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하셨다는 책은 어떤 것이었죠?"
"시집이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항상 이 지점에서 나는 책을 낸 보람을 묻는 건지 실적을 묻는 건지 헷갈려 했으나 너무 그래본 탓인지 후자를 묻는 것임을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망설임이나 아쉬움 없이 나는 바로 실적에 대해 말했다.
"혼자 제작/유통을 하다 보니 중간에서 발생하는 수수료가 없어 적당한 수익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제 책을 손에 쥔 것을 보았고 심지어는 중국 칭다오 한인 도서관에 입고되기도 했으니 값진 경험을 많이 했었죠. 잘 팔리지 않는 분야인 시집이었지만 좋은 글과 감각적인 표지 덕분에 그만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금전적인 부분 뒤에 그 이상의 감상을 덧붙이는 건 여전했지만 이제 나는 순서를 바꿔 말하면서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세상의 기준을 이해하고 있었고 스스로를 꽤나 객관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실적과는 무관하게 책을 직접 제작하고 유통한 경험은 확실히 독특한 이력이었으며 문학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사업적인 관점으로도 접근할 수 있는 것이었다. 소개서를 읽은 면접자들이 질문을 계속했다.
"책도 일종의 제품이잖아요. 그렇다면 당시 시장 상황과 제품의 매출 정도를 직접 비교하며 파악할 수 있었겠군요."
나는 회상을 더욱 상세히 하기 시작했다. 마치 다시 한번 그 시절 거리에 선 느낌을 갖도록 발밑의 감각을 되돌려 놓았다. 앉아있었지만 책상 아래의 발은 거리를 걷고 있는 듯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활동했던 2019년은 독립출판 시장이 그간의 성취를 토대로 전성기에 달하던 시기였다. 각종 대형 북 페어 행사들과 여러 성공적인 독립 작가들의 출현 등은 말 그대로 "누구나 꿈을 이뤄낼 수 있다"라는 슬로건을 내민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발돋움했다. 나는 그 해의 봄에 전역하여 바로 독립 출판 작업에 착수한 경우였다.
"제가 출판 시장에 뛰어들 당시 독립 출판이라는 새로운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책을 제작하고 프리랜서처럼 활동할 수 있었죠. 저는 그 활동을 택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소속된 건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소속보다는 저를 중심으로 협력 관계를 확장해갔어요. 의사 결정이나 수익 분배 면에 있어서 권리를 전부 양도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내가 의의를 둔 건 "독립"이었다. 꼭 자격이 있어야 책을 낼 수 있다는 편견, 권위자에게 선택받아야 책을 낼 수 있는 제도 등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었다. 좋은 작품과 활동할 의지만 있으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협력 관계를 넓혀가며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만드는 게 나의 목표였다. 특히 고향 부산에서 말이다.
전국적으로 독립서점이 많이 생겨나던 2019년. 부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존에 탄탄히 자리를 잡고 있던 마이 유니버스, 이솝우화, 구남장, 북앤스페이스의 약진은 물론 스테레오북스, 나락서점 등의 서점이 생겨나면서 동네의 작가들은 모여들었다. 서점 주인분들은 우리를 반겨주었고 동네 작가들은 모여서 책 이야기를 하거나 행사 기획을 했다. 그동안 자신의 글과 활기를 펼치길 기다렸던 사람들에게는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낭만성을 만끽한 것도 잠시 나는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당시 나는 서울을 가끔 오가며 그곳의 독립 작가들도 만나곤 했다. 부산과 서울 양쪽의 현황을 자연스레 비교할 수밖에 없었는데 일자리 관련 인프라가 확연히 차이 나는 현상이 출판 시장에서도 동일했기 때문이다. 소비자 수, 정부 지원, 대형 행사 개최 횟수 등 서울은 확실히 하나의 문화라고 할 만큼 독립 출판 시장이 자리를 잡고 선전하고 있었다. 부산은 이에 비해 고요한 편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부산도 서울만큼의 활기를 가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부산의 작가들과 의논을 하려 했지만 작가들 역시 출판 활동에 전념할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부족하다 보니 각자도생 이상의 여력을 내기 힘들어했다. 나는 혼자서 활동을 했다. 몇몇 서점 사장님들로부터의 도움을 받아 강연, 행사 등을 진행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지역 독립 출판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거나 관련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다. 혼자 하기에는 소요되는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자본이나 피드백 등이 부족했다. 경제가 좋지 않아서였는지 사람들 대부분은 타인의 어떤 활동이 주류적이지 않으면 돈이나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 정부의 지원 역시 거의 없었을뿐더러 있더라도 실적 증명이나 자격 등을 제시해야 했고 여러 절차의 심의에 통과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아무래도 시장의 빠른 변화를 계속해서 인정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간은 이후로도 꾸준히 나왔고 매대는 한정되어 있었다. 메이저 출판사는 베스트셀러를 <독립출판 에디션 북>으로도 출간하여 독립 서점에 납품했다. '그 책방에서만 찾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이 독립 출판물의 매력이었는데 그것까지 가져가버린 것이었다. 물론 책방의 매출은 오르게 되었다.
