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적 시기와 청년 예술

우리는 스스로에게 설명해야 할 풍경 앞에 있네

<독립적 시기와 청년 예술> 0화

2023.10.25 | 조회 261 |
0
|
시훈의 메일리의 프로필 이미지

시훈의 메일리

시훈의 신작시, 기획 산문 등을 스트리밍 하실 수 있습니다.

첨부 이미지
첨부 이미지

 

  1. 도시, 바람, 마음, 경계

 가방을 동여매고 양복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퇴근 후 홀로 오피스텔에 돌아가는 길, 홍시 같은 색깔의 노을은 지평선에 먹히고 있었다. 그 앞으로 퇴근하는 수많은 차들이 도로 위에 밀려 있었다. 서있는 곳은 서울이었다.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수많은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는 기현상을 보여주는 도시. 나도 그 현상을 피해 갈 수 없었고 부산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바람이 불어 와이셔츠에 주름을 남겼다. 바람이 가는 곳은 어디일까 쳐다보다가 조금 감상적인 것 같아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돌렸다. 그러나 생각은 이미 바람을 추적하듯 멀리 가다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떨어져 나갔다. 고향이었다. 고향에서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점이 달라졌고 나는 지금 어느 상황에 놓여있는가. 생각은 순식간에 돌아와서 현재 나의 데이터와 과거에 대조하기 시작했다.

 

- 고향에 가족과 친구들을 두고 떠나옴

- 오피스텔에서 혼자 주거함

- 제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점으로부터 독립하여 예술 할 것을 훨씬 더 다짐함

 

 크게 드러난 변화들로부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 변화들이 "독립"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내 이 독립이라는 단어에 골몰해졌는데 내가 과연 정말 독립한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고향을 추억하고 그곳의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오피스텔에는 부모님이 싸준 반찬이 있고, 독립 예술 활동을 하지만 메일리라던가 블로그라는 시스템에 의존하여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그렇다. 독립이지만 독립이 아닌 셈이기도 했다. 바람이 불었다. 마음이 아니었지만 마음이기도 했다.

 모호한 정의에서 나는 대안을 찾기로 했는데 새로운 표현이 생각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독립적 시기. 길가에서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이 단어는 바람에 실려 세상으로 퍼지는 느낌을 주었다. 독립적 시기라는 표현은 독립과는 분명 달랐다. 그것은 여러 의미를 아우를 수 있었다. 온전히 독립하지 못한 상태와 독립한 상태 모두 표현할 수 있었고 우리 모두가 겪는 시기를 대변하는 정의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항상 독립적 시기에 놓여 있었다. 태어난 이후로 계속 말이다. 타인의 부축 없이 걷기 위해 연습했고 사춘기를 겪기도 했고 사회적으로 강요된 역할이 아닌 다른 꿈을 갖기도 했다. 소속된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도 동시에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고자 움직였다. 끊임없이 독립적 시기를 겪어온 셈이라고 할 수 있었다.

 

2. 전하려는 마음, 진해지는 자신

 비밀번호를 누르고 돌아온 방은 캄캄했다. 불을 켜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했다. 나 외에 아무도 없는 고요한 시간. 이때 나는 독립함을 실감하지만 한편으로는 옆방으로 건너가면 본가에서처럼 동생이나 부모님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립기도 하지만 전화를 자주 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독립심 때문이기도 했다. 계속 전화하면 자꾸 의지하게 될 것 같고 심리적으로도 여전히 독립 못 한 청소년 같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지만 회사 사람들은 말한다. 전화 매일 해드려.

 나는 전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전화를 할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멀티태스킹을 잘 못하는 편이며 전화할 바엔 아예 대화를 미루고 차라리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하겠다는 주의다. 그래서 전화는 가급적이면 급한 상황이 생겼거나 간단한 사항을 전달할 때만 써왔다. 그런데 혼자 살게 된 이후로는 부쩍 전화의 빈도가 늘어났다. 방의 텅 빈 공백에는 음악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게 있었다. 게다가 예전만큼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려워진 것도 이유라 할 수 있었다. 평일 주말 무관하게 수월하게 시간을 낼 수 있던 20대 초반이 아니었다. 가족도 못 보는 데다가 회사까지 다니니 친구들을 만나는 빈도도 확 줄어들었다. 전화가 없으면 아예 단절될 수도 있었다. 결국 나는 혼자라는 느낌을 견디기 위해, 때론 서로와 멀어진다는 생각을 떨치기 위해 전화를 종종 먼저 했다. 사람은 독립을 완전히 할 수 없는 존재구나..라고 인정하면서. 다만 역시 10분을 넘겨 전화하면 피곤해지기 시작하지만.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도 분주함 속에서 예전의 관계들과 새로운 관계들을 잘 맺어갈 수 있을까. 마음을 쓰고 진실되게 그들을 대할 수 있을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점차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냉철해진 면도 많이 생겼다. 표정을 지으면서 때로는 이 표정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인지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 내 모습이 점차 변해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마음이 아니라 그저 상황에 맞추어 사람을 대하는 표정만 얼굴에 남는 건 아닐까. 나는 예전의 나를 잃고 싶지 않았다. 섬세한 면을 신경 쓰고 잘 웃는 사람. 가식 없는 사람. 하는 이야기에 꿈과 낙천이 넘치던 사람. 그런 내 모습들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예술을 하는 것이었다. 예술을 할 때면 근원적인 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다.

