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삶] 자연과 기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경주 여행의 동시성

경주 책방 투어와 1박 2일 여행기

2023.06.03 | 조회 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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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삶의 주간 성찰

일하고 배우고 느낀 성찰을 나눕니다

경주산책
경주산책

신나게 노느라 몸살 날 지경입니다. 지나가면 잊히는 추억을 잠시라도 부여잡아 글로 남기려고 이번 주 주간성찰 주제로 선택했습니다. 

경주는 저에게 추억의 장소인데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인을 만난 장소입니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영어를 써보려고 저는 다짜고짜 "Are you an American? (미국 사람이니?)"라고 물었어요. 외국인이 미국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매너 없이 인사나 실례한다는 말도 없이 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질문을 했어요. 수학여행으로도 다녀왔고, 고등학교 수녀 선생님을 만나 뵈러 놀러도 갔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 보문단지에서 빨간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자전거 타던 생각도 납니다. 경주에서 가족 모임하며 먹었던 복어회의 쫄깃함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제주만큼 친근한 여행지였는데 한동안 못 가보고 지난 주 7년 만에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주변에서 책방 투어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들렸고 황리단길도 궁금했어요.

작년 제주 이후 두 번째로 가진 책방 투어라 아직 여유 있게 즐기지는 못하지만 시간 날 때마다 책방을 다니며 아이디어를 수집하려 합니다. 미래의 삶을 설계하는 투어인거죠. 경주 책방 투어로 검색해 보고 경주산책, 오늘은책방, 어서어서, 누군가의 책방을 방문하고 싶었는데 오늘은책방을 빼고 3곳을 다녀왔습니다.

경주산책

예전에는 보문단지가 주요 관광지였지만, 요즘은 황리단길 때문에 경주 시내가 더 핫플레이스인 것 같습니다. 시내에서 떨어져서 방문하지 못할뻔 했는데 다행히 2일 차 아침에 다녀왔어요. 경주산책은 라한셀렉트 경주 호텔 1층에 있는 여행자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서점이자 북카페입니다. 창밖으로 보문호가 보이는 전망좋은 호텔 카페지만 음료 가격이 황리단길 카페 수준입니다. 인테리어나 책 큐레이션을 즐기는 데만 1시간이 걸릴 정도로 넓어요. 

책은 구매한 후에 읽을 수 있고 호텔 투숙객에게는 10% 할인을 제공합니다. 키즈존이 따로 있어 아이들이 놀면서 그림책도 볼 수 있고요. 아기자기한 굿즈도 많아요. 경주여행을 기념하고 싶어서 첨성대 그림이 그려진 컵 받침을 샀어요. 다음에는 라한셀렉트 경주 호텔에 머물거나 보문단지에 머물면서 하루종일 북캉스를 즐기고 싶습니다. 경주 시내에서도 버스가 있으니 경주에 다시 가면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경주산책
경주산책

호텔 1층에는 주로 식당이나 라운지를 두는데 과감하게 넓은 북카페를 둔 것은 경영자의 철학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한편으로는 천편일률적인 호텔과 달리 북카페라는 컨셉으로 책을 좋아하는 여행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차별화전략이기도 하겠죠. 아무튼 감사와 힐링이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언젠가 제 책도 이곳에서 만나길 바랍니다. 

누군가의 책방

SRT를 타고 신경주역에서 내려 처음 방문한 곳입니다. 버스가 애매해서 택시로 이동했지만 찾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덕분에 동네 산책을 한 바퀴하고도 여전히 헤맸는데 책방지기가 나와서 문을 열어주어 알았습니다. 마당 있는 시골의 작은 한옥 책방이었고요. 간단한 요깃거리도 팔지 않는 순수한 로컬 책방입니다. 

