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갖 빛과 소란을 한참 겪으면 갑자기 주변이 고요해져도 여파가 남는다. 그런 식으로 회상은 이루어지곤 하는데 자의보다는 후유증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타지의 부동산으로 가는 길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길 위에 혼자 있었고 독립하러 가는 길이었다. 주변의 길 위로는 아는 사람이 없었고 아는 과거만 머릿속에 있었다.
"너희는 왜 아직 부모님과 같이 살아?"
서면의 클럽에서 놀던 때였다. 합류한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들은 나와 친구들에게 성인이 되었음에도 독립을 왜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나와 친구들은 전역한지 얼마 안 되어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고 이제 막 타지에서 20여개월의 복무를 마치고 본가로 돌아온 터라 부모님과 사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던 참이었다. 그런데 외국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본인들 나라에서는 20살이 되자마자 대부분이 독립한다고 했다. 오 문화가 다르군. 나는 그들에게 한국인은 중요한 순간에 엄청 신중해지려는 경향이 있어서 그래라고 우리를 변호했지만 내 귀에는 그게 독립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내 목소리였으니까.
그날 새벽에 집으로 걸어가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지? 혼자 살게 된다는 건 내가 신경 쓸 게 많아지는 것이고 그걸 두려워하는 걸까? 신경 쓸 게 많아지면 예술 작업할 시간이 줄어서?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조금 더 근본적인 것은 "이 시절"이 끝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부모님과 같이 사는 시절, 친구들과 언제든지 만나서 놀 수 있는 시절. 독립은 어쩌면 그 시절과의 결별처럼 느껴졌다. 집이 생긴다는 건 돈을 번다는 것이고 그만큼 바빠지겠지. 돈을 벌려면 먼 곳으로 가게 될 수도 있겠지. 실제로 타지로 떠난 친구들이 늘 때마다 모임은 허전해졌다.
멀어지는 것. 그 이미지가 결정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타지로, 타국으로 독립한 사람들을 보며 독립은 곧 격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생각은 어느덧 이런 강박으로 자라 있었다.
'독립은 곧 격리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고 예전의 모습으로부터 작별해야 한다!'
부동산으로 혼자 걸으며 회상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했다. 대학 시절이여 안녕. 부산에서의 나날들이여 안녕. 예술가로서의 모습 안녕. 이제 나는 돌아갈 수 없어! 돌아가지 못해! 하며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미는 느낌이었다. 친구들아, 미안. 나는 떠나네. 부산에 있고 싶었는데. 책을 내고 성공적으로 지역 문화 활성화에 자리 잡을 것을 약속했는데. 계속 예술에 전념하기로 했는데. 스스로의 철학이 붕괴되었고 고립감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었다.
시끌벅적 발광하는 듯 회상이 잠잠해진 건 부동산으로 들어올 때부터였다. 닫히는 문이 과거를 케이크처럼 잘라버린 것 같았다. 나는 입가를 닦은 기분으 말해야 했다. 말씀드린 입주 예정자입니다. 자리에 앉아있던 중개인은 나를 반기면서 등기부등본과 각종 서류들을 확인하도록 했고 방을 최종적으로 보러 가기 전에 숨을 좀 고르라고 했다. 내주는 물 한 잔을 마시며 잠깐 자리에 앉았다. 조용한 사무 공간이었고 나는 더 이상의 말을 하지는 않았다.
'제가요, 부산에서 올라왔고요 서울에서 독립하게 됐어요. 다음 주에는 첫 출근을 해요. 모든 게 너무 빠르게 이루어진 느낌이에요. 당장 지난주에는 문우들이랑 거제도에서 1박 2일로 놀았는데 순식간에 제가 지금 서울에 있다는 게 어지러울 정도예요. 웅얼웅얼.'
'여기는 부동산이에요. 고객님.'
뭐 이런 상상을 하면서 나는 고립감을 또 한 번 느꼈다. 눈앞의 서류들을 보았다. 부모님이 앞서 서울로 올라와 집 계약의 사전 작업을 해주신 덕에 나는 꽤 편하게 계약 마무리를 할 수 있었는데 이런 점을 보면 또 완전히 격리된 게 아닌 것 같았다. 잠깐, 이건 진짜 독립인가? 독립이지만 오롯이 혼자 하는 게 별로 없네. 아무래도 의존은 계속될 것 같은데. 오, 나는 아직 독립하지 못했다, 아니 격리되지 못했다. 아직 애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또 한 번 이 기준이라는 것이 애매해짐을 느꼈다.