 

3. 예술이라는 대응

 "이러이러한 상황이니 방안을 알려주시면 대응하겠습니다."

 회사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이때 대응이라는 말에는 해결책을 찾고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다. 어떤 상황에 정면으로 마주하여 나를 지키고 더 나은 상황으로 흐름을 이어가겠다는 의도. 나는 예술이 곧 대응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예술을 했다. 무언가를 보존하려는 마음과 기억력을 말미암아 발전해 온 예술은 내가 스스로를 잃지 않게 해주는 명상과도 같았다.

 아직도 첫 책을 읽고 지난 글을 읽으면서 초심을 찾곤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 이렇게 해왔으니 또 할 수 있지. 새로운 글을 쓰면서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확인하기도 하고 쓰는 글을 통해서 나의 상황을 반추하고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나의 성향을 파악했다. 개인으로서의 나. 예술가로서의 나. 원하는 것을 하는 모습으로서의 나. 감정과 생각을 파악하는 나. 스스로를 찾아가는 셈인 이 예술이라는 활동은 사회적인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직장인의 모습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반사 신경과도 같은 이 예술을 통해 나는 외부의 어떤 흐름에 의존하기보다는 주체성을 실감하게 된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간단하고도 언제부턴가 잊고 살던 명제. 예술은 그 흐릿해져가는 것을 분명하게 만들어주었다. 예술은 적어도 어떤 시도의 흔적으로라도 남았다. 이 흔적들이 쌓여서 우리는 살아왔다는 감각의 물성을 갖게 된다. 그건 그저 자라버린 육체가 아니라 영혼적인 면에게 삶을 감각하게 해준다.

 

4. 삶과 예술이라는 단어는 따로 만들어져 있고 영향력을 주고받는다.

 나는 방에서 숨을 크게 한 번 내쉬어 보았다. 이제 어떡하지? 그 생각을 하는 건 준비 상태를 갖추는 것과도 같았다. 퇴근하고 맞이하는 밤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차근차근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했다.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해야 하며 운동도 해야 했다. 결정권은 내가 쥐고 있었다.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에서 내쉬는 숨이 이를 실감 나게 했다. 좋아, 하나씩 해내보자. 한숨보다는 심호흡이라 할 수 있었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장도 보는 등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예술만 창작하는 생활은 존재할 수 없구나. 나는 그동안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구나. 오로지 예술만 하는 게 기쁨이라 생각했구나. 나는 독립하고 집안의 많은 것들을 직접 해나가면서 사소함으로부터의 기쁨을 배웠다. 그리고 예술만이 아닌 생활 전체를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예술만 창작하는 생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 활동을 하다 보면 으레 빠지게 되는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생활을 희생하여 예술을 하려는 고집의 발생이다. 다른 무엇을 포기하고 오로지 예술만을 하고 싶어하고 그러지 못함에 감정이 상하고 결국은 스스로에게 실망하여 생활을 망가뜨리는 이들이 많았다. 나도 그런 현상을 대학생 때 어느 정도 겪었으며 주변에 예술을 그만두는 이들을 보며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좋아하는 일이 스스로를 망치게 하다니. 그 깨달음 이후부터 중요한 건 예술이 아니라 생활이라는 점을 나는 수년에 걸쳐 알아왔고 지금도 그 점을 명심하려고 노력한다.

 운동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진해져 SNS에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글에 모든 것을 바치려는 삶보다는 생활을 하고 글쓰기. 생활의 재미와 기쁨을 느끼고 있고 틈틈이 확보하는 글쓰기 시간으로부터 경험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꽤나 호응을 받았는데 누군가는 눈물이 고였다고 전해왔다. 이게 맞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는 호소. 나도 그랬고 지금도 간혹 그렇다. 그럴 때마다 일깨우려고 한다. 예술을 조금 더 넓게 보려고 하자. 그 넓음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절이 보일 것이다. 나는 지금 청년 시기를 보내고 있고 그 시기 안에 예술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넓은 시각으로 확인한다. 부는 바람, 쉬는 숨, 사람들의 미소, 오가는 선물들과 취향, 대화 속에 담긴 현재. 예술은 그 옆에 놓인 것이다. 생활의 일부다. 나는 예술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술 옆에 청년이라는 단어를 붙여주었다. 나는 청년으로서의 삶을 살고 예술을 함께했다. 소개할 때 오로지 예술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나는 훨씬 더 많은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청년 예술로 시작해 산책가이자 여행가 등등의 표현을 하면서 나를 더욱 다양하고 자유롭게 규정할 수 있었다. 청년이 나를 시원하게 해주는 단어로 작용한 셈이었다. 독립적 시기이자 청년 예술. 두 요소는 내 양쪽 어깨를 두드렸고 내가 앞을 마주하는 것을 격려했다. 운동과 샤워 그리고 글쓰기를 마친 나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하루를 살았다는 느낌을 곱씹으며 곳곳의 청년 친구들을 생각했다. 시간은 흐르지만 우리 모두 살아가고 있었다. 도시에서 청년들은 오늘도 살아내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시훈의 메일리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5 시훈의 메일리

시훈의 신작시, 기획 산문 등을 스트리밍 하실 수 있습니다.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