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삶] 덴마크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요

스퀴지, 수돗물 마시기, 맑은 하늘

2023.09.02 | 조회 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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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삶의 주간 성찰

일하고 배우고 느낀 성찰을 나눕니다

덴마크에서 있으면서 이건 정말 여기에만 있는 거구나, 참 신기하고 때로는 부럽게 느낀 게 있어요. 

코골이와 함께 잠을 잘 수 없어 기숙사 원룸을 신청했는데요. 중간 문을 열면 원룸 2개와 화장실이 하나 있는 구조의 방을 배정받았습니다. 그러니 3주간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이 룸메이트가 아닌 화장실 메이트인 셈이죠. 

제 화장실 메이트는 '60대, 아름다운 사람들'에서 소개한 한나입니다. 65세의 덴마크인으로 지금도 주 1회 사무실에 출근해서 글을 쓰는 전문가입니다. 한동안 영어를 쓰지 않아 기억을 되살리려 IPC에 왔다고 했어요. 덕분에 제가 시니어들과 더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처음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던 중 한나가 저에게 와서 뭔가 영어로 설명하는데 정확한 단어를 못 찾아 번역기까지 돌렸지만 알 수 없었어요. 

화장실을 사용 후 남은 물기를 제거하는 물건이 이곳 화장실에 없다는 내용이었는데, 그게 영어 단어로 뭐라고 표현할지 몰랐던 겁니다. 한영사전에서 찾아보니 cleaning scrapper(청소용 스크래퍼)인 듯하여 우리끼지 잠정적으로 scrapper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시설 관리하는 분이 덴마크인이라 한나가 덴마크어로 설명해서 scrapper를 받아왔습니다. 

다른 화장실에는 없는 scrapper를 우리 화장실에서는 사용해야 했죠. 전 한국에서 화장실 문을 늘 열어두고 자연 건조를 시켰는데, 화장실 메이트 한나의 덴마크 문화에 맞춰야 해서 씻고 나면 scrapper로 뒷정리를 하는 수고로움을 겪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물기가 싹 사라져서 깔끔하긴 했습니다만, '다 씻고 땀 흘려 뒷정리하는 노력이 과연 맞는 건가?' 하는 자괴감도 올라왔어요. 아무튼 3주 동안 숙련된 사용자로 거듭 났습니다.

과정을 마치고 에어비앤비 숙소가 예정되어 있어 안내문을 받았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Please use the squeegee provided after every shower." (늘 샤워 후에는 스퀴지를 사용해 주세요)

그랬군요. squeegee(스퀴지, 바닥 청소용 고무 청소기)였군요. 3주 동안 사용한 경험으로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가뿐하게 사용했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게 덴마크에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미 깔끔하게 화장실을 사용하는 분은 한국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스퀴지(좌) 수돗물 마시기(중) 맑은 하늘(우)
스퀴지(좌) 수돗물 마시기(중) 맑은 하늘(우)

덴마크 여행을 가기 전 물 걱정을 했습니다. 덴마크 수돗물 마시기, 덴마크 수질 등으로 검색해 보라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물에 석회가 들어있어 피부가 거칠어지고 사셔 마셔야 하는데 물값이 비싸다는 둥 여러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브리타 휴대용 정수기를 직구해서 사갈 생각까지 했더랬어요. 정보가 많지 않아 걱정만 하다 그냥 갔는데요.

석회가 들어간 물을 마시면 건강에 좋다, 안 좋다는 논란이 여전히 있지만, 현지에서 만난 모든 덴마크인은 안전하니 그냥 마셔도 된다고 말하고 실제로 수도물을 틀어 마시더군요. 물을 끓이면 석회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고, 머리카락이 푸석해지고, 피부가 거칠어지긴 했습니다만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어딜 다니던 수돗물을 마시면 된다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이나 편했습니다. 함께 식사하다가 물이 떨어지면 주방에 가서 수돗물을 받아왔습니다. 여행 다니다 물이 떨어지면 화장실 냉수를 받아 물통에 채웠습니다. 좀 거시기 한가요? 한국에서도 아리수라는 브랜드로 수돗물 마시라고 하죠. 그러니 꼭 덴마크에만 있는 건 아니네요. 

가장 부러운 것 중 하나가 푸르디푸른 하늘이었어요. 아침 6시에 해가 떠서 저녁 10시까지 환한 게 넘 부럽더라고요. 하루가 어찌나 긴지 말이죠. 체력이 달려서 그렇지 안 그러면 엄청 돌아다니겠더군요. 대부분 별장 같은 써머하우스(Summer House)가 있어 여름을 즐기는 여유가 부러웠어요. 이것도 여름이라 가능한 거라고 하더군요. 겨울이면 춥고 해도 빨리 져서 집콕을 하게 되고 그래서 ‘휘게(Hygge)’가 유명해진 게 아닌가 싶어요. 

출장이나 해외여행을 하고 귀국하면 한국도 참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지난주 수요일에는 비 온 후 무지개도 떴는데요. 덴마크에서 봤던 무지개보다 훨씬 더 예쁘더라고요. 우리 하늘도 높고 푸르고, 구름도 환상적입니다. 다만, 늘 내가 있는 곳이기에, 늘 누리는 것이기에 자세히 보지 않고, 별로라는 착각에 빠져 살아요. 눈을 번쩍 뜨고 다시 쳐다보면 참 예쁜데 말이죠. 하늘을 좀 더 자주 쳐다보며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이곳을 더 사랑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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