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애쓰지 않는__나의 초록일기

철새의 이삿날____도시살이병으로부터의 해.방.

[너무 애쓰지 않는__나의 초록일기] by 참 좋다

2024.01.05 | 조회 6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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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당신의 존재의 온도를 딱 1도 높여주는 그런 글 한잔이 되길 바라며 -

 

 

아침 햇살과 초록  /  사진: 참 좋다
아침 햇살과 초록  /  사진: 참 좋다

 

‘내가 왜 손에 옷걸이를 들고 있지?’

   깊은 잠에 빠져들어야 할 한밤 중에 깨어난 나는, 내 모습에 몹시 당황했다. 침대에 누운 게 아니라 일어서 있었다. 손에는 셔츠가 걸린 옷걸이가 들려있었고, 손을 뻗어 헹거 높은 곳에 옷걸이를 옮겨 걸다가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난 지는 몇 달 되어가던 터였다. 가장 먼저 나타난 건 자다가 숨이 막혀 깨어나는 증상이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으면서, 목이 타들어갈 듯했다. 심장이 터질 듯했다. 물이 필요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나면 그제야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물을 마시러 갈 수도 없어서, 급히 옆에서 자고 있던 남자(나의 반려자. 이하 남자)를 깨워야 했다. 공포로 모든 것이 뒤덮이는 순간이었다.

   평일 5일 출근, 평일 저녁 2회와 주말 2일 출근. 투잡으로 일하고 있었다. 쉬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평일 단 3일의 저녁만 쉬는 시간이 허락됐다. 몸이 쉬질 못하니 이상 증상이 나타나는 게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부턴 가는 갑자기 심장이 이유 없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다가도, 퇴근길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보다가도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렸다.

   숨 막힐 듯한 아침 지옥철. 러시아워에 짜증 난 기사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버스. 물 없이 고구마를 먹듯 꾸역꾸역 참아야 했던 층간 소음.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힘들게 했던 주차난. 회사에서 작업하는 파일명이며 띄어쓰기 한 칸, 지갑에 넣는 지폐 방향까지 모든 게 깔끔하게 열 맞춰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까지. 모든 것에 날이 서있었다.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날 피로하게 했다.

   결국 울긋불긋 뒤집어진 피부와 함께, 책임감으로 1년을 버틴 평일에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도비는 자유예요.’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외치며. 평일의 쉼이 생긴 후 몸의 증상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지만, 한번 바닥을 친 몸은 쉽게 좋아지진 않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동네 시장을 틈만 나면 가기 시작한 게.

   집 안에만 있으면 가라앉기도 하고, 식재료를 사러 나가기도 해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는 걸 좋아했던 나는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으로 무작정 걸어갔다. 시장은 내게 빨간약과 같았다. 무얼 사지 않아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고마웠고, 생명력을 품은 싱싱한 제철 채소와 과일을 고르다 보면 마음이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도시살이병으로 이젠 더 이상 못 버티겠다 싶었을 무렵이었다. 남자의 직업적 이동으로 도시살이를 정리하고 갑자기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다. 단 2주 만에. 우리가 살던 서울 전셋집은 갓 시작된 겨울과 함께 얼어붙어 찾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두고, 내려왔다.

   이삿날 아침, 5톤 트럭에 내 마음 마냥 정리되지 않는 온갖 짐을 구겨 넣었다. 2시간 동안 달린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왕복 2차선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니, 마을로 진입하는 소로가 나왔다. 마을 입구를 지나 천천히 달려간 그곳엔 넓게 펼쳐진 잠든 논이 보였다. 논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들어가니 마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가게 하나 없는 곳. 자라나는 벼와 작물들의 밤잠을 위해 가로등 마저 띄엄띄엄 세워진 그런 마을이었다. 

   근원을 찾지 못한 묘한 기분이 나를 감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나오는 작은 문을 넘어선 것만 같았달까. 묶여있던 무언가로부터 봉인해제 되 듯, 이사 온 그날부로 층간 소음과 주차난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시장에서 느꼈던 순간적 위로가 이곳에선 끝없이 이어졌다. 포르르 날아와 지저귀는 아침의 새소리부터 밤하늘의 어여쁜 별까지, 밤낮으로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이 나를 포옥 끌어안았다.