시중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는 살 수 없는 책들로 가득했어요. 동네 책방은 고객이 그곳을 방문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로컬에 있다면 그곳 특성을 보여주는 책이나 굿즈가 필요하고요. 그림책을 특화하거나, 여행책만으로 구성한다거나 뭐든 특징이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책방은 경주의 고즈넉한 서악마을에 위치한 한옥 독립서점이었어요. 근처에 무열왕릉, 서악서원, 도봉서당이 있고 고택 숙박과 구절초 음악회와 같은 문화 체험도 가능합니다. 이곳에 하루 머물며 천천히 자연과 예술을 즐기는 것도 좋겠어요.

누군가의 책방
누군가의 책방

제가 갔을 땐 방문객이 아무도 없어서 응원 차원에서 책 2권을 샀습니다. 그림책을 고를까 잠시 고민했는데요,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책이 좋겠다 싶어 《경주, 걷기와 말들》를 선택했어요. 서울에 와서 검색해 보니 인터넷 서점에는 없는 책이어서 득템한 느낌입니다. 이 책을 읽은 후 경주 걷기 여행을 다시 떠나고 싶네요. '북바인딩으로 업사이클링 노트'는 매진되어 구경은 못했는데 주문제작으로 경험해야겠어요.

황리단길에 있는 어서어서 책방도 궁금했는데요. 경주 시내에 있는 동네 책방이 맞습니다만 느리게 가는 '누군가의 책방'에 비해 빨리 달려가는 상업적인 느낌이 강했고요. 작은 책방에 수십 명의 사람으로 가득해 발 디딜 틈도 없고 책을 구경하기도 어려웠어요. 책을 사면 책 받는 분의 성함을 물어 약봉지 모양의 봉투에 이름을 써 줍니다. 입구 쪽에 스탬프도 찍어가게 하죠. 이 또한 '어서어서'의 특징입니다만 책방이라기 보다는 관광지 같았어요. 그래서 이름이 어서어서일까요? 빨리 사서 나가라고.

┃화려한 경주의 밤: 월정교, 동궁과 월지, 대릉원 녹턴

탁 트인 공간에 자연이 펼쳐진 제주와 경주의 느낌이 비슷했는데요. 큰 차이점은 밤 문화였어요. 제주에서는 밤에 딱히 할 게 없어 일찍 자고 새벽부터 돌아다녔습니다. 경주는 밤에 즐길 거리가 많아요. 월정교, 동궁과 월지, 대릉원의 밤은 조금씩 달랐는데요. 이 세 곳을 하룻밤에 뚜벅이로 돌아다녀 첫날 26,000보를 걸었더군요. 노는 데도 체력이 필요합니다.

월정교는 경주최부자댁 근처에 있어요. 대릉원을 산책하고 경주최부자댁을 거처 월정교로 걸어왔습니다. 오는 길에 비단벌레차를 봤는데요. 계림, 향교, 최부자댁, 월정교, 첨성대를 돌며 20분 동안 문화해설까지 진행하는 귀여운 전동차입니다. 현장 티켓은 매진이어서 혹시 인터넷 예매로 가능한지 봤더니 연휴나 다음 날까지 완판이었습니다. 꼭 타고 싶다는 열망에 2일 차 아침에 현장으로 갔지만 비가 와서 운행하지 않더군요. 다음엔 꼭 예약하고 타려고 해요.

월정교 야경을 찍으려고 해 지는 시간을 확인하니 7시 40분이더군요. 많은 사람이 월정교에서 일몰을 기다리며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8시 정도 되니 어둑어둑해져서 멋진 야경을 핸드폰에 담았습니다. 드디어 고대하던 동궁과 월지로 이동했습니다. 

예전에는 안압지라고 불렀는데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을 바꾸고, 야경이 예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경주의 명소가 되었어요. 입구에는 표를 사기 위한 줄로 장사진을 이루었어요. 이미 경험한 친구는 당일 사용 가능한 인터넷 예매를 해서 놀이동산 프리패스처럼 빠르게 입장했습니다. 하지만, 입장하자마자 더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천천히 이동했는데 옷은 땀으로 흠뻑 젖고, 숨쉬기는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전국에 있는 사람이 다 온 듯 붐볐습니다.

