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2024년 성탄절은 가장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탄절 당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도쿄로 떠나야 하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인데, '새벽에 타게 될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첫 번째로 중요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부족한 잠은 이동 시간에 틈틈이 채워두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인천공항을 가기 위해서는 약 세 가지 정도 선택지가 주어진다. 근처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공항행 고속버스, 몇 번의 환승을 통해야만 하는 공항철도, 가장 편리하지만 가장 금액적 우위에 있는 자차. 이 세 가지 중에서 고속버스를 선택했다. 캐리어를 끌고 터미널까지 가야 했지만 넓은 좌석과 '남이 운전'해 주는 차량을 타는 게 육체적으로 덜 피곤하기 때문이었다. 표를 예매하기에 앞서 제시된 운행 시간을 보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02시 출발과 04시 출발. 나는 어릴 적부터 출국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갈 때면 항상 3-4시간 전에 도착하여 여유롭게 모든 절차를 밟았다. 이번에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도착하기 위해 02시 차를 예매했다. 그런데 이 시간대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버스는 나와 짐을 싣고 정확한 시간에 출발했다. 직통 노선이 아니었기에 몇 군데 정도를 정차하며 갔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모든 도로의 신호는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게다가 나를 제외한 탑승객은 두 명이 전부였다. 그말인 즉슨 정차 따위는 기름 낭비였던 것이다. 버스는 엔진이 쉴 틈 없이 돌아갔고 차 없는 고속도로를 달려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겨우 03시 10분. 출국 수속을 위해 열리는 항공사 카운터에는 '오픈 05시'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나는 사람과 함께 불빛마저 사라진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집에서 챙겨나온 프렌치토스트와 귤 세 개, 방울토마토 몇 개와 단백질 두유 두 개. 이 모든 것들은 자신에겐 여전히 어린 막내아들로만 느껴지는 엄마의 준비물이었다. 어느샌가 '부모의 마음'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느끼면서 가능한 많은 것을 듣고 이루어주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 그래서 출국 수속을 밟기 전까지 챙겨준 모든 걸 해치웠다. 도중에 역류하는 토스트를 막기 위해 눈을 감고 다리를 떨었다. 벤치 위에 앉아 있었지만, 다행히 거대한 화분에 가려진 자리였다. 나는 아마 이것들을 다 먹지 못했더라면 일본에 도착해서 컨디션이 떨어졌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그랬다.
출국 수속을 모두 밟고 홀가분해진 몸과 함께 보호구역(면세 구역)에서 커피를 구매했다. 다행히 그 시간에도 스타벅스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열심히 까만 물을 내리고 있었다. 중간 크기의 컵을 골라 겨울이지만 차가운 것을 주문했다. 나는 공항 안에서 더위와 함께 했기 때문인데, 난방이 잘 되는 실내는 사람의 양면성을 띠게 한다. 탑승권을 확인했다. 274번 게이트, 탑승 시각은 08시05분이었다. 나는 한참 전에 도착했기 때문에 또 다른 벤치에 앉아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 상'을 읽기 시작했다. '다무라 카프카'와 '나카타'를 번갈아 가며 상상하다가 밀려오는 졸음을 피하지 못했다. 책을 덮고 몸을 등받이에 힘껏 기댔지만, 후드가 달린 스웻셔츠를 입었기 때문에 그리 편안하지 않았다. 주위를 몇 번 살피다 처음으로 벤치 위에 누워보았다. 마침, 공항에는 사람도 없었고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대부분 누워서 잠을 청하는 게 이곳의 규칙처럼 느껴지게 했다. 얼마간 잠을 청했고 눈을 떴을 땐 시간이 08시에 가까워졌고 같은 목적지를 바라보는 탑승객의 숫자도 늘어났다. 그때 안내 방송이 나왔다. '도착 편 지연으로 인해...' 아니기를 바랐지만 내가 탑승할 비행기의 지연 안내 방송이었다. 약 20분 정도 더 주어진 시간에 불평하지 않고 부족한 잠을 더 청하기로 했다. 그렇기 10분이 지났고 다시 방송이 나왔다. '다시 한번 죄송한 안내 말씀을 드립니다....' 탑승하기 위한 대기 시간이 10분 더 추가 됐다. 체념이 가장 빠른 정답이었다. 그 뒤로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샌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때 시간은 08시 40분이었다. 이제 나에게는 도쿄에 무사히 도착하는 일이 남았다. 미리 내려받은 '문상훈의 오당기 플레이리스트'를 꼬인 이어폰으로 들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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