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는 불면이 있다. 아빠와 엄마가 앞다투어 물려준 끈질긴 내력. 열여섯 시간의 차이가 나는 대륙으로 넘어온 뒤에야 잠이 얼마나 내 삶을 꽉 쥐고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잠과 삶의 공생에는 조금 웃기는 면이 있다. 잠이 줄어들면 그날의 삶이 길어지지만 그건 삶이라기보다는 그저 눈 뜨고 있기와 다르지 않으니까. 한때는 숨 쉬는 곳을 제외한 몸의 모든 구멍을 메워야 잘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안대와 귀마개로도 모자라 마침내 마스크까지 써야 잠을 잘 수 있는 지경이 되었을 때, 그때의 나는 불행했던 것 같다.
몇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뒤바뀐 밤낮을 되돌리는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더이상 과거의 방법을 채택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땐 하루치의 밤을 반납하는 방식으로 나에게 괜찮은 내일을 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식으로는 어림없다는 걸 몸은 나에게 혹독하게 가르친다. 만일 그때처럼 밤을 지새운다면 나는 내일의 내가 얼마나 불행한 하루를 보내게 될지 안다. 그것이 나이며 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조금 슬퍼진다. 하루치의 밤 대신 낮을 깨끗하게 포기해야 하는 나이. 몇 번의 과정을 거치며 나는 밴쿠버의 낮보다 새벽과 먼저 친해졌다. 하루 동안 무얼 입고 먹어야 밤을 더 환대할 수 있는지를 배우며 겨우 내 몫의 낮을 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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