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녹아, 내리다. 아이슬란드 행성 시리즈의 마지막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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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 달라진다고 뭐 달라지겠어.
이 말을 처음 한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처음에는 이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수질 오염,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뉴스만 나오면 울상이 되어 엄마에게 달려갔던 아이가 있었다.
매년 환경 보호 포스터를 그렸다.
시키지도 않은 환경 캠페인에, 하다하다 온 동네를 쏘다니며 쓰레기까지 줍고 다녔다.
그 아이에게 '나 하나 달라진다고, 뭐 달라지겠어' 같은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그 아이가 천천히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지웠다.
중학교. 환경 이야기를 꺼내면 '유별난 놈. 또 시작이다.' 하는 눈빛.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 과학을 배우면서 변명을 만들기 시작했다.
'임계점은 이미 넘었어. 시스템 문제야. 나 한 사람이 뭘 하겠어.'
냉소적인 허무주의자.
그게 내가 되어있었다.
사실은 무서웠던 것일게다.
유난을 떤다며 뭇매를 맞아왔으니까
진지한 척 했다가 웃음거리가 되어왔으니까
혼자 애써봤자 아무것도 안 달라질거라는 변명을 선택했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
그리곤 내 앞가림만은 잘하는 책임있는 어른이 되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착각
그 착각—당시엔 착각인줄도 몰랐다—을 안고 아이슬란드에 갔다.
오로라 사진이나 건지겠다며.
쉽사리 가기 힘든 여행지와 경험을 값싼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한 마디에 넘어가,
그저 최저가 여행의 한 방편으로 워크캠프가 선택됐다.
그런데,
빙하의 묘비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Only you know if we did it.'
우리가 해냈는지는 당신들만이 알겠죠
가슴이 쿵 내려앉았지만, 습관처럼 방패를 들었다.
'슬프긴 하네. 근데 이미 늦었다니깐.'

열여덟 살 네덜란드 소년은 해수면이 올라가도 살 수 있는 집을 짓겠다고 눈을 반짝였다.
서른이 넘어 방황하던 내가 가져온 질문은 당장 내 눈 앞의 문제를 향해 있었고,
그 아이의 질문은 인류의 거대한 담론을 향해 있었다.
코코아를 저으며 생각했다.
'내가 접어놨던 질문을, 저 아이는 펼치고 있구나.'


오로라가 나오지 않던 밤, 따뜻한 방 안에서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평소의 나와 달리 손이 자꾸 문고리를 잡았다.
문을 열자 오로라가 코 앞까지 나타나 일렁인다.
나 하나의 움직임이, 열두 명의 오로라가 되었다.
세상의 끝 눈내린 허허벌판, 덩그러니 놓은 폐가에서 우리는 망치를 잡았다.
매캐한 먼지 속에서 나는 '왜 굳이 이런걸... 전문가 부르면 금방인데' 이라며 투덜거렸다.
그런데 숙소로 돌아와 난로 앞에 앉는 순간 생각한다.
우리 역시 누군가의 헌신이 없었다면, 이 포근함은 없었을 거라고.

오로라
처음에는 이 흔치않은 경험에 대한 합리적 소비의 일환으로 내딛은 땅.
그 아이슬란드가 오히려 나에게 계속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너는 언제까지 안된다는 말 뒤에 숨어 있을 거야?'

꿈을 위한 한 걸음을
여태 '굳이?' 라는 말로 일축해버려 왔던 나에게 일갈하고 있었다.
유별나게 보는 시선으로부터의 도망.
아- 진지했던 아이를 지운 건 세상이 아니라 나였구나.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을 마주한다.
'넌 누구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무엇을 해봤니?'

코리안 툰베리는 아직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세상이 달라지는지는 여전히 몰라.
하지만 나 하나가 달라졌더니, 열두 명이 오로라를 봤어.
다음에 올 누군가를 위한 쉘터가 다듬어졌어.
아이슬란드가 말을 건다.
한발짝 내딛어보라고
해보기 전엔 모르는 것 아니냐고
'Only you know if we did it.'
우리가 해냈는지는 당신들만이 알겠죠.

[녹아, 내리다. 아이슬란드 행성(Melting Point: Planet Iceland)]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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