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또라이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만약 내가 속한 조직에 또라이가 없다면 그 또라이는 나일 수 있다. 월요일을 몰고 오는 초침 소리가 재촉해 오는 일요일 저녁, 함께 모인 일행 중 표정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는 이가 있다면 회사에 가기 싫은 것일 테다. 답답한 사무실의 공기와 쌓아두고 온 일보다도 내일 출근하면 아침부터 시작될 주간 회의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니 그보다 내일도 아침부터 짖어 댈 또.라.이. 때문일 수도.
또라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나무위키에서 찾아봤다. ‘정신적/육체적으로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도덕적인 기준에 크게 어긋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낮추어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 퇴사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또라이는 나이와 경력이 본인에 비해 많은 상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권력관계에서 을의 입장인 피해자는 끙끙 앓거나 결국 퇴사의 형태로 튕겨 나올 수밖에 없다. 요즘은 한참 연차가 차이 나는 후배들 때문에 죽겠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도 종종 들려온다. 총체적 난국이다.
기억 속 또라이들의 존재가 생생하다. 가스라이팅, 언어폭력, 사적인 요청, 심지어 음담패설과 성추행까지. 크게 어긋났다. 이에 대한 나의 반응은 다양했다. 권력에 억압되어 아무 말 못 하고 비굴하게 비위를 맞추던 날도 있었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면전에서 디스전을 펼친 때도 있었다.
가스라이팅이 시작되면 이상하게도 공격본능이 즉각 발동됐다. 자. 딱 기다려. 지금부터 진짜 또라이가 뭔지 보여줄게. 또라이가 하는 말을 하나하나 받아 적으며 곧 펼쳐질 디스전을 상상하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논리적 허점은 기본, 이전에 했던 말의 번복은 애교. 이 정도면 승산이 있다. 장전 완료. 그의 조언을 성공 신화의 비법처럼 받아 적고 있는 줄만 알았던 그를 향해 차분히 펀치를 날렸다. 말씀에 어폐가 있는데요? 지난번은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아, 안 그래도 이전에 보내주셨던 메일이 있어요. 지금 보내드렸습니다. 아- 이것은 청문회인가 기자회견인가. 동공에 지진이 난 채로 메일을 확인하는 듯싶던 그가 겨우 나에게 던진 말 한마디. 왜 나한테 이렇게 공격적이야? 고작 할 말이 그거라고? 깔끔한 K.O. 그 후 그는 나에게 허술한 선공을 날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또 다른 먹잇감을 찾은 것이다. 타인에게 가해지는 가스라이팅에 나는 더욱 미친 듯이 화가 났다. 하지만 화가 난다고 그 대신 내가 싸워줄 수도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에게 더 큰 수치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피해자가 나든 타인이든 일단 권력관계 속에서 나부터 살아남아야 했다. 방법은 일을 잘하는 것, 실수하지 않는 것, 그래서 인정을 받는 것뿐이었다. 가해자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 아니 그 사람의 상사에게까지 인정받아야 했다. 그래야 약간의 권력이나마 더 손에 넣을 수 있기에.
조직 속에서 내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게 됐다 싶어질 때, 이상하게도 그들은 나의 의견을 물어왔다. 평시 본인의 언행이나 행동에 대한, 특정 사건 속에서 본인이 취한 태도에 대한, 또는 고쳐줬으면 하는 단점 같은 것들에 대한 나의 의견 말이다. 아 이 XX 진짜 또라이구나. 내가 그들의 밥줄을 끊을 만큼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일을 할 때보다 머리를 더 빨리 굴려야 하는 타이밍이 왔다. 잘해야 본전이다. 잘못하면 밥줄이 끊길 수도 있었다.
내가 내뱉은 문장들은 이랬다. 하나. 그 문장들은 그들에 부정적 면모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포함해야 했다. 마냥 ‘좋아요’, ‘괜찮아요’ 따위의 대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이 솔직히 힘들다고, 다른 직원들도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일단 말해야 했다. 둘. 그 후에 ‘인정’을 한 스푼 얹었다. 나는 당신을 상사로서 인정한다. 당신의 과거 성과와 업적에는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현재 당신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어쩌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말에 그들의 행동이 조금이나마 바뀌기를 기대했다. 다행히 그들은 나의 대답에 만족했다.
