극우파들은 10월 24일 니스에서 사회 질서를 운운하며 시위대의 청년들을 직접 공격하기까지 했습니다.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 이민자 가정의 방리유 지역 청년들에게 이런 낙인은 사실 낯설지 않습니다. 2005년에는 두 소년이 경찰 폭력을 피해 숨었다 감전사했고, 2023년에는 교통 단속 중 경찰 총에 열일곱 살 학생이 숨졌습니다. 당시에도 방리유의 청년들은 분노해 싸웠지만 다시 경찰의 폭력과 구금에 시달렸고, 그때마다 정부는 이 지역 청년들이 겪는 차별과 혐오를 '교외 이민자 폭도'의 문제라고 딱지를 붙였습니다.
아직 경찰이 방리유 청년들만을 겨냥한 별도 단속을 하고 있다고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처벌의 그물은 운동에 참가한 청년들을 향해 넓고 빠르게 던져지고 있습니다. 10월 17일 시위 하루에만 2,513명이 구금되었고, 법무장관은 800명 이상이 법정에 섰다고 밝혔습니다. 상당수는 체포 당일이나 며칠 만에 즉결심판 절차로 넘겨졌고, 마스크와 연막탄을 갖고 있다 체포된 청년은 전과조차 없었는데 즉시 수감 조치가 동반되는 징역 5개월을 검찰 구형을 받았습니다. 그 이전 몇 주 동안 구금된 6,000여 명도 대부분 전과 없는 미성년자였습니다. 방리유 지역의 청년들은 이 시위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이들 중 일부입니다. 출신과 인종, 거주 지역을 가지고 약탈과 폭력 사태의 ‘범인’을 미리 정해 두는 말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이 그물이 특히 누구에게 더 가혹하게 떨어질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약탈 행위 자체를 옹호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약탈을 명분 삼은 운동 참가자들에 대한 탄압과 과잉 처벌을 막기 위해 운동 참가자들 전부에 대한 분명한 연대와 방어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운동이 스스로 선을 그을 때
바로 그런 이유에서 우려스러운 점은, ‘약탈자’에 대해 정부와 극우 뿐 아니라 좌파 일부도 선을 긋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프랑스 최대 노총 CGT는 10월 17일 있었던 시위 참가자 ‘일부’의 폭력을 경찰 폭력과 함께 규탄했습니다. 더 온건한 노총 CFDT는 폭력을 저지른 이들이 "정당한 사회적 요구를 가로챘다"며 더 강하게 거리를 두었습니다. 비슷한 이유에서 10월 13일, 파리에서는 노조 대열이 근처에 모인 청년들과 만나지 않도록 따로 행진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학생들의 운동을 꾸준히 지지해 온 좌파 대선 후보 멜랑숑조차 약탈은 정치적 의미도 없고 우리 방식도 아니라며 공개적으로 입장을 냈습니다.
이들은 운동 전체가 '폭도'와 한데 묶여 여론의 지지를 잃을까 걱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대응의 결과를 냉정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운동의 취약점이나 ‘흠’에 대해 우파가 공격할 때, 그것을 ‘우리도 그건 문제라고 본다’며 간단히 ‘꼬리 자르기’로 무력화할 수 있을까요? 상대는 우리도 동의했으니 다행이라며 비난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봐라, 이들도 인정했다’며 계속해서 그 프레임을 강화하고 사회적 논의에 중심에 두려할 뿐입니다. 시위의 지도적 인사들도 인정한 ‘일부의 폭력’은 이제 경찰 폭력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될 것이고, 시위 주최자들은 이제 시위대의 폭력-약탈을 방지하고 정부의 질서유지 조치에 협조해야 한다는 부담을 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운동이 '우리 다수는 저 참가자들과 다르다'고 말하는 순간, 누가 정당한 운동에 속하고 누가 속하지 않는지를 규정할 주도력은 정부와 경찰에게 넘어갑니다. 그리고 그 선 바깥으로 가장 먼저 밀려나는 사람은, 방리유 지역민들을 포함해 9월부터 교문 앞에서 최루탄을 맞아 온 바로 그 청년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고립된 청년들이 즉결재판정에 서게 되더라도, 그들을 명분 삼아 시작된 집회 금지와 통행금지는 다음 번 행진과 다음 파업에도 여전히 똑같이 적용될 것입니다.
그런데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보여준 것과 다른 장면도 있었습니다. 보르도에서는 노조원들이 인간 사슬을 만들어 학생들을 경찰로부터 지켰고, 시위대 청년들의 부모 세대인 노조원들은 최루가스 앞에서 팔짱을 끼고 청소년들 앞에 섰습니다. 생드니 시장 바가요코는 최루가스를 쏘는 진압경찰 앞에서 학생들을 감쌌습니다. 프랑스의 운동, 여러 나라의 모든 운동이 지켜야 할 모습은 이쪽입니다 누군가를 밀어내고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더 크게 뭉치고 단결해야 합니다. 파괴와 약탈 같은 방식으로 시위대의 분노가 표현되기보다 더 효과적이고 더 강력한 방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이런 단결과 그 안에서의 토론과 논쟁이 꼭 필요합니다.
따라서, 프랑스의 노조와 좌파도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시위대 일부와 거리를 두는 대신, 체포된 청년들의 석방과 과잉 기소 철회, 경찰 폭력 중단, 방리유를 겨냥한 낙인 중단 등을 오히려 운동 전체의 공식 요구로 내걸어야 합니다. 노조들이 예고한 11월 5일 총파업이 그런 요구를 함께 제시한다면, 정부가 그어 놓은 '좋은 시위대'와 '나쁜 시위대'의 선은 힘을 잃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파업을 더 적극적, 실질적으로 벌인다면, 운동 전체의 분위기는 약탈이나 파괴 같은 행위보다 생산을 멈추어 국가를 압박하는 것이 중심이 되는 국면으로 전환될 것입니다.
맺으며: 불편함이 연대를 멈추는 이유가 되지 않도록
이런 모든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뉴스 보도의 약탈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약탈 행위에 동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은 방식의 투쟁이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면서도, 지금 약탈 사건들에 대해 갖는 대중의 불편함이 어떤 적으로 누구에게 이용되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 니다. 깨진 쇼윈도 사진 한 장은 경찰 폭력에 무너진 청년들과 시민들의 모습을 덮고, 무너지는 교육 현장과 긴축 예산으로부터 눈 돌리게 하고, 이민자들을 마녀사냥해 운동의 가장 적극적인 참가자들을 고립시키는 데에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진실은 단순합니다. 학생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요구했고, 시민들은 감당할 수 있는 물가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경찰의 최루탄과 고무탄, 집회 금지 조치와 즉결재판으로 대응했습니다.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지금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시위대가 충분히 얌전했는가'가 아니라 '이들의 요구가 정당한가, 이들이 당하는 일이 정당한가'입니다.
사실 이런 구도는 우리에게도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불법 폭력 시위'라는 말과 몇몇 집회 장면을 앞세워 정부나 보수파는 운동 전체를 비난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대는 다른 나라 평범한 사람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우리 자신의 투쟁에 대한 비난에 위축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작지만 분명합니다. 주변 사람들과 프랑스 소식을 나눌 때 깨진 유리창보다 교문 앞의 학생들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 체포된 청년들에 대한 과잉 처벌과 인종주의적 낙인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 11월 5일 프랑스 총파업에 연대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미 10월 23일 서울의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는 시위대 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게 힘을 보태야 합니다.
[다가오는 VF 모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