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독자님 의리파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 비지터씨(visitor.see)는 두 사람이 시작해 어느새 세 명의 에디터가 매주(종종 비정기적으로) 미술 전시 리뷰를 보내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화요일 오전 8시에 보내는 게 목표지만 종종 늦어지고는 하죠. 게다가 현대미술을 다루다 보니 어려운 미술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그런데도 저희 뉴스레터를 계속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새 100호를 발행하게 된 데에는 꾸준히 봐주신 구독자님의 의리 덕분이에요.
"서울에서 지금 볼만한 미술 전시 알려줘"라고 AI 챗봇에 입력하면 지도와 전시 제목이 나오는 시대가 왔죠. 이런 시대에 좋아하는 작가와 전시에 대해 매주 직접 글을 쓴다는 게 비효율적인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직접 미술 작품과 대면할 때 나오는 에너지가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저희는 사랑하는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사람의 손으로 쓸 예정입니다.
비지터씨 에디터들은 직접 전시장에 가서(visitor) 직접 본(see) 전시 리뷰를 계속 써나갈 예정입니다. 100호 기념으로 에디터들이 좋아하는 작가, 전시에 대해 쓰기로 했어요. 길지만 종합선물세트같은 100호 특집을 즐겨주세요. 구독자님 저희는 101호와 2026 프리즈 특집호에서 만나요. 제발.
션 윌리엄 랜덜 Sean william randall
Editor. 영우