친구는 안쪽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며 입구 쪽은 간단히 보고 이동하자고 알려줬고 다행히 동궁 안쪽에는 사진을 찍을 여유가 조금 있었습니다. ‘월지'는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의미인데요. 전각과 나무가 연못에 비치도록 조명을 정교하게 세팅해서 데깔꼬마니 같기도 하고, 연못 속에 전각과 나무가 있는 것 같기도 했어요. 사진으로는 완벽하게 담기가 어려워 눈으로 자세히 살펴봤어요. 어디까지가 연못 위이고, 어디가 연못 아래인지 구분이 되지 않더군요. 신라인들이 세련된 창의성으로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면 오늘의 기술력은 연못 속의 세상을 새롭게 조명했습니다. 

월정교, 동궁과 월지, 대릉원 미디어 파사드
월정교, 동궁과 월지, 대릉원 미디어 파사드

대릉원에 입장했을 때 저녁에  <대릉원 녹턴 -신라의 혼, 빛의 예술로 밝히다>이라는 미디어아트를 10시까지 하고 9시 30분까지 입장 가능하다는 안내문을 봤습니다. 시간이 되면 들리기로 했는데 동궁과 월지의 수많은 인파에 몰려 빨리 나왔기에 대릉원에 다시 왔습니다. 2023년 문화재청 미디어아트 공모사업에 선정된 이 행사는 대릉원을 대표하는 천마총과 황남대총 발굴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라는데요. 6월 4일까지 하니 서둘러 가보시면 좋겠습니다.

30분 동안 사운드와 라이트쇼를 보다 발걸음 멈춘 곳은 미디어 파사드였습니다. 미디어 파사드는 미디어(media)와 건물의 외벽을 뜻하는 파사드(facade)가 합성된 용어로, 건물의 외벽에 다양한 콘텐츠 영상을 투사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근처에서 미디어 파사드를 즐긴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건물 벽이 아니라 고분군이라니요. 왕들이 뜨겁다고 진노하여 벌떡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작품이 어찌나 참신한지 두 번이나 봤습니다. 

특히 김희선의 <환생 - rebirth>는 천마총과 황남대총 주인의 영혼이 깨어나 두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는 장면을 구현했는데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동시성'이자 우연한 기회로 대릉읜의 녹턴을 보게 된 우리 여행이 '동시성'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1박 2일의 일정은 잘 익은 옥수수알처럼 꽉 찼습니다.

1일 차: 신경주역 - 누군가의책방 - 간식 - 서악서원 - 무열왕릉 - 황리단길 십원빵 - 대릉원, 양귀비밭, 첨성대, 향교, 최부자댁 - 저녁 - 월정교 - 동궁과 월지 - 대릉원 녹턴 - 숙소

2일 차: 대릉원 - 경주산책 - 간식 - 불국사(3시간 문화해설, 매주 일요일 무료 문화해설 제공) - 저녁 - 향리단길 카페 - 신경주역 

경주 여행에서 관광 상품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월정교, 동궁과 월지, 대릉원의 야경처럼 자연과 기술을 조화롭게 구성해서 사람들을 끌어모았어요. 십원빵은 놀라웠어요. 경주의 상징인 다보탑이 그려진 10원을 빵이라는 상품으로 만들었는데 겉은 달달하고 속은 느끼한 치즈가 뜨겁게 관광객을 맞이합니다. 오랜만에 방문한 불국사에서는 3시간 동안 설명을 들어도 지루하지 않는, 챗GTP를 능가하는 자원봉사 문화해설사 덕분에 점심도 못 먹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펼쳐진 초록 초록 자연과 거대한 능, 그리고 한옥의 카페와 식당이 잠시 쉬어가도 좋다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십원빵, 불국사, 한옥 식당
십원빵, 불국사, 한옥 식당

5년 전 제주 여행을 다녀온 후 매년 한 번은 제주를 가는데요. 이제 경주도 추가해야겠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곳 중 다시 가고 싶은 곳과 가보지 못한 곳을 더하여 놀이 버킷리스트에 넣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은 꼭 경주에 다녀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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