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지난 주말, 참 화창했던 날에 먼 친척의 결혼식에 다녀왔어요. 야외 결혼식이었는데, 화촉 점화 대신 양가 어머님이 나오셔서 화분에 물을 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제 눈물샘은 고장 나버린 것 같아요. 결혼식 내내 코가 찡해지고, 광대 근육이 씰룩씰룩 말을 듣지 않았어요. 특히 축가로 신부와 신부의 친구가 '오르막길'을 부를 때에는 선글라스를 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물샘이 비상이었답니다. 저는 신랑, 신부분과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주책맞게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어른 노릇, 엄마 노릇을 하느라 단단하게 굳은살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순간에 마음이 툭 건드려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숨기고 싶어도 결국 숨겨지지 않는 무른 진심을 마주하면 창피하지만 반갑기도 해요. 그리고 행복은 정말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죠. 대단하지 않아도 마음을 채우는 일들을 어떻게 하면 일상에서 자주 마주칠 수 있을까요?

✏️ 이렇게 사용해요
어른들이 숨겨뒀던 얄캉한 속내가 슬쩍 보일 때면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 나보다 큰 사람도, 나이 많은 사람도, 미운 사람도, 적도 상관없다. 사회에서 살기 위해 크고 강인한 갑옷을 입고 스스로를 부풀려놨을지라도, 그 깊숙이에 얄캉한 코어가 숨 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면 반가워진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상담에 다녀왔다. 선생님과 학부모, 두 어른이 겸연쩍게 어린이 의자에 마주 앉았다. 주어진 20분 동안 우리는 서로가 아닌, 자리에 없는 아이 얘기만 잔뜩 늘어놓았다. 대화가 슬슬 닫힐 무렵, 내내 묻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 때문에 힘드실 때 없으세요?"
"전혀요! OO이 같은 천사가 저한테 어떻게 왔나 싶어요. 밥도 잘 먹고…"
선생님은 손사래를 치며 아이의 칭찬을 줄줄 늘어놓았다. 평소였으면 뿌듯하게 들었을 말들이 하나도 귀에 꽂히지 않았다. 선생님의 크고 깊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기 때문이다. 눈물이 차오를수록 나도 덩달아 울컥했지만, 그 눈물을 못 본 척해주고 싶어 겨우겨우 식혔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익숙해질 만하면 창의적으로 후려치는 시련들을 견뎌내느라, 때로는 반창고로, 때로는 급한 마음에 씹던 껌으로 마음을 지켜내다 보니 이리저리 지저분하게 엉겨 붙은 방어막들. 덕분에 아프지 않을 때가 점점 많아지지만, 방어막이 두꺼워질수록 안에 담긴 마음을 자꾸만 잊게 된다. 신기하게도 부서지지 않는 기특한 마음이다. 예리한 철심에 닿으면 휘어지고, 낯선 바이러스에 닿으면 물러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자리도 머무는, 그 얄캉한 마음이 아직 나와 모든 어른에게 남아 있어 다행이다.
얄캉한 마음을 지켜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곧 있을 백상예술대상에 드라마 〈은중과 상연〉이 방송 작품상 후보로 올랐습니다. 강인한 슈퍼히어로를 좋아하던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본인의 얄캉한 마음을 내비치고, 한계에 힘들어하기도 하는 인물들이 더 정감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오늘은 드라마에서 만날 수 있는 얄캉한 마음들을 모아봤습니다.
- <은중과 상연> 천상연: 누구보다 당차게 성공을 만들어낸 사람처럼 보여요. 그런데 평생 은중을 동경하고 질투하고 미워해 왔죠. 아픈 가족사, 사랑, 우정을 애써 관심 없는 척하며 흘려보내려 노력하지만, 늘 상연은 그들에게 기꺼이 발목을 잡히며 모든 것을 내어주는 인물입니다.
- <나의 해방일지> 염미정: 사람들 앞에서 적당히 웃고 적당히 맞춰주며 지루한 일상을 견뎌내는 미정은 "나를 추앙하라"는 선언으로 자신의 결핍을 구씨에게 당당하게 드러냅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며 자신만의 해방을 찾아가는 미정의 노력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 <그 해 우리는> 국연수: 연수는 가난과 책임감이라는 무게 아래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가시 돋친 껍질을 두른 독한 현실주의자처럼 보여요. 하지만 '할머니와 둘이 돈 걱정 없이 평범하게 살고 싶다'라는 놀랍도록 작고 따뜻한 소망을 갖고 있어요. 숨겨진 본질은 누구보다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 <멜로가 체질> 이은정: 세 친구 중에 가장 강인해 보이는 은정은 남자 친구를 잃은 후 그의 환영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만의 속도로 아픔을 통과해 왔어요. 마음껏 울고, 웃고, 끝내 자신의 상처를 똑바로 응시하며 힘들다고 말할 줄 아는 용기를 갖고 있습니다.
- <스토브리그> 백승수: 감정의 기복이 없는 백승수는 얼음처럼 차가워 보입니다. 늘 무표정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지만 팀에 좋은 일이 생기면 조용히 흐뭇하게 웃기도 합니다. 인간 같지 않은 모습 안에도 사실은 무엇이 들어있는지 미소로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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