2015년, 저는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그랜빌 스트리트 근처에 살았어요. 다운타운에 가까운 그랜빌 스트리트는 술집과 클럽이 가득하지만 남쪽에는 갤러리와 가구점이 많은 동네에요. 그 길을 걷고 있다가 한 그림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정방형 캔버스를 가득 채운 폭발과 그 폭발로부터 탈출하는 듯한 클래식카가 그려진 그림이었습니다. 마치 티파니 매장 앞에 서서 갖지 못하는 주얼리를 바라보는 홀리 골리어틀리(오드리 헵번)처럼 한참을 서있었어요. 홀린 것처럼 이 그림을 보고 있었어요.
그때 당시에 환율을 계산했을 때 약 300만 원 정도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대학생에게 너무 큰 금액이었습니다. 컬렉팅에 대한 개념도 아직 잘 없었고 그림을 사는 것 자체가 무섭기도 했어요. 해외에서 산 그림을 한국에 어떻게 가지고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림을 사는 건 이렇게나 복잡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처음 회화를 산다면 캐나다 작가인 션 윌리엄 랜덜의 그림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의 회화는 치밀하게 대상을 천착하며 묘사하는 힘이 있거든요. <Coming Over>를 처음 봤을 때에도 사랑에 빠진 이유는 광원의 묘사가 아주 섬세했기 때문이에요. 빛을 묘사하는 구성 자체가 매력적이에요. 클래식카가 날아오르는 공간, 어딘지 모르겠는 평원이지만 빛과 명암은 아주 사실적이에요. 그러면서도 우주처럼 까만 하늘, 동이 트는 것 같은 지평선 너머의 푸르스름한 밤까지. 빛이 주는 서사가 쌓여있는 듯한 그의 그림이 좋았습니다. 가장 밝은 광원에서 시작해 점차 퍼져나가는 색은 디지털 이미지로 보면 실물 만큼의 임팩트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그의 작업에는 캐나다 풍경화의 독특한 표현법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대자연의 광활함을 표현하는 한편 1920년 7인 그룹(Group of Seven)을 중심으로 유럽의 영향에서 벗어나 캐나다만의 자연을 강렬하고 생생한 색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의 역동성을 대담하게 표현하는 편이에요. 밴쿠버에는 캐나다 대표 미술가인 에밀리 카(Emily Carr) 예술 대학이 있고, 그녀의 작품에는 나무를 표현주의적으로 대담하게 표현하는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션 윌리엄 랜덜의 작품에는 광활한 캐나다의 모습, 황무지에 가까운 북부 캐나다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한편 숲 속 나무 역시 한 그루, 한 그루의 디테일을 살리는 묘사를 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이미지로 봤을 때에는 '군집'처럼 보여 몰개성하죠. 이런 특징들이 캐나다의 독특한 풍경화와 그의 작품 사이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2023년에 밴쿠버에 갔을 때에는 ian tan gallery에 혹시 구매할 그림이 있는지 보러 갔습니다. 하지만 <Coming Over>만큼 임팩트 있는 작품은 없었습니다. 핸드캐리를 하기에는 크고 카고에 싣기에는 불안했어요. 그리고 조금 더 취향에 맞는 그림을 사고 싶었어요. 내 마음에 꼭 드는 그림을 만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렵습니다.
혹시 집에 걸고 싶은 그림을 만났나요? 그렇다면 망설이지 말고 구매하세요. 다른 공산품과 달리 미술품은 살면서 한 번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는 것이 행운일 수도 있어요. 당신의 최애가 나타났다면 과감하게 구매하세요. 미술사적 위치가 어떤가요? 이 작가의 작품 가격이 오를까요? 이런 질문은 당신의 직관적인 마음에 비하면 다른 이유에 불과해요. 직관을 따르세요.
션 윌리엄 랜덜Sean William Randall(b.1965)
캐나다 출신의 시각 예술가다. 1992년 건축가로서의 커리어를 정리하고 전업으로 회화 작업을 시작했다. 현재 매니토바 주 위니펙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의 뛰어난 색채 감각과 예리한 통찰력은 그를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작가 중 가장 흥미로운 화가 중 하나로 만들었다. 캐나다 풍경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면서도 파스텔 톤으로 그린 대초원의 하늘에 불타는 잔해를 그려넣어 전통을 태우기도 한다. 노골적인 묘사를 자제하며 오히려 관객들이 신비에 매료되고 정교한 디테일 속에 빠져들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둔다.
출처: 작가 바이오그래피 링크
유에민쥔, Yue Minjun
Editor. 다나
저는 잘 웃는 편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웃음의 역치가 낮아서 웃음의 의미도 모른 채 자꾸 웃었습니다. 웃는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는 걸 알고 나서는 더 자주 웃었고,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된 웃음 뒤로 숨는 법까지 터득해 버렸습니다.
웃음 뒤로 불편한 감정을 숨길 때마다, 그리고 웃음이라는 가면을 쓴 다른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늘 생각나는 그림이 있어요. 유에민쥔의 미소가 그래요.
100호 기념으로 최애 작가에 대한 글을 쓰자는 말을 들었을 때 주저 없이 바로 떠오른 대상이 유에민쥔이었어요. 그동안 꺼내어 말하거나 쓴 적은 없지만, 살아가면서 자꾸만 떠오르고 묘한 위로와 해소의 감정을 받게 되는 작품이거든요.
현대인의 통점을 건드리는 서글픈 웃음

1989년은 천안문 사태, 구소련 해체, 동서독 통일이라는 기존 체제가 무너지고 전 세계적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한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를 전후로 활동하기 시작한 작가들은 영국의 yBa, 중국의 차이나 아방가르드처럼 당대의 통점을 냉소적이면서도 적나라하게 표현했습니다.
유에민쥔은 중국 현대미술의 사대천왕 중 한 명이자 차이나 아방가르드, 냉소적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실없이 웃고 있습니다. 바보 같기도 하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획일적으로 웃고 있습니다. 자본과 권력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하고 무능한 세대에 대한 자조적인 웃음입니다.
유에민쥔의 그림은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자본과 권력의 정점에 있는 트럼프 옆에서 웃으며 쩔쩔매는 정재계 인사들이 떠오르고, 좋든 싫든 웃으며 고객을 상대하는 감정노동자들의 미소가 떠오르고, 불편한 진실을 어설픈 농담과 웃음으로 덮은 채 소통하는 모두의 일상이 겹쳐집니다.
“내 작품 속 인물은 모두 바보 같다. 그들은 모두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강요된 부자유와 허무가 숨어있다. 이들은 나 자신의 초상이자 친구의 모습이며 동시에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 유에민쥔
무감각과 몰상식, 그리고 위선

