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무사히 도착하고 나리타 공항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방랑자에 불과했다. 복잡한 그곳에서 나의 고독한 발걸음과 상기된 얼굴에는 얼른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표현되고 있었고, 그의 집까지 가야 하는 여정을 짜임새 있게 정리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도쿄 시내로 들어서는 일이다. 우선 그 전에, 한참 부족한 수면 시간이 피로를 몰고 왔기 때문에 카페인이 필요했다. 공항과 연결된 지하철역 앞에는 로손과 스타벅스가 있었다. 어째서인지 편의점은 항상 로손보다는 세븐일레븐, 훼미리 마트를 선호하게 됐다. 이유는 새로운 도전보다 안전한 실패가 낫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그래서 스타벅스를 향했다. 내게 많은 양의 카페인은 필요하지 않았고 도심으로 들어가는 열차 시간을 고려해야만 했다. 그래서 쇼트 사이즈로 드립 커피를 주문했다. 이 주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커스터마이징'이 들어갔다. 단어가 굉장히 부조화를 이루는 듯해 보이지만 단순하게 풀어보면, 첫 번째 한국 스타벅스에는 쇼트 사이즈를 판매하지 않고 있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들렀던 매장은 그랬다.) 355 미리의 톨 사이즈가 때때로 버겁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었지만, 쇼트 사이즈는 현저하게 부담이 적다. 두 번째 드립 커피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맛'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 또한 지극히 개인의 경험에서 느꼈던 바다. 음료의 온도와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도 비교적 일정한 맛을 유지한다. (이것에 대해 길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다뤄보고 싶다.) 그렇게 주문한 커피를 가지고 바 테이블에 앉아 열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변함없는 맛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열차에 탑승할 시간이 다가왔다. 짐을 챙겨 나와서 크기와 반비례하는 무게를 가진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내려갔고 이내 열차에 탔다. 다행히도 열차 내부는 북적이지 않았고 자리에 앉아 다리 사이로 캐리어를 힘껏 조여 몸쪽으로 끌어왔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 혼자서 이동하는 경험은 오늘로써 물꼬를 틀었다. 그것이 불안정했던 것일까, 다음 정거장을 안내하는 방송이 나올 때마다 지도에 나와 있는 글자와 비교하며 안정을 받아내야만 했다. 그렇게 긴장 속에서 첫 번째 환승역에 도착했다. 표시된 역 출구는 한없이 많고 사람들은 모두 거미줄에 걸린 먹이를 향해 고치를 만드는 거미처럼 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지나갔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건 지난 삶의 경험에서 일깨운 직감이다. 나는 길을 잘 찾는 편에 속해서 어지간하면 걸어온 길을 잊지 않는데, 그 기질이 타국에서도 발휘됐을 때, 느껴지는 희열은 굉장했다. 그렇게 무사히 환승에 성공했다. 이제부터는 한 시간 정도 달려가면 된다고 지도에서 알려주었고 맨 끝 좌석에 앉아 아까와 같이 다리에 힘을 주어 짐을 고정하고 '해변의 카프카'를 이어 읽었다.
'니시고쿠분지'. 내가 내린 지하철역의 이름이다. 여기서 '니시'는 서쪽을 뜻한다고 한다. 세상의 방향은 총 네 방향으로 뻗지만 나는 한쪽의 이름만 알게 됐다. 내겐 하나라도 알게 된 것이 고무적일 뿐이지만. 이곳은 높은 건물이 많이 없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동네가 첫인상이었다. 여행으로서 일본에 왔다면 중심지 또는 여행객이 많은 소도시에 방문하겠지만, 삶으로서 일본에 있다면 이런 모습을 보는구나 싶었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그들의 삶이 투영되어 펼쳐진 동네를 본다는 건 묘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개찰구 앞에 열린 작은 농작물 판매 가게부터 철제 기구에 녹이 슬어 생명을 다했지만, 여전히 손때가 묻는 놀이터, 각양각색의 외관으로 지루한 거리를 만들지 않는 주택까지, 낯선 이방인을 아무 말 없이 품어주는 이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그곳의 이방인은 나 혼자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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