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고통을 지나는 법

by인사피어

2024.08.29 | 조회 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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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당신의 존재의 온도를 딱 1도 높여주는 그런 글 한잔이 되길 바라며 -

 

어떤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신이 고통 중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마취제가 아니라 진통제라고 했다. 버틸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진통제를 먹으며 견뎌온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많은 고통의 날들을 떠올렸다.

신이 고통 중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마취제가 아니라 진통제라고 했다/픽사베이
신이 고통 중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마취제가 아니라 진통제라고 했다/픽사베이

 

우리 할머니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 얘기를 늘 들려주셨다. 그 얘기를 6번쯤 하시고, 일곱 번째 하실 때도 처음 얘기하실 때처럼 생생하게 들려주셨다. 그 얘기를 듣고 있는 나는, 할머니가 안타깝고 일평생 너무 고생만 하신 것 같아 안쓰러웠다. 이젠 좋은 것도 많이 드시고 좋은 옷도 입으시고 걱정할 일 없이 즐겁게 사셨으면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가실 때도 병중 고통 중에 신음하다 가셨다. 할머니의 삶을 보면 고통으로 시작해 고통으로 끝난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요즘 엄마와 통화하거나 만나게 되면 깊은 얘기가 오갈 때가 있다. 암에 걸려 아팠을 때, 아빠로 인해 받았던 상처와 고통, 심지어 어릴 때 있었던 크고 작은 고난까지 얘기하곤 한다. 지금은 지난 일이라 감정이 많이 실리지는 않아도 내용은 늘 상세하고 적나라했다. 실은 이 레퍼토리를 여러 번 듣는 터라 이제 글로 쓰라면 마치 내가 겪은 듯 세세하게 엮을 수 있을 정도다.

할머니의 삶을 보면 고통으로 시작해 고통으로 끝난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픽사베이
할머니의 삶을 보면 고통으로 시작해 고통으로 끝난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픽사베이

 

사람들은 늘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보다 아팠던 일을 마음에 새기는 것 같다. 실제로 시간을 100으로 놓고 보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일상 60, 행복했던 일 20, 고통의 기억 20쯤이 아닐까 생각한다. 반복된 일상이 60이지만 아무도 반복된 일상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왜 인간의 기억은 일상이나 행복보다는 부정적 측면에 편중되게 기억하는 걸까?

 

차를 사면 한 달이 행복하고 집을 사면 1년이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신혼 때 처음 차를 사고, 차를 탈 때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지 마음먹고 시작했던 것이, 한 달 하고 겨우 사나흘뿐이었던 것이 떠오른다. 생각보다 우리 행복의 유통기한이 길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정적 편향’(negativity bias)성을 띄는 인간 뇌의 특성은, 생존을 위한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뇌는 생존하기 위한 노력에 많은 부분이 발달되며 진화했다고 생물학자들은 말한다. 위험요소가 작은 비율이라 해도 위험에 노출되지 않아야 오래 생존 가능 하기에 뇌는 철저히 그것을 경계해왔다. 고통을 주는 요소들은 중요한 기억저장소에 기억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고통의 기억을 절대 잊지 못하는 것일 수 있겠다.

‘부정적 편향’(negativity bias)성을 띄는 인간 뇌의 특성은, 생존을 위한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픽사베이
‘부정적 편향’(negativity bias)성을 띄는 인간 뇌의 특성은, 생존을 위한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픽사베이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어쩌면 고통의 기억은 다소 부풀려졌을 수 있다. 할머니의 인생에서 힘들게 살았던 기억 너머엔, 자식이 커가는 것에 행복했고, 할아버지에게 사랑받았던 젊은 시절의 달콤한 에피소드가 숨어 있다. 엄마의 암 투병으로 힘든 시간 이면엔, 누구보다 에너지가 건강하게 사회활동을 하며 행복해하던 더 많은 좋은 시간이 존재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뇌는 끝끝내 고통만을 얘기했다.

 