집을 보러 가시죠. 중개인의 말에 나는 생각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동산 밖으로 나섰다. 바로 앞에 오피스텔이 있었다. 미국의 어느 건축가가 지었다는 그 건물은 각각의 방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디자인이 이색적인 곳이었다. 여기서 나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군. 나는 정말 이제 지난날과의 결별을 해야겠다고 느꼈다. 마치 과거에게 너는 오피스텔 규정상 들어올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중개인을 따라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격리 장소로 드디어 진입했다.
7평 정도의 방은 깔끔했다. 벽지와 옷장은 하얀색으로 마감되어 있었고 마루판은 살구색으로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배색을 보이고 있었다. 창가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북향인데다 맞은편 동 건물 때문에 조망권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햇빛은 적당한 만큼 들어왔고 답답한 풍경도 옆으로 살짝 내다보면 사거리가 내다보여서 어느 정도는 숨이 트이게 해주었다. 중개인은 이 아담한 공간에도 확인해 줘야 할 요소가 많다며 수도, 옷장, 창문, 욕실 등을 함께 확인할 것을 요청했다. 고장이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확인서에 서명했고 열쇠를 받아들었다. 중개인은 오피스텔 안내문을 주었고 거기엔 생활 센터, 보안실 등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중개인은 마지막으로 월세 안내를 해주고 방을 나섰다. 나는 현관에서 배웅하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와서 누웠다.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오느라 피로가 몰려왔다. 등으로 바닥의 냉기가 올라왔다. 내 체온이 방으로 스미는 것일 수도 있었다.
텅 빈 방 안. 오로지 내 숨소리만이 들렸다. 나는 눈을 뜬 채 앞을 보았다. 하얀 천장이 있었다. 지금껏 지나쳐온 천장들이 되감기 듯 눈앞에서 스쳐 지나갔다. 격자무늬의 학교 천장, 군대 생활관 천장, 포복 훈련하며 바라본 철창 그어진 하늘, 맥주를 사들고 놀러 간 친구 자취방 천장, 북토크를 하던 책방 천장, 조명의 불빛이 비치던 클럽 천장, 바로 저번 주에 다녀온 거제도 여행 숙소의 한옥 천장. 그리고 지금의 천장. 내가 누워있는 곳의 좌표를 괜히 계산해서 얼마나 멀리 왔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 잘 확인했니? 우리는 내일 네 옷과 나머지 짐을 차에 다 싣고 출발할 거다. 내일 보자. 휴대 전화로 메신저를 확인하니 여러 메시지가 와 있었다. 형, 잘 갔어요? 등등 안부를 묻는 문자들이 와 있었다. 옆으로 몸을 돌려서 캐리어에 손을 뻗어보았다. 그 안에 있는 CD, 책들이 만져졌다. 그랬다. 결별이란 건 없었다.
사는 방이 달라진다고 해서 과거가 없는 사람이 될까? 타지로 왔지만 모든 인간관계가 멀어질까? 직장 생활을 할 예정이지만 그게 예술과의 결별로 이어질까? 아니었다. 그제야 나는 격리되었다는 착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독립은 격리가 아니었다. 격리된 채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전에 쌓아온 것들은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그것은 폴더 속 폴더처럼 남아있었다. 지금 이 시기도 그 안에 새롭게 생성되는 폴더일 뿐이었다.
나는 바닥에 누운 채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보고 있었다. 건너편으로 맞은편 동이 보였다. 그러자 문득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이 오피스텔도 누군가의 예술 작품이자 누군가의 거주 공간이지 않은가. 이건 예술인가 건축인가? 둘 다였다. 독립이란 단어도 그랬다. 혼자면서 동시에 타인에게 의존할 때도 있지 않은가?
뭐든 한쪽으로 단정 짓지 말자고 결론을 내린 나는 점점 긴장이 풀려 잠이 몰려왔다. 잠이 들어도 심장이 계속 뛰듯 나는 무의식적으로라도 의존을 계속할 것 같았다. 좋은 사람들 생각이 많이 났다. 폴더를 뒤적거리듯 몸을 뒤척이다가 방 안이자 길 위에서 나는 서서히 잠들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