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다양한 형태의 여행이 있다.
반려동물들과 함께 지내는 생활 문화가 발달한 외국에서는 동물 가족들을 여행에 데리고 갈 수 없을 때 본인의 집을 여행자에게 제공하고 여행자는 그 집에서 지내며 남아있는 반려동물들을 돌봐주는 형태의 여러 여행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어있다. 운이 좋다면 정말 멋진 집에서 호화롭게 지낼 수도 있다! (도쿄 어느메에 안도타다오가 디자인/설계한 집이 리스트에 올라 와 있는 것도 발견했음, 수영장 딸린 저택은 아주아주 흔하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도 이 방식을 꽤 이용한다는 것을 발견한 나는 여행을 시작하기 7~8개월 전부터 ‘Trusted House Sitter’라는 유료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생면부지 남에게 내 집과 사랑하는 가족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커뮤니티에서는 신뢰가 가장 중요한 이슈인데, 당연히 커뮤니티 내에서 경험이 충분하고 평이 좋은 시터가 선호되기 마련이다. 좋은 리뷰를 미리 좀 쌓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 전 제주에서 몇 번의 하우스시팅을 시도했고, 그때 만난 게 루시와 라이너스였다. 리뷰 하나 없는 우리를 믿어줘서 어찌나 고맙던지! 카일과 마리아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화순리의 조용한 동네에서 몇 주 지내며 아이들을 케어 했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출퇴근 시간이 1시간 정도 늘었음) 긴 여행을 준비하는 와중에 동물들을 돌보는 게 쉽진 않았지만 값진 경험이었다. 털친구들을 껴안고 지내는 시간이 굉장히 만족스러우면서 한편으론 하루 9시간 회사에 매여있어야 하는 우리에겐 반려동물을 들이는 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고…
뉴질랜드에 와서는 하우스시팅 기회가 많지 않았다. 우리는 Great Walks 트래킹들을 미리 예약해 이미 확정된 일정들이 너무 많았고, 북섬과 남섬을 오가는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곧 떠나야 할/이미 지나온 마을의 아름다운 집들이 시터를 모집한다는 알림이 오면 아쉬워하면서도 그냥 지나쳐야만 했다.
시간과 일정이 잘 맞으면 그들이 우리를 원하지 않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지원과 또 셀 수 없이 많은 거절.. 매번 하우스시팅에 지원 할 때 마다 지원서를 열심히 공을 들여 (영어로!!) 쓰는데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듯 한 답변 한 줄 없는 칼거절에 처음엔 조금 상처도 받았다가, 화도 났다가.. 결국 하나의 시팅도 성사되지 못하고 1년 구독(구독료 약 15만원)이 끝났을 땐 우리는 제주에서 바쁜시간 쪼개 무료봉사만 하고 돈을 날린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 후회도 잠깐 했다. 하지만 빵돌이가 옆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며 1년 더 구독해 보자고 등을 두드려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웰링턴 하우스시팅이 성사됐다.
웰링턴 시내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떨어진 조용한 주거지역이었다. 우리가 돌봐야 할 친구들은 강아지 둘(잭, 데이지), 고양에 셋(팅커벨, 스톰, 다코타). 집주인인 샬롯과 던컨은 떠나기 하루 전날 우리를 미리 초대해 집을 소개하고 동물들과 인사를 시켜줬다. 너른 앞, 뒷마당이 있는 2층 집이고 강아지 고양이들은 모두 뒷문을 통해 자유롭게 집 안팎을 쏘다닐 수 있는 환경이었다. 고양이 둘(스톰, 다코타)은 주로 밖에서 생활하고 밥 먹을 때만 집에 돌아오는 편이라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고, 강아지들도 크게 긴 산책이 필요하진 않다고. 보통 집 앞 강아지공원(10분거리)에 잠깐씩 다녀온다고 했다. 오 이런 꿀 하우스시팅이 우리에게!