<방관자>에는 “야, 미쳤어? 사람 안 구하고 뭐 해!”라고 외치는 제정신의 용자는 슬프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구 하나 선뜻 물에 뛰어들지 않고, 누군가는 죽어가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사진을 찍습니다.
심지어 물에 빠진 사람은 죽어가는 위기 속에서도 눈치를 보며 웃고 있어요. ‘힘들어도 웃는 자가 일류다’라는 말이 떠오름과 동시에, 얼마나 잔인한 말인가 하는 생각도 스칩니다. 유에민쥔의 작품에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 현실이 되어버린 아이러니를 반추하게 하는 깊고 날카로운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유에민쥔을 살면서 늘 떠올리게 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죽을 위기 속에서도 타인의 눈치를 보며 실없는 웃음을 날린 적이 있나요? 혹은 처절한 광경을 보아도 선뜻 나설 마음 보다는 그저 공유할 구경거리로 기록하는 편이었나요. 과연 이 장면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올곧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조각 작품에서는 그의 문제의식이 더 노골적으로 표현됩니다. 눈을 가리고 뒷짐을 진 채 웃고 있는 모습에서 문제를 바라볼 용기도, 실행할 용기는 더더욱 없는 무수히 많은 현대인의 모습이 뼈아프게 표현됩니다. 웃는 얼굴 뒤로 저마다의 짐승을 숨긴 <짐승 같은 인간>에서는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친절과 위선으로 가장한 나쁜 의도들 속에 얼마나 둘러쌓여 있을까요. 혹은 짐승과 같은 노골적인 욕망을 나이스한 표정과 태도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나요. 이 적나라한 모습 앞에서 나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내 안에도 저런 짐승이 있지는 않을까요.
웃음은 진정한 유희의 표현이지만, 때로는 고통을 감추는 가면이자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출구로 쓰이기도 합니다. 자본과 권력의 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웃음을 택한 개인을 탓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웃음 이면으로 인간이기에 느껴야 하는 감정과 감각까지 상실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유에민쥔의 웃음을 떠올립니다. 웃음 너머에 있는 인간성과 현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요.
이불, 트레이시 에민 Lee Bul, Tracey Emin
Editor. 클로이
2015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아트옥션에 입사했습니다. 작품을 걸고 또 내리다 보면, 팔리는 것보다 팔리지 않는 것이 종종 더 좋았습니다. 돌아보면 내 집에 걸고 싶은 작품보다, 집에 두면 안될 것 같은(?) 작품들이 때때로 더 좋았습니다. 십년 전 김환기가 최고가를 경신했던 겨울 경매장, 트레이시 에민의 네온사인 앞에서. 아직 리움미술관 야외 정원에 놓여 있던 루이스부르주아의 마망 주위에서. 기무사터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된 것을 기념하는 장영혜 중공업의 색동 프로파간다 앞에서.
가끔 왜 미술을 업으로 삼으려 했는지 생각했습니다. 삶의 부분이 아니라, 삶의 전부가 예술인 작업이 좋았습니다. 살다보니 예술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술이 아니면 살 수 없(었)을 것 같은 작가가 좋았습니다. (살다보니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고 취향이 좀더 희석되었습니다만...) 어쩌면 이 오래된 취향은 학부시절 미술사 입문서 끄트머리에 실려있던 작은 도판들에서, 더 오래전 폭식하듯 읽던 중고등학생 필독 시집(?)에서 왔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친 여자, 슬픈 여자

책 귀퉁이 작은 도판 속, 몸의 안팎이 뒤집어진 듯, 피부의 안쪽을 내보이는 듯 붉은 덩어리들 위로 자라난 손발, 혹은 손발이 되지 못한 촉수들. 괴물같은, 기괴한, 추한,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몸의 형상 - 소프트 조각을 뒤집어쓰고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 걷는 여자. 미친 여자, 슬픈 여자. 미친 짓을 해도 '세상에 소풍나온 (정신 나간) 강아지 새끼' 정도로밖에 취급 받지 못하는 여자. '안온다정무해'한 (가부장적) 사회 바깥의 약자. 정상이 아닌, 정상일 수 없는 낙인 찍힌 사람. 어떤 시대에는 질병이고, 정신병이고, 장애이고, 이등시민이고, 기록되지 않고, 지워지는 사람, 들.
사진에서 흡사 (최승자 시인의)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지르는 처절한 비명이 들립니다. 어린 시절에는 우리 모두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요. 자라보니 누군가는 이 세계에서 죽었다 깨어나도 획득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왜 어느 별은 하얗게 웃으며 피어나고 / 왜 어느 별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추락하는가 / 조용히 나는 묻고 싶었다 / 내 인생의 꽁무니를 붙잡고 뒤에서 신나게 흔들어대는 모든 아버지들아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 꺼내줘어머니세상의어머니 안되면개복수술이라도해줘 말의창자속같은미로를 나는 걸어가고 (...)'
사랑은 자해다