  서울 전셋집은 이사 온 이듬해 따듯한 봄볕이 돌 때 즈음 새 주인을 만났다. 흙을 밟으며 거니는 아침 마을길, 사이다가 필요 없는 단독주택, 어떤 모양으로 주차 하든 울리지 않는 손전화기와 전원 킬 일 조차 사라진 컴퓨터까지. 모든 일상이 자연스레 달라졌다. 언젠가부터 지폐를 가지런히 정리하지 않는 내가 보였으며, 두근거리던 심장은 조금씩 잠을 자기 시작했고, 옷걸이는 항상 제자리에 잘 걸려있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이사하는 철새들처럼, 나의 겨울을 견뎌내기 위한 이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도시살이병으로부터 해방되고 있는 나를 만나고 있다. 버스가 들어오는 이곳에서, 하루에 두 번.

 

이사 후 첫 번째 겨울 풍경  /   사진: 참 좋다
이사 후 첫 번째 겨울 풍경  /   사진: 참 좋다

 

겨울이 되면 우리 마을로 찾아오는 철새들  /  사진: 참 좋다
겨울이 되면 우리 마을로 찾아오는 철새들  /  사진: 참 좋다

 

 

[저자 소개]

초록, 하늘, 나무, 들꽃. 자연의 위로가 최고의 피로회복제라 믿는 사람. 퍽퍽한 서울살이에서 유일한 위로였던 한강을 붙들고 살다, 시골로 터전을 옮긴 지 8년 차 시골사람. 느지막이 찾아온 줄줄이 사탕 5살 아들, 4살 남매 쌍둥이, 3살 막내딸과 평온한 시골에서 분투 중인 어설픈 살림의 연연년생 애 넷 엄마. 손글씨와 손그림, 디자인을 소소한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 ‘사랑하고, 사랑받고’라는 인생 주제를 이마에 붙이고, 주어진 오늘을 그저 살아가는 그냥 사람. 소박한 문장 한 줄을 쓸 때 희열을 느끼는, 쓰는 사람.  

그대여. 행복은 여기에 있어요.

 

[쓰고뱉다]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는 함께 모여 쓰는, 같이의 가치를 추구하는 글쓰기 공동체입니다. 개인의 존재를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닉네임을 정하고, 거기서 나오는 존재의 언어로 소통하는 글쓰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글쓰기를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뉴스레터로 발송되는 글은 <쓰고뱉다> 숙성반 분들의 글입니다. 오늘 읽으신 글 한잔이 마음의 온도를 1도 정도 높여주는 데 도움이 되셨다면 아래 댓글 보러 가기를 통해 본문 링크에 접속하여 커피 보내기 기능으로 구독료를 지불해 주신다면 더욱더 좋은 뉴스레터를 만드는 데 활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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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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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티제

    0
    10 months 전

    우리가 살던 서울 전셋집은 갓 시작된 겨울과 함께 얼어붙어 찾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두고, 내려왔다. - 이 문장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때로는 그냥 두고 내려가야 하는 때가 있는 거겠죠? 위로 받고 갑니다.

    ㄴ 답글 (1)
  • 무타

    0
    10 months 전

    그래서 글이 시작하는 공간이 도시였군요. 도시에서 시골로 이어지는 여정, 잘 읽었습니다. 그런 병을 앓고 계신지 몰랐는데, 참 잘되었다 싶어요.

    ㄴ 답글 (1)
  • 라오스은하수

    0
    10 month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 쓰니신나

    0
    10 months 전

    가끔 정말 숨이 막힐 때가 있는데, 이 글을 보면서 위로를 받아요. 버스가 두 번 들어오는 그 한적한 곳을 그리게 되네요. 좋은 글, 좋은 사진, 정말 감사합니다^^

    ㄴ 답글 (1)
  • 펄케이

    0
    10 months 전

    애 넷이라니!!!! 숨 막히는 도시를 떠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골로 가샸군요. 그건 언잰가 나이들어서의 저의 로망이기도 한데 옃에 있는 남자가 동의하지 않네요.ㅎㅎ 글만으로도 너무 힐링이 되었슴니다. 감사해요.

    ㄴ 답글 (1)
  • 기쁜오늘

    0
    9 months 전

    여운이 길게 남는 글이에요~ 5톤트럭에 넣었을 정리되지 않은 여러가지 마음을 상상해봅니다,,, 그 트럭에 내 몸도 마음도 싣고 여우로운 세상으로 가는 상상을 해봅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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