부정적 편향’(negativity bias)성을 넘기 위한 여러 노력은 물론 있었다. 우리는 때때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행복하고 완벽한 일상을 기록해 둔다. 그저 자존감을 채우는 심리 사회학적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행복보다 불행을 기억하는 뇌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찍어 둔 사진엔 그때의 행복한 기억과 추억이 묻어 있기에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행복한 순간으로 소환되게 도와준다. 살기 위해 고통을 기억하려다 오히려 고통받았던 뇌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sns’를 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잊지 않게 행복을 박제하는 것으로 말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통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우리를 괴롭혔다. 최근 독서 자료에 보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라는 책이 25만 부가 팔렸다. 철학서로서는 이례적인 수치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의 사춘기인 40에 이르는 독자들이 글을 읽고 많은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 청춘을 떠나보내는 시점에, 지친 인간관계와 육아, 직장,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을 만도 했다. 유년시절의 고통 속에 아직 자유 하지 못한 사람을 살펴보면, 대개는 지금의 삶이 행복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면 이들은 과거의 아픈 경험까지 가져와서 고통스러워하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책이 인기리에 팔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듯 보인다. 고통이 우리 가까이 있음을 말해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책을 쓴 쇼펜하우어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의 인생의 단면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염세주의자로서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걸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버티는 삶을 살았다. 20대엔 당대 최고의 철학자 헤겔로 인해 빈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푸대접을 받았다. 게다가 쓴 글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인 건 그는 글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40대 중반부터 인정받기 시작해 누구보다 행복한 인생 후반기를 보냈다. 고통과 행복이 교차했던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근에 정신의학박사님의 얘기를 듣다가 당황스럽게도 조금 울었다. 고통 속에 있었던 사람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함으로 자신의 고통에 귀 기울여 주는 것 자체가 한 모금의 물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내면에서는, ‘내 얘기를 들어보세요. 나는 이러한 고통을 겪었어요. 나는 견뎌 냈어요. 그러니 이런 나를 이해해 주세요.’ 하고 말이다. 이 말을 들은 나는, 고통을 전문가에게 이해받고 인정받은, 마치 38년 된 병자(성경에서 나오는 등장 인물중,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38년 간 고침 받지 못했던 병자)가 마침내 고침 받은 기분이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할머니가 내게 고생하셨던 일을 7번쯤 얘기하셨던 일도, 엄마가 어려운 일 겪었던 것을 반복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내가 이토록 글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 또한, 이런 심리적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고통은 대부분의 사람이 소유했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다. 유년 시절에는 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더라도 인생의 어느 시점엔, 생각지 못한 어떤 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어릴 때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어도 성인이 되어 자신의 아픔을 승화하며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유년 시절이나 자라서나 크게 고난 없이 살다 작은 아픔이 시작되며 고통을 만나기도 한다. 우리가 어느 시기에 고통을 만나든지 우리는 고통과 늘 맛 닿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게 찾아온 고통은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만약 벗어날 수 있는 고통이라면 생각보다 답은 간단하다. 벗어나면 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해서 고통을 논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고통은 어떻게 지나고 버틸 수 있는 걸까?

 

필자는 첫 문단에 이미 그 해결책을 제시한 바 있다. 고통이, 벗어나기보다 종국엔 견디고 버티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고통을 통과하는 법을 배워보길 권한다. 내가 경험해 봤기에 당신도 이렇게 해보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고통과 함께하는 존재의 무게가 너무 무겁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만 권하는 바이다. 그대에게 진통제는 무엇인가?

고통의 원인이 되는 사람에게서 조금 멀어지는 길, 아니면 그 상황을 벗어나는 일, 아니면 고통이라는 존재를 무섭고 정복하기 힘든 존재로 생각지 않고, 반갑지 않은 친구 정도로 생각하는 일, 삶을 내가 원하는 행복한 일들로 하나씩 채워 고통의 지분을 줄여나가는 일.

그것이 무엇이든 버티고 견디어 삶이 너무 힘들지 않기를, 꾸역꾸역 이어도 살아내기를 소망한다. 마침 키에르 케고르님이 우리의 귓가에 속삭인다. ‘절망이 우리를 죽어가게 한다.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다.’ 폭풍 속에 휘말리고 표류하더라도 부서지지 않길, 고통 중에 진통제를 먹으며 걸을 수 있길, 마침내, 각자의 경기장에서 완주하길.

 

 

 

저자소개

필명: 인사피어(INSIGHT+INSPIRE)

_통찰로 격려하는 삶이 꿈이다

sns그림 작가, 종이 공예와 예쁜 글씨 쓰는 사람. 피아노 반주 봉사하는 사람. 천상 예술인 이지만 글쓰기 공동체 '쓰고뱉다'를 만나면서  내 안에 끝 모를 진지함과 은근한 다정함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궁금해지고 나를 알게 될수록 점점 시선은 타인에게로 향했다. 나의 얘기로도 타인과 닿을 수 있다는 글쓰기는 이제 숙명과도 같은 만남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존재의 이유가 설명되고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날을 꿈꾸며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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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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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빌

    0
    18 days 전

    오늘도 얄미운 친구(고통)와 잘 지내는 법을 배우려 합니다^^

    ㄴ 답글 (1)
  • 쓰니신나

    0
    17 days 전

    파란 문구가 친절한 처방약과 같네요. 캡쳐해 갈게요. 오늘도 좋은 글 한 잔, 감사합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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