잭은 사랑둥이 강쥐 그 자체였다. 항상 행복한 표정으로 우리와 어울렸고 꼭 무릎에 앉으려고 하면서 만져주고 놀아주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했다. 먹는 걸 좋아해 살이 조금 찐 상태라 데이지가 먹다 남긴 밥을 훔쳐먹지 않도록 조심을 시켜야했고. 저녁밥엔 피부약을 반 알 섞어서 줬다.(약 먹는지도 모르고 매번 게눈감추듯 먹어 치웠다.)
초반엔 데면데면 우리를 대하던 데이지(내향견이라고 합니다)도 종국엔 우리에게 쉴 틈 없이 달려들며 뽀뽀를 갈기고, 책을 읽고 있으면 졸졸 따라와 꼭 옆에 누워있곤했다. 내향적이지만 또 한편 에너지가 넘치는 아직 어린 강아지라 운동량을 채워주려고 노력했다.(저의 노력 영상 보신 분들이 계실 듯..)
샬롯이 얘기한 대로 스톰과 다코타는 자주 보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아침 저녁 밥시간엔 꼭꼭 귀가를 하셨고, 가끔 뒷마당에서 간식 봉지를 흔들어 소리를 내면 어디있다가도 쪼로록 뛰어 들어와 다리에 몸을 부볐다.
팅커벨은.. 우리는 그녀를 강아지라고 불렀다. (ex.강아지 세 마리 다 모였네) 아름다운 미모를 뽐내며 관심받는 것을 즐기는 듯 했고 항상 조물조물 만지는 걸 허락하며 금세 골골댔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달려든다는 것이 한가지 문제였는데, 굉장히 착하고 순한 성격이라 얼굴을 손으로 밀면 그대로 밀려지고, 안아서 바닥에 내려두면 저항 없이 순순히 안겨있곤 했다. 그리고 또 포기 않고 식탁에 올라오긴 했지만…
휴 귀여운 것들..
5일간 참 여유롭게 지냈다. 1달 반 동안의 캠퍼밴 생활에 알게 모르게 피로가 많이 쌓여있었던 것 같다. 좁은 공간과 거의 매일, 이틀에 한 번은 이동해야 하는 상황, 불편한 잠자리와 샤워, 공용주방에서 벗어나니 어찌나 천국 같던지!! 우리는 거의 매일 웰링턴 시내에 놀러나가려고 계획했었지만, 결국 하루도 나가지 않고 집에 콕 들어박혀 멋진 거실뷰를 감상하며 매끼 밥 차려 먹고, 책을 아주 많이 읽고, 강아지들과 놀면서 푹 쉬고 재충전했다. Dolce far niente!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웰링턴에서 몸과 마음 모두 편안히 잘 쉰 덕에 우리는 이 후 이틀연속 트래킹을 하기도 하고, 산악자전거에 도전해(완전 털림, 이건 다음에 자세하게 전하겠습니다) 볼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던게 아닐까.
샬롯이 멋진 후기를 써 준 덕에 앞으로의 하우스시팅은 상대적으로 순항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당장 내일모레 아침엔 런던과 에든버러의 하우스시팅 인터뷰 비디오 콜이 각각 예정돼 있다. 긴장되지만 기분 좋은 설렘이다.
다양한 도전과 새로운 시도, 우리의 여행이 내가 원하던 모습대로 그려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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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너
오모나!!!! 이런 멋진 일이!!!🐶🐱 글만 봐도 너무 행복하고 충전되는 시간이었던게 느껴지네😊 여행다니다보면 지치기 마련인데 적절한 타이밍에 좋은 휴식이었던듯!!! 앞으로 여러나라 여러도시의 여러강쥐야옹친구들과의 만남도 기대합니다🕊️
역마살 실전편
정말 적절한 타이밍이었지 모야😊 완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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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
아니 정말 읽는동안 대리행복💕 겸둥갱쥐들과의 행복한 사진들 공유 감사해요🐶😺 부디 얼른 뉴폰 얻으셔서 더 많은 사진을 공유해주시기를 ㅎㅎㅎ 앞으로의 여행도 넘 궁금하고 기대됩니당 뉴스레터 언제나 기다리고 있어요🫶🏼
역마살 실전편
ㅋㅋㅋㅋ 뉴폰 얼른 얻어서 고퀄의 컨텐츠 제공에 힘쓰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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