여러 번 이런 일들을 겪으며 그들이 목마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준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인정이라는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해 건넸고 변화를 유도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런 방법이 모든 상황에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권력의 비대칭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 청산유수 같은 샤라웃(Shout out)이 씨알도 안 먹힐 수도 있다. 마침내 어떠한 희망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오던 날이 있었다. 나는 헤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지우려 볼륨을 줄여버렸다. 제발 꺼져줬으면 좋겠다.(노트북이) 회의 내용이고 뭐고 숨을 일단 쉬어야 내 차례까지 버티지 않겠는가. 소리를 줄이니 숨이 쉬어졌다. 직장에서 매일 마주치는 누군가 때문에 밥맛이 없고 잠을 못 이루고 병원에 가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면, 그 자리를 계속 지켜야 할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누군가에게 이런 문장은 폭력일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살아야 내일의 내가 있지 않을까.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오후,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에게 나는 사표를 내밀었다. 나와의 관계가 원만하다고 생각했을뿐더러 내가 퇴사할 이유가 없다고 여겼을 그는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아 보였다. 갈 곳을 잃어 두리번거리는 눈빛. 붉어진 얼굴. 아싸, 사이다! 한 방 먹였다. 그날부터 그는 퇴사 사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듯 나에게 전전긍긍해 댔다. 곧 나의 월급 통장은 텅장이 될 테지만 속은 시원했다.
또라이를 욕하기를 지나쳐 어느새인가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기 시작하고 있다면? 내가 정말 그가 말마따나 일 못하고 사회성도 결여된 인간이라 느껴진다면? 부디 그의 새빨간 거짓말에 속지 마시기를. 부디 그대 존재를 지켜 내시기를. 마지막으로 저기요. 왜 사람들이 자꾸 퇴사 하는지, 진짜 정말 설마 아직도 모른다고요? 레알? 당.신.때.문.이.라.고.요. 제발 너 나 잘 하 세 요.
[저자소개]
필명 따티제. 풀어서 말하면 따뜻한 인티제(MBTI 성향 중 INTJ의 별칭). 서울 올림픽 기억 안나는 87년생. 흔한 K장녀. 혼자 다 해야 하는 작은 외국계 기업 1인 마케터로 본능을 거스르고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강제장착. 아무거나 안 하는 고집쟁이 프리랜서 도전 중. 밥먹듯이 밤새는 수학강사의 아내. 쓰고뱉다 21기(대한민국 No.1 글쓰기 강좌)에서 글 배우는 중. 정리되지 않은 누군가의 마음 속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듯, 읽으면서 시원해지는 글을 쓰려는 중. 오후 늦게 일을 시작한 포도원 일꾼들에게도 일찍 일을 시작한 이들에게와 같은 품삯을 주는 사회적기업 대표가 되는 꿈 꾸는 중.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는 함께 모여 쓰는, 같이의 가치를 추구하는 글쓰기 공동체입니다. 개인의 존재를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닉네임을 정하고, 거기서 나오는 존재의 언어로 소통하는 글쓰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글쓰기를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뉴스레터로 발송되는 글은 <쓰고뱉다> 숙성반 분들의 글입니다. 오늘 읽으신 글 한잔이 마음의 온도를 1도 정도 높여주는 데 도움이 되셨다면 아래 ‘댓글 보러 가기’를 통해 본문 링크에 접속하여 ‘커피 보내기’ 기능으로 구독료를 지불해 주신다면 더욱더 좋은 뉴스레터를 만드는 데 활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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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dl59
그분들은 성장 과정이 잘못된 건지, 아님 어떤 큰 계기로 그렇게 바뀐 건지.. ㅋㅋ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그런 사람들에게서 우리 스스로를 잘 지켜내 봐요ㅜㅜ
따티제
댓글 감사드립니다-! 잘 지켜내자고,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따뜻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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