영리하고 인정사정없군.
나는 그때 독과점을 실감했다. 대형 기업들이 시장 전체를 점유하려는 것을 보며 나는 좌절했다.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제도권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여러 조언들이 떠올랐다. 그 말의 증거라도 되듯 독립 출판 역시 의미가 초기에 비해 퇴색되어 갔다. 독립 출판에서도 권위자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들이 무리를 이루어 독립 출판 조합 등을 설립해 뭉쳐 다니기 시작했다. 지역, 판매량, 인맥 등까지 고려하며 보이지 않는 선을 긋기도 했다. 아이러니함 속에서 나는 복학을 해야 했고 동시에 코로나가 터졌다. 모임과 행사가 주된 요소였던 독립 출판 시장의 첫 전성기는 결국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의해 일단락되었다.
정리된 서사를 면접에서 구술하자 면접자들은 어느새 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시장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점, 현황을 파악하고 냉철하게 분석하는 점 등은 그 경험을 통해 직접 배운 것 같군요."
나는 냉정해져 있었다. 무엇이 돈이 되고 도움이 되는지 판별하는 안목을 길렀고 특정 시장에서의 위치, 관계성, 불가피한 점 등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법을 체득했다. 그러면서 내가 작업하는 문예를 점차 그 관계 속에 가두고 싶지 않아 했다. 잊히기 두려워하거나 기간에 쫓겨 억지로 책을 만들기를 원치 않았을 뿐더러, 판매량과 소속 등으로 평가되는 현실이 싫었다. 결국 나는 다른 것으로 돈을 벌고, 문예는 삶을 충만하게 만들기 위한 여가 정도의 수단으로 가볍게 즐기자고 결정했다. 마치 와인이나 커피, 혹은 좋은 음악이나 데이트 같은 것으로 말이다. 즐기다 보면 또 한 권 분량의 글이 쌓일 것이고 다시금 마음이 시킬 때, 금전이나 시장 상황에 귀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책으로 발간하자고 결심했다. 독립 출판으로 진행할 수도 있고, 괜찮은 조건이라면 제도권에 들어가 계약할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그간 최선을 다했다. 혼자서, 부산에서, 수많은 편견과 변화 속에서.
"서울에서 일하게 되면 부산을 떠나야 하는데 괜찮나요?"
"네. 제가 할 일이 있다면요."
최선을 다해서 그런가 떠나는 일에 당장은 거부감이 없었다. (떠난 장소나 품을 나중에 그리워할 것이 뻔해도 말이다) 나를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망설임 없이 갈 작정이었다. 나는 면접 이후 감사한 부름에 어느 비즈니스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금액과 들어본 적 없는 기술이 오가는 시장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성장해야 했다. 내가 알지 못한 자신의 강점과 흥미를 발견하는 미래가 바로 코앞에 있었다. 문학에 삶을 바쳐야 한다는 강박, 고향을 위해서는 꼭 고향에 머물러야 한다는 강박들로부터의 독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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