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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게 행복이다."
친구가 맥주 한 모금을 넘기며 말했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 총을 든 군인들이 지키는 통제된 플랫폼에서 역무원을 졸라 겨우 얻어낸 하얼빈 맥주 한 캔. 그 한 모금이 우리 여행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국경은 그야말로 거대한 장벽이었다.
러시아 자바이칼스크에서 5시간, 중국 만저우리에서 또 5시간. 걸어서 5분이면 지나갈 수 있는 거리를 10시간 동안 기차에 갇혀 있어야 했다.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군인들이 들어와 침대 밑, 가방 속까지 샅샅이 뒤졌다.
러시아 국경 관리원들의 첫 질문은 "유! 노스 코리아?"
(사실 러시아어로 이미 물어본 뒤 우리가 못알아 듣는 것을 의식하고는 한 영어였는데, 북한 사람이냐 물어본 것 같았다.)

"노, 사우스"
우리의 대답에 당황스러움이 역력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가장 높아 보이는 상관을 데려왔다.
우리는 취조실 같은 곳으로 끌려갔다. 온갖 나라의 출입국 도장이 찍힌 내 여권과 친구의 여권을 번갈아 보며 그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오래 일했는데, 남한 사람이, 그것도 기차로, 이 국경을 넘는 걸 본 건 너네가 처음이다."
그의 말에 아찔했다.

결국 우리의 모든 지문과 얼굴 사진을 찍고 나서야 풀려났다. 러시아와 중국에 모든 정보가 팔린 듯 께름칙했지만, 어쩌겠는가.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검문과 스캔, 손짓 발짓과 구글 번역기를 통한 절실한 호소로 무사히 통과했다.
그렇게 숨막히는 러시아 국경을 통과하고는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고 하기엔 무색하게(아마 걷는 것보다도 느리게 간 것 같다.) 5분을 가는 듯 싶더니 이내 멈췄다.
중국이었다.
앞으로 5시간을 더 기다려야한단다.
기차 밖으로 나왔지만, 삼엄한 경비 속에서 화장실도 군인이 함께 따라오는 상황.

도저히 답답해 못견디겠을 때즈음, 가장 착해보이는 역무원에게 "칭웬~?" 하며 "워 넝 마이 피죠우 마??" (맥주를 살 수 있냐)고 간절하게 물었다.
그런데 웬걸? 그 친구가 하하하! 하면서 호탕하게 웃더니 따라오라 손짓하는 게 아닌가?
꼬불꼬불 역무원들만 지나가는 비밀 통로를 지나 어디론가 데리고 가더니, 플랫폼 밖 매표소 옆 편의점 비슷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상점 직원과 역무원이 우리를 가리키며 뭔가 즐거운 듯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얘네 맥주 마시고 싶대ㅎㅎ 하나 줘봐! 같은 말이었겠지."

아는 중국어를 어찌저찌 총동원해가며 맥주를 한 병씩 받아들고오는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승전장군마냥 얼마나 뿌듯하던지.
그렇게 마신 맥주 한 모금.
"야, 이게 행복이다."

여행의 의미
친구의 말에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길고 지루했던 10시간의 기다림은 그 순간부터 즐거운 기억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여행이란,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예측 불가능한 문제에 부딪히고, 온몸으로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터져 나오는 도파민. 그리고 마침내 얻어내는 아주 사소한 자유와 성취감.
그리고
서울에서의 내 일상과는 완벽히 단절된 그곳에서, 가야 할 길에 대한 사색과 이를 통해 얻는 어렴풋한 답.
거창한 계획이나 목표가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작은 행복을 온전히 느끼는 것.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고, 한 단계 더 나은 나로 성숙해가는 것.
이것이 앞으로 내가 만들어갈 앞으로의 모든 여정의 가장 중요한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덜컹거리는 기차는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아니! 만주 종단열차 탄 이야기 - 마침.)
* 다음주에는 <특별편 : 혼자 어디까지 가봤니? 코타키나발루!> -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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