우리는 나 자신을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을까요? 사회로 나가면 우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날 것으로 드러내지 않는 법을 익힙니다. 사회화 되지 못한 개인이 외부로 그 목소리를 발산한다면, 이 '(드)센' 사람에게는 비사회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이불의 작업처럼요.) 한편 비정상으로 명명된 이들의 목소리가 자신의 내부로 수렴할 때, 이 '연약한' 사람의 폭력성은 대개 자기 자신을 향합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트레이시 에민의 작업이 솔직하고 자전적이다 못해 자해처럼 보이는 까닭이겠죠.
자신을 감추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한 방법입니다. 한없이 침잠하는 인간 내면의 바닥, 가장 끔찍하고, 은밀하고, 정신적으로 취약한 현장. 흐트러지고 얼룩진 침대 시트, 생리혈, 콘돔, 빈 술병, 속옷, 피임약, 기타 쓰레기가 널브러진 트레이시 에민의 대표작 <나의 침대>(1998)은 그 내면을 뒤집어 깐 외피입니다. 연속된 사랑의 실패, 더 많은 사랑의 갈구와 탐닉은 지나치게 자기 고백적이고, 동시에 자기 파괴적입니다. 40여년 뒤 발화하는 <두 번째 삶 A Second Life>, <사랑의 끝>(2024)에서도 여전히 침대에 어둡게 드리워진 육중한 핏빛 신체-몸과 정돈되지 않은 현장, 이 삶의 유일한 목격자-고양이만이 선명하게 대상을 응시하고 증언하는 듯한 것은 착시일까요.


이불의 최근 작업은 비교적 멀리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반면, 트레이시 에민의 최근 작업은 여전히 자기 서사로 가득차있습니다. 에민의 불안과 정신병적 징후들-낙태, 유산, 알콜 중독, 우울증, 자살 시도 등-, 시스템적으로 감지되지 못하는 고통은 자주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됩니다. 하지만 이불과 트레이시 에민의 작업을 '목격한' 우리는 온전히 이를 개인의 문제라고 외면할 수 있을까요. 온 몸으로, 온 삶으로 하는 예술은 종종 벼락처럼, 신탁처럼, 언령처럼 가시화되지 못한, 소수자적인, 당사자성과 확신으로 가득찬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이런 예술을 마주할 때는 꼭 작품도 나를 응시하는 것 같아요. 날카로운 시선의 끝에 닿을 때, 어떤 예술은, 어떤 아름다움은, 어떤 진실은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합니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You Must Change Your Life'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주제이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구절로 이 글을 맺어봅니다. "(시적 화자는 예술 작품을) 마주한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방식이 뒤바뀌는 경험을 한다. 관점과 위치가 변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이전처럼 계속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변해야만 한다."
BONUS TRACK. 캔버스 100호 사이즈

100호 특집, 캔버스 100호 사이즈 비교표를 준비했습니다. 약 64x51 in의 인물형 캔버스를 기준으로 보고 쉽게 100호 캔버스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100호 작품 부터는 거대한 공간에 어울리고, 공간 전체를 압도하는 느낌을 준다고 생각해요. 장엄함을 느끼게 해주는 크기라고도 생각합니다.
당신의 최애 작가는 누구인가요?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를 앞두고 있는 지금 구매하고 싶은 작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나요? 만약 좋아하는 작가는 있지만 설명할 수 없다면 비지터씨(visitor.see)